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과 적그리스도 10
다니엘 7장⑤
6.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한다(25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단 7:25)
정치와 종교에 있어 절대 권력을 가진 교황(작은 뿔)의 치하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로마 교회의 비성경적 교리와 행습들을 반대하는 신앙인들)은 온갖 박해와 환난을 겪게 된다. 최덕성 교수(고신대학)의 저서「종교개혁전야」란 책과 「아메리카나 백과사전」(Encyclopedia Americana)에서 발췌한 다음의 두 기사는 교황권이 종교의 이름으로 무슨 일을 자행했는지에 관해 약간의 느낌을 얻도록 하는 데 일단 도움이 될 것이다.
“교황은 이단을 제거하고 정통신앙을 수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교구마다 종교재판소를 설치하라고 명했다. 공의회의 결정이 내려지면 세속군주들은 무력을 사용하여 이단자를 처단했다. 1179년에 모인 제3차 라테란공의회를 비롯한 몇몇 공의회들은 세속군주들이 무력을 동원하여 이단을 탄압하도록 결정했다.
교회의 종교재판법은 1184년 교황 루시우스 3세가 제정했다. 모든 교구가 최소한 1년에 한번 이상 교인들을 조사하여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를 색출하도록 했다. 이단자를 보호하는 사람은 불고지죄(不告知罪)의 책임을 물어 이단자와 동일한 처벌을 받게 했다.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5)는 이단들을 진멸하도록 결정했다. 수도사들도 감독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도록 했다.
그 무렵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의 권력을 인정하고 그것의 철저한 통제를 받아들이며, 교황의 정책을 영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조차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직주의와 교황권력에 항거하는 사람은 생존이 불가능했다.
서방교회는 이단자를 징벌하는 십자군을 일으켰다. 팔레스틴으로 쳐들어간 십자군이 이교도를 진멸하는 것처럼, 새로운 발상이나 신앙을 가진 자국 백성들을 징치했다. 교수형, 화형에 처하거나 팔다리를 찢고 불태우고 물에 빠뜨려 죽였다. 교회는 새로운 사상의 씨까지도 말리려고 했다. 이단색출 정책을 강경하게 지지하던 버나드조차 ‘이단자들은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설복(說服)에 의해 개종시켜야 한다’고 외칠 정도였다.”(최덕성,「종교개혁전야」, 서울: 본문과비평사이, 2003, pp.59~61)
“종교 재판소- 중세기에 카톨릭 교회가 이단을 진압하기 위해 설립한 무한한 권력을 가진 재판소에서 이단자들은 인류의 적으로 재판을 받게 했다.
12세기 말까지의 이단에 대한 광범위한 형벌들이 있었다. 벌금, 투옥, 노예 봉사, 유배, 재산 압수, 공민권 박탈, 교수형, 화형…고문은 중세기의 민사 재판소가 행하였다. 그리고 1252년에 교황 이노센트 4세는 종교 재판소에 의한 고문의 집행을 공인하였다….
…이단자는 영적 반역죄를 범했다(그들은 카톨릭 교인들이 갖고 있는 신념과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 민사 반역죄가 사형 받을 만하다면,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반역죄는 얼마나 더 클 것인가 하는 논거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죄악을 뉘우치고 유죄 선고를 받은 이단자들을 위한 통례적 징벌은 무기 징역이었다. 유죄 선고를 받고도 뉘우치지 않은 자들과, 또는 이전의 과오들을 다시 범한 사람들을 위한 형벌은 그들이 불구가 되든지 전사하는 일이 없도록 빌면서 장기간의 전투에 보내는 것이었다…. 그 의식이 끝난 후 이 불행한 사람들은 사형 집행을 위해 마련된 장소에서 화형을 당했다. 화형 집행소에서 이단주의를 버린 사람은 때로는 불이 붙기 전에 목 졸라 죽였다. 인간에 대한 한 작은 양보였다.
…그 재판소의 권력은 무덤에까지 다다랐다. 이단으로 유죄 선고된 자들의 시체들은 사후에도 파헤쳐 불살랐다. 그 후손들의 재산은 몰수당했다.
…종교 재판관들은 야만에 가까운 가혹한 집행을 행하였다.”(University of Western Ontario, J.G.로우, 「아메리카나 백과사전 ‧ Encyclopedia Americana」15권, pp.191~194쪽)
종교재판소
종교재판 직전의 한 여성 종교재판관이 십자가를 손에 들고 있다.
로마 교회의 손에 의해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5천만에서 8천만 사이에 달한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교황의 거짓 주장들을 반대하고 구원과 진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고귀한 영혼들은 이단자라는 낙인이 찍혀 로마 교회에 의해 소름끼치는 박해와 환난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면 로마 교회가 어떻게 성도들을 박해했는가? 그 몇 가지 단면들을 고찰해 보자.
“1252년 교황 이노센트 4세가 발표한 비인도적인 ‘박멸에 관하여(Ad Exstirpanda)’는 그러한 박해들을 명령한 문서 중 하나였다. 이 문서에는 이단자들을 ‘독 있는 뱀처럼 박살내 버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에서는 고문 사용을 정식으로 인정했다. 세속 권력으로 이단자들을 화형 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전술한 교서 ‘박멸에 관하여’는 그 이후 종교 재판소의 기초 문서로 전수되어 몇몇 교황들, 즉 알렉산더 4세(1254~61), 클레멘스 4세(1265~68), 니콜라오 4세(1288~92), 보니파시오 8세(1294~1303) 등이 쇄신 또는 강화시켰다”(랄프 우드로우, 「로마 카톨릭주의의 정체」, 안금영 역, 서울: 할렐루야 서원, 1989, p.195)
1)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고문 방법
교황으로부터 이단자로 처리된 성도는 이단에 감염된 자에게 행하는 모든 형벌들을 받아야 했다. 극심한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이 연구되어 성도들을 고문하는 데 사용되었다.
(1) 긴 평판의 고문대(rack)
사람을 긴 평판에 뒤로 눕히고 손발을 양쪽에서 묶어 밧줄로 죄어 당기며 고문하는 기계로 고문 과정에서 관절이 탈골되어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다. 사지를 결박한 상태에서 끈을 잡아당겨 늘어뜨리면 가혹하게는 사지가 뜯겨나가게 되는 고문기구이다.
(2) 손톱 뽑기와 불로 지지기
무거운 집게로 손톱을 뽑아내거나 신체의 민감한 부분을 불로 지져대는 고문법을 사용하여 성도들을 박해하였다.
(3) 로울러 고문
날카로운 칼날과 송곳들이 쭈삣쭈삣하게 나온 로울러로 성도들 위에 앞뒤로 굴려 고통을 주는 고문법을 사용하였다.
(4) 손가락 및 다리와 발가락 고문
손가락 관절을 탈골시키는 도구인 엄지손가락을 비틀어 죄는 기구를 사용했고, 다리와 발가락을 짓이기는 데 사용하는 ‘스페인 구두’로 고문하였다.
(5) ‘철갑처녀’ 고문기
중세시대 고문 기구를 대표하는 것이다. 사람 몸에 딱 맞는 크기로 제작된 관에 그 내부는 철침으로 가득 박혀 있다. 움직일 수도 없으며 문이 닫히는 순간 온몸에 침이 박히며, 출혈 과다로 서서히 죽게 된다. 처음에는 관에 여인의 형상이 붙은 게 아닌 단순 캐비닛의 형태였다. 그러다 후일 마리아(예수의 어머니)의 형상으로 의인화 되면서 마리아의 이름을 차용하여 ‘iron maiden’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이 고문 장치에다 이른바 ‘성수(聖水)’를 뿌렸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릴지어다”라는 라틴말도 적어 두었다).
(6) 도르레 고문
손을 등 뒤로 묶은 후 그 손을 다시 밧줄로 매달아 위로 들어 올려 도르레를 작동시켜 몸뚱이를 공중에 매달리게 하거나, 혹은 떨어뜨리기도 하고, 갑자기 줄을 당겨 버려서 어깨의 관절을 골절케 하거나 신체의 다른 관절들을 탈골시키는 고문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고문이 가해지고 있는 동안 사제들은 십자가를 들고서 성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래도 신앙을 철회하지 않겠느냐”고 다그치며 그들의 신조를 취소시키려고 발버둥치곤 했다(앞의 책, p.196-197).
마녀로 몰린 여성에게 고문을 가하는 종교재판소 광경 발가벗은 여체를 바라보는 사제의 시선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쌓아 올린 이성의 허약함을 통감하게 된다. 탁자 위에 십자가가 놓여 있다. (7) 유다 요람(Judas Cradle) 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 뾰족한 위치에 끈으로 묶인 대상자의 항문, 혹은 질이 닿도록 앉힌 다음 줄을 천천히 풀어서 체중에 의해 서서히 파고들게 하여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유다 요람"이라는 기구로 고문하였다. 유다 요람(Judas Cradle)
종교재판소에서 자행된 개신교 성도들에게 가해진 잔혹 행위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로마 교회의 가르침을 반대한 사람들의 귀와 입 속에 끓는 납을 부어 넣기도 했다. 눈알을 도려내는 일을 당한 사람도 있었고, 채찍으로 혹독하게 맞는 사람들도 있었다. 긴 못들이 쭈삣쭈삣 박혀 있는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제쳐 떨어져 거기서 말 못할 고통으로 덜덜 떨다가 서서히 죽어 간 사람들도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신체에서 난도질 된 살조각들과 소변과 배설물로 질식사를 당하기도 했다. 종교 재판소의 희생자들은 밤중에는 마루바닥이나 벽에 꽁꽁 묶여 있어, 거기서 무력하게도 피에 젖은 고문실들 안에 들끓고 있는 쥐들과 해충의 먹이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앞의 책, p.199).
이 모든 비인도적인 행위는 교황의 지시에 의해 사제들이 십자가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행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종교재판소 고문실(Babylon Mystery Religion p.109).
프로테스탄트가 고문대에 발이 낀 채 거꾸로 매달려 있고,
밑에 있는 화로에는 그의 눈을 지지기 위한 쇠막대기가 달구어지고 있다.
2) 교황의 명령에 의한 그리스도인 학살
“역사를 바로 아는 프로테스탄트라면 로마 교회가 인류 사회에 존재했던 어떤 단체보다도 무고한 자를 많이 죽였음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로마 교회에 의해 희생된 자의 수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W.E.H. Lecky,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the Sprit of Rationalism in Europe, vol. 2, page 32, 1920 ed.
“교황권이 존재한 기간 중 해마다 평균 4만 명의 종교적 살인이 자행된 것으로 추산된다.”- John Dowling, History of Romanism, pages 541~54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그런데 예수님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교황에 의해서 참혹한 대학살이 성(聖)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도처에서 자행되었다.
“1209년 베지에르즈(Beziers) 도시는 이단자들을 소탕하는 군대에 종사하므로, 그들이 사망시 연옥을 걸쳐서 곧바로 하늘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 약속을 교황으로부터 받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점령당하였다.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이 도시에서 6,000명이 칼에 도륙되어 그 피가 흥건하게 거리로 흘러내렸다.
박해자들은 1211년 라바우르(lavaur)에서 총독을 교수대에 처형하였고, 그의 아내를 우물에 쳐 넣어서 돌로 뭉개버렸다. 이 고을에서 400명의 신자가 산채로 화형 당했다. 박해의 칼잡이들은 아침에 대미사에 참석하고, 그 후 다른 고을들을 점령하러 나갔다. 이 포위 공격으로 100,000명의 알비젠스(Albigenses) 교도들(개혁교도들)이 하루 동안 죽임을 당하였다. 저들은 이 시체들을 한데 쌓아 올려놓고 불태워 버렸다.
1544년 롬바르드 사람 개신교도 프란시스 감바(Francis Gamba)가 밀라노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처형 장소에서 한 수도승이 그에게 십자가를 제시했는데, 감바는 그에게 ‘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참 공로와 선하심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그 분을 내 마음 속에 모시기 위해 무의미한 나무 조각이 필요치 않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 때문에 그의 혓바닥을 도려냈으며 그 후 화형 시켰다.
메린돌(Merindol)의 대학살 때에는 5000명의 여자들을 창고에 가두어 놓고 불을 질렀다. 안에서 창문으로 누가 뛰어나온 때는 뾰족한 창끝으로 그들을 찔렀다. 여자들은 불쌍하게도 공개적으로 난행 당했다. 자녀들은 보호할 힘이 없는 부모들 앞에서 살육 당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절벽에서 내팽개쳐지거나, 옷이 벗겨진 채로 거리에 질질 끌려 다녔다.
1562년 오랜지(Orange)의 대학살 때도 비슷한 방법들이 사용되었다. 교황 비오 4세는 이탈리아 군대를 보내 남자, 여자, 아이 가릴 것 없이 도살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명령은 가공할 만한 잔인한 방법으로 실행되어져 온갖 종류의 수치와 고문을 당하였다.
1572년 파리에서 ‘성 바돌로메 축제일’에 100,000명의 유그노 교도들(칼빈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개신교도)이 피의 대학살을 당하였다. 이 때 프랑스 왕은 많은 이단자들을 소탕한 것에 대해 정중한 감사를 드리고자 미사를 드렸다. 교황청에서는 이 소식에 크게 기뻐했고,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장렬한 행렬로 성 루이스 교회에 감사드리러 갔다. 그는 교황 조폐국에 이 사건을 기념하는 동전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동전들에는 한 손에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 천사와, 그 앞에서 한 무리의 유그노 교도들이 두려워 떠는 얼굴로 도망하는 그림이 들어있다. 동전 위에는 ‘1572년 유그노 교도들 살육’을 의미하는 ‘Ugnottorum Stranges, 1572’란 말이 새겨져 있다.”(앞의 책, p.199-200)
“유그노(Huguenots)교도 대학살”
(이 동전은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성 바돌로메의 날 대학살’
“1641년 영국의 울스터(Ulster) 지방에서는 프랑스의 ‘성 바돌로메 축제일’의 대학살에 상당하는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로마 교회에 의해 자극된 에이레의 천주교도들이 울스터 지방의 개신교 주민들을 살해하려고 공격해 왔는데, 이 때 3,000명 이상의 무죄한 성도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했다. 그 때 가련한 성도들은 그들의 귀, 손가락과 손을 잘리고, 눈을 뽑히고, 어린 자녀들은 그 손들이 그들의 어머니의 얼굴 앞에서 삶아졌으며, 여인들은 알몸으로 벗겨진 채 신체가 찢김을 당했다. 포터다운(portadown)의 읍에서는 강이 희생자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흘렸으며, 마침내 죄 없는 성도들의 몸에 의해 막힐 정도였는데, 그들은 천주교도 군인들에 의해 도심을 벗겨진 채 행진하여 와서 그들에 의해 그 물속에 빠져 죽었던 것이다.”(「The Scarlet Woman of the Apocalypse」, p.19 Alan Campbell)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믿음 때문에 학살을 당했다. 스페인에서만 해도 종교재판에 의하여 고난당한 사람들은 산채로 화형당한 사람이 31,912명으로 헤아려졌고, 소위 복종하도록 강요된 참회자가 291,450명으로 계산되었다. 알비젠스인들의 대학살에서는 백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 제수이트 제도가 확립된 지 30년 동안에 900,000명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당하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알바공의 지시에 따라 36,000명이 보통 집행자들에 의해 신속히 사형에 처해졌다는데, 알바공은 이러한 행위를 자랑했다. 찰스 5세의 치하에서는 50,000명의 프랑드르인들(Flanders)과 독일 사람들이 교수형과 화형과 산채로 매장 당했다.
실로 현세적 통치자로서 전 세계의 독재 군주가 된 로마 교황 치하의 대낮은 바로 세상의 깊은 밤중이었다. J. M. 캐롤 목사는 교황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행한 그 소름끼치는 박해에 대해 그의 책《피흘린 발자취》(The trail of blood)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나는 또다시 잔악한 박해의 손길이 닥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코자 한다. 만약 암흑시대라 불리었든 1200년 동안에 5000만 명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아 죽었다고 하면-역사는 확실히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는 100년마다 평균 400만 명 이상의 비율로 죽은 셈인데, 이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진다.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이 잔악한 핍박의 쇠망치는 순교의 피바다를 이루면서 바울파, 아놀드파, 헨릭파, 베드로-부르시안파, 알비젠스파, 왈덴스파, 그리고 재침례파의 사람들 위에 가해졌다-물론 박해의 잔악한 정도는 일정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이 이야기의 무서운 부분을 바삐 지나가 버리기로 하자.”(J. M. 캐롤, 「피흘린 발자취」서울:혜남사, 1988, p.52)
“…외길로 되어 있는 구라파의 일등 도로가에 30마일(120리: 인용자 주)의 거리를 두고 이 신작로를 따라 두서너 자의 간격으로 화형의 말뚝이 하나씩 세워지고, 그 뾰족한 말뚝 끝마다 순교당한 재침례교도들의 피 묻은 머리가 달렸던 것도 바로 이 시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인간의 상상으로서 이렇게 무서운 광경을 그려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믿을 만한 역사에 의하면 이러한 일을 행한 이들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제자라 자칭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앞의 책, p.69-70)
1400년 알프스 프라겔라(Pragela) 골짜기에 은신했던 왈덴스인들이 로마 교회가 보낸 토벌군에 의해 기습을 받아 짓밟히고 살해당한 뒤, 피하여 도망친 사람들은 엄동설한에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수도 없이 얼어 죽었다. 1488년 교황 인노센트 8세의 왈덴스인 박멸령에 따라, 프랑스 군대들이 알프스의 로이스(Loyse) 골짜기에 덮치자 왈덴스인들은 동굴로 피신했으나, 입구에 불을 놓아 3000여명이 질식해 죽기도 했다. 아래의 시 속에는 당시 순교의 제물로 삶을 마감한 왈덴스인들의 상황이 여실히 묘사되어 있다.
<알프스여 증언하라!>
알프스 계곡들을 살펴보라!
그리고 그 계곡들의 전설을 읽지 말고 그들의 역사를 읽으라.
지금은 달빛에 비쳐 은빛으로 눈부신 백설(白雪)의 계곡,
그 아름다운 색조 위에 뿌려졌던 죄 없는 어린 아기들의 검붉은 핏방울들.
자유를 울부짖으며 계곡을 뛰어넘는 폭포들,
그것들은 지금 로마 교회의 칼날에 스러져 간 젊은이들의
한 많은 시체를 넘어 포효하느니,
물길도 영롱하게 계곡을 내리달리는 강들이여,
그것들은 바티칸이 죽인 순교자들의 재를 실어 나르며,
그 시체 더미 위를 소리치며 흐르거라.
바위틈과 계곡을 편답(遍踏)하라.
그것들이 위대한 영웅들의 행적을 증언하리라.
로마 교회가 여러 세기 동안 겨루어 왔던 진리의 요람,
그 장엄한 골짜기들,
너, 알프스야!
심판의 날에 목소리를 높이거라.
산들아, 삼림아, 거기 있는 나무들아,
잠잠치 말고,
저주받은 도시의 피 흘린 죄악을 심판 날 하나님께 증언하거라.
예수회의 본당인 로마의 Jesu 성당 내부의 조각상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로 이해했던 루터와 쯔빙글리 같은 교회의 이단자들을
어머니 교회(십자가를 든 여자, 로마 카톨릭 교회를 상징)가 제거하는 것을 보여주는 조각상.
작은 천사는 조각에서 개혁자들 책의 페이지들을 찢어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여인의 발에 밟혀 있는 예수회의 적들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 곧 모든 개신교도들이다.
로마교의 기독교 박해 발언
• “이단자(Heretic)란 카톨릭 교회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가르치는 특정한 진리를 믿지 않으려고 고집스럽게 버티는 침례 받은 신자이다…예를 들면 다양한 개신교 분파들이다…개혁주의인 프로테스탄티즘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단들의 총집합이다. 물론 그 이후에 일어났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영혼들을 파괴할 수 있는 이단들의 본산이다.”(M. 뮤럴, 카톨릭 교회의 정통적 해설, 4권, 1885년판, p.170)
• “공공연히 이단임을 공언하고 말이나 본보기로 다른 사람들을 그릇되게 인도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은 절대적으로 말하노니, 출교뿐만 아니라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다.”(Lepicier, De Stailitate et progressu Dogmatis, p.194)
• “교황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프랑스의 선을 위하여 위그노교도가 마땅히 처형될 것을 원했다.”(교황 그레고리 1세)
• “지난 1200년 동안에 침례교도들이 칼로 끊어버림을 당하는 처절한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모든 개혁자들보다 더 많은 수효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트렌트 공의회 의장 호시우스 추기경. 1524년)
• “옛날 무서운 알비젠스 이단을 몰아내신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우리들의 간청에 감명되시어 오늘의 오류도 없이 하실 것입니다.”(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1937년)
• “교회는 신성한 권위에 의하여 이단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감금하고 화형을 선고할 수 있다…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형벌들과 사형까지도 내릴 권리가 교회에 있다…그러므로 이는 근절되어야 한다.”(교회 공범 2권, p.142)
교황이 세력을 잡고 있는 동안 로마 교회에 의해 수천만의 성도들이 온갖 잔인한 방식으로 학살당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같은 살육이 교회 안에서 발생할 것을 분명하게 예언하셨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 16:2)
또한 그 이유까지도 말씀하셨다.
“또 그들이 이런 일들을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버지도 모르며 또 나도 모르기 때문이라.”(요 16:3 새성경)
그렇다! 로마 교회가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그렇게 잔혹히 살육하고 괴롭게 하지 않았으리라.
로마 교회 측도 그들의 교회가 저지른 박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새 카톨릭 백과사전》은 “현대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종교 재판 특히 중세의 막바지에 스페인에서 자행했던 종교 재판은 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기록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다”고 간략히 기술하고 있다(New Catholic Encyclopedia, arts. ‘Inquisition’).
의심할 여지없이 교황권은 ‘작은 뿔’의 여섯 번째 특성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계 속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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