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

[스크랩] 구원과 자유의지(1)- 구조, 구명, 구원

수호천사1 2011. 4. 30. 09:47
구원과 자유의지 <1> - 구조, 구명, 구원

신학적 논의를 하려면 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계념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신학용어를 모르고 사전적 의미만 아는 사람이 신학적 토론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우리 게시판에는 아직도 구원론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원론에 가장 핵심적인 두 용어 [구원]과 [자유의지] 두 용어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먼저 [구원]의 용어를 설명하고 다음 [자유의지]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원]이라는 용어가 이와 비슷한 용어와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여 구원의 계념을 화실하게 하고자 합니다.

[도움]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도움을 받아드린다면 그 사람은 문제를 쉽게 풀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도움을 거절하고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인생행로에 보다 더 유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도움은 받아드릴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구조(救助)] 지금 일본 열도는 스나미로 인하여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갗이여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력으로는 살아날 수가 없고, 구조대가 와서 구해주어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구조대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하게 되었는데 구조를 거절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인간은 자유를 가지고 있으니 구조를 거절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정신이 정상적인 사람이면 이 은혜를 감사히 받아드리지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구명(救命)] 등산하다가 조난당한 사람,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사람은 구조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사람을 건져내어 인공호흡으로 살려내는 것은 구명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구명대(救命帶), 구명조끼 구명보트, 해양 구명대원 이라고 합니다.
물에 빠져 의식을 잃고 호흡이 멈춘 사람을 건져서 인공호흡을 해서 살리는데  물에 빠진 사람은 이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식이 없을 뿐 아니라 호흡까지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해양 구명대원의 은혜에 달렸습니다.
이 때 인공호흡을 시켜서 숨을 쉬게 해야 합니다. 숨을 쉬어야 살아납니다. 호흡은 본인이 해야 살아나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 때 호흡은 자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인공호흡을 하는 사람에 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살아난 사람이 인공호흡으로 내가 살아난 것은 틀림없지만 내가 만일 호흡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인공호흡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감정을 해봐야 갰지요.  이 사람이 살아난 것은 100% 구명한 사람의 은혜이지 본인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때 인공호흡으로 호흡은 하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면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식물인간입니다.

[소생(蘇生)] 심장은 뛰자만 호흡을 멈춘 사람을 살리는 것을 구명이라고 한다면
호흡과 심장이 다 멈춘 사람을 심폐소생술(心肺蘇生術)로 살리는 것을 소생이라 합니다.
구명의 경우와 같이 본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전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시술하는 의사의 손길에 달렸습니다.
이렇게 소생해도 아무런 움직임이나 의식이 없다면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과 같은 식물인간입니다.
움직임으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소생 후에 움직임이 없으면 식물인간입니다.

[부활(復活)] 이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지 오래된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말 합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이 때 무덤에 있는 사람이 그(하나님의 아들 요5:25)의 음성을 들으면 부활하게 됩니다.
여기서 무덤에 있는 사람이 그의 음성을 들으면 부활하고, 그 음성을 듣지 아니하면 부활을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부활은 주님의 음성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 음성을 듣고 안 듣는 것은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부활 하고 아니하는 것은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음성을 듣고 안 듣고는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의 자유가 아니고 성령께서 듣게 해주시니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인 은총(恩寵)입니다.

[구원(救援)] 이상 여러 가지 경우는 사람의 몸을 살리는 경우입니다.
죽었든 영을 살리는 것(웹2:1)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호흡이 멈춘 사람에게 인공호흡을 해서 호흡을 하게 하듯이 영이 죽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게 함으로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이 때 믿고 혹은 믿지 않는 자유는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이는 불가항력적인 은총입니다.
어떤 이는 구명, 소생, 부활의 경우는 의식이 없지만 구원의 경우는 인간 의식이 있고 의식이 있는 한 믿고, 안 믿고는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고 하겠지만 이 문제는 다음 글 [자유, 자유권, 자유의지]에서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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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예종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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