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눅19:17 요즘 이 말씀을 붙들고 있다. 이스라엘을 다녀온지도 꽤 되었는데 아직 나는 여리고며 그 땅을 머물고 있다. 주님은 그의 공생애 사역 말미에 제자들을 데리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신다.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을 응하게 하시기 위함인 것이다(눅18:31)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시는데도 제자들은 하나도 깨닫지 못한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눅18:34) 요한은 주님의 무덤에서 텅빈 세마포를 보고도 베드로와 제자들이 주님이 말씀하신 부활을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했다(요20:9) 얼마나 자주..수없이...십자가와 부활을 말씀 하셨는가! 그런데도 제자들은 도무지 알지도..깨닫지도 못한다고 성경은 수없이 말한다. 나도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지만...그 본질과 그 역사를 알지 못할 수가 있다. 아주 피상적인 부분을 알고서..무언가 아는듯 착각하지는 않는가! 성령님이 보혜사시고 내 안에 계시며..주님의 능력과 뜻 가운데 인도하시는 분임을 성경에서 수없이 읽었다. 그러나 나는 2004년 봄 즈음에서야 겨우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직도 그 성령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권능을 너무나 알지 못한다. 방언에 대해서도 무수히 읽었다. 그러나 2007년 봄에서야 겨우 그 본질과 능력을 알았다. 수많은 이들이 방언을 받고 그 삶이 변화 되었다. 그러나 정작 아직도 그 주님의 영으로 부터 나오는 '입술의 기운'... 불법의 비밀을 죽이는 그 성령님과 더불어 하는 선포를 피상적인 정도로만 경험할 뿐이다. 주님이 나를 위해 중보하시고 간구하시며...두 세사람이 주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서야 그 주님의 간구..나를 위해..나를 사랑하시어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을 겨우 감지하는 바보다. 그토록 우리는 무지하고 깨닫지 못하며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날마다..십자가..보혈..부활의 권능을 알게 해달라고 구하고 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고난과 피를 흘려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여리고에 들르셨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구걸하던 소경이 나사렛 예수가 지난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울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사랑으로 감싸 주소서..' 나 또한 그 소경처럼 소리쳐 주님을 너무나 부르고 싶어졌다. 부르고 또 불러도 그립고 그리운 주님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랑과 심정을 깊이 알지 못하는 맹목(盲目)인 것이다. 귀머거리며..앉은뱅이다. 아직도 너무나 아버지의 마음과 그 본질..주님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 바울처럼 죄인 중 괴수임을 갈수록 더욱 절감한다. 나와 같은 자가 이렇게 주님 나라를 위해 살아 감은 정말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소경이 외치자 제자들과 주변에서 잠잠하라 꾸짖었다. "이분이 어떤 분인데..메시아인데..이스라엘의 왕이신데... 너같은 종자가 시끄럽게 하느냐! 이분은 이제 예루살렘에서 구세주로서 놀라운 역사와 능력을 나타낼 분이시다....조용히 해!"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경은 예수님의 명성과 소문을 들었는지..더더욱 소리질러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구했다. 주님이 멈추어 서셨다. 그리고 그를 데려 오라 하셨다. 주님을 멈추게 하는..주목하게 하는 간절한 기도와 삶이고 싶다. 내 생각과 마음과 모든 것을 살피시는 그분께서 늘 관심을 두시는 합한 영혼이고 싶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으시자 그는 즉시 대답했다. "주여..보기를 원하나이다." "보아라..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곧 보게 되었고 사람들은 놀라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리고 주님은 수많은 군중들에 가리어 뽕나무에 올라간 세리장 삭게오를 만나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그 죄인의 집에 가신다. 여리고에서 ..그 여호수아의 놀라운 전쟁의 현장에서 주님의 전략과 계획은 소경 거지와 돈은 많으나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는 삭게오였다. 주님의 이 측량못할 긍휼과 마음..계획을 깊이 알고 싶다. 삭게오는 주님 사랑에 감동하여 회개했고... 주님은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칭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19:10 그 때 이 유명한 말씀이 나온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본질이며 전략이며 계획이다. 이 본질에 집중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부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자기의 것에 묶여선 않된다.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하고 품고 ..그분의 능력과 권세로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돈이 많은 삭에오의 집에 어울리는 '열 므나의 비유'를 말씀 하셨는데 이는 '예루살렘이 가까웠고 제자들과 군중들이 이제 메시아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눅19:11) 그들은 당장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 서는 것을 본 것이다. 그들에게 전해 준 열 므나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를 극명하게 알게 한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길을 떠나며 10명의 종들에게 한 므나씩 주어 장사하게 했다. 왕위를 받아 왔을 때, 한 므나로 열므나를 남긴 종에게 칭찬을 하셨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아라. 주님은 우리에게 권세와 권능을 주시고 싶어 하신다. 그 주님의 마음을 아는자..충성된 자..지극히 작은 것에 본질을 심는 자.. 이 땅을 다스릴 권세, 능력을 받으리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25:34 이 놀라운 축복을 하시며..주님은 더욱 놀랍게도 그 근거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섬기는 충성을 했기 깨문이라고 하셨다(마25:40) 이것을 더욱 알기 원한다. 이 하늘의 전략을 더욱 깊이 깨닫고 누리고 싶다. 2. 오사카 집회는 참 아름다웠다. 나는 맨 앞자리에서 오직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며 온 영과 맘과 몸으로 찬양을 드리고 간구를 드렸다. 과연 '묻지마 집회'였다. 집회 장소와 의미를 공지하고 각자 찾아서 오라는 이 특이한 예배에 수백명이 정말 왔다. 처음엔 비워져 보이던 집회 장소가 점점 차더니...둘째 날엔 가득차 있었다. 숫자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기분 좋았다. '어디서 저렇게들 왔을까? 도대체 어떤 이들일까?' 궁금했지만 역시 묻지 않았다. 그저 내가 우스개처럼 고안해 낸 말이지만 '묻지마 집회'의 의미는 오직 주님께 의탁한다는 것이다. 이 역사..예배의 시작과 과정과 뜻과 계획이 주님께 있다는 것이다. 여리고처럼 주님이 오사카에 들어 오셔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실 것이다. 나는 그것을 굳게 믿었다. 사람에게는 묻지 않지만...주님께는 수없이 묻고 매순간을 의탁하는 것이다. 성령님께 사로잡히고 나서 날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구했다. 그것이 주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이라 믿었다. 주님은 오직 아버지의 기쁘신 뜻만을 구하고 그 삶을 살아 내셨다. 나는 주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뜻과 계획, 전략을 이 땅에 나타내고 실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분은 오직 주님의 영광과 진리를 나타내신다(요16:13,14) 성령님께 사로잡혀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그 천국의 아름다움과 본질적 능력을 극대화 시켜 부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기름부음'이란 그 영광과 진리를 아는 것이고 주님이 주시는 권세를 소유하는 것이다. 그분의 전략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그 주님의 전략과 뜻을 구한 것의 응답은 예상 밖의 '일본'이었다. 나는 그전에 주님 뜻을 따라 일본에서도 지극히 작은 영혼, 풍경에 충성하였다. 주님의 응답과 계획은 우리의 생각, 지각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자기 정과 욕심이 죽어져야 만 거기 순종한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추구해도 내것이 가득차 있으면 주님의 전략을 제한한다. 한걸음씩 주님이 연결하신 '지극히 작은 영혼'들을 섬기며 찾아간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영적인 진들에 묶여 탄식하는 땅이었다. 처음 갔던 변방 나가노에서 우리는 전혀 생각도 못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한번 갔을 때 그것을 안 것이 아니라..여러차례 시간과 물질, 댓가를 지불하고 그곳에 가서 지극히 작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진실로서 섬길 때에 서서히 보여 주신 것이다. 구석진 땅에 한국과 일본의 아주 근원적인 영적 묶임과 상처와 문제들의 상징이 있었던 것이다. (나가노의 젠꼬지와 마쓰시로 대본영에 대하여는 여러차례 쓴 바 있다) 그런 것들을 통하여, 일본으로 들어 가며..주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전쟁에 대하여 가르치시기 시작해셨다. 나는 오직 복음이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다. 사단은 집요한 정사와 권세, 치밀한 체계를 통하여 세상을 지배해 왔다. 그것을 알고 대적하고 깨트리는 능력과 감각과 지식이 절대 필요하다. 일본은 너무나 집요한 영적인 속박에 있었다. 겉보기와는 정말 다른 상상못할 흑암의 지배구조다. '영적 전쟁'은 어떤 유행이나, 단체의 관점,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성경이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요..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군사는 전쟁을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목적과 본질은 ..포로로 잡히고 억눌린 가난한 영혼들을 해방시키고 회복하는 것이다. 일본을 향한 주님의 마음과 애통을 품고 계속 나아갔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가깝지만...그 땅은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담과 상처, 원한을 가진 나라임을 실감했다.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 전쟁으로 아시아에서만 무려 2천5백만명이 죽었다. 무고한 일본인만 3백만명이 넘게 죽었다. 우리 민족은 임진왜란...일제 강점기를 통해 상상못할 고통과 피흘림을 겪었다. 이 일의 배후에 악한 영들의 계략이 있는 것이다. 이 한반도 전역을 황폐하게 하고 조선인의 머리를 많이 베어 오면 상을 준다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말에 목을 가져가는 것이 짐이 되자 코만 베어 소금에 절여 갔던 무자비한 종자들이다. 하나에 수천개의 코가 있는 그 '코무덤'(鼻塚)들이 발견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던 그런 나라... 모르면 몰랐지..점점 역사와 정보를 알아 가면서 주님의 사랑과 마음이 아니면 정말 용서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우너수 마귀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가 철천지 원수가 되게 하려고 애썼음을 이 관정에서 깨달았다. 그 이유는 이 두나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수로 만들고 담을 쌓아 등을 돌리게 한 것이다. 작년 나가노..그리고 7월 나고야에 이어..이번 오사카 집회를 주님께 응답 받았다. 그것도 오사카 성(城) 옆에서 집회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오사카 성은 한국과 일본의 이 장벽이 처음 생긴 곳이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성이었던 것이다. 그가 피흘리는 전쟁의 영이 되었던 시발점은 나고야다. 도쿠가와, 노부나가, 토요토미...모두 나고야 출신이다. 그리고 그들이 철포, 화승총으로 세계에서 처음 전냉을 한 이땅에서 하루에만 1만 6천명을 죽인 땅이 신시로 였다. 그 땅에 가서 기도할 때에 몸이 아프고 토할것 같은 영적인 기류를 느겼다. 그 피흘림을 기반으로 토요토미는 수많은 일본의 크리스챤들을 죽이고 한국을 침략하게 되는 것이다. 뜻밖에도 주님이 가라하신 교회가 그 땅에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신시로교회였다. 그들은 90년대 초반 주님이 직접 일으키신 영적전쟁으로 부흥을 누렸다. 타키모토 준 목사님이 쓰신 <주님이 일어 서신 날>이란 책을 읽으면 대장 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을 보내셔서 일으키시고 싸우게 하신 그 전쟁의 드라마를 알 수 있다. 연약했던 그들에게 성령님이 오시자..능력과 전쟁과 하늘 전략이 부어졌다. 그들은 일본 땅에서 상상못할 부흥을 결실했다. "이제 곧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부흥이 일본에 나타날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오시자..우리를 본격적인 영적인 전쟁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타키모토 준 목사님이 신시로 집회에서 하신 말씀이다. 성령님은 오셔서 영적인 전쟁을 할 군사로 세우시고,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지혜, 전략을 구사하는 '권세'를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기름부음은 시작에 불과하다. 마치 오순절처럼...싸울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부흥을..성령님을 구하고도..상심하기 쉽다. 부흥이 임하면 비로서 전쟁이 시작된다. 그들이 최근 일본의 부흥을 위해 다시 기도할 때에 성령님께서 한국 땅에 가서 조상들이 신사참배를 강요한 곳을 찾아가 회개하라고 하셨단다. 그렇게 순종하여 한국에 세워진 신사를 무려 1천 3백개이상 찾아 내고.. 시골 구석 구석 감추인 신사를 찾아가 90군데를 찾아가 십자가와 보혈로 회개하는 일을 하던 중 우리 팀을 만난 것이다. (일본 형제들의 집요함과 철저한 순종은 참 대단하다는 감탄을 했다. 그 간증을 들을 때 역시 울고 말았다...그 남모를 수고와 순종..) 그런 교회가..그런 일들이 일본에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은 다 아신다. "일본에 예비한 주님의 사람들..감추인 7천을 만나게 해 주세요." 역시 그렇게 수없이 기도한 것이 생각났다. 그 팀을 만나서도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연결된 것이 아니다. 여러차례 그들이 올 때마다 섬기고 헌금하고 기도하며..후배들은 울릉도등 오지까지 동행하여 촬영과 섬김을 다했다. 또한 신시로에도 찾아가 함께 만나고 하면서 점점 주님의 인도하심에 깊이 들어간 것이다. 그들 또한 지극히 작은 것..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한국의 변방을 찾아 다니며 오직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길을 만났다. 그것이 바로 우리 팀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길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이 만남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직접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준 목사님은 이번 오사카 집회에서 그렇게 말했다. 작년 나가노 집회를 마치고 다시 그곳에 가야 하는 지를 구했을 때... 응답하신 곳이 나고야 신시로 교회였다. 주님의 계획은 우리의 지평을 넘어선다. 그리고 지난 7월 우리는 그곳에 가서 진정한 '한 새 새람(One New Man)'의 본질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는 정말 주안에서 하나됨이 무엇인가를 희열 속에 경험했다. 그 다움 오사카 집회를 마무리해야 했다. "오사카에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전략을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기도할 때에 주님은 여러 차례 그 전략이 '찬양'임을 명확히 응답하셨다. 사실 나는 그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던 사람이다. 찬양이란 기도회나 예배에서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는 분위기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은 그 견고한 일본을 여는 전쟁으로서 내가 생각지 않던 것을 예비하신 것이다. 오사카에 가는 것은 일본의 강력한 영적 세력과의 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을 파하는 주님의 전략은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집회에서는 그토록 강렬하고 온전히 찬양에 집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