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도시 - 호텐/테클리마칸/코를라
실크로드의 도시 - 호텐
호텐의 고대의 이름은 우둔으로 이 이름은 몇천년전에 있었던 강성한 한 나라의 이름이다. 호텐과 우둔에 대한 해석에는 많은 사람들의 각기다른 견해들이 있다. 중국의 사료들에 의하면 이 이름의 가장 초기이름은 위티엔으로 이것은 카루시티어의 문서에서 khotan을 삭문자의 문서에서 불려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또한 중국어표기의 위티엔의 발음은 utian(u을 위로 읽음)으로 마하산파수트라에서 기록하고 있는 유우띠나예의 고대에 utiana(u을 위로 읽음)과 훈(흉노)들의 utiun(u을 위로 읽음)으로 불리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며 이것의 뜻은 현장이 쓴 책에서 오구즈 젖을 준 고향(나라)라는 것에 동의하며 khostan의 뜻은 땅에 젖 이라는 뜻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오구즈마칸(오구즈의 땅-오구즈는 위구르의 조상이다)이라는 것을 증거할만한 사료들이 있다.
또 다른 견해는 호텐은 고대의 요트칸고대도시의 이름이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코탄,코단이라는 말로서 소를 키우는 고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또 다른 견해는 삭어의 hu-vat-ana라는 말에서 왔다라고 하며 이것은 쿠드레트릭(강한,용감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국어사료에서 산스크리드어로 원래의 위티엔(utian)은 udyana이라는 말에서 왔으며 뒷그림자라고 한다.
필리오트라는 사람은 이 말을 과실이 있는 정원 또는 꽃동산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의 학자중에 부시르와 일본학자웅에 시라토리는 호텐이라는 말은 티벳어에서 왔다라고하며 티벳어로 gyu(yu)로서 고대 티벳어에와 현대어로는 g가 탈락되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yu는 위티엔의 위가 되므로 위의 티벳어 뜻은 카시티시(옥)이라는 뜻이다. 또한 티벳어로 도시와 마을들은 tong라고 하며 이것은 tan에 가깝다고 한다. 이것은 qustian,kustan,qustan으로서 이것의 뜻은 포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견해들은 우둔이라는 말과는 관계가 없다고 본다.
메흐무트케시키리의 돌궐어대사전에서 우둔(오둔)과 호텐말이 같이 쓰여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둔이라는 말과 호텐이라는 말이 카라한왕조대에도 같이 불려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둔과 호텐의 음성학적인 변화과정을 밝히는 것는 그리 어렵지가 않다. 이 현상은 11세기이전에 호텐이이라는 이름이 우둔이라고 불렸던 것은 훨씬이전의 일이다
돌궐어대사전에서 udun을 투르크인들은 이것을 hudun-hutun-hotan으로 변화된 것이라고 본다. 우둔의 뜻은 백성이다.
호탄 지역은 고대 피산, 위티엔, 간미, 취러, 징주에, 우루 등의 제국(諸國)지였다. 서한(西漢:유방<劉邦>이 세운 나라. B,C 206 - A.D 220. 서한이라는 명칭은 도읍인 장안<長安>이 후한의 도읍인 낙양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 때부터 시작해서 위티엔국은 정식으로 서한으로 귀속되었다. 唐(당:618 - 906년. 수(隋)의 뒤를 이어 오늘날의 서안<西安>인 장안<長安>을 수도로 하여 이연<李淵>이 세운나라. 역자 주)上元 2년(675년)에는 이 곳에 피사 도독부와 십주(十州)가 설치되었다. 원나라(元:1206년 몽고족 징기스칸이 세운나라.
1279년 그의 손자 세조<世祖> 쿠빌라이 대에 이르러 남송<南宋>을 멸망시키고 국호를 元으로 개칭함. 역자 주) 몽고종(蒙古宗) 왕의 분봉지 였기도 했으며, 원나라 16년부터26년(1279 - 1289년) 까지 선위사(宣慰使) 원수부(元帥府)가 설치되기도 했다. 1759년 허티엔 대신(大臣)급 기관이 설치되기도 했다가 예얼치앙 대신 급 기관의 관리를 받기도 했다. 광서(光緖:청<淸> 덕종<德宗>의 연호 1875 - 1908년. 역자 주) 9년(1883년)에는 허티엔은 독립주로, 위티엔은 직할지로, 두개의 루어푸현으로 나누었다가 민국(民國:손문의 영도아래 신해혁명<1911.10.10일>을 계기로 청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중화민국의 명칭. 역자 주) 2년(1913년) 독립주가 현(縣)으로 개정되기도 했다.
민국 9년(1920년) 원래 카쉬카르도(道)로 분할되어 속해 있던 예청, 피산, 허티엔, 위티엔, 모위, 루어푸 6개 현과 처러 현등의 허티엔도(道)로 성립되었다가 후에 행정구로 바뀌었고, 행정장관공서(公署)가 설치되었다. 민국31년(1942년) 예청이 사처(야르켄트莎車) 전문공서로 분할되어 나갔고, 민국32년(1943) 행정장관공서가 행정독찰(독찰:감독하며 감찰하다. 역자 주) 전원공서로 바뀌었고 행정구도 전구(專區)로 개정이 되었다. 신 중국 성림이후, 1950년 초 허티엔 전구(專區) 전원(專員)공서가 건립되었고, 1959년 허티엔(호탄和田) 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77년 허티엔지구 행정공서로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맘 자파르의 성묘
스웨덴의 탐험가 헤딘은 그가 들은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옛날에 어는 곳엔가 모든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성묘가 있었고, 원근 각지에서그 곳에 참래를 마친 뒤 자신의 기원을 성취하기 위해 돈이나 옷감 혹은 가축을 가지고 와서 헌납했고, 자연 그 성묘를 관리하는 이맘은 아주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이암 밑에서 수행하는 제가 한 사람이 하루는 자기도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신의 행운을 찾아보겠노라고 결심하고 스승으로부터 나귀 한 마리를 얻어 길을 나섰다고 한다.
그는 나귀를 끌고 이곳 저곳 헤매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 주지 않았다. 하루에 한 끼 먹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고 그를 따라다니던 나귀도 병들어 죽고 말았다. 나귀를 땅에 묻고 난 다음 나는 앞길이 막막해서 주저앉아 그 무덤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우는 연유를 묻자 그는 가장 고귀한 분이 죽었기 때문에 슬퍼서 우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무덤에 묻힌 '고귀한 분'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을 한 뒤 돌아갔다. 이 성묘가 신통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지면서 점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참배객들이 바치는 헌금으로 그 묘지도 그럴싸하게 꾸미고 사당도 지었다. 하루는 이 유명한 성묘에 관한 소문이 그의 옛 스승의 귀에 들어갔다. 그 역시 이 성묘를 찾아왔다. 참배를 마친 그가 헌금을 하면서 성묘의 이맘을 가만히 살펴보니 과거 자신의 제가였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놀라서 제가에게 다가가 물었다.
"도대체 이곳에 묻힌 분이 누구인가?"
그 제자는 주위를 살핀 뒤의 귀에 속삭였다.
"바로 스승님이 제게 주신 그 나귀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그의 스승에게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스승님이 모시고 있는 성묘에는 어느 분이 묻혀 있는 겁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로 여기 묻혀 있는 분의 부친이라네"
실크로드의 도시 - 테클리마칸(takelamagan)
타림강을 따라서 둘러싸고 있는 남장에 자리잡고 있는 사막이다. 이 사막에 대한 몇가지 견해가 있다.
a.서역에 현장보다도 2세기먼저 왔던 파시엔은 이 사막을 모래강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을 자기가 이해한 것으로 다른사람들에게 묘사를 하였다.
b.대규모의 유동사막(대당서역기)
c.텍티와 마칸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에슬리 마칸,예르아스티디키 괴헤르지민(땅밑의 보물같은 땅),스르륵마칸(신비로운땅),틸스마트마칸(신기한땅)등의 의미.
d.테키,테키릭(포도,포도원)이라느 의미로 포도의 고향,포도가 나는 땅).
e.테릭마칸(버려진땅).
f.키르셍 치칼마이두(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g.투르크어로 모래바다.
h호텐,키리에등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의로는 체힐마칸(힌디이란어의 크륵마칸)이라는 말로서 쿠차,코르라등지의 사람들도 이러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의 뜻은 없어진땅이라는 의미이다.
i.테케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보는 견해.
j.돌궐어대사전에스는 궁궁궁...거리는 소리에서 나온 테치라는 말이다라는 견해..
k.고대 토하르부족의 이름의 다른 표현으로 타크라 마칸(타클라인들의 땅)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지금도 호텐의 시골에는 토흐라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동네들이 있다. 토하르부족은 원래 돈황주변에 살고 있었다. 서한시대에 서역의 토하르부족은 전쟁으로 인해 이동을 하여서 체르첸등에 정착을 하여서 위진시대에 정권을 세웠다. 이는 토하르국으로 당현장은 기록하고 있다.
실크로드의 도시 - 코를라
코르라라는 이름에도 많은 견해가 있다.
a. 쾨륑라(쾨르-보다 동사의 이인칭복수명령형 보아라!!!)라는 말에서 나왔다. 그러나 신장의 지명중에서 특히 투르크어지명에서는 동사로 지명을 한곳이 한번도 없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약간은 납득이 가지 않은 견해라고 한다.
b. 돌궐어대사전에서는 케울리-코이라 라는 말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강의 입구라른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도시는 이전에 작은 도시로서 위구르이트쿠트시대에 세워진곳이다. 중국어사료들에서는 "쿤 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아마도 위구르어로는 "쾨륵뤼기"라는 것이며 이것은 코르라의 이름이 되었다 라고 한다. 이것의 의미는 아름다운풍경,아름다움곳,수려한곳등의 의미이다. 위에서 말한 강의입구라는 견해도 타당할 수 있는 것은 코를라시에는 퀴체데르야라 흐르고 있다.
c. 몽골이 라마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라마승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다니는 빙빙돌리는 물건이 있는데 이것의 이름이 코르라고 한다. 한 승려가 퀴체강에서 돌리다가 부주의해서 강물에 빠뜨렸는데 이 승려가 "나의 코르"라는 말의 발음이 "코르라"라고 해서 이곳의 이름을 코를라라고 했다는 설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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