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종말

[스크랩] 다니엘 7장③

수호천사1 2012. 5. 29. 22:39

666과 적그리스도 8 


다니엘 7장③

 



  이제 작은 뿔의 권력자가 참으로 누구인지 찾아보도록 하자. 24절, 25절로 내려가 보자.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여기 24절, 25절에는 ‘작은 뿔’이 누구인가를 이해하는데 열쇠가 되는 여덟 가지 특성이 나타나 있다. 24절에 4가지, 25절에 4가지가 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작은 뿔의 신원을 밝히는 여덟 가지 특징들


1. 그것은 ‘넷째 짐승’에게서 나왔다(24절).

2. 그것은 ‘열 뿔’이 나타난 이후에 생겼다(24절).

3. 그것은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다(24절).

4. 그것은 ‘세 왕’을 복종시킨다(24절).

5. 그것은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 한다(25절).

6.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한다(25절).

7. 그것은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한다(25절).

8. 그것은 ‘한 때, 두 때, 반 때’의 기간에

특별한 권세를 누린다(25절).

  

  우리가 이 특성에 맞는 인물이나 세력을 찾아낼 수 있다면 누가 그 ‘작은 뿔’인지를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매우 거창한 작업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주 쉽다.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위의 여덟 가지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즉, 로마 제국이 쇠락한 후 커다란 종교-정치의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사람들의 마음에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로마 교회, 곧 바티칸의 교황권이 바로 그 실체이다.


  참으로 그런지 다니엘 7:24-25에서 발견되는 ‘작은 뿔’의 8가지 특성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확인해 보자. 

 

 

 

 

  1. 그것은 ‘넷째 짐승’에게서 나왔다(24절, 8절).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열 뿔은 넷째 짐승의 머리에 솟아난 것으로서 넷째 짐승은 당신이 기억하다시피 이교(異敎) 로마이다. 이는 ‘작은 뿔’이 열 뿔처럼 로마 제국과 연결된 세력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다음의 자료들이 이것을 아주 명백히 할 것이다.


  “정치적 로마의 폐허로부터 로마 교회의 형태로 거대한 도덕적 왕국이 일어났다.”(A.C. Flick, The rise of the medieval church, 1900, p.15).


  “교황은 그들의 권력과 위신과 칭호들을 이교로부터 상속받음으로써 공석이 된 로마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콘스탄틴 황제는 이 모든 것을 로마 주교에 넘겨주고 갔다… 교황권은 몰락한 로마 제국의 무덤 위에 왕관을 쓰고 앉아 있는 로마의 유령이다.”(Stanley's History, p.40).


  “로마 교회는 이러한 방법으로 슬며시 로마의 세계적인 제국의 자리로 밀고 들어왔는데, 실제로 로마 교회는 로마 제국의 계속인 것으로, 로마 제국은 망한 것이 아니라 단지 모양을 바꾼 것이다… 교황권은 정치적 피조물로서 세계적인 제국처럼 위풍이 당당한데, 이는 그것이 로마 제국의 계속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을 ‘왕’ 혹은 ‘폰티펙스 막시무스’(주-고대 이교의 대제사장의 칭호)라고 자칭하는 교황은 시저의 후계자이다.”(Adolf Harnack, What is Christianity? New York: G.P.Putnam's sons, 1903, pp.263, 270).


  실제로 교황 로마(Papal Rome)는 이교 로마(Pagan Rome)의 정치 조직을 그대로 따르면서 세워진 나라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래와 같이 도해할 수 있다.

 

 

  교황의 로마가 이교 로마의 자리를 취하였기 때문에, 교황권은 쉽게 ‘작은 뿔’의 첫째 특성에 잘 맞는다. 이제 두 번째 특성을 살펴보자.


 2. 그것은 ‘열 뿔’이 나타난 이후에 생겼다(24절).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단 7:24)


  당신은 ‘열 뿔’이란 로마 제국에서 분열된 10나라를 표상한 것임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뿔’은 로마가 열국으로 분열된 후 유럽에서 출현한 세력이어야 한다. 이것이 ‘작은 뿔’의 지정학적 위치이다. 그는 아시아나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기독교를 공인했던 로마 황제 콘스탄틴(306-337)은 엄청난 인플레이션, 무거운 과세 부담, 국민의 사기 저하, 만성적인 국경 분쟁 등의 요인을 해소시키는 방안의 하나로 330년에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였다. 이로 인해 로마에 권력의 공백이 생겼고, 그 결과 로마 주교의 세력이 크게 신장하게 되었다.


  “콘스탄틴 황제는 동방(東方)에 위치한 비잔틴이라는 도시를 로마 대신 제국의 수도로 삼고 비잔틴이라는 도시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City of Constantine)로 바꾸었다. 오늘날 그 도시는 이스탄블(Istanbul)이라고 불린다.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를 떠난 후, 그 곳에 그냥 남아 있던 로마 교회의 감독은 서방(西方)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가 되었는데, 이것은 곧 그에게 대단한 권한이 주어졌음을 의미하며, 그 권한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확장되어 갔다.”(A.E. 호오튼, 「간추린 교회사」유지훈 역, 서울: 전도 출판사, 1989, p.33)

 

 

                  

       오늘날 그 도시는 이스탄불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양상이 형성된 가운데 375년 게르만 민족의 침입과 함께 로마는 분열되기 시작하여 476년에 가서는 완전히 10조각이 나고 말았다. 바로 이 열 나라들이 ‘열 뿔’로 표상된 것이다. 그러자 로마 제국의 기세가 기울어져 게르만 민족의 침입에 시달리던 시기에 ‘헤롤리’에 자리를 두고서 꾸준히 신장되어 오던 로마 교회 감독(교황)의 세력이 급속히 부상하였다.


  “로마의 난국은 교황에게 있어서 교황권 신장의 기회였다.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써 로마 제국 멸망은 교황 권세에 놀라운 힘의 보탬이 되었다. 로마에는 이 감독을 능가할 황제는 더 이상 없었다. 로마의 감독은 전 서부의 가장 중요한 직책이었다.”(B.K. 카이퍼, 「세계기독교회사」, 김해연 역, 서울:성광문화사, 1990, p.93)


 “서로마의 황제가 없어진 후에 로마 사람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조직을 유일한 국가 조직으로 알고, 로마 주교를 전 카톨릭 교회의 교황으로 섬기게 되었으며, 또 사실상 대교황 레오(Leo I)는 훈족 왕 아틸라(Attila)의 로마 침입을 막아내고(452년), 대교황 그레고리(Gregory I, 560-604)는 롬바르드(Lombard)족의 침입을 막으면서 실제로 로마 국왕의 일을 맡아 보았다.”(세계사, p.79, 이해남, 탐구당)

 

 

 

교황 레오 1세와 아틸라의 만남(라파엘)


  이렇듯 제국 로마가 그 전성기를 지난 뒤, A.D. 330년 수도를 서방의 로마로부터 동방의 콘스탄티노플로 옮김으로서 그 권좌를 로마 교회의 감독에게 양도했으며, 476년 서로마가 망한 후에는 로마 교회의 교황이 명실공이 이전 로마 황제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 로마는 망한 것이 아니라, 교황 로마로 그 형태를 바꾸어, 중세기 1천여 년 이상을 또다시 로마 제국 이상의 영역에서, 정치와 종교 전반에 걸쳐 통치권을 행사한 것이다. 즉 A. D. 476년 서로마 제국이 망한 후 같은 자리(로마)에서 정치적 로마 제국을 계승한 종교적 로마 제국인 로마 교황권이 탄생한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교황권은 ‘작은 뿔’의 두 번째 특성에 잘 들어맞는다. 이제 세 번째 특성을 고찰해 보자.

 

  3. 그것은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다(24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단 7:24)


  ‘먼저 있던 자들’이란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성립된 열 나라(열 뿔)를 말한다. 즉, 로마가 열국(列國)으로 분열된 후 유럽에서 나온 교황권(작은 뿔)은 그 열국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이전의 나라들은 모두 정치적 군주 국가였으나, 교황 로마(Papal Rome)는 정치적 군주 국가이면서도 종교적 군주 국가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이전의 왕국들은 사람의 몸을 다스렸으나 교황은 사람의 영혼까지 다스린다. 또한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영토 내에 있는 백성들만 다스리지만 교황 로마는 영토와 민족에 관계없이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범세계적 국가라는 점에서도 다르다(계 17:15).

 

   우리가 잘 아는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 이삭 뉴턴 경(1642-1727)은 작가이자 수학자, 철학자였고 성경 예언을 연구한 성경 연구가이기도 했는데, 그는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을 로마 교황권으로 간주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로마 교황은 로마 제국이 멸망하여 분리된 10개 제국 가운데서 생겨난 적그리스도이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은 그 존재 의미에 있어서 이들 10개 제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로마 교회는 전 세계적인 하나의 주교관구를 다스린다. 교황은 스스로 아무런 죄가 없는 것처럼 말하면서 전 세계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교황권은 ‘작은 뿔’의 세 번째 특징에도 잘 들어맞는다. 물론 네 번째 특성도 로마의 바티칸과 정확히 부합한다.


  4. 그것은 ‘세 왕’을 복종시킨다(24절, 8절).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단 7:24)


  열 뿔이 로마 제국의 분열 이후에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 열한 번째 뿔이 뽑아 버린 나머지 세 뿔들의 정체를 규명하는 것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마 제국을 침범하여 로마 영토 각처에 왕국을 세운 열 종족(열 뿔) 중에 이미 기독교화된 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헤룰리, 반달, 동고트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독교는 아리우스파(Arianism) 기독교였다. 즉 이 부족들은 로마 교회와는 달리 예수님을 피조물로 믿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상의 차이 때문에, 로마 교권과 아리우스파 부족들은 서로 적대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의 카톨릭 황제들은 교황을 후원하기 위하여 세 개의 아리우스파 부족을 제거했다.

 

  그리하여 ‘작은 뿔’ 앞에서 ‘세 뿔’이 뿌리째 뽑히리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교회가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한 것은 이보다는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이때부터 교회는 정확하게 정치 종교적인 실세로 등장하게 된다.


  ① 헤룰리족이 493년에 멸절하였다

 

  로마를 처음으로 유린한 족속은 헤룰리(Heruli)족인데, 그들의 대장 오도아케르(Odoacer)가 476년에 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Romulus Augustus)를 폐위시키고 스스로를 이탈리아 왕이라고 칭하였다. 이리하여 1천2백여 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제국 로마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인 헤룰리족이 교황이 실제적 정치적 왕노릇을 하고 있는 로마를 점령하였으니 로마 교권이 평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황권은 이 세력의 축출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가톨릭 신도인 동로마의 제노(Zeno, 474-491) 황제는, 서로마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게르만족인 동고트족의 지도자 데오드릭(Theodoric)을 충동하여 헤룰리를 치게 한 결과, 493년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는 헤룰리 왕국이 망하여 사라졌다. 이래서 ‘세 뿔’ 중 하나가 뽑혔던 것이다.


 ② 반달족이 534년에 멸절하였다

 

  반달족(Vandals)은 또 하나의 게르만 민족인데, 그들의 장군 겐세릭(Genseric)의 지도 아래 고올(지금 프랑스) 지방을 지나서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를 점령하고 그 곳에 반달 왕국을 세우고서 지중해 일대를 위협하였다. 이들이 나라를 세운 때가 439년이었다. 그들은 445년 지중해상으로 로마를 침입하여 무서운 약틀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카톨릭 신도인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527-565) 황제는 533년 로마의 교황을 ‘모든 거룩한 교회들의 머리’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함과 동시에 그 칙령에 반대하는 반로마 교회 세력인 아리우스파의 반달족과 동고트족을 박멸키 위한 성전(聖戰)을 개시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명장 벨리사리우스(Belisarius)로 하여금 반달족을 쳐부수게 하였다. 반달족은 534년에 트리카마룸(Tricamarum)의 전투를 끝으로 역사에서 안개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래서 또 뿔 하나가 뽑혔다.


  ③ 동고트족이 538년에 멸절하였다

 

   반달족을 완전히 정복시킨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황제의 지시에 따라 군대의 작전 행로를 남은 반로마 교회 세력인 이탈리아의 동고트족에게로 돌려 로마 시를 장악하고 있는 동고트족을 쳤다. 536년 12월 9일에 그는 단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로마 시를 점령하고 있던 동고트족을 축출시키려고 로마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로마 주둔군이 적은 것을 안 동고트 왕 위티기스(Witigis)는 15만 명의 병정으로 로마 시를 에워싸고 반격해 왔다. 동고트족은 당시 어리석게도 벨리사리우스로 하여금 식수가 끊겨 항복케 할 요량으로 로마로 들어가는 14개의 도수관(導水管)을 끊었다. 그러나 끊긴 도수관에서 쏟아져 나온 물은 성 밖 일대를 진구렁으로 만들어 말라리아 모기떼를 서식하게 하였고, 결국은 말라리아 전염병이 창궐케 되었다. 거대하던 동고트족의 군대는 전염병으로 거의 쓰러졌고, 드디어 538년 3월 중순에 벨리사리우스는 적은 병력을 가지고도 동고트족의 군대를 쉽게 물리칠 수가 있었다(프로코피우스 procopius .「전쟁들의 역사 History of the wars」, 3권, 235~237쪽). 그리하여 마침내 로마 교회의 감독이 전 세계 교회의 머리라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칙령은 반대 없이 실시될 수 있게 되었고, 로마 교회의 지상권은 확립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이같이 하여, 다니엘서의 세 뿔 즉 헤룰리족, 반달족, 동고트족이 뿌리까지 뽑혔던 것이다. ‘먼저 있던 뿔 중에 셋이 뿌리까지 뽑히고’ 작은 뿔이 그 나머지들보다 더욱 강성해질 것이라는 다니엘 7장의 예언은 이렇게 성취된 것이다.1) 부인할 수 없이 교황권은 ‘작은 뿔’의 네 번째 특성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작은 뿔’에 대한 네 가지 특성들은 24절에서 발견되는 것들로서, ‘작은 뿔’이 로마의 바티칸, 곧 교황권임을 분명히 알게 한다. 그러나 아직 살펴보지 않은 25절에서 발견되는 나머지 네 가지 특성들은 ‘작은 뿔’이 참으로 교황권임을 더욱 명백히 알도록 해준다. 그리고 ‘작은 뿔’이 계시록 13장의 첫째 짐승, 곧 적그리스도와 동일한 세력임을 아주 확실히 드러내 준다. 이제 나머지 네 가지 특성들을 고찰해 보자.

 

 

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작은 뿔’ 때문에 세 뿔이 뽑힌 역사적 내력은 백과사전이나 서양 중세사(中世史) 책들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밀맨(Milman)은 「라틴 기독교사 History of Latin Christianity」3권 4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들의 멸망으로 교황청의 숙명적인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이탈리아로부터 동고트를 몰아냄으로써 로마 주교가 단지 종교계뿐만 아니라 세속적으로도 모든 지상권을 행사하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탈리아 정복, 로마의 구출, 동고트의 패망의 해인 A. D. 538년은 로마 교권이 세계적 속권을 수립한 바로 그 해가 된다.

 

-계  속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lub.cyworld.com/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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