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예루살렘의 시작과 흐름, 그리고 세계교회 연대
김성찬 선교사
들어가는 말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 것인가는 아무도 모르고 성부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때는 노아의 때와 같이 갑자기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마24:36-37). 그러나 우리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듯이 마지막 때에는 곳곳에 재난이 있을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난 12월 동남아시아의 지진과 해일은 사상 유래 없이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또한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지구촌 곳곳에 이상기후로 재난을 겪고 있으며,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계속해서 녹으면서 지구의 재앙을 예측하고 있다. 지구 자연환경의 변화, 그로인한 세계 곳곳에서의 자연재난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전쟁을 보면 인류는 분명 마지막 시대를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아니다. 아직도 세계에 6,000여개의 미전도종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대에 주님 다시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는 세계교회의 마지막 선교운동인 백투예루살렘을 통해 남아있는 6,000여개의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시대의 선교운동인 백투예루살렘의 시작과 흐름은 어떻게 되었고, 그리고 세계교회는 어떻게 연대해야 되며, 한국교회가 백투예루살렘에 동참하여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며 그리고 프론티어에서 백투예루살렘에 동참하여 어떤 전략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먼저, 본 글에서는 백투예루살렘 운동은 언제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백투예루살렘의 시작
백투예루살렘은 1920년대 중국의 예수가정(Jesus Family)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예수가정 배경의 교회들은 1926년 산동(山東)지역에서 60여명으로 시작됐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삶의 방식을 따라 모든 것을 공동 소유했다. 마을마다 다니며 복음을 전하자 주민들은 돌과 썩은 과일과 야채를 던지며 야유했다. 하지만 예수가정은 걸인 시각장애인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끌어안고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할 것을 다짐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까지 중국 전역 127곳에서 사역했다. 하지만 공산화 후 핍박이 거세지면서 지도자들은 공산당에 의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곳곳의 공동체가 해산되면서 그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백투예루살렘의 비전도 약해져 갔다.
한편, 같은 산동(山東)지역을 중심으로 장구췐(張谷泉) 목사에 의해 설립된 서북영공단(西北靈工團)에서도 1940년대에 서쪽으로 더 나아가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신장(新疆)지역으로 전도자들이 가게 되었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중국의 국경이 닫히고,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면서 신장에 갔던 전도자들이 체포되면서 서북영공단의 백투예루살렘 사역은 중단되어야 했다.
또한, 1940년대에 중국내지선교회(CIM)에 의해 설립된 샨시성(陝西省)의 서북성경학교에서 공부하던 소수의 그리스도인 모임에서도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이들은 수년 동안 중국의 서북지역에서 구제활동과 무슬림과 불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면서, 중국 국경선을 넘어 예루살렘까지 이슬람국가, 불교국가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을 받게 되었다. 1943년 부활절날 아침기도 시간에 서북성경학교의 안마당에는 큰 중국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그 주위로 학생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주의 사명을 받은 자들은 주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서라. 그리고 그곳으로 떠나라”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8명의 학생들은 조용히 안마당을 가로질러 지도위로 걸어와 중국 지도의 서북쪽에 있는 신장성(新疆省)위에 서 있었다. 이들은 이것을 위해 계속 기도하면서 마태복음 24:14절 말씀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는 중국교회가 신장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복음전하는 일을 수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복음에 가장 완악한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단체 이름을 ‘어느 곳이든 복음을 전하는 단체’ 라는 뜻으로 편전복음단(遍傳福音團) 이라고 결정하고, 전도자들을 중국의 신장성에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중국교회에 백투예루살렘의 불을 붙인 시몬짜오(趙)의 일행도 1940년대 션양(沈陽)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관심이 신장에 집중되신다는 것을 깨닫고 형제들과 함께 신장에 가게 되었고, 신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2년 전에 온 서북성경학교 그룹과 합류하면서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1920~40년대에 중국의 여러 가정교회 가운데 동일한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그 비전에 순종케 하고, 시작하게 하신 분은 바로 성령하나님이시다.
2. 백투예루살렘과 회복된 비전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되면서 신장에서 복음을 전하던 편전복음단과 시몬짜오의 일행은 복음이 반혁명적이라는 이유로 1950년 체포되어 공산혁명 군인들에게 인계되어 감옥에 투옥되었다. 백투예루살렘 그룹의 각 멤버들은 각각 다른 기간의 형을 판결 받았고, 그중에 다섯 명의 지도자들은 매우 혹독한 판결을 받았으며 그 중 시몬짜오 만이 사형을 면한 유일한 지도자였다. 사형을 면한 시몬짜오는 강제 노동수용소, 탄광수용소 등에서 지내면서 31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문화혁명을 거치는 시기인 195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중국교회는 어두운 비전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1981년 시몬짜오는 31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60세가 넘은 노인이 되어서 출옥하게 되었다. 출옥한 그는 젊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백투예루살렘 비전에 순종하기 위해 중국의 가장 서쪽 변경도시인 신장의 카쉬카르(喀什)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의 간증을 들은 그리스도인들은 큰 도전을 받았고, 그의 간증은 중국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이 간증을 접해들은 중국 내지의 가정교회들은 이 살아있는 백투예루살렘의 증인을 초청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시몬짜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내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중국의 가장 서쪽에 있는데 왜 예루살렘으로부터 먼 곳인 동쪽으로 가야합니까, 나는 중국의 서쪽 변경인 이곳에서 죽기를 원하며, 나는 나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거절했다. 고난 가운데 부흥된 중국가정교회에 비전이 필요하며, 그 비전에 불을 붙일 사람은 바로 시몬짜오 당신이라는 말에 그는 기도하던 중에 이사야 54장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 찌어다… 네 자손이 열방을 얻으며”라는 말씀에 감격하며 90년대부터 그의 간증은 시작되었고, 중국가정교회 가운데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은 다시금 불타오르게 되었다. 시몬짜오의 31년 동안 감옥생활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으며, 마지막 시대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비전인 백투예루살렘을 품고 잉태하는 시기였으며 중국교회를 준비시키는 시기였던 것이다.
70~80년대에 중국교회가 부흥될 것을 미리 아시고 40년대에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을 중국교회에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중국교회의 선교부흥을 위해 90년대에 다시금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에 불을 지핀 분도 바로 성령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백투예루살렘과 세계교회의 연대
1920~40년대에 중국가정교회 가운데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을 주시고 시작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의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은 사도행전 16장에 사도바울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서쪽인 유럽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때 이후부터 복음의 통로가 서쪽으로 열려서, 복음이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한국과 중국으로 건너왔으며, 현재 성령의 불길은 중국대륙을 휩쓸고 있으며 이 불길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이 갑자기 중국교회 가운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계선교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하나님의 비전이 마지막 시대에 세계선교에 가장 큰 동력이 될 중국교회를 통해서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한국교회도 80년대 성령의 불길을 타고 영적부흥을 경험하며 세계복음화대회를 할 때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마지막 세기의 마지막 주자로 복음의 횃불을 들고 복음의 서진을 하자라고 외쳤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교회 가운데서도 복음의 서진 즉 백투예루살렘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세계교회는 1989년 로잔대회 후로 세계선교를 미전도종족 선교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을 전략화 시킨 것이 10/40창 선교운동이다. 이 세계선교 운동을 더 구체적이고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로 백투예루살렘 운동이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은 10/40창의 영적인 대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실크로드와 10/40창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분포되어 있는 미전도종족을 복음화하고, 또한 세계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알타이창(북위 35/70도)에 있는 초원로를 따라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며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자라고 하기 때문에 세계선교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는 마지막 시대에 세계교회의 선교운동이다.
1989년 로잔 2차 대회 때 세계에 미전도종족이 11,000개가 남아있다는 보고를 들었고, 그 후 2001년도에는 8,000여개로 감소하고, 로잔 3차 대회가 열린 2004년도 결과는 6,000여개로 보고 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산술적으로 생각할 때 적어도 2020년 내에 세계에 미전도종족이 사라질 수 있다고 계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미전도종족의 대부분은 복음을 강력히 거부하고, 세계의 선교환경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계산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에 세계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백투예루살렘 운동으로 함께 일어나서 연대해야 한다. 중국교회 가운데 100만명의 거룩한 시님의 군대가 일어나고, 한국교회 가운데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일본교회에서도 함께 일어나며, 서구교회들, 인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남미와 아프리카 등 세계 모든 교회가 6,000여개의 미전도종족과 예루살렘을 향해 함께 일어나 연대할 때 백투예루살렘은 우리 세대 가운데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말
백투예루살렘은 마지막 시대에 세계선교의 동력이 될 중국교회 가운데 부어주신 비전이며, 이사야서 49장 11-12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마지막 때에 중국교회에서 시님의 영적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해 일어날 것을 예언한 말씀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마지막 시대의 선교운동이다.
또한 백투예루살렘은 세계선교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복음의 서진을 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세계교회의 선교에 마지막 때에 선교의 불을 지피는 세계교회의 선교운동이 될 것이다. 이 백투예루살렘에 세계교회가 북방과 서방, 원방에서 함께 일어나 프론티어와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갈 때 주님 다시 오시는 대로가 열리고 우리 세대 안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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