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냉기를 가르고 강원도 춘천에 집회를 하러 갔다. 같은 사랑의 교회 출신인 이병철 목사님이 소양강 건너 우두동에서 목회를 하는데 적극적으로 내게 집회 요청을 해왔다. 내가 그곳에 가고자 하는 의미 중에 내 고향이 '우두동'이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너무나 어릴적 그곳을 떠나 왔기에 전혀 기억은 없다. 그러나 막연히 그 '본적지'의 이름을 그리워 하곤 했다. "주님..이 집회를 통해 당신의 기쁘신 뜻을 나타내 주옵소서." 경춘가도를 달리며 나는 평소와 같은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아직 영이 충만함에 이르지 못하고 약간 건조했다. k교수님과 정진호 교수등 여러 사람과 '아부고쉬(엠마오) 땅에 정탐을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장인 어른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나는 가야 할지 망설여졌다. 이스라엘 땅에 대학을 세우는 일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나는 당면한 일본 땅에 하나님의 역사가 열리는 것에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가정의 어려움을 두고 혼자 가기가 부담이 컸다. 엠마오에 가는 일정을 생각하니 자꾸만 마음이 답답해 졌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이 창세 전에 예비하신 그 나라와 그 의를 오늘도..이 집회를 통해 누리도록 인도해 주소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아버지가 계획하신 것이 있다면 어떤 형식이로든 깨닫게 하실 것이라 믿었다. 강원도의 순박한 지체들이 뜨거운 찬양과 기도로 예비되어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성령님께 맡기고 혼신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같이 기도할 때에 강력한 성령님의 기름이 부어짐을 느꼈다. "오늘 이 성령의 불이..이 우두동에서 시작되어 강원도 땅.. 한반도를 태우고..저 이스라엘 땅까지 타오르도록 같이 기도합시다!" 내 안에서 생각지 않은 기도제목이 그렇게 터져 나왔다. 다시 강력한 불이 타올랐다. 한참을 기도하고 마치려 눈을 뜨는데 눈앞에 누군가 울면서 있었다. 나는 깜짝놀라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기도할 때에 웬 여고생같은 작은 친구가 거의 실신 할듯이 간절히 기도를 했었는데, 바로 그 자매였다. "감독님..저는 히브리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사람인데요.. 오늘 하나님의 인도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감독님께 하나님이 전하시라는 말씀이 있는데..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했다. 집회를 마친 후에 교회에서 이병철 목사님과 차를 마시는 가운데 그 자매도 동석했다. 자연스레 그 자매가 여기에 오게 된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선교단체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비젼을 품고 용돈을 거의 쓰지 않고 다 모아서 믿는 유대인들에게 헌금을 보내고.. 날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자매의 말에 나는 짐짓 놀랐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스라엘을 품고 기도하다다니...' 이런 자매를 춘천에서 만날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자매는 그 비젼을 품고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에 유학을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많은 유대인과 선교사님들, 그리고 '믿는 유대인(Messianic Jew)'들을 만나며 하나님의 역사를 꿈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IMF로 유학비를 집에서 받지 못하고 방황을 하게 되었다. 유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한다는 규제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일하다가 어려움과 절망과 밑바닥을 경험하는 시절을 보내야 했다. 결국 몇년을 고통 속에 보내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마저 상실해 가다가 한국에 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가 만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최춘선 할아버지의 영상을 보고 거의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그 후에 다시 신앙의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친구가 준 <하늘의 언어>를 통해 성령님의 부어짐을 다시 경험했다는 것이다. 날마다 기도가 살아나고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는데, 내가 춘천에 가기 전날 밤 하나님께서 자매에게 마지막 때에 대한 많은 메세지를 주셨고 그것을 나에게 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찌 전해야 할지..감독님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언어>를 소개했던 친구가 갑자기 오늘 2시에 감독님이 춘천에서 집회를 하신다고 알려 왔습니다." 너무나 놀란 자매는 급히 달려 집회에 참석했는데, 내가 이곳에서 시작된 성령의 불이 이스라엘까지 가도록 기도하자고 했을 때, 너무나 강력한 성령의 불이 임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건 정말 상상도 못한 것이다. 춘천에서 이런 일을 겪을 것이라고는..' 나는 그 간증을 들으며 약간 어리둥절해 졌다. 사실 그 기도제목도 그동안의 집회에서 처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전하라는 그 종말에 대한 메세지가 무얼까?' 궁금했지만 그것은 따로 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치우친 신비주의적인 것이나 이단스러운 이상한 것이 아니길 바랬다. 그 자매와 고속버스터미널에 같이 와서 얘기를 들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신 것은 마지막 때의 비지니스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다시 놀랐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정말 마지막 때의 '천국 비지니스'에 대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지니스롤 통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주님은 여러 경로로 내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회복에도 그것이 큰 역활을 할것이다. 그때 루카스, 조ㅇㅅ, 김ㅎㅅ등 동지들이 'BAM(Business As Mission)'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동일한 인도하심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춘천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작은 자매를 통해서 역시 그 말씀을 전하시려는 것이다. 그것도 종말론적인 메세지로... 나는 의구심을 풀고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마태복음 25장..마지막 때의 심판..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는데요..." 그 말씀이라면 내가 거의 십여년을 붙들고 순종해온 말씀이었다. 나의 다큐멘터리 주제도 오직 그것이었다. "그 지극히 작은 자를 먹이고 마시우고 입히라는 것은... 종말의 대환란때...이땅에서 고통 받는 ...666의 시스템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 이들을 섬기고 돌볼 청지기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런 자들을 찾으시고 그들에게 '내 소유를 맡기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나는 그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한 해석을 그리 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그저 지금 이곳에서 보잘것 없고 소외된 힘겨운 영혼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말세의 환난 때에 고통당하는 이들이라니... 그것도 666이라는 짐승과 적그리스도의 체제에서 신앙을 지키느라.. 그 고통당하는 작은 자들... 매우 생소한 해석이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마태복음 25장은 지금의 현실이 아니라 극명하게 종말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주님의 청지기가 되어 ..비지니스나 달란트로 섬기기를 원하지만.. 한난 가운데 고통당하는 지극히 작은 자를 향하여 ..지금 섬기고자 하는 그 진실과 비젼이 없이는..진정한 청지기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지금 죽어가는 영혼을 향한..주님께 하듯이 섬기고자 하는 비젼을 갖지 않은 채..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가 없다고..." 이 말에 나의 마음이 타올랐다. 너무나 공감을 하는 말씀이었다. 많은 이들이 '일터의 사도'니, '하나님 나라와 부흥, 대추수'를 말한다. 그러나 지금 내 곁의 지극히 작은 한 영혼을 먹이고 입히고 주님의 마음과 긍휼, 그리고 물질로 섬기지 못하면 진정한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그런 구호나 주제를 빌미로 하나님의 능력, 축복이나 끌어 당겨 내 풍요와 유익을 구하는데 쓰기가 쉬운 것이다. 종말에 대한 메세지라 하여 약간 두려움을 가졌던 나의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떠날 시간이 되었으므로 그 작고 엉뚱한 친구와 작별을 하였다. 그런데 주님은 그 만남들을 통해 후에 내게 새롭고 놀라운 것들을 부어 주셨다.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예비된 놀라운 일들에 대하여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