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중국을 향하여
선교 200주년을 지난 중국기독교는 중국복음화를 중점으로 하는 ‘중국선교’에서 세계선교를 주도하는 ‘선교중국’으로 우뚝 서게 될 꿈에 설레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선교중국’의 꿈이 가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선교중국의 꿈이 현실이 되려면 중국기독교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할 것이다. 중국기독교가 여기까지 온 것도 에벤에셀의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기대어 선교중국의 꿈이 현실이 되고 마지막 시대 지상명령의 성취가 중국교회의 헌신에 의해 이루어질 그 날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기독교 200주년은 1949년 신중국 수립을 기준하여 과거와 현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과거의 중국기독교가 복음이 중국에 전파되어 자리를 잡은 시대라면 그 이후는 복음이 중국에 현장화 되어온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중국기독교는 내실을 다지며 세계로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중국기독교는 하나님이 세계복음화의 완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비장의 그릇이다. 기독교의 주역이던 서구 기독교가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상실하고 쇠퇴의 길을 걷고 있을 때 하나님은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수행할 중국기독교를 준비하셨다. 세계복음화라는 관점에서 중국기독교를 보아야 바르게 보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200주년을 맞이하는 중국기독교가 지나온 역사를 반추해보고 세계선교의 완성을 위해 헌신하는 선교중국의 비전을 새롭게 조망해 보려고 한다.
200주년 중국기독교를 돌아보며
중국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시도는 기독교의 선교시작 이전에도 경교와 천주교의 선교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번번이 실패하였을 뿐이었다.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시다가 1807년 런던선교회 소속 로버트 모리슨이 마카오에 도착하여 선교를 시작함으로 중국에 복음의 문을 여셨다. 아시아로 가려고 무진 애쓰던 바울사도에게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여주셔서 유럽으로 복음의 방향을 틀게 하신 것은 세계복음화를 성취할 마지막 시대 마지막 주자인 중국기독교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섭리였다. 만약 바울이 아시아로 갔더라면 아시아, 특히 인도와 중국에서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으신 하나님이 중국기독교를 인도하신다. 과거에도 중국기독교를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선교중국에 헌신할 중국기독교를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여건을 활용해서 중국기독교를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중국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되기를 기다리셨고, 그러한 여건을 조성하셨다. 중국에서 복음의 전파는 정치, 사회적인 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의 정치적 상황이 기독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그동안 중국기독교를 위해 정치적 여건을 조성하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청나라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멸망이 중국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데 기여를 하였고, 중국지식인들의 반기독교운동이 복음의 중국 현장화에 계기를 마련하게 하였으며, 의화단의 난으로 선교사와 중국기독교인들이 다수 살해당함으로 중국기독교가 뿌리내리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신중국의 수립은 중국기독교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게 하였고, 중국특색의 중국교회가 세워지게 하였으며 초대교회 때 보여주셨던 교회의 원형을 회복하게 하셨다.
중국기독교 역사에서 최후의 승자는 언제나 하나님이셨다. 중국공산당은 기독교를 박멸하려하였지만 신중국 수립당시 70만 명이던 기독교인이 선교사가 없던 시대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가정교회가 세워져 왕성하게 일어나 이제는 대략 8,000만 명이 넘는 경이적인 기독교의 부흥을 가져왔다. 중국정부는 삼자교회를 세워 중국기독교를 변질시키려 하였지만 그 가운데 오바댜와 같은 복음적인 교역자들과 신도들로 말미암아 신앙개조운동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 중국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떠한 시도도 결국에는 무산되고 선교중국으로 세계복음화를 완성하시려는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선교사들의 헌신도 중국기독교가 우뚝 서는데 기여하였음이 평가되어야 한다. 허드슨 테일러를 비롯한 수천 명의 서구선교사들과 방효원 목사님 부자 등 몇 분의 한국선교사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 헌신함으로 복음의 불모지였던 중국에 신중국 수립 때 70만 성도의 교회로 세워지게 되었다. 선교사들의 허물과 과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공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교회 개척과 지도자 양육은 물론 문서선교, 의료선교, 교육선교 등 다양한 사역은 오늘날 중국기독교가 우뚝 서게 되는 데 거름이 되었다. 하나님은 선교사들의 헌신이 없이도 중국선교를 이루어가셨지만 또한 역시 선교사들의 헌신을 받으시고 사용하시기도 하셨던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선교사들의 헌신이 중국교회가 재건되고 세워지는 데 일익을 감당하였다. 앞으로도 하나님은 선교사들의 헌신을 받으시고 선교중국의 길을 열어 가실 것이다.
찡쭌잉(敬尊瀛), 워치만 니(倪柝聲), 쑹상제(宋尙節), 왕밍따오(王明道) 등 기라성 같은 중국인 교회지도자들의 헌신과 지도력도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개혁개방 이전 가정교회 지도자들의 목숨을 담보한 헌신이 오늘날 중국기독교의 융성에 크게 기여하였음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방법과 돈을 찾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찾으신다. 선교중국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도 역시 헌신된 중국기독교인들이다.
200주년 중국기독교에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도 있었다. 선교사가 중국선교를 주도함으로 중국에 해외 교회들의 교파가 이식되었고, 중국교회가 중국선교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주변 세력이 되었다. 기독교가 서구교회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중국인들에게 서구종교라는 의식을 심어주었으며 반기독교운동이 일어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국교회가 하나되는 것을 저해하였으며 자립, 자치, 자양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여 중국교회 사역자들로 하여금 주의 종이 되기보다 선교사들의 고용인으로 전락하게 하였다.
오랫동안 중국선교가 시도되었음에도 만족할 만한 열매를 맺지 못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동기의 불순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동기가 바르지 않고는 아무리 유능한 선교사를 파송하고, 탁월한 선교전략과 방법론이 있어도 중국선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제국주의적 선교동기는 중국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개혁개방 이후에도 중국에 교파의 이식 등 식민주의적 선교동기가 작용하고 있다. 중국선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불순한 선교동기는 과감히 버리고, 바른 선교동기를 가져야 한다.
오늘날 중국에서 선교사들 특히 한국선교사들이 중국교회의 친구가 되지 못하고 뒤에서 욕을 먹는 현상이 목도되고 있다. 올해 어떤 중국인 사역자들의 모임에서 20여 명의 사역자들 중에 한 사람도 한국선교사를 칭찬하지 않고 지탄하더라는 소식은 참담한 심정을 갖게 한다. 중국인 사역자들이 지적하는 요점은 한국인 선교사들이 중국인 사역자들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며 부당한 간섭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교회가 원하는 것은 해외 교회들이 중국교회가 중국선교, 즉 중국을 복음화하고, 성경적이고 중국적인 교회를 건립하며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것을 지켜 봐주며 기도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교회가 요청하는 것을 잘 살펴서 지혜롭게 채워줄 것을 원한다. 설사 중국교회가 부족한 면이 있을지라도 간섭하려고 하지 말고 중국교회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럼에도 선교사들이 중국교회를 주도하려고 한다면 비참하게 내침을 당하게 될 것이다.
선교중국의 꿈이 성취되는 시대를 기대하며…
선교중국은 중국선교에서 거역하기 어려운 새로운 트랜드가 되었다. 가정교회 중에 선교중국의 비전을 갖고 준비하며 시도하는 교회들이 중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삼자교회 중에도 미미하나마 선교중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래서 선교사들이나 중국교회에서 선교중국은 낯선 단어가 아니라 중국기독교가 추구해야 할 화두로 부상하였다. 문제는 어떻게 선교중국의 길을 갈 것인가이다. 선교중국은 중국교회가 해외선교에 주도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복음화의 완수를 도모하는 것은 물론 주변 나라들과 나아가 예루살렘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라이프로드로 바꾸고, 미전도된 지역 족속들을 복음화하는 과업에 헌신하는 것이다.
선교중국의 꿈과 현실은 아직 괴리가 있다. 중국기독교에서 선교중국의 현실은 1970년도 한국교회와 같은 정도의 해외 선교가 시도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75년도 신학교에 다닐 때 고 정성균 선교사가 방글라데시에 파송된 것은 파란을 일으키는 쾌거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교회 전체로 선교사로 파송한 것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중국교회는 지금 선교중국을 꿈꿀 뿐 아니라 준비하고 있고 실제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하고 있다. 실크로드 주변의 회교국가들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하였고,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같은 곳에서도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주변 국가로 비전트립을 다녀오기도 하고 정탐을 하는 등 선교의 꿈을 안고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것은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80-90년대를 지나면서 선교사를 본격적으로 파송하고 이제는 1만 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처럼 중국교회도 시간이 지나면서 여건이 형성 되는대로 엄청난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할 날이 반드시 오리라 예상된다.
선교중국시대가 시간이 간다고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은 아니다. 선교중국이 실현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장애들을 넘어야 할 것이다.
1) 세속화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세속화는 공산당의 핍박보다 무서운 중국기독교의 강적이다. 과거의 중국기독교는 세속화를 넘지 못하였다. 세속화를 넘지 못하면 세속화된 세상을 복음화 할 수 없다. 중국기독교가 세속화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지도자들의 의식과 설교에서 소유지향의 삶에서 존재지향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기독교의 가치관이 주님이 가르치시는 교훈의 핵심인 존재지향으로 바뀌어 가게 될 때 중국기독교는 그 풍성한 간증으로 세계기독교를 섬기게 될 것이다.
2) 느슨해진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현재의 영성은 세속화와의 싸움도 감당하기 힘들다. 새롭게 변한 환경에서 생명을 누리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중국기독교인들의 심령에 부흥이 임하여야 할 것이다.
3) 선교중국을 이끌어갈 지도력이 세워져야 한다.
선교중국은 새로운 지도력을 요구한다. 전임사역자의 문제도 해결되어야 하고, 목사안수의 문제도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중국기독교지도력이 선교의식을 갖고 선교중국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됨으로 선교지향의 지도력으로 세워질 것이다.
4) 중국교회가 헌금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헌금문제는 중국기독교가 풀어야 할 난제 중의 난제이다. 헌금문제가 해결되어야 선교중국이 필요로 하는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선교중국에 소요되는 재정을 중국교회 스스로 충당해야지 해외교회에 의존하는 것은 선교중국이 아니다.
5) 선교중국에 부합하는 이민선교의 모델을 정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중국교회가 헌금한다 해도 선교중국에 필요한 모든 재정을 다 충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재정 해결차원에서 이민선교가 해외에서도 시도되어야 하고, 또한 창의적 접근지역에서의 사역을 위해 이민선교 모델은 시행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민선교 모델도 실행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6) 중화주의의 우월감을 극복하고 열린 마음으로 해외 교회들과 교통하고 동역해야 한다.
우월감을 갖고는 진정한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 복음으로 중화주의의 교만이 깨어지고 이웃을 남보다 낫게 여길 때 주변국가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함에 유익할 것이다.
7) 화교의 화상(華商) 네트워크와 같이 중국기독교는 세계 각지에 산재한 화교교회들과의 복음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200주년을 맞는 중국기독교가 하나님이 중국에서 하신 일이라면 선교중국은 하나님이 앞으로 중국기독교를 통하여 하실 일이다. 과거에 하나님이 중국에서 하신 일이 놀라웠듯이 앞으로 선교중국으로 하실 일도 우리의 기대를 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선교중국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중국교회를 섬기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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