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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자유의지<4> - 웨슬레 알미니안

수호천사1 2011. 4. 30. 09:49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자유의지<4> - 웨슬레 알미니안

일부(특히 장로교인 중)에서 웨슬레가 구원론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한다(웨슬레는 결코 구원론에서 자유의지를 주장하지 않는다.)하여 그가 행위 구원론자라고 하는 말은 웨슬레를 올바로 이해 못한 데서 나오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감리교(웨슬리 알미니안)에 대한 오해] 본 게시판 2010. 5. 4. 참조

인간은 태어날 때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와 죄를 짓지 않을 자유 둘 모두 소유한 상태로 태어나며 하나님의 구원을 인간이 자유의지로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음을 거부하면 구원 받지 못한다. 즉 구원은 최종적으로 인간의 결정에 달렸다. 라고 주장하는 자는 웨슬레가 아니고 페라기우스 주의(Pelagianism)자입니다. 펠라기우스 주의는 이단으로 정죄 되었습니다.

1. 자기를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 

웨슬레가 인간의 죄를 심각히 인지한 점에서 그는 종교개혁자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웨슬레에 의하면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을 상실했고, 영적인 생명의 관계를 상실했다. 고 합니다. 

웨슬레는 인간의 죄를 강조하는 면에서 어느 학파 못지않게 강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것이 이방종교와 기독교를 구분하는 첫 근거(the first ground)”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은혜를 받아 영안(grace healed eyes)이 열린 사람에만 알려진 진리요, 구원 받지 못한 자는 알 수 없는 진리로서, 이방인들은 자기의 부패를 깨닫지 못한다.”
고 했습니다. 
이것이 웨슬레 신학 입니다. 
그러기에 웨슬레는 
''''''''''''''''오직 은총 만이요(sola gratia)''''''''''''''''
를 주장하는 정통 신학자입니다. 
즉 장로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2.  웨슬레는 그 당시의 칼빈주의 자들과 어떻게 다른가? 

웨슬레는 그의 동역 자들의 그와 같은 질문에 답하면서, 죄를 강조하는 면에서는 칼빈주의의 끝에 (very edge of Calvinism)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은총을 어떻게 역사 하시느냐(how to operate)에서 머리칼 하나의 차이(a hair''''''''''''''''s breadth difference)가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웨슬레가 개진한 은총관의 특징과 그 선교학적 공헌을 발견하게 됩니다. 

3. 선행하는 하나님의 은총 

그러면 웨슬레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를 어떻게 보았는가? 
“하나님의 온전한 가르침(the whole council of God)”
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과의 관련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이런 출발점에서 웨슬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값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듣는 자의 호응(회개와 믿음)을 호소하곤 하였습니다. 
웨슬레의 인간론은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어서 언급되어야 되는 실존적인 상황(existential reference)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해서 웨슬레는 인간의 죄 문제를 구속론적 구조(soteriological setting)에서 본 것입니다. 

웨슬레에 의하면 인간은 이미 은혜의 상태, 즉 선행적 은총의 역사아래 있다. 타락한 인간은 이미 은혜의 계약(a covenant of grace)아래 살고 있다. 웨슬레에 의하면 인간은 
"선행적 은총에 의해서 이미 원죄의 죄책이 제거되었다."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원죄의 죄책은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제거되었으며, 모든 사람에게는 초자연적으로 약간의 선행적 은총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웨슬레가 말하는 인간의 복음에 대한 호응(곧 선행적 은총)은 완전히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아래서 이해된 것입니다. 

웨슬레가 인간의 책임을 말하는 근거가 결코 펠라기우스 주의Pelagianism)적인 인본주의적인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서, 곧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에 기인한 것이다. 

웨슬레에 의하면, 이 은총은 선행적일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은총관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전하는 전도로 연결된다. 
또한 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책임을 올바르게 찾게 해준다. 
즉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에 근거하여 낙관적인 소망을 갖는 동시에 교회가 선교하여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잇다. 
-웨슬레 신학의 핵심 중에서 발취-

위의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점을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사람은 아담 하와의 범죄로 모두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류는 멸망(사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의 대속의 죽음으로, 이를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이 어떻게 믿느냐? 는 문제가 구원론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면 모든 인류는 죄 값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처형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도”
를 믿으면 무죄 석방이 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1)펠라기우스 - 이 사실을 믿고 감옥 문을 나가면 석방(구원)이 되고, 믿지 않고 감옥을 나가지 않으면 사형을 받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구원 받고 못 받고는 결과적으로 사람의 자유 의지에 달렸다고 합니다.
이를 인본주의 신앙이라 하여 기독교에서는 이단입니다.

2)칼빈 - 십자가의 구속의 도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믿게 되고 사람의 의사에는 관계없이 감옥에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가지 않겠다고(정신 이상자가 아니면 그런 사람은 없음)하여도 간수가 쫓아내게 됩니다. 
이때 구원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예정)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따라서 신본주의 신앙이고 이를 예정론이라고 합니다.

3)웨슬레 - 십자가의 복음은 어떤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니고 믿는 자만 구원을 받는데,
사람은 태어날 때 누구나 [선행적 은총]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선행적 은총은 자유의지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자유의지”는 믿을 수도 있고, 이를 거부 할 수도 있는 선택권이 사람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선행적 은총”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는 개념이 아니고, 복음을 알아듣는 능력을 말합니다.
따라서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석방의 기쁜 소식은 선포 되었는데 이를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기(전도)만 하면 누구나 이를 알아듣게 되고(선행적 은총이 있기 때문에) 모두 감옥 문을 나가서 자유(구원)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펠라기우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이를 믿고 감옥에서 나올 수도 있고 이를 믿지 않고 감옥에 머물러 있다가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웨슬레는 기쁜 소식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선행적 은총)이 있어 이 소식을 믿고 감옥 문을 나와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펠라기우스와 다른 것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도 감옥 문을 나가기를 싫어하면 간수들이 강제로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웨슬레의 구원론은 인본주의가 아니고 신본주의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전도하기만하면 누구나 다 믿고 구원받는 다고 하는데 실제 전도를 해보니 아무리 알아듣게 설명을 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웨슬레가 말한 것 처름 칼빈의 구원론과 웨슬레의 구원론은 “머리칼 하나의 차이(a hair''''''''''''''''s breadth difference)”가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구원 받는데 자유의지로 믿어서 받는다는 주장은 웨슬레 알미니안(감리교) 아닙니다. 
[선행적 은총]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는 개념이 아니고, 복음을 알아듣는 능력을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개신교(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교회......)는 
 1)오직 믿음,  2) 오직 은총,  3) 오직 성경 
의 종교 개혁의 삼대강령에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중 한 항목만 동의하지 않아도 이단입니다.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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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예종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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