어제는 지우의 피아노 선생이 아침부터 온다하여 급히 집을 나섰다. 나가자 가는 비가 내린다. 망설이다가 그냥 비를 맞으며 집 앞 교대에 새로 생긴 까페로 갔다. 민트차를 한잔 시키고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문득 오사카 집회를 위해 기도해야 겠다고 생각하여, 비를 피해 나무 아래를 이리저리 전전하며 기도하던 중 말씀이 떠 올랐다. 거친 풍랑이 이는 밤의 갈릴리를 제자들이 주님이 가라하신 건너편 가버나움을 향해 가고 있다.(요6장) 막 오병이어의 그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주님은..그 자리에서 당신이 메시아요 왕으로 선포하면 딱 좋을 텐데...그리않으시고 제자들을 먼저 건너가라 하고 당신이 무리들을 보내고 뒤따르겠다 하셨다. 그런데 십여리 갈 즈음 숙련된 어부들도 죽게 될 정도의 거센파도와 풍랑을 만나 큰 위기에 빠졌다. 그들은 주님께 불만이 가득해 있었다. 왜 그 놀라운 역사를 행하고서.. 그 좋은 이벤트를 회피하시는가? 당신이 행하신 이 일들을 다른 이들도 보게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은 없으니 이 일을 행하시려 하신다면 당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요7:5 제자들은 참 대단하게도 늘 주님께 이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당신을 나타내소서. 왕이 되시고..그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 세상을 뒤집으소서. 내 안에도 그 감추인 욕망이 스스로 위장한 채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물론 주변의 동지들이 이번 오사카 집회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크다. 여러 말씀과 응답으로 오사카에서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를 이미 가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고야에서도 그랬지만...결국 진정으로 진정 주님께 의탁한다면.. 아버지의 본질적인 뜻대로 될 것이다. 나고야에서도 주님이 이루신 것은, 그저 막연히 생각한 어떤 능력,권능이라기 보다 '화평'이며, 진리를 통한 회복, 그리고 하나됨에서 나오는 깊은 자유와 희열이었다. 실로 주님이 행하신 오병이어는 엄청난..대단한 사건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일의 표면적 표적과 능력에만 집착하였다. 주님은 그런 제자들과 무리들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홀로 산으로 가고자 하신 것이다. 그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은 우리와 무관치 않다. '오병이어'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황막한 광야에서 ..굶주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어 먹이신 역사를 나타낸 것이다. 그것의 본질은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사랑이시며 진정 '그분만 구하고 순종할 때에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이다. 그 전능하심과 긍휼, 사랑이 이 땅에 장막을 치시고 나타난 것이 바로 주님이시다. 하나님이 주님을 통해 '만물을 다스리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과 무리들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듯이.. 그 하나님의 본질을..주님을 보지 못하고...드러난 표적에만 집착하여 열광하였다. 나고야에서도 어떤 일들을 행하실까 솔직히 기대도 크고 궁금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거의 완벽한 '하나 됨'을 경험하게 하셨다. 일본에 가기전 갑자기 불거진 독도문제로 다시 두 나라는 더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나고야의 시골에서...우리는 세상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한 새사람'을 (엡2:14-18)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이것이 가장 놀라운 기적이요..권능이었다. 물론 각자가 주님과 하나되어 강렬한 성령님의 기름부음과 임재를 체험하였다. 그러나..진정한 표적은 '요나의 표적'이었다. 일본의 형제들을 축복하고 그들이 부흥하여 우리보다 더 쓰임받기를 진정으로 구하고... 신시로 교회 타키모토 준 목사님에게 '엘리사의 기름부음'이 임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구했는지 모른다. 그 팀이 내년에 한국의 부흥을 위해 섬기는 것을 위해.. 진심을 담아 큰 물질을 헌금하고...함께 부둥켜 안고...사랑하고... 그 진정한 하나됨과 회개가 요나의 표적을 회복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때를 생각하면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희열이 여전히 나를 두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새로운 길과 전략..역사들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일..어떤 치유나 체험...무언가 표적적인 것에만 집착하여 그것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실망, 불만하였다면...역시 무언가 열심히 추구하나.. 어두움과 풍랑을 만나 고전하고 있었을 터다. 그런줄도 감지하지 못한 채... 제자들의 입장도 이해는 한다. 그 수많은 군중하며..그 놀라운 역사..빵빠레를 울리고...그런데도 주님은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시고 그 밤에 자기들을 먼저 건너가라 하시니.. 그리고 혼자 산으로 가셨다. 왜 그리하셨는가? 어떤 이들은 인간들의 그 열광주의.. 숫자와 표적의 부흥만 구함과 무지하고 비본절적인 것을 피해 가셨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주님이 산으로 가신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다. 전능하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다. 주님도 한계를 가지신 인간으로 오셔서 모든 것을 체휼하셨기에.. 늘 깨어 겸비함으로 기도하셔야 했다. 그 놀라운 능력을 행하시고도 기도하심으로 그 본질적 능력을 유지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 주님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육체로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으로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5:7 그의 '경외하심'으로 상달되고 받으신 응답... 오직 하나님만 구하고 의탁함, 복종 가운데 당신을 두신 것이다. 주님은 누누히 이것을..이 아버지의 기쁘신 뜻만을 말씀하신다. 그것을 구하지 못하면...복종하지 못하면..흐려지고 죽는다. 거의 죽게 될 정도의 '거센 풍랑'이라 기록하였다. 제자들의 그 불만과 실망..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내 기획..내 사역에로의 방향.. 본질이 아닌 음험한 욕망이 '풍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견고한 진'은 내 안에 있다. 결국 전쟁의 승패는 '내 안의 복종'에 있는 것이다.(고후 10:6) 진정 주님께..그 진리의 본질에 다스려짐..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그 위기의 순간에 주님이 저 앞에서 물위를 걸어서 다가 오시는 것이다. 제자들을 먼저 가라하신 주님이 앞서 계신다. 주님은 그러신다. 그분은 우리 앞에 걷고 계시며...행하신다. 그런데 마가는 놀라고 반가워 하는 제자들을 주님이 '지나시려 하셨다'고 특이하게 기록했다.(막6:48) 당연히 위기에 처한 제자들의 구해 주어야 할 것인데..왜 지나시려 하시는가? 그것이 의문이었다. 제자들이 주님을 부르고 소리치며 구원을 요청하자... 주님이 그제서야 손을 내미신다. 안심하라 내니..두려워 말라 막6:50 나는 당연히 주님이 함께 하시고 나를 위하시며..그분이 가라하신 명령을 따라 순종한다고 생각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이 추구과 간구와..집회들을 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주님이 이끄신다고 생각한 그것을 순간 다시 돌아 보게 되었다. '그분께 드렸을 지라도 ..주님을 간절히 불러야 한다. 주님이 이 일에 계시지 않으면 큰 일이다..허사다. 그것을 가장 두려워 해야 한다. 구원을 요청하고 그분이 이 배에 함께 타시고..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아무리 주님의 명령으로 나아갈 지라도 얼마든지 주님이 그냥 지나가실 수 있는 것이다. 그걸 모른 채...우리끼리 계획하고 꿈꾸며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주님이 당연히 함께 하시리라 믿고... 그분이 이 모든 일에 진정으로 동승(同乘, 임재)하시지 않으면 너무나 허무하다. 아무리 거창한 의미와..또는 순수함을 스미게 한..기막히고 진실된 통찰력을 동반한... 그럴듯해 보이는 무엇이라도.. 주님이 임재하시지 않으면 허사다. 여러 바람에 밀려 ..어디로 가는 듯 추구해도 결국 풍랑을 이기지 못하고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결실과 역사는 없을 것이다. 두려워 하고 돌아보고 깨어있어 살펴야 한다. 나는 그동안 한국, 일본...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전략을 깨닫고 집요한 추구를 다해왔다. 여러가지 정리된 생각들과 방향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비우고..오직 주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이 나타나고 이루시기를 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 그 생각들도 그 안에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주님은 늘 함께하는 사랑하는 제자들일지라도 ..그들이 구원을 요청하고 오직 주님께 의탁해야 만 손을 내미시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나는 커다란 나무아래 서서 홀로 그것을..그 단순하고 놀라운 깨달음을 영혼깊이 되새겼다. 나는 오사카 집회에 자칫 주님이 상실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다시 기도하였다. 간절한 간구가 터져 나왔다. "주님이 계획이시고..연출자시며...프로그램 자체이십니다. 오직 주님만 나타나소서..이 일의 목적과 본질이 되소서.. 그 드러난 무엇만이 아닌..진정한 하늘의 권능과 표적을 나타내소서. 일본과 한국의 그 어둔 밤과 음부의 바람을 잠재우소서.. 주여 당신의 손을 내미소서.." 물론 나는 언제나 오직 주님께 의탁하고 그분만 구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다시 철저히 깨어 점검하고 또 살피고...살피고..나도 모르게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은 아닌가..성령님께 인도하심과 주님의 본질 가운데 있기를 구해야 한다. "주님께 합당치 않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성령의 불로 태우소서.." 그분께 간절히 이 모든 일에 주인이 되시고 앞서 행하시며...왕이 되시기를 나를 쳐 복종시켜 드리고..드리고 또 드려야 한다. 그 경외하심으로 기도를 하자 마음에 희열이 넘치고 주님의 임재가 느껴졌다.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6:20,21 아아... 그저 주님을 기뻐하며 내 안에..그분이 주신 이 일에 영접하는 것이 곧 목적이요 결실이다. 주님이 내 안에 진정으로 계시면..곧 목적지에 도달하리라. 그 본질을 깨닫고 큰 능력을 만지리라. 주님이 목적지요..그분 자신이 결실이다. 그것이 빠지면..지치고 곤하고 흔들리리라. 오사카의 그 집회도 결국 주님이 프로그램이요..능력과 목적이 되실 것이고..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하면 표면적인 것들에 좌우되어 역시 서서히 가라앉을 것이다. 주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능력을 행하고 선지자 노릇을 할 수 있음(마7:22-)을 깊이 두려워 하자. 나는 다시 주님을 간절히 부르기 시작했다. "오!..주님..당신이 모든 것이 되소서... 주님을 영접합니다...주님만을 구합니다. 이 배에 오르소서...당신이 주인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