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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자유의지<1> - 예정과 섭리

수호천사1 2011. 4. 30. 09:48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자유의지<1> - 예정과 섭리

하나님의 뜻은 한번 정해지면 그 어떤 것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반드시 이루시게 됩니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9:17-21)

여기에 인간의 의지나 행위는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인간이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왔나니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오바다1:15)
"나더러 주여 ! 주여 !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여기에는 인간이 자기 의사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됩니다.

앞의 성구는 예정론의 근거가 되고, 뒤의 성구는 행위 구원론의 건거가 됩니다.
한 성경에서 정 반대가 되는 성구가 공존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게시판에서도, 예정론과 행위 구원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신학 지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2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칼빈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뜻은 [예정]과 [섭리]의 두 기둥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칼빈하면 [예정론]만 알고, [섭리론]을 모릅니다.
여기서 칼빈 신학에 대한 오해가 나옵니다.
칼빈의 [예정론]만 알고 [섭리론]을 모르면 칼빈 신학은 운명론으로 오해를 하게 됩니다.
반면 [예정론]을 부인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면, 인본주의 행위 구원론이 되고 맙니다.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창세(創世)전에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영원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존재도 이를 변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뜻이 창세전에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에는 우주의 창조와  그리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십자가의 대속의 도와 인간의 생(출생)과 사(사망) 그리고 인간 개개인의 구원에 관한 것은 미리 정하여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역자로 쓰실 분도 미리 예정해 두셨다고 합니다.(롬1:1)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출생과 죽음, 구원에 관한 것 외에 모든 것은 미리 정해 놓은 것 아닙니다. 그 외의 모든 인간의 생활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에 의하여 결정이 됩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결정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미리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미리 인간에게 알려주고(율법) 인간이 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행하느냐에 따라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강의 물고기를 예를 들면 물고기에 있어 강의 흐름과 방향, 강의 크기, 굴곡 등은 물고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해진 강에서 물고기는 자유 합니다.
강의 깊은 곳을 헤엄칠 수도 있고, 강기슭 수초에서 살수도 있고, 물결 따라 강 하류로 흘려갈 수도 있고, 물살을 거슬려 강 상류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물결 따라 흘러 가다가 보면 폭포를 만나 천길 낭떠러지에 곤두박질 칠 수도 있고, 바닷물을 만나게 되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강기슭 수초 사이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를 수도 있고, 강 깊은 곳에 나아가 힘차게 헤엄치면서 작은 고기를 잡아먹고 대어(大魚)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더 큰 고기를 만나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물고기는 이미 정해진(예정) 강에 살면서도 그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생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물고기에 있어서는 강은 물고기의 의지와 행위에 관계없이 이미 정해진(예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살고 있는 강안에서 물고기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자유의지)에 따라 그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 계속 -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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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예종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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