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치전문인선교 모델 ‘선덕여왕’
김태연 교수(GPI 원장, 한국로잔위원회 총무)
▲ 김태연 교수 |
문화정치, 제3의 길을 향하여
프란시스 쉐퍼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이 성도도 삼위일체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C.S. 루이스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삼위일체적 선포가 중요함을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더욱이, 루이스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위대한 사상에는 삼위일체적 선포가 함의되었음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 되려면, 그 분은 적어도 두 인격을 내포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단일한 인격이라면, 세상이 조성되기 이전에 그 분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사랑하셨다고 믿는다….루이스에게 있어서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전부는 그리스도의 삶을 나누라는 것, 즉 ‘작은 그리스도’가 되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영생의 기쁨은 생명의 원천 그 자체이신 삼위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다.”(버슨 스콧, 제리 웰즈, 루이스와 쉐퍼의 대화, 김선일역, IVP, 2009, pp.427-28)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독교변증학 최고의 성경 귀절이 요한복음 17장 21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수신, 修身)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제가, 齊家) 우리 안에 있게 하사(치국, 治國)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평천하, 平天下).”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제3차 선교사역에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덜기 위해 바느질을 하면서 자비량 선교(Tentmaking Missions)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사람이 단연 브리스길라이다. 그는 바울의 사역을 위해서는 목이라도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선지자였다. 자기의 집이라도 내어서 가정교회를 일군 가정교회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립(Self-Supporting), 자전(Self-Propagating), 자치(Self-Governing)의 방법으로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했다. 오늘날의 ‘선교 현장’과 성서의 전문인선교를 잉태한 ‘자비량 선교’의 배경, 신라시대를 여는 ‘선덕여왕의 이야기’를 삼중 교집합으로 연구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전문인 선교의 다양한 영역 중 정치 영역에서 670년대의 신라시대 선덕여왕과 2009년대의 이명박 정부를 비교해 보는 문화 정치학적 접근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민생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진경 교수는 문화정치학적인 영토가 필요함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던이라는 말로 표상되는 ‘문화적 사회구성체’의 여러 측면들을 바로 이런 관점에서 검토하고 소개하고자 한다…. 마치 수십 년 전에 기술복제가 세계와 예술을 장악해 가는 것을 보면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달리 잃어버리게 된 것에 대한 향수와 분노 대신에 어떤 희망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 역시 새로운 희망의 요소들을 찾고 집요하게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러한 시도를 위해서 우리는 현대문화를 특징짓는 현상 그 자체에 매몰되기 보다는 그것의 지반을 형성하는 좀더 넓은 문화적 구성에 대하여 눈을 돌리고 싶었다…. 물론 지금은 닮고 닳아 페인트는 벗겨졌고, 화려한 광채로 가려졌던 추한 몰골이 여기저기 드러났음은 분명하다. 이 역시 근대라고 불리는 서구의 지배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준다.”(이진경편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그린비, 2007, pp. 6-7)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신학을 융섭(convergence)하는 이러한 시도는 정치 문화의 토양에서 전문인 선교의 영역을 확장하게 해줄 것이다. 또 이는 역사적-문법적-신학적 성서해석에 기초한 성서 해석학에 신라와 남한이라는 문화 해석학(cultural hermeneutics)을 통해 궁극적으로 선교적 해석학(missiological hermeneutics)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필자는 한 신문 기사를 읽고 드라마 선덕여왕과 한반도 통일시대의 전문인 선교라는 입장에서 문화, 역사, 신학의 융섭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문화정치, 제3의 길의 모델
“한국에서 풍월주를 선발하기 위한 최종 라운드인 무술 결승전에 유신(엄태웅 분)과 비담(김남길 분)이 올라간 가운데, 그간 언론에서 ‘선덕여왕의 최종병기’라고 집중 조명해온 김춘추(유승호 분)가 드디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했다. 9월15일에 방영된 <선덕여왕> 제34부에서 첫 선을 보인 김춘추는 시작부터 아주 ‘까탈스럽게’ 등장했다. ‘국제 감각을 갖춘 외교의 귀재’라는 이미지의 걸맞게 선진국 수나라에서 ‘중국 조기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말은 무서워서 못 타겠다’느니 ‘가마는 멀미가 나서 못 타겠다’느니 하며 측근들을 피곤하게 만들다가 결국에는 아무도 몰래 혼자서 왕경에 입성했다.”(오마이뉴스)
‘선덕-춘추-유신’ 삼각편대 등장
선덕여왕과 전문인 선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세 분의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선덕여왕’. |
덕만-신라 제27대 임금이자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진평왕의 쌍둥이 여아 중 둘째. 아버지 진평왕이 문노와 소화의 도움을 받아 빼돌린 뒤로 오랫동안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지낸다. 명랑한 성격에 비상한 머리, 절대방향감각을 갖고 있다. 양어미인 소화가 유사에 빠진 후에 자신의 뿌리를 찾겠다며 신라로 온다. 출생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서는 화랑이 되어야 한다는 판단아래 계속 남자 행세를 하다가 김유신을 사랑하게 된다. 뒤틀린 운명과 모든 운명의 시발점인 미실과 대립하는 한편 김유신, 김춘추를 발탁해 삼국통일을 이루는 초석을 다진다.(류은경, 선덕여왕 1권, mbc 프로덕션, 2009, p. 11)
김유신-신라의 제15대 풍월주이자 금관가야의 후손. 속이 깊고 무술에 능하며, 진지한 성격에 위엄을 갖추고 있어 정치세력 중 가야파의 희망이 된다. 하지만 신라 진골들의 무수한 음해와 연적 비담의 질투와 반발로 시련을 겪기도 한다. 일부러 남장차림을 고수한 덕만에게 연정을 느껴 혼란에 빠지기도 하지만, 여인임을 알게 되자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변함없이 사랑한다. 덕만의 신뢰를 바탕으로 입지를 굳히고 김춘추와 함께 훗날, 삼국통일을 이룩한다.(류은경, p. 12)
김춘추-신라 제29대 임금. 천명공주와 김용수의 아들이자 덕만의 조카.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아 조용하고 겁 많고 사색이 깊은 아이였으나, 권력관계와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어 덕만을 깜짝 놀랄만한 계책을 내놓기도 한다. 김유신을 진정한 형으로 모시는 한편, 유신과의 연대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그의 여동생 문희와 혼인한다. 훗날 유신과 더불어 삼국통일을 이루고 태종 무열왕에 오른다.(ibid.)
“이로써 훗날 외교와 군사 방면에서 선덕여왕의 양팔이 될 김춘추와 김유신이 모두 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하게 되었다. 선덕-춘추-유신이라는 삼각편대의 틀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오마이뉴스)
선덕여왕은 신라가 화랑을 키워 삼한을 통일하는 것을 여성의 몸으로서 실현하려고 했던 것처럼 이 시대 가운데도 선덕여왕과 같은 여성 리더가 나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브리스길라-바울-아굴라’, ‘신디 제이콥스-피터 와그너-채안’, ‘여성선교사-선교형 목사-선교학 교수’와 같은 구조로 남북의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전문인선교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강력한 팀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화정치, 제3의 길로 통일 한국
“한결같이 ‘마이너 리거’들에 불과했던 선덕(소외된 성별), 춘추(소외된 왕족), 유신(소외된 귀족)이 신라의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시대가 동아시아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감돌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들의 정치적 성공은 훨씬 더 큰 장애에 직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상황 속에서 개인의 능력이 이전보다 더 강조되던 시대 분위기 덕분에 이들은 비주류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신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선덕-춘추-유신의 등장에서 잘 나타나는 바와 같이 미증유의 위기에 처한 서기 7세기의 신라인들은 기존의 ‘대표팀’을 전면적으로 물갈이하고 비주류들을 과감히 기용하는 혁신적인 ‘세대교체’를 통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 점은 당시의 고구려, 백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위기상황 앞에서 과거의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에 믿음을 걸었다는 점에서만큼은 당시의 신라가 고구려, 백제보다 앞섰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7세기의 신라인들은 ‘삽질’ 수준에 머무는 기존의 ‘대표팀’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거두고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정치실험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들은 정치 장인(匠人)들인 것이다. 마이너 리거들의 동맹인 선덕-춘추-유신 삼각편대의 등장이 현대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이것이다.”(오마이뉴스)
우리는 문화정치학의 입장에서 어떻게 선덕여왕의 전문성인 화해와 연합의 정신을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지난 9월 19일자 국민일보 사설과 9월 15일자 코리아 타임즈 사설 등을 펼쳐보자.
“정대표는 얼마 전에 낸 자전적 정치 에세이집을 통해 민생연합을 야권의 화두로 제시한 적이 있다. 반(反)MB전선이 전부가 아니고 국민이 진정 원하는 대안이 되는 게 목표라면서 민주연합과 지역연합을 뛰어넘는 민생중심의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명 야당이 필요한 때는 집권세력이 국민이 바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경우다…. 정대표가 제시한 민생연합은 국민 속으로 더 파고 들라는 손대표(손학규)의 발언과 일맥 상통한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이다.”(국민일보, 2009.9.19, 오피니언)
“최근까지도 이명박 대통령은 고소영이라는 이름으로 기소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기반으로 평가절하하던 중하층을 포용하는 중도실용주의라는 이름을 껴안았다. 정책의 변혁을 통하여 이대통령은 자신의 이전 정책을 비판하던 훈련된 경제학자인 정운찬을 총리로 발탁했다. 그러한 횡보가 명백하게 이대통령이 다시 흥왕하는 데 기여했다.”(Korea Times, 2009.9.15, Editorial).
“그것은 한국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치경제적 과제를 성취하려면, 기존 기득권층의 권력독점을 과감히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대표팀’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문제의 해결책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에 세계경제가 둔화된 상태에서 나이키 마크와 같은 성장을 기대하는 반면에 연평균 15~20%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가까운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테크노크라트 실용주의가 정책결정의 최적화를 보장하고 있는 데, 실용주의 정치 체제란 무엇일까? 테크노크라트로 구성되는 정치체제는 이미 현대사회의 중요한 정책결정 체제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주로 경제개발 과정에 있는 국가에서 많이 생성되고 발전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많은 해외학자들은 경제성장 단계에 있는 중국도 이러한 테크노크라트 정치체제가 발전을 거듭했다고 인식한다. 이는 중국이 이 같은 장기간 발전을 견지해온 결과라는 분석하고 있다.
테크노크라트가 정책결정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배경에는 기본적인 사상기초가 자리잡고 있다…. 이 사상은 논리적, 실천적, 문제해결적, 효율적, 규율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물과 현상을 객관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수리적 계산과 정확성, 평가성, 체계성 등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사상은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종교, 미학, 감정 등 방식들과 크게 대립되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통치이론이라는 주장이다.”(이건우, 중국을 말하다, 지상사, 2009, pp. 170-171)
“기존의 ‘대표팀’과 기존의 기득권층으로는 도저히 나라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한국 역시 이제는 과감히 새로운 정치실험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선덕-춘추-유신의 등장으로부터 우리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오마이뉴스)
이것을 기든스는 제3의 길이라고 했는 데 그의 주장을 요약해보자.
“제3의 길을 주장하는 가장 평범한 방법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쌍방 부정의 방법이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것,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것,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것, 개인주의도 아니고 집단주의도 아닌 것, 자유무역도 아니고 보호무역도 아닌 것 등이 그 예이다.
기든스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제3의 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전에도 많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주장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를 규명하는 데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A도 아니고 B도 아닌 쌍방 부정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은 기든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차이가 있다면, 기든스는 고전적 의미의 좌우대립을 극복할 뿐 아니라 인류문명의 새로운 도전으로 세계화(Globalization)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종래의 제3의 길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세계주의적(cosmopolitan) 민족, 정치, 담론, 정체성 등을 과감히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앤서니 기든스, 제3의 길, 한상진, 박찬욱 공역, 생각과 나무, 2008, p. 17)
100년 전 전문인 선교 모델 제시한 도산 안창호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인일기를 주장하고 동북아를 통하여 세계화로 나가고자 하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그리고 서양 열강들을 경험한 자기부정, 자기희생을 통하여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테크노크라트 실용주의 정치적 지도자가 이미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 분이 곧 도산 안창호이다.
“도산은 기독교진리와 가치관을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회적이고 민족적인 이념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가 기독교 핵심으로 보았던 회개와 사랑을 사회적인 에너지로 활용하려고 했다. 회개를 인격혁명, 개조운동의 방편으로 등식화했고 사랑을 정의돈수로 활용함으로 종교적인 가치를 사회적인 이념으로 만들어 갔던 것이다. 도산은 민족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그 앞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신앙인이다. 그는 민족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한국기독교인이었고, 의와 사랑의 보편적인 가치를 갈구했던 보편적 기독교인이기도 했다. 그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적인 추모예배’가 여러 곳에서 개최된 것은 그가 이같이 기독교신앙인으로 살아갔다는 증거일 것이다.”(신앙과 정치, 창간호, 이만열, “도산 안창호와 기독교”, 2009, p. 81)
도산 안창호는 이미 100년 전에 한국의 대안적 발전모델을 추구한 창조적 리더였다. 또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한 전문인이었다고 본다. 선교적으로 볼 때 한국적 가능성은 역사적 해석학과 문화적 해석학을 통한 선덕여왕을 화두로 하여 제3의 길을 추구한 안창호를 전문인(professional)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교계에도 ‘테크노크라트’ 일어나야
“한국의 시민사회가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며, 특히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중민 집단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서구모델의 연장선에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발전한 중민의 발전 역량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의 시각에서 제3의 길을 상상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참여민주주의의 길이며, 그 동안 국가적 도식발전 또는 재벌중심의 발전의 한계와 부작용을 넘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여기에 있다고 보고 있다.”(김형기편, 21세기 한국의 대안적 발전모델, 한상진, “제3의 길과 윤리적 자본주의”, 한울 아카데미, 2002, p. 120)
김성철은 기든스의 제3의 길을 한국에 이렇게 적용해야 한다고 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한국형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추진해야 할 작업은 한국의 시대적 과제를 균형 있게 설정하고 그 과제를 풀어나가는 현실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의 과제와 방법론은 시장의 형성, 정부개혁, 일할 수 있는 복지, 능력정치, 강한 시민사회와 강한 개인, 제3의 평화통일론, 세계화와 민족정체성 강화다.”(김성철, 리더십과 NGO, 평화사회복지연구소, 2003, p. 220)
김성철이 말한 한국형 제3의 길이란 이미 새로워진 한국세계에 한국형 민주주의를 적용시키고자 하는 사고와 정책의 틀을 의미하며, 이에 대한 모색은 군사독재형 민주주의와 제국주의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넘고자 하는 시도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세계화 시대에는 개인구원을 강조하는 에반젤리컬(evangelical)과 현실 참여를 중시하는 에큐메니컬(ecumenical)을 아우르는 복음으로 사회를 변혁시키고 자발적으로 미래의 삶을 개척하는 지식 근로자인 전문인(professional)들에 의한 ‘프로패션컬(professioncal)’ 시대가 와야 한다.
아직까지 교계의 비주류는 전문인(professional)이라고 본다. 더 이상 목사와 평신도라고 하는 이분법에 갇히지 말고 기능적으로 창조적 중용을 취할 수 있는 ‘테크노크라트’가 일어나야 할 때다. 그래야만 목사들도 전문인 가운데 전문인이 될 수 있고 평신도들도 다양한 가운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전문인 선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인 선교사가 갖춰야 할 요건
앞으로 누가 절대방향감각을 가진 선덕여왕과 같은 전문인 선교사가 될 수 있을까.
첫째, 인간 중심의 역사를 보는 눈에서 하나님 중심의 역사를 보는 통전적인 세계관에 기초하여 사고를 해야 한다.
둘째, 각 나라와 민족과 허다한 방언 가운데 복음이 생각날만한 신화, 전통, 문화, 즉 구속적 유비(redemptive analogy)를 발견하고 복음으로 세례를 주어 구속적 실체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전문인 선교사는 자원주의(volunteerism)에 기초한 사역동기로 전환된 자이며 전문인 선교는 사회적 기업을 이루는 소명관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넷째, 직업, 사역, 언어, 지역 전문성을 통하여 축복을 전하는 통로(channel of blessing)로서 자산운용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전문인 선교사로서 자비량의 수준(자치, 자립, 자전)에만 머물지 않고 이를 더 발전시켜 자신학(self-theology), 자행정(self-administration) 등 선교 경영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신자의 비세속성의 원리(every believer's non-secularism)에 의해 전문인 선교사는 세계관까지 변혁되어야 한다. 이는 성육신적인 선교를 하신 예수님의 영성을 따라가려는 종말론적 선교의 주춧돌이다.
여섯째, 전교인 선교사화 운동을 해야한다. 전신자선교사주의(every Believer’s Missionaryhood)란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모든 신자가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을 뛰어넘는 것이다. 곧 모든 신자는 선교명령의 실천 주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선교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는 운동이 전교인 선교사화 운동이다.
21세기는 크리스천 평화 촉진자의 시대
“우리는 이제 미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 이해를 가지고 칭의 사상(justification by faith)에 입각한 내세적 하나님의 나라인 개인의 영혼구원의 문제도 강조하면서, 성화사상에 입각한 역사 안에서 문화를 변혁시키는 역사내재적 관점을 가지고 사회개혁의 문제도 비판적 상황화에 의해서 강조하는 통전적이고 총체적인 모습의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 선교에는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NGO 선교, 미국과 영국의 선교사의 95%를 차지하는 자비량 선교(tentmaking mission), 한국에서 상황화 작업을 하는 전문인 선교(professional mission)가 있으며 이들을 담을 수 있는 전문인 선교 신학을 제시하는 것이다.”(김홍기, “교회사 속의 종말론”, 종말 하나님이 오고 있다, 김석년편, 서로사랑, 1999, p. 219)
향후 5년 안에 100만 명의 실버들이 은퇴하게 되는 데 이들 가운데 10% 만이라도 전문인 선교사로 양성하게 되면, 이들을 통하여 라이즈업 코리아(Rise Up Korea)가 이루어지게 되고 이들을 통하여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를 넘어선 평화 민족주의 코리아나(Peace Nationalism Koreana)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위기의 한민족은 평화민족주의에 기초한 평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할 때 동북아의 작지만 단단한 강소국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될 것이다. 분단의 장벽을 넘는 평화민족주의의 평화적 통합은 동북아 국가의 상이한 역사와 전통, 이념, 종교, 문화, 관습을 초월하는 동북아의 평화적 통합의 의미를 지닌다. 한반도에서 동북아로 평화적 통합이 확대될 때 분단으로 막혀 있는 동북아국가들의 발전전략이 원활하게 소통됨으로써 동북아 공영의 평화가 기대될 수 있다. 평화민족주의는 세계의 분쟁과 갈등을 극복하여 세계의 평화적 통합에 기여할 민족주의의 이상적 목표이다.”(정상모, 위기의 한민족, 평화민족주의로 넘는다, 풀빛, 2005, p. 245)
민족주의는 일류국가로 가기 위한 20세기의 산물이었다. 21세기에 초일류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크리스천 평화 촉진자(Christian Peace Facilitator Koreanna)의 시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섬기는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적인 선교를 바탕으로 상황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비판적 상황화에 기초한 전략이요, 국가의 내적인 힘이요, 영적인 힘인 것이다. 이것이 국력(power index)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인 전문인을 요구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회, 새로운 전문인을 무력하고(helpless) 희망이 없으며(hopeless) 무정한(heartless) 포스트모던 사회에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성육신 선교(incarnational missions)요 비판적 상황화(critical contextualization)의 선교가 아니겠는가.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전문인 선교 시대에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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