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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⑤

수호천사1 2013. 4. 24. 08:40
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의

‘구체적 성취의 때와 방법’을 예언한 계시록 7장 1~8절⑤


 


  3. 인치는 의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3)


  이 하나님의 인은 적그리스도의 표와 상대된다(계 13:6). 이마에 인을 치는 것은 노예들이 이마에 주인의 인으로 인침을 받는 것과 관련된다. 로마 시대에 노예들은 이마에 주인의 인을 쳤다. 이것은 주인에게 있어서 소유권의 표시였고, 노예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누구의 소유라는 소속의 표시였다. 따라서 이 노예들은 그 주인의 보호를 받으며 주인의 권위로 인정된 자들이다. 누구든지 그 주인의 허락 없이 이 노예들을 취급하는 것은 그 주인에 대한 도전이 된다. 14만4천이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인치셨으니 이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이며 이에 따른 하나님의 권위와 보호가 있다. 인이란 소속을 밝히는 것, 권위로 인정한다는 것, 안전이 보장되었다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러면 14만4천이 맞은 하나님의 인이란 어떤 것인가?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인이란 ‘성령’ 그 자체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실 에베소서 1장 13절과 14절에 ‘인’이라고 사용되는 말이 ‘성령’을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이 말은 또 에베소서 4장 30절과 고린도후서 1장 22절, 5장 5절에도 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인, 곧 성령을 자신이 가지고 계셨다(요 6:27).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인이 ‘성령’을 뜻한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의 소유됨과 구원의 보증으로 그 심령에 인친 ‘하나님의 인’인 것이다. ‘성령의 인’이 ‘하나님의 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과 ‘성령의 인’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의 인과 하나님의 인은 완연히 구별된다고 하면서 성령의 인과 하나님의 인을 동일시하는 자들을 성경종말론에 무식한 자들로 여기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은, 전자 ‘마음’에 인을 치지만 후자는 ‘이마’에 인을 친다는 것이다(계 7:3).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의 어떤 비유나 상징을 해석할 때에 우리는 너무 세세한 점에 있어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성경의 원뜻을 곡해하기 쉽다. 만일 우리가 상징의 모든 부분에 대하여 각기 할당된 의미를 찾는데 열중한다면 우리는 혼돈이 빠져 본문이 실제로 의도하고 있는 문제를 놓치게 될 것이다. 꽃을 분석한답시고 너무 세밀히 만지다보면 그만 꽃이 망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14만4천의 이마에 인치는 일은 비유로서 이렇게 인치는 일은 성령으로 그들의 심령에 인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자대로 이마에 가시적인 인을 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레위기 19장 28절에 몸에 문신을 새기지 말 것을 명하셨는데, 그분은 당신의 말씀에 스스로 배치되는 행동을 절대로 하시지 않는다. 14만4천의 인 맞음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사실이며 육체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성령에 의한 영적인 인 맞음과 동일한 인 맞음인 것이다.(엡 1:14, 고호 1:12, 엡 4:30).


  신자들에 대한 이러한 인침은 하나님의 소유권에 근거한 영적인 확증으로서 이 인침은 육체적인 눈으로 발견될 수 없는 내적이고 영적인 사실이다. 14만4천이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것도 바로 그것과 동일한 것이다. 즉 성령으로 그들의 심령에 인을 친 내적이고 영적인 사실을 상징한 것이다. 그런즉 14만4천이 맞은 인은 곧 구원의 인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그들이 인침을 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종”(계 7:3)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음을 들어, 계시록 7장의 14만4천은 문자적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14만4천은 이른바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전인류의 모든 신자들을 대표하며, 그들을 환난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심령에 인치는 성령의 인과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인이라는 것을 성도들의 이마에 다시 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성경의 통일성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아주 그릇된 해석이다. 하나님의 인은 그들의 심령에 인친 성령의 인을 비유한 것으로서 곧 구원의 인이다.

  

  그렇다면 14만4천명이 인 맞기 전에 벌써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불리워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구원이 확실히 예정되어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들은 혈통적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리워졌으며, 심지어 그들이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어 있을 때까지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리워졌다(사 41:8; 44:1; 26; 65:8).

 

  14만4천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라는 말은 계시문학에 자주 보이는 표현으로 죽은 신인 이교의 우상과 대조되는 것이다. ‘인’이 그 친자의 권위를 뜻한다 해도 그 인의 소유자가 생존하지 않았다면 아무 효력을 발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니 그 인이야말로 무상의 효력을 발생시켜 한번 선택되어 성령의 인침을 구원의 보증으로 받는 성도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성령은 모든 신자들의 심령에 인친 표가 되어 있는 바,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니 성도가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그 생애를 향유하며, 그 구원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구원받을 온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14만4천, 그들은 전 세계의 모든 성도들처럼 바로 이와 같은 인침을 받는 것이다.

 

  4. 인치는 행위


  하느님의 인인 성령의 인치심은 어떻게 받는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어 구원의 보증으로서 받게 된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으니라”(롬 10:17).


   “이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 15).


  그렇다면 14만4천명도 예외일 수 없다. 그들도 역시 전도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어 마침내 구원의 보증으로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인, 곧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14만4천의 이마에 인치는 행위는 마지막 때에 회개하고 메시아 예수 앞으로 돌아올 유대인들에게 대한 복음전도자들의 전도 행위를 상징한다(롬 11:12~15, 마 23:39).


  여기에 있는 날인(捺印) 행위는 복음 전파를 통하여 택한 백성에게 성령을 주심을 비유한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듣는 자가 믿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주님의 소유가 된다. 그러므로 인친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한다는 뜻이다. 즉 선교를 의미한다. “복음전도운동은 하나님의 인치시는 행동이다.”(박윤선 요한계시록 강해)


-계  속

 

 

 


성민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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