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와 평신도전문인 선교 - 한국교회와 선교사 훈련
최 창 웅 |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 대덕 한빛 교회 시무 장로. GPTI 대전지원 협동원장
한국의 선교 훈련 역사
한국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 하기 시작한 시점은 1907년까지 소급해야 하겠지만, 타 문화 선교를 하기 시작한 시점은 전재옥 선교사, 김순일 선교사 등이 선교활동을 시작한 한국동란 이후라 하겠다(이태웅 1994. 20). 타 문화권에 선교사를 파송 한 1950년 대를 기점으로 하여 현재까지의 선교 훈련의 역사적 특징을 임종표는 ’선교사 훈련의 특색’으로서 기술하였는데 정리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임종표 1996, 199~201).
초기(1950년대 ~ 1970년대 초)
한국의 선교는 선교 훈련의 불모지에서 시작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선교 현지로 나간 선임 선교사들의 악전 고투, 실패와 시행착오, 실수와 아픔으로 얼룩진 한국 선교의 초창기는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산모의 고통과도 같았다. 이와 같이 초기의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선교사로서의 기본적인 훈련 조차 받지 못한 채 선교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현장에 진출할 수 밖에 없었다.
초기의 한국 선교의 특징은
첫째, 자생적인 선교로 시작되었고
둘째, 신학교의 대부분의 교과과정은 선교 지향적이 아니라 목회 지향적이어서 선교에 대한 교육이 희박했고
셋째, 타 문화권 선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으며 굴절된 시각을 가진 지도자의 시각이 무시 못할 영향력을 미쳤고
넷째, 불타는 선교 열정을 가진 선교사 후보생들이 일단 선교 현장으로 진출해 보자는 태도였다고 하였다.
중반기(1970년대 중반 ~ 1980년대 초)
1980년대 초에 들면서 선교에 대한 실재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이 전문성을 지닌 훈련기관들을 통해서 서서히 마련되기 시작했다. KIM(Korea International Mission, 1963년에 설립된 초 교단적인 훈련원)을 중심으로 한 선교사 오리엔태이션 이 마련 되었고, 전문적인 선교훈련 기관으로서 MTI(Missionary Training International, 예장 합동측 교단 선교 훈련원), GMTC(Global Missionary Training Center, 초 교단적인 선교 훈련원)등이 1980년대 중반기에 설립 되었다.
현대(1980년대 중반 ~ 현재)
본격적인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이 소개되기 시작 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으로 본다. 훈련 기간도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었는데 적게는 4주정도의 집중적인 훈련으로부터 길게는 7개월에서 1년의 과정으로 발전된 양상을 띠었다. 타 문화권 선교의 바람으로 증가하는 선교 후보생들로 인해 훈련에 대한 절대적 요구가 일게 되었고, 기관 또는 교단 등이 중심이 되어 자체 내의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선교 훈련의 특색을 문제점 중심으로 살펴볼 때,
첫째는 선교사 훈련의 공유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둘째는 선교 훈련 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서구 선교사 훈련의 복사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셋째는 선교사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의 담당자들이 현장 경험부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넷째는 선교사가 사역하게 될 선교 현지의 적합한 내용과 현장에서 절실한 요구들이 교육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GMTC를 운영하고 있는 이태웅 원장의 견해는 다소간 다른 면이 있는데, 그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선교사 훈련이라는 제목은 생소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거의 모든 선교 기관 및 교단 선교부마다 선교사 교육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였다. 선교사 훈련현황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지금까지 MTI와 KIM의 ‘바울의 집’ 등이 기여를 해 왔는데 주로 외국강사에 의존했던 선교사 훈련이 이제는 훌륭한 한국 선교사들의 대거 참여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하였고, 특히 ACTS는 신학교로서 가장 잘 발달된 선교철학을 가진 학교라고 추천 하면서 선교신학, 문화인류학, 선교역사, 에니미즘(Animism), 교회 성장학 등의 과목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가르치고 있고 선교 학자들도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음을 예로 들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교사 훈련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은 한국인들이 한국 선교사들을 훈련시켜 보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므로 아주 고무적인 징조라 하였다.
단지 우려되는 것은
첫째로, 각 교단이나 단체마다 각자 자기 기관에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폐쇄적인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점이고,
둘째로는 선교사 훈련이 현장 경험이나 실재 사역 경험이 없이 선교학적으로만 다루어져서 실제로 훈련 뒤에도 구체적인 사역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하였다.(이태웅 1994, 21~22)
이상의 기술된 내용으로 종합하여 볼 때 한국의 실질적인 선교 훈련의 역사는 20년이 채 안 되는 15~16년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엄청난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선교단체는 127개로 훈련기관은 12개로 늘어 난 것이다(문상철 1998, 39)
6.2 한국 교회와 선교 훈련
한국교회는 이미 세계가 주시할 만큼 놀라운 성장을 하였고 교회의 규모에 있어서나 한국 문화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 주도적 위치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교사 파송 규모에 있어서도 선교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선교 강국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선교사의 숫자는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비하여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태웅 1994, 76). 한국 교회가 선교에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선교사를 파송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는 교회가 선교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70년대에는 선교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가 많았던 것에 비해 현재는 그런 숫자가 혁혁하게 줄었고, 이제는 오히려 선교사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선교비를 모금해야 되는가가 일부 선교사에게는 도덕적인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이는 교회가 꽤 선교에 참여하고 있음을 단편적이나마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선교지를 확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려움울 겪고 있다.
이제는 다행히도 획일적인 선교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지를 확보하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교단에서 국제 선교기관을 활용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이나, 개발사업, 의료사업, 평신도 선교사의 중요성 인식 등이 이러한 예가 된다.
셋째는 훌륭한 선교사를 확보하는 문제인데 이는 선교사 훈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난 70년대와 80년대 초반만 해도 훈련되지 않은 선교사를 되는대로 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선교사 훈련을 지나치게 시키려는 경향까지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1994, 76).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한국적 상황에서만 교회를 보기에 앞서 선교적 관점에서 교회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며, 그리고 선교 신학적인 면에서의 교회의 본질은 일반적으로 무엇인지를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1) 교회의 역할
교회는 기본적으로 선교사를 양육하는 요람으로서의 역할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로돌포 루디 히론은 ’통합된 선교모델’에서 전문인 선교사로서 선교 현지에서 중도 탈락하는 어려움이 없이 성공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교사 선발과정에서부터 훈련, 파송 및 현지의 목양 및 감독의 전 과정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고 제안하면서 그 가운데 훈련부분에 대해서는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선교사 파송이라는 주제를 살펴볼 때 먼저 선교단체나 지역교회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선교사를 선발하고 파송하는데 있어서 지역교회와 선교단체 사이에 긴장이 있어왔다고 한다.
어떤 선교 학자들은 두 존재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각각에 알맞은 역할이 있다고 하였다. 교회는 모달리티(Modality)라 불리며 성이나 나이에 제한이 없이 형성된 공동체이다. 그러나 선교단체는 소달리티(Sodality)라 불리며, 각자가 결정해야 하는 의지적인 공동체로서 성이나 나이, 결혼여부 등이 고려 대상이다. 이 개념은 서구의 선교운동에 중요한 일부가 되어왔다. 그러나 제3세계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서구 세계에서는 목회자나 지도자를 훈련시키는 최선의 길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그들을 성서학원이나 신학교로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교회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목회자나 지도자는 먼저 지역교회에서 알려지고 검증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였다. 교회 지도자들이 성서학원이나 신학교에서 만들어 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교사들도 선교단체나 훈련센터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지역교회에서 만들어 지는데 지역교회는 그들을 훈련하고 제자화하며 그들의 소명을 확인하고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미래의 지도자와 선교사로서 태스트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교회들은 장래 선교사감을 훈련센터로 보낸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대한 확증의 최선의 존재는 바로 지역 교회인 것이다. 선교 단체가 얼마나 전문적인가에 상관 없이 지역교회의 선별을 결코 대신할 수 는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가족적 배경에서 문화적 사회적 기틀을 형성하는 기본적 삶의 기초과정을 교회 생활 안에서 이루어가고, 대학교육을 통해 전문인으로서의 세속적 기초를 쌓는 것도 교회 생활과 함께 이루어가고, 직업인으로서 전문적 기초를 닦는 것도 결국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 속에서 이루어가는 것이며 전문인 선교사로서 지역교회에서 훈련센터로 보내지는 것은 선교사 후보의 생활 중에 가장 가시적인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므로 한 개인의 선교 사역적 성취는 그의 생활과 지역교회 안에서의 그의 과거의 발전과 밀접한 연결이 있다. 결론적으로 선교사 개발 모델에는 선교사의 삶과 존재에 관한 후원체계에 해당하는 기초적인 제1단계가 있는 것이며, 제2단계는 선교사로서 인도 하심에 확신을 가지고 훈련센터로 보내기까지의 세움을 받는 단계이며, 제3단계는 선교사로서 선교 현지에서 활동하는 단계인 것이다(로돌프 루디 히론 1998, 41~46). 여기서 선교사로서의 성장과 개발은 바로 지역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교회의 기능
교회는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전문인 선교와 관련해서 크게 3가지면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양치호 목사는 그 3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있다.(양치호 2000, 159~164)
첫째, 교회는 전문인 선교의 모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대부분 성도들은 사회적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교회는 전문인들의 모임 장소인 것이다 바로 지역교회는 직업 전문인 성도들의 모판으로서 이제는 이 모판에서 모를 논에다 심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모판에서는 모가 자라고 논으로 이식할 수 있도록 생명력 있고 건강하게 양육하는 곳이다. 모판이 크다거나 모판이 많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모판은 그 기능을 바르게 행하는데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다.
둘째, 지역교회는 재정적 모판의 기능이 있는 것이다.
선교를 돈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에 재정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지역교회는 선교비 전대를 채우는 기능적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한국교회는 재정을 잘못 사용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데 선교 비에는 년간 400억을 지출하지만, 주보비에 2000억, 강단 꽃곶이에 2000억을 쓰고 있다고 한다
셋째, 지역교회는 선교 훈련처로서 그리고 파송처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 전투의 삶인데 영적 군사로서 양육하고 훈련하는 곳이 바로 지역 교회인 것이다. 영적 군사들이 각기 전문성을 가지고 전투상황에 임할 수 있도록 탁월한 전술체계를 교회는 구비해야 한다. 군사를 적절히 전투 장에 배치하듯 지역 교회들은 서로 연합하고 협력하여 전문인 선교의 파송적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고 하였다. 교회는 선교에 헌신 된 자를 발굴하여 교회가 양육하고 훈련시키며 전교인이 관심을 가지고 기도로 지키며 보호하고, 파송하기 위한 훈련단체에 훈련시키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교회가 감당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3) 교회의 선교적 본질
이태웅은 ‘선교신학의 변천과 시도’라는 주제의 글에서 맥가브란 이후의 선교신학을 논하는 부분의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였다.
맥가브란 박사가 떠난 선교학계에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전도와 문화의 접합으로 말미암은 미비점들을 보완하는 움직임이다. 전도와 문화의 결합은 어떤 면에서 전도를 과학화하는 좋은 면도 있었지만, 전도가 과학화 됐을 때 전도의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능력이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대한 보완책으로 최근에 일각에서 ‘능력전도’의 바람이 불고 있다. --- 선교학적으로는 교회 성장학이 왕좌를 차지했던 때는 서서히 지나가고 선교는 곧 교회론과 연관 지어져 나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는 개혁신학자인 간하배(Harvey Conn)박사를 들 수 있다. 간하배 박사와 일련의 개혁 신학자들이 교회성장의 신학이라는 내용을 다루면서 교회의 본질과 선교의 이론을 연관시켜 전개함으로써 교회 성장학 일변도의 선교신학이 보다 다양화되게 했다(이태웅 1994, 53).
찰스 벤 엔겐(Charles Van Engen)박사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니케아 회의의 4단어들을 교회의 선교활동을 표현하는 부사로 이해할 때 가 왔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아주 새롭게 재 확인케 된다고 하였다(찰스 벤 엔겐 1994, 91~92). 4단어의 선교적 의미는:
첫째, 통일성:
오직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로 통일시키는 힘으로 볼 수 있다. 교회생활은 초청하고 모이고---하는 생활이다. 유기체적인 결합을 나타내는 성경의 상징들, 몸과 지체의 생활, 결혼잔치 등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말씀을 실천하는 선교적 행동으로 바뀔 수 있다.
둘째, 성결성: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결하게 하는 힘으로 볼 수 있다. 교회생활은 사람들로 하여금 용서 받고, 치유 받고, 성령의 임재 하심을 경험하게 하는데 있다.
셋째, 보편성: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보편성은 화해하는 힘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멀어져 이방인이 된 인간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갖는 방법을 보여주는, 다리를 놓는 운동이다. 여기서 교회는 대사로서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세상을 부른다.
넷째, 사도성: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사도성은 선포하는 힘으로 볼 수 있다. 진리는 오직 교회 안에 있고 이 진리는 누구나 찾을 수 있고 안정감과 조직을 제공하고 또한 실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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