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딸 지우가 학교에 늦었다며 칭얼 거려서 데려다 주었다. 학교 길은 어느새 가을 은행 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이미 떨어진 것들도 많았다. 이제는 짙은 추수기라는 것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나라도 때와 시기가 있다. 지금은 대추수기다. 지우는 갑자기 마구 뛰기 시작했다. 늦었다고 인식했는지 초등학교 2학년의 달음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빠른 발길로 달린다. 뒤돌아 보지도 않고 순식간에 교실 쪽으로 뛰어 쑥 가버린다. 나는 감탄하여 한참을 지우가 사라진 그 쪽을 바라 보았다. 우리도 정신을 차리면 이렇게 달릴수가 있다. 지금의 때와 시기가 언제인가를 알면 이렇게 멈칫하고..자기만 돌아 보며... 같은 것들을 반복하는 그 틀에서 벗어나 믿음의 경주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지금은 자다가도 깰 때다. 얼마전 대구의 '연합중보기도모임'에 갔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처음으로 나누게 되었다. 그동안 그것을 나누고자 하였으나.... 대구에서야 그것이 풀려났다. 집회전에 무엇을 나눌까 하는데..갑자기 생각나는 말씀이 있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을 알라 마24:32,33 어릴적 '종말론'에 관심을 가질 때, 자주 보던 말씀이다. '무화과 나무'는 당연히 '이스라엘'이다. 그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보거든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하여 제자들이 물었을 때,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20여년 전에 한참 이 말씀으로 종말과 휴거등에 대하여 열광했던 것을 이제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단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공격하고 변질시킵니다. 그렇게 생긴 부작용 때문에..교회는 그것을 쉬쉬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더 그런 부분을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어제 밤, 창조과학을 강의하시는 김명현 교수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재림'에 대한 것들을 그렇게 집요하게 변질 시켰나 보다. 극단적인 종말론자들이나, 휴거론자들이 나와서 아예 재림자체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빼앗아 갔다. 나도 20여년을 그부분에 거리를 두고 살았다.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을 가졌지만 갑자기 '무화과의 비유'의 말씀은 그제서야 생각난 것이다. 문득, 이 무화과에 대한 말씀을 예레미야에서 읽은 것이 생각났다. 급히 그것을 찾아 보았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후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두개의 무화과 광주리를 환상으로 본다(렘24:1-)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 땅에 이르게 한 유다의 포로들을 이 무화과 같이 여길 것이다 (레24:5) 라고 말씀하시며 무화과인 이스라엘이 다시 자기 땅에 돌아 오는 것에 대하여 예언을 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바로 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이 곧 다시 흩어질 것과 그들이 다시 돌아와 무성해 질 때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비유를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1900년 이상을 방황하다가. 정말 상상못할 기적으로 1948년에 다시 그 땅에 나라를 회복하였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어떻게 한 나라가...왜 그것도 가장 작고 연약한 민족이... 1900년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가?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며 ...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기 위한 도구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경배 기준과 징조, 예언 성취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여...이스라엘에 주목하라. 그 굳은 마음을 풀고 관심을 가지라. 그들이 잘 나서가 아니라..그런 종자로 택함을 입었기 때문이다. 너는 네 하나님의 성민(聖民)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하나님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라 모든 민족중에 가장 작기 때문이라 신7:6,7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본래 그 땅의 거민이 아니었다. 그는 갈대아 우르 땅에서 택함을 입어...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들어 갔으며 그 명하심을 따라 가나안 땅, 지금의 이스라엘로 간 것이다. 그 땅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처럼 택하신 곳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언약과 믿음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택하신 그 '땅'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국 '온유한 자'가 되어야 '땅'을 기업으로 누리는 것이다. 나는 그 팔복 시리즈의 다음 주제를 붙들고 고민하여 가다가 '이스라엘'이라는 시온의 땅에 들어갔다. 그들은 사방에 우겨쌈을 당한 지리적 형국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의뢰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곳을 택하신 언약의 땅이라고..드넓고 광활한 곳에서 아브라함을 그리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들은 범죄하고 불순종하여...수없이 주변의 강대국에 당하고 망하였다. 그러나 결국 다시 회개하여 살아나곤 했는데, 주님을 부인함으로 2천년 동안이나 흩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 시간은 인간적으로는 다시 소생하기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고 언약과 예언의 근거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회복시킴으로..당신의 살아계심을 증명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미리 아신 주님은...이스라엘이 흩어져 사라질 것을 예언하신 후, 그들이 다시 그 땅에 돌아와 회복될 것인데, 그 때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운 때라고 하신 것이다. 얼마나 성경과 주님의 말씀은 놀랍고 정확한가? 사단은 이스라엘을 끝없이 망하게 하려고 애씀으로 그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려고 했다. 우리 돌무화과에서도 그 워가지에 접붙여 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들을 향한 언약을 가리웠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그들이 다시 일어나고 싹을 티울 것이다. 1948년 독립하였고...1967년 주변의 강대국들이 쳐들어 옴으로, 중동전쟁으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회복하였다. 그것으로 그 땅은 회복되었다. 이 '무화과'인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되는 것을 보거든 주님이 곧 오실 때임을 알라는 말씀이다. 너무나 유명해서..그냥 무심했던 그 말씀이 갑자기 깨달아졌다. 성령님께서 내 영에 부어주신 것이다. '그렇구나..정말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구나!' 나의 영혼은 그것에 아주 민감히 반응하며...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대구의 중보기도자들에게 그것을 나누었다. 하믈이 열리듯 그 메세지에 강렬한 기도가 터져나왔다. 지금은 자다가도 깰 때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안에서 깨어...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만을 구한다면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추수기며, 전환의 때인가를 영론 깊이 깨닫게 되리라. 내 사모하는 주님이 곧 오실 때가 가까운 것이다. 열 명의 신부가 기다렸지만, 다섯 명만 잔치에 들어갔다. 등불에 기름부음이 없으면 그리된다. 이것은 두려운 비유다. 우리가 다시 일어나 성령님을 구하고, 뛰어 가야 할 근거다. 기름부음을 받지 못하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러나 자신에 묶여서..자기의 감각을 따라 산다면...그 빛과 징조는 가려질 것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보다 자기의 유익과 자랑과 일에 더 관심을 키울 것이다. 아버지가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베드로처럼 자기의 고정관념과 생각을 더 우선시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낮아진 겸비한 심령이다. 그 '그리스도의 마음'을 달라고 날마다 구하고 또 구할 일이다. 그것이 크고 비밀한 일을 구하는 것이다. 아무리 은사를 받고 그럴듯해 보여도 이 주님의 '겸손과 온유'가 없다면...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에서 벗어나리라. 하나님은 겸비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신다. 어린 지우가 늦었다고 달려가는 그 열심을 보면서... 우리가 이 시기를 알면 용기를 내어..감추이고 눌린 잠재력과 은사와 능력을 일으켜 힘껏 달려 갈 수 있으리라. 히브리서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한다(히11:1) 그래서 자기와 무거운 짐들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만 바라보고 믿음의 달음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증인들'은 당연히 그 앞에 열거된 '믿음의 성현'들이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선지자들, 사도들.... 그들이 우리를 보고 응원하고 있다. 믿기 어렵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이 말씀만 생각하면 나를 추스리고 더욱 겸비하되...용기내어 달리게 한다. 그들은 주님의 때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를 부러워 한다. 우리를 지켜 보며 응원한다. '우리가 아니면 그들도 온전함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히11:40)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위대한 믿음의 증인들이 부러워 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받은 약속을 ...그 언약의 회복은 우리가 힘써 순종함으로 성취하기 때문이다. 나는 은밀한 사명감을 느꼈다. 나 혼자 달려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수많은 지체들, 동지들, 믿음의 선배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한 새 사람(One New Man)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는 것이다. 그 '화목케 하는 직책'을 위하여 ...주님처럼 자기를 비워 종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코스타를 다녀와서... 마음에 여러가지 생각들을 주셨다. 가을 빛에 빗대어 그저 고요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가 명확히 주시는 새로운 코드(code)가 있었다. 이스라엘에 머물렀던 곳은 '여리고'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땅이다. 가기 전에 내가 다니는 사랑의 교회 담임 목사님이 뜻밖에 여리고에 대한 설교를 하셨다. 인자의 온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라 모두가 곧 예루살렘에서 영광의 주가 이성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들떠서 주를 에워 쌌는데.. 주님은 소경 거지 '바디메오'와 죄인 중의 죄인이라 치부되던 '삭게오'를 만나신다. 그것이..주님의...하나님 나라다. 그것이 하나님의 프로그램이다. 오늘도 여러 구호와 전략과 새로운 기름부음의 열광들이 있다. 여리고 코스타에서....강의를 하다가 같이 기도할 떄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내 영혼의 간구가 계속 터져 나왔다. 나는 가장 낮은 그 땅에 서 더 낮아져..잃어버린 지극히 작은 영혼을 찾으신 그리스도의 여정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가장 낮고 죽어 있고 잃어버린 자와 풍경을 주목하게 하셨다. 나는 그것에 감격하고 마음이 끌렸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25:40 우리의 절망과 무디어짐은 이 말씀을 상실해서다. 이스라엘이 커서..화려하고..대단한 규모..소산을 가져서 택하고 사랑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잘나고 커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스스로 크고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가장 하수(下手)다.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오직 아버지만 경외하고 순종하고 경배함으로 살아간다. 그것을 상실하면...죽는다...분열된다...이스라엘처럼... 아버지의 마음과 그 뜻을 깊이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지치고, 묶이고..포로로 끌려가 넘어진다. 아버지의 마음은 '이스라엘'을 뜨겁게 보고 있다. 언약의 땅이기 때문이다. 나도 보고 있다. 작고 연약한 나를 너무나 주목하시고 사랑하신다. 성령안에서 언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이 땅을 온전히 회복하기 위하여 주께서 곧 오신다. 그 징조와 때는 무르익었다. 수많은 근거로 그것을 증명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겸비하여져서 주님처럼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만을 구하지 않으면...그것은 우리 영혼에 조명되지 않는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