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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⑦

수호천사1 2013. 4. 24. 08:41
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의

‘구체적 성취의 때와 방법’을 예언한 계시록 7장 1~8절⑦


 

  6. 인치는 결과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계 9:4)


  우리는 앞서 ‘인’이란 소유권의 표시오, 보호와 안전을 보증하는 표시임을 깨달았다. 이와 같이 14만4천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결과 대환란의 날에(일곱째 인 재앙) 보호를 받게 되고, 어린양의 진노의 날에는 능히 서게 된다(계 6:15~17).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인이 떼어진 후에 진노 가운데 지상에 찾아와서 불신자들과 반역적인 사회에 가공스러운 재앙이 임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 반역적인 사회 가운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14만4천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표시하는 재앙들로부터 인 맞은 결과 보호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에게는 임하지 않는다.


  마치 애굽 전역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곳에 있었지만, 애굽 사람이 당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겪지 않고 보호를 받음과 같다. 당시 애굽에 살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피를 바르지 않은 가정에 임했던 사망의 재앙을 피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이 발랐던 양의 피는 곧 하나님의 인의 표상이었다. 그 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란을 통과 하면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진노를 당하지 않으며 구원을 받는다. 이는 하나님의 인친 성도는 이미 그들이 받아야 할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대환란의 때에 전 세계의 이방인 성도들도 14만4천처럼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것은 인 맞은 14만4천이 보호를 받게 되는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이방인 성도들도 하나님의 인, 곧 성령을 구원의 보증으로 그 심령에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은 모든 성도의 심령에 인친 표가 되어 있는 바, 이것은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소유된 택한 백성은 일곱째 인의 재앙들 가운데서 보호를 받으며, 어린양의 진노의 날에 능히 서는 것이다. 즉 진노의 날에 구원을 받는 것이다.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살전 5:9)


  함과 같다. 하나님의 백성은 대환란시에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쏟아지는 재앙들로부터 해를 받지 않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계 16:2, 14:9,10).


  어린양의 진노 VS 짐승의 핍박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에서의 보호가 짐승(적그리스도)의 분노에서의 구출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성도는 인 맞은 결과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표시하는 가공할 재앙들로부터는 보호를 받으나, 그 시기에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로부터는 환란과 박해를 당한다. 환란과 진노는 엄연히 다르다. 성도는 진노는 당하지 않지만 환란은 언제나 당한다.


  요한계시록은 대환란 기간 동안 여러 나라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어린양에 대한 충성으로 인해 순교당하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계 7:9~17).


  사실상 환란, 곧 박해는 이 세상에서 교회가 당해야 하는 일상적인 것이다(요 16:33; 행 14:22; 롬 8:35). 종말의 때에 있을 환란의 특이성은 단지 그 정도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상 교회가 존재하면서 경험하였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단의 적대감의 집약에 불과할 뿐이며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적그리스도(짐승)에 의해 가해질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대환란과 고난들이 이전에 교회가 경험했던 어떤 것보다도 더 무서울지라도, 그것은 종류 상 이 세대의 모든 환란이나 핍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평상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감당하고 있는 정상적인 역할과 대환란시에 감당할 역할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그 핍박의 강도에 불과한 것이며, 근본적으로 핍박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마 24:22)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보호 가운데 극심한 하나님의 진노의 시기를 안전하게 통과하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환란과 핍박을 피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종말시에 하나님의 백성은 순교하기까지 환란을 당하는 것이다(계 13:7~10, 14:12). 그러나 오히려 그런 박해 중에서 순교를 당하게 될지라도 결국은 큰 환란에서 능히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승리자로 서게 되는 것이다(계 7:14). 하나님은 당신의 인친 소유된 백성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인 치셨으므로 그 순교 중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심지어 ···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눅 21:16~18)


  머리가 베어지는데 어찌 머리털이 상하지 않겠는가? 그 의미는 이런 것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영원의 관점에서는 내가 얼마나 오래 사는지, 언제 어떻게 내 육신이 죽에 될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 영혼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혹독한 박해와 순교의 기간에서 조차도 우리의 (영적)안전을 지키실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소유된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하나 모두 보존되는 것이다. 택한 백성은 모두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환란에서 피신하게 하는 구원이 하니라 환란 중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구원이다. 환란을 면하게 하는 구원이 아니라 환란을 이겨나가게 해주는 구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시록 7장의 두 번째 환상에서 나타나는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땅에서 큰 환란을 통과한 성도들이나, 승리와 기쁨의 표시로 종려 가지를 들고 큰 소리로 외치기를,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구원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계 7:9~17).


  성도는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어린양에게 충성함으로서 짐승과 그의 우상을 이기고, 그 환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승리자로 서는 것이다. 계시록의 주제는 “승리”이며, 우리 자신의 생명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숨을 버림으로서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이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중간 계시인 계시록 7장의 두 번째 무리를 통하여, 승리와 기쁨의 환상을 보여 주시는 이유는, 앞으로 대환란에 들어갈 지상의 성도들에게 그들이 받을 하늘의 복을 미리 보여 주심으로, 그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여 환란 가운데 능히 참아(계 14:12) 승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비성경적 환란 도피사상의 근원

  

  교회는 계시록 4장에서 환란 전에 휴거했으며, 따라서 4장 이후로는 지상에 교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계시록 가운데서 환란당하는 ‘성도’는 모두 휴거되지 못하고 지상에 남은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이며, 또한 환란기에 비로소 전도를 받고 뒤늦게 예수를 믿게 된 이방인 성도들(이삭줍기)이라는 세대주의자들의 이론은 아주 비성경적인 것이다. 계시록 4장 이후에도 지상에는 교회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4장에서 휴거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4장 이후 19장까지 교회라는 말이 비록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아도 ‘성도’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계 13:7, 14:12, 13:10, 18:4). 성도가 있는 곳이면 곧 교회가 있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계시록 4장 이후에는 교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교회 이름’이 없는 것이다.


  또한 사실상 대환란기는 전도활동이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어려운 때이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백성을 크게 박해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계시록 7장 9~17절의 환란을 통과한 “아무라도 그 수를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환란 전 휴거에 참여하지 못하고 환란기에 비로서 유대인의 전도를 통해 구원을 받은 “이삭줍기 성도” 운운하는 세대주의자들의 기발한 이론은 허구이다.


  유대인이 환란기에 복음을 전한다는 말씀이 계시록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또한 “이삭줍기 구원”은 성경 어디에 있는 교훈인가? 노아의 때와 롯의 때에 이삭줍기 구원이 있었는가? 예수님의 열 처녀의 비유 중에 이삭줍기 구원이 있는가? 전혀 없다. 구원의 문은 한번 닫히면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지금이 구원을 받을 때요 지금이 은혜의 때인 것이지 이 은혜의 때가 종결된 후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또다시 구원의 기회는 없는 것이다. 이삭줍기 구원이라는 것은 없다.


  짐승(적그리스도)으로부터의 박해를 무서워하여 환란 전 휴거를 주장하는 현대의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교회가 그 근본적인 성격에 있어서 항상 순교적인 교회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변개하고 왜곡시킨다. 그는 하와에게 말하기를 선악과를 먹어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본래 무엇이었던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것이었다. 거짓의 아비인 사단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정반대로 변개시켰다.


  이 악한 마귀가 오늘날 그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성도는 “환란을 당한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나(요15:20; 마16:9; 요16:33; 마24:9; 행14:22; 롬8:35; 살전1:6~10; 눅21:16~18; 마10:28, 39; 계13:7~10,15, 14:12), “너희가 결코 환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된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환란 전 휴거설을 퍼뜨려 놓은 것이다. 이는 틀림없이 거짓의 아비인 마귀로부터 온 사상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란 도피사상은 악한 마귀로부터 온 사상이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에 나오는 “미혹케 하는 영”은 거짓 교리의 원천 곧 타락한 천사인 초자연적 귀신의 영들을 가리킨다. 이 영들은 우리를 오류로 인도한다. 미혹하는 영의 역사는 에덴 동산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사단은 하와를 미혹하여 가장 좋은 과실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자기를 속이고 계신다고 믿게 만들었다(창 3:1~6). 사단은 여자를 속여 하나님의 지시에 불순종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미혹은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에 나타난다.


  거짓 교사들은 “귀신의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두 귀신의 가르침이다. 거짓 가르침은 영리한 사람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귀신들로부터 온다. 환란 도피사상의 원천도 미혹의 영이다.


  대환란 후에 단 한 번 있을 재림과 휴거


  성경은 성도들의 휴거가 언제 있다고 말씀하는가? 예수님께서는 휴거의 시기에 관해 이렇게 명확히 말씀하셨다.


  “그 날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즉 환란 후)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즉 환란 후)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휴거)” (마 24:29~31)


  예수님은 “그날 환란 후에”라고 했지, 환란 전에 택하신 자들을 모은다고 하시지 않았다. 환란 후(after the tribulation)는 결정적으로 대환란 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위의 말씀 가운데 있는 “큰 나팔 소리”는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의 바울이 말한 바 “마지막 나팔”소리이며,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8절의 “하나님의 나팔” 소리인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일곱째 나팔이 불어야 오시기 때문에(계 10:7, 11:15) 그것은 곧 일곱째 천사의 나팔 소리이다. 그러니까 휴거는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소리 없이 일어날 사건이 아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의 이 표현을 주목해 보자.

 

“주께서 친히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이것은 “성경 가운데서 가장 요란한 구절”이라고 불리워 온 구절이다. 이것은 결코 환란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의 이른바 7년 환란 전에 오시는 비밀스런 재림(공중재림)과 은밀한 휴거(secret rapture)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의 재림이 공개적(公開的)으로 있을 것이라는 사실, 곧 그 위엄의 광경을 세상 만민이 보고 들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 1회적으로 환란 후에 정정 당당히 온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분명히 볼 수 있도록 이루어지는 것이다(계 1:7, 19:11~16).


  환란 전 휴거설은 공중 재림 1회, 환란 후 지상 재림 1회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공중과 지상으로의 이중 재림론을 펼치고 있는 바, 성경 어느 구절에 두 번으로 나누어 재림한다고 했는가? 또 7년 동안 공중에서 혼인잔치 한다는 말은 어디에 있는가?


  초림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몸을 나타내시는 장면은 계시록 19장 11~16절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단계이며(하나는 공중으로 은밀하게, 또 하나는 지상으로 공개적으로), 교회는 환란을 겪지 않는다는 세대주의자들의 이론은 전혀 성경적 교훈이 아닌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이중 재림이 아니다(히 9:27, 28).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라고 정반대로 변개시켰던 마귀가, 오늘날 또다시 성도는 “환란을 당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는 “결코 환란을 당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교회는 뱀의 말을 믿지 말라! 환란 도피사상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로부터 온 사상이다. 그것은 성경의 교훈이 아니다.


  14만4천 명은 인 맞은 결과 환란기에 가공할 재앙들로부터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환란과 박해와 순교까지 당하는 특권과 영광은 전 세계의 모든 충성된 성도들과 더불어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계  속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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