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자유의지<2> - 예정과 자유의지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늘나라에서 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 세계를 직접 통치하고 다스리십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두 가지 방법을 쓰십니다.
첫째는 [예정]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피조물에 관해서 절대주권자 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피조물을 통치하시는데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 때 그때 임시응변 적으로 대처하시지 않습니다.
천지 만물의 창조는 물론이고 창조 이후의 통치계획도 미리 다 예정을 해두셨습니다.
이를 하나님의 [예정]이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하나님의 [경윤]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조화 문제가 나옵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경윤에 사람의 [자유의지]가 전혀 개입할 여지가 없는 통치방법이 하나님의 [예정]이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인간들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를 보시고 그 결과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시는 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예정]에 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개입할 수 없는 경우가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제로 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방법을 두었다고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너무 중요시하게 되면 하나님과 사람을 동등시하는 망극한 잘못을 법하게 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계없는 것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주 만물, 일월성신(日月星辰)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까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놓은 자연법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입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십자가의 대속의 도(道)와 세상 종말과 그 때(時)까지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의 생(출생)과 사(사망) 그리고 인간 개개인의 구원에 관한 것은 미리 정하여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역자로 쓰실 분도 미리 예정해 두셨다고 합니다.(롬1:1)
인간에 있어서는 출생과 죽음은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것이지 사람의 자유의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우리의 의사(자유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예정)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도 우리의 의지와 관계가 없이 하나님의 예정에 따를 뿐입니다. 죽고 싶다고 죽을 수가 없고, 더 살고 싶다고 생명이 연장되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생사문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있어서 특이한 한 가지는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예정론]은 [구원론]에 국한시킵니다. 왜냐하면 구원 이외의 예정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인간의 구원은 그 사람의 선행(행위)에 달렸다고 합니다.
이를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구원관, 또는 행위구원론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람이 율법을 행하면 구원 받는 것은 틀림없으나 아담 하와의 범죄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유의지가 심각한 손상을 입어 자유의지로서 율법을 행할 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 구원관의 대 전제입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많은 사람들이 이 기독교의 대 전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직도 죄를 범하기 전 아담 하와에게 주신 자유의지 그대로를 가졌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마태25:31-46절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들어 말하기를
“여기서 천국에 들어가는데 갖추어야할 행함은 ‘결코 어렵고 큰, 최대한의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자들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선한 양심에 따라, 지극히 작은 자에게 지극히 작은 사랑이라도 나누는 것이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한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진 신자라면 최소한의 행위를 통해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포된 반갑고 흐뭇한 메시지(Message)인 것이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행함에 대하여 이처럼 간단명료한 대답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위의 말씀이 ‘행함’에 대한 우리들의 답답함을 얼마나 속 시원히 풀어주는 말씀인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부담스럽고 멀게만 느껴지던 ‘행함’이라는 말이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千金萬金 무겁게 짓누르지는 않을 것이다.
‘행함’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선한 양심’과의 상관관계 속에 있어야하는 신실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큰 행함’이라 할지라도 ‘선한 양심’에 의한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것이며, 반대로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작은 행함’이라 할지라도 ‘선한 양심’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천국에 합당한 ‘행함’이란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율법을 행하면 구원을 받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 사실은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인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이 사실을 부인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담 하와가 죄를 범하기 이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온전한 [자유의지]를 소유하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아담 화와의 범죄로 훼손된 자유의지가 믿음으로 구원 받고 회복 대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신앙 양심을 받았을 때 냉수 한그릇만 대접해도 영화구원(賞)을 받는다는 것이지 행위로 칭의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타락한 인간의 훼손된 자유의지를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습니다.
아담 해와의 범죄로 모든 인류는 [죄와 사망의법]에 사로잡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
자유의지가 손상을 입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려고 해도 할 수 없고, 죄만 짓게 되는 사람을 [곤고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자유의지가 손상을 받아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손상된 자유의지가 치유를 받아야 비로소 원래의 자유의지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이 단계가 바로 구원의 단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을 받은 사람만 완전한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게 됩니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손상을 받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는 사람이 행위로 구원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행위(선행 혹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님은 물론 기독교 이단도 아닙니다.
기독교와는 아무관계도 없는 이방 종교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자유의지를 사용한 지극히 작은 행위가 아니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배제된 하나님의 예정(불가항력적 은혜)으로 주시는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관한 것은 다음 글에서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계속 -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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