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교회의 "서진선교" 역사
중국교회 안에서 "서진선교" 혹은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이하 영어 표기의 약자인 BTJ로 표기함)의 최초의 역사는, 1920년대 초대교회 삶의 방식을 따라 모든 것을 공동 소유하며 복음을 전파했던 “예수 가족”모임에서 그 출발을 찾을 수 있다. 예수 가족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걸인과 각종 장애인들을 품었으며, 궁극적으로는 예루살렘까지 나아가며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비전을 품었다.
그리고 중국 교회 안에서 BTJ운동이 구체적으로 일어난 것은 1940년을 기점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두 사람을 불러 두 개의 단체가 형성되도록 하셨다. 곧 서북영적군대”(“서북영공단”으로 더 잘 알려짐)를 결성한 장 형제와, 후에 “편전 복음단”(복음을 땅 끝까지 편만하게 전한다는 의미에서)으로 불린 “복음의 군대”를 결성한 마 목사이다. 이들은 걸어서 혹은 나귀(낙타)를 타고 신강위구르자치구와 서장장족자치구(티베트)를 거쳐 중국 국경을 넘어 중앙아시아에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어섰다.
서북영공단을 결성한 장 형제는 1956년에 소천 하였으며, 메카 차오와 같은 분들이 2,000년대까지 살아서 이 비전을 품고 신강위구르자치구에서 예루살렘까지 서진 선교의 길이 열리기를 위해 기도하였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육신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 섰으나 이들 중에 아직 살아서 기도하고 있는 분들이 중국 서북 끝자락 “카스(카쉬가르)”와 서진선교의 출발지라 할 수 있는 섬서성 "봉상" 지역에 살고 있다. 이상의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에 BTJ는 처음에는 한두 사람에 의해 시작되어졌으나 곧바로 그 불길이 중국교회 안에 넓게 퍼지게 되면서 오랫동안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해서 일어난 선교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오늘날 세계 교회에 가장 많이 알려졌고, 아직도 그 생존자가 살아서 생생한 간증을 들려주고 있는 “편전복음단”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살아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이며, 현대 중국인들에게 서쪽의 시작으로 인식되어지는 섬서성(Shan Xi Sheng) 서안(Xi 'An)과 그 주변 도시들은 서진선교를 이야기 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이다. 특별히 중국 교회 서진 선교의 뿌리는 현재 서안에서 기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섬서 성의 두 번째 도시 보계(Bao Ji)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봉상 현”(Peng Shang Xian))에 세워져 있던 “서북성경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이 기도 중에 서진 선교의 비전을 받고 일어난 선교 운동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특히 1942년을 기점으로 서북 성경학교의 젊은 학생들은 서진 선교의 비전을 품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헌신하여 복음을 들고 걸어서 마을마다 전도하며 서쪽으로 나아갔다. 이 운동은 중국에 공산 혁명이 성공한 1949년까지 약 6-7년 동안 많은 중국교회를 새롭게 했으며, 많은 성도들, 특히 신학생들이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했던 것이다.
서북성경학교는 중국내지선교회(OMF의 전신)의 허드슨 테일러의 손자인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 3세”가 교장으로 활동한 신학교였다. 당시 이 학교의 부 교장은 서진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잘 알려진 하남성 출신의 ‘마 마가’였다. 1943년 당시 신학교의 부 원장이던 마 마가 목사와 몇몇 사람들은 기도 중에 그들의 전도 범위를 이슬람교도들과 불교도 그리고 중국 서북 지역까지 확장하고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이슬람 세계를 지나 예루살렘까지 이르게 하자는 비전을 보게 된다. 그들이 편전복음단(遍傳福音團)을 만들어 중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신강위구르자치구위구르자치구, 내몽고자치구, 서장장족자치구, 사천성 지방과 아프카니스탄, 이란, 이라크 등 아시아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복음은 전하는 사역을 계획하면서 BTJ운동은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 운동은 1947년에 초기 헌신자 7명을 감숙성 란주를 거쳐 신강위구르자치구위구르자치구 지역으로 파송하게 된다. 이렇게 파송을 받은 이들이 호탄을 거쳐 카스(카쉬가르) 지역까지 이동하여 국경을 통과하여 중앙아시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중국의 정치변화로 인해(1949년 공산당의 집권) 그들은 신강위구르자치구의 국경을 넘지 못하고 타클라마칸사막 한 가운데서 다시 청해 성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렇게 돌아온 무리에는 세계 교회에 알려진 “메카 차오”와 “하은정”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돌아온 청해성 지역은 성도인 ‘서녕’(Xi Ning)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황원'(Huang yuan)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곳에는 1919년에 세워진 교회가 있어서 동일한 서진선교의 비전을 품고 사역을 잘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나라의 안정과 서진 선교의 길이 열리기를 위해 기도하며 이 지역 일대의 장족(티베트인)들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지금도 '황원' 지역에는 당시의 교회가 유지되고 있다. 아쉬운 점은 문화 혁명기를 거치면서 이 교회가 삼자에 등록이 되었고, 지도자의 공산주의에 대한 타협으로 인해 초창기의 뜨거운 신앙의 열정은 다 사라지고 타성과 형식에 젖은 소수의 성도들만 남아 있다는 점이다.
1949년 총칭(Chong Qing)에 거주하던 한 중국인 여 선교사는 중국을 지나 서쪽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희망하던 중국 기독교 단체들을 최소 5개 정도 알고 있다고 선교 보고서에서 밝혔다.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주었던 것은 이상하게도 뭐라 설명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중국 기독교 단체들이 다급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들은 전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 동부에 있는 자신들의 집을 떠나 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서쪽으로 먼 길을 떠났다.” 그들 모두는 기독교가 중국을 지나 서쪽으로 전파되기 위한 전조로 중국 서북 지역에 복음이 급하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을 개별적으로 느꼈다.
1949년 완전히 중국을 정복하고 집권하기 시작한 공산당은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이리하여 서진선교의 꿈을 품고 길을 떠났던 사역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되고 많은 이들이 공산당에 의해 고난을 받고 갇힘을 당하였으며, 심지어 감옥 안에서 순교의 제물로 희생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은 공산당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서진선교의 비전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1949년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후에 시작된 중국 정부의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금방 끝나기를 원했으나 핍박의 기간도 문화혁명이라는 무시무시한 고통의 시기를 포함하여 수 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긴 시간 지속된 핍박으로 인해 ‘마 마가’ ‘메카 차오’ ‘하은정’과 같은 초기 서진 선교사들은 지하교회에서 은밀하게 사역을 해야 했다. 마치 BTJ의 비전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점차 잊어지는 듯 했다. 눈에 보이던 모든 성과들은 사라졌다. “예루살렘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리라”외치며 간절히 기도하던 헌신된 사람들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BTJ 팀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정말 하나님께서 수 십 년 동안에 이 비전을 허락하신 것인지에 대해서 회의조차 일어나는 듯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은 초창기 중국 서진 선교사들의 순수한 마음과 헌신을 알고 있었으며, 이들의 가슴 속에 담겨진 영혼을 향한 사랑을 잊지 않으셨다. BTJ 비전은 비록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있었지만 싹을 틔울 적절한 시간을 기다린 것이지 결코 썩어 없어지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땅 속에 숨어 있던 생명이 다시 싹을 틔우듯 BTJ 비전은 반세기만에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방법인 고난을 통해서 중국교회를 준비시키시고 때가 차 매 다시 서진선교의 비전으로 불러 세우신 것이다. 곧 이렇게 공산당에 의해 갑작스럽게 모든 복음 전파의 문이 닫힌 지난 50년간 중국교회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공산 혁명 당시 70-80만 명이었던 기독교인들이 지금은 8천만에서 많게는 1억 명에 이르게 되었고, 무엇보다 50년 동안 가슴에 간직해 온 서진선교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다시 일어나게 된 것이다. 특별히 1980년대에 하남성(河南省) 지방에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고, 이 지역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BTJ의 비전을 품고 카스(카쉬가르)에서 사역하다가 31년 동안 투옥된 후 풀려난 "시몬 차오"목사를 하남성 지방으로 초대해 그의 간증을 들음으로 인해 BTJ운동 비전이 다시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얼마나 많은 중국 한족 기독교인들이 중국 서북 지역으로 이주하였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지난 2004년과 2005년에 실크로드를 답사하는 중에 직접 목격한 사실은 동쪽의 가정교회에서 보냄을 받은 많은 중국인 선교사들이 서쪽의 끝 신강위구르자치구의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는 작은 규모의 가정교회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중국 가정교회와 성도들은 중국 서북 지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변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분연히 선교를 위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비단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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