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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⑥

수호천사1 2013. 4. 24. 08:41
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의

‘구체적 성취의 때와 방법’을 예언한 계시록 7장 1~8절⑥


 

 

  5. 인치는 시기


“땅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계 7:1).


  구약성경에 보면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러 번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요나 시대에 하나님이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불어 대작했다(참조, 욘 1:13, 사 11:15, 렘 13:24; 22:22; 49:36; 51:1). 더구나 마태복음 7장 25절에 나타나고 있는 “바람이 불어”라는 표현은 일종의 시련을 뜻하는 것이다. 즉 바람은 전쟁과 재난의 상징이다.

 


  그러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했음을 보아 이 땅 위에는 고요함이, 또 바다 위에는 잔잔함이, 그리고 나무 위에는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한 점 들리지 않았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즉 인치는 사건이 환란이 임하기 전에 있을 것임을 보여준다. 더욱이 “땅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불지 못하게 했다고 했는데 “땅 사방”이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전 세계를 의미하며, 이는 14만4천을 인치는 시기가 지구상에 전 세계적인 큰 환란이 오기 전에 있을 것임을 명백히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인치는 시기가 대환란이 지구상에 이미 시작된 상황 아래서 그 환란을 잠시 멈추고 인을 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오해이다.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6장에 나타난 인 재앙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함께 본서 구조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삽경군(揷景群)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종말의 예비적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는 계시록 6장


  인치는 시기가 대환란이 전 세계에 개시된 와중에 그 환란을 잠시 동안 멈추고 인을 치는 것으로 오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계시록 6장의 인 재앙을 이미 대환란이 시작된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6장에서는 여섯째 인 재앙까지 떼어졌고, 이제 7장에서는 이어 일곱째 인을 떼어야 할 차례이나 일곱째 인은 8장에서 떼어지고 6장과 8장 사이에는 14만4천 인치는 환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환상은 “이 일 후”라는 말로 시작되므로(7:1), 그 말을 6장의 여섯째 인 재앙이 떼어진 후를 의미하는 말로 생각하여서 7장은 6장의 계속, 즉 여섯째 인의 연속적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인치는 사건은 대환란이 지구상에 시작된 상황 아래 잠시 동안 재앙을 멈추고 14만4천에게 인을 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후”라는 말은 단지 “새로운 환상에로의 전환”을 가리키는 말이지 사건의 진행 순서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이 일후”라는 말은 계시문학의 일반적 관용구로서 “환상의 새 국면”을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는 것이다. 계시록 4장 1절의 “이 일후”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2장과 3장의 교회 시대가 끝난 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새로운 제목의 시작을 표시하는 말인 것이다. 계시록에는 “이 일후”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온다(4:1, 7:1,9, 15:5, 18:1, 19:1).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시록 6장은 대환란의 시기와 관련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이 가장 먼저 바로 잡아야 할 오해이다. 계시록 6장의 여섯 가지 인 재앙을 대환란의 시기와 관련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6장에서 떼어지는 첫째 인에서 여섯째 인까지는 실제적인 종말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지막 때까지 이르는 이 시대의 전반적인 특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재림의 여섯 가지 징조를 밝힌 것으로서, 종말의 예비적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나 불신자나 공통되게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일반적 심판 역사를 취급한 것이다.


  실제적인 종말의 이야기는 8장에서 떼어지는 일곱째 인(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서 시작된다. 일곱째 인을 뗄 때 일곱 천사들의 일곱 나팔이 나오며, 그 천사들이 각각 나팔을 불 때 대재앙이 땅에 임한다. 이 부분이 실제적인 종말의 이야기로서 대환란의 시기가 관련된다. 일곱째 인은 특히 불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특수한 심판 역사를 취급하고 있다.


  6장에서 떼어지는 첫째 인에서 여섯째 인까지는 종말의 예비적 사건들로서 역사의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이 시대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환란의 일부가 아니며 대환란에 대한 준비로서 예비적인 것이다. 6장의 첫 번째 여섯 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상 끝이 올 때까지를 특징짓는 이 시대의 일반적 특성, 곧 재림의 여섯 가지 징조와 맞먹는다. 이를 복음서의 소계시록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순서상 약간의 차이가 있는 외에는 거의 동일하다. 이 여섯 인은 예수님의 말씀하신 바와 같은 종말의 사건의 예비적인 것으로서,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이 시대의 과정을 특징 지우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메시야 사칭자들의 출현,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과 성도의 순교 등이다.

 

  계시록 제6장에서 떼어지는 첫 번째 여섯 인들은 종말 자체의 사건이 아니며, 이 시대의 성격과 이 시대의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말씀하신 바 “재난의 시작”(마 24:8)에 해당하며, “끝은 아직 아닌”것이다(막 13:7,8). 그러므로 계시록 6장을 세상 끝인 대환란의 시기와 관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오해이다. 실제적인 종말의 사건은 8장에서 떼어지는 일곱째인(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계시록 6장의 여섯 가지 인 재앙을 대환란의 시기와 관련된 것으로 오해하는 이유는 계시록 2·3장을 ‘교회시대’로 보고, 4장 1절의 “이 일후”라는 말을 그 ‘교회시대가 끝난 후’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고, 요한이 들은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교회의 휴거의 나팔소리’로 해석하며, 요한이 성령 안에서 영으로 하늘 보좌로 올라 간 것을 ‘교회의 휴거’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다 보니 6장 이후의 모든 사건은 대환란의 시기와 관련되고 마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교회는 이미 환란 전에 휴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4장 1절의 “이 일후”라는 말은 교회시대가 끝난 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앞서 언급한대로 단지 “새로운 환상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말이다. 또한 요한이 들은 것은 나팔소리가 아니라 그가 이미 1장 10절에서 경험한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었다. 요한은 “나팔소리 같은” 음성을 들었지, 휴거의 나팔소리인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소리(고전 15:51,52)를 들은 것이 아니었다. “나팔소리 같은 음성”과 “나팔소리”는 엄연히 다르다.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의 영이 하늘 보좌로 올라간 것을 교회의 휴거로 해석하는 것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도 요한 개인의 영적인 체험이었다.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in the Spirit =성령 안에서) 그의 육체는 땅에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영으로 하늘 보좌로 올라간 것이다. 그는 변화되어 휴거된 것이 아니었다. 요한이 장차 될 일을 계시 받으려고 올라간 곳은 24장로와 네 생물이 있는 “하늘보좌”였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휴거하는 곳은 공중(메슈라네마)이지, 하늘보좌(드로노스, thronos)가 아닌 것이다.

  

  계시록 4장 1절 이하를 전부 교회의 휴거 이후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환란 전 비밀 휴거설’을 신봉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의 작위적인 해석일 뿐이다. 그들은 말하길 2장과 3장에는 교회가 등장하지만 4장 이후에는 교회라는 말이 없으므로 교회시대는 2장과 3장에서 끝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4장 이후의 기록들은 전부 교회가 휴거된 이후 이른바 ‘7년 대환란’동안 지상에서 일어날 사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4장 이후에 ‘교회’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성도’가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도가 있으면 곧 교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4장 이후에 나오는 성도들은 휴거되지 못한 소위 '이삭줍기'로 구원받을 성도들이라고 한다. 그것은 비성경적 교훈이다. 노아의 때에, 그리고 10처녀의 비유에도 이른바 '이삭줍기'로 구원받은 자들은 없었다.


  4장 1절 이하는 교회의 휴거 이후에 일어날 사건들을 계시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14만4천이 인침을 받는 계시록 7장의 사건은 대환란이 시작된 상황 아래서 그 환란을 잠시 멈추고 일어날 사건이 아니다. 지구상에 대환란이 임하기 전, 곧 실제적인 종말이 오기 전에 일어날 사건이다.


  삽경군(揷景群)에 속한 중간 계시인 계시록 7장 


  요한계시록 구조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삽경군’의 존재이다. 계시록 7장의 14만4천 인 맞은 자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 ‘삽경군’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한데, 이는 계시록 7장에 기록된 예언이 삽경군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삽경(interlude)이란 본 계시와 본 계시 막간에 나오는 중간 계시로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내용을 본 계시라 할 때(5:1), 이들 범주에 들지 않으면서 이들과 전후 관계를 가진 독자적인 계시를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본 계시와 중간 계시가 서로 번갈아 나오는 가운데 진행되어 간다. 이러한 중간 계시는 본 계시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본 계시의 전후 순서에는 지배되지 않으며, 앞에 나온 본 계시 혹은 뒤에 나올 본 계시의 어떤 사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예컨대 제6장에서 여섯째 인을 떼었으니, 7장에서는 이어 일곱째 인을 떼어야 하겠으나 일곱째 인은 8장에 가서 떼고, 6장과 8장 사이에 일곱 인의 순서와는 관계가 없는 중간 계시가 나온다. 그렇지만 이런 중간 계시는 본 계시와 순서와는 관계가 없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관련성이 있는 것이다. 즉 7장은 6장 17절의 해답을 주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8장부터 전개되는 일곱 나팔을 면할 자를 보이는 것이다(7:3; 9:4)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는 보충 계시라고도 할 수 있다. 7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은 다 이런 중간 계시, 즉 삽경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본서의 삽경들은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진행되고 한편으로는 성도들의 위로와 승리가 전개됨을 보인 것이다. 이 같은 삽경에 대한 이해는 본서 이해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계시록에는 적어도 3개의 큰 삽경군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은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7장),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10; 11:4), 일곱째 나팔과 일곱 대접 계시 사이(12; 14:20)에 위치한다. 이런 삽경군들은 각각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삽경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기들끼리 관련을 맺고 있다.


  7장 1절~17절은 이 중 그 첫째이다. 이 삽경군은 여섯째 인의 개봉 결과, 6장 17절의 질문,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한 것이고, 동시에 앞으로 있을 일곱 나팔 재앙을 면할 자는 어떤 자인 것을 보이는 것이다. 즉 왕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무서워 떠는 그 진노의 날(6:15,16)에 “능히 설 자”, 곧 구원을 얻을 자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두 무리들이 나오는데 첫 번째 무리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각각 1만2천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집단이고, 두 번째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곧 전 인류로 구성되어 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집단이다. 이렇게 첫째 삽경은 두 장면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에서 인 맞은 자의 광경이고(1~8절), 둘째는 이방에서 구원받은 자의 광경이다(9~17).


  계시록 7장은 이상과 같이 살펴본 대로 요한계시록 구조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삽경군 중에 하나로서, 6장과 8장 사이의 일곱 인의 순서와는 관계가 없는 독립된 계시인 것이다. 7장은 6장과 8장 사이의 막간에 삽입되어 있는 중간 계시로서 6장과 8장의 전후 순서에 지배되지 않는 독자적인 계시이다. 계시록 7장은 다만 내용상으로 전후 순서에 관련이 있는 중간 계시인데, 6장 끝의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서, 진노의 큰 날인 심판의 날에 능히 설자를 보여 주기 위한 계시인 것이다.


  능히 설 수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받은 선택된 백성 외에는 없다. 왜냐하면 ‘진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불신 세상에 쏟는 것이기 때문이다(성도는 ‘진노’는 당하지 않지만 ‘환란’은 당한다). 구원받은 성도는 진노의 큰 날에 불신 세상에 쏟아지는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처럼 말이다(노아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노'는 받지 않았지만, 악인들이 주는 '환란'은 당했다).

  

  7장은 이 능히 설 수 있는 자를 보여 주기 위한 중간 계시인 바, 이 독자적인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14만4천 인 맞은 자로 묘사된 온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6)는 약속이 마지막 때에 어떠한 과정을 통해 성취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계시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을 통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8장부터 전개되는 대환란(일곱째 인)중에 어떻게 능히 서는가를 보이는 것이다(7:3; 9:4).


  계시록 6장은 대환란의 시기와 관련된 계시가 아니며, 7장은 6장과 8장의 전후 순서에 지배되지 않는 독자적인 중간 계시(삽경)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14만4천에 대한 인치는 사건이 대환란이 이미 시작된 상황 아래서 있을 것이라는 오해가 불식된다. 14만4천이 인침을 받는 시기가 대환란의 와중에 그 환란을 잠시 멈추고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해석은 6장과 7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록 7장은 14만4천에 대한 인치는 사건이 전 지구상에 대환란이 오기 전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인 맞기까지 지구는 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14만4천, 그들은 언제 하나님의 인 곧 성령의 인침을 받는가? 대환란이 온 지구상에 임하기 전, 곧 세상에 실제적인 종말이 오기 전이다. 하느님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기 까지 역사의 커튼을 닫으려 하지 않으신다.

 

-계  속

 

  

 

 

 

성민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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