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Jerusalem" 운동에 대한 이해와 한국교회 중국선교
한철호 (선교한국 상임총무)
‘백 투 예루살렘’운동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인 1940년대 초에 복음을 알고 있었던 중국 대륙 동부 지역의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 중국 전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서쪽으로 더 나아가 실크로드를 따라 복음을 전파함으로서 남부의 힌두권과 불교권, 중부의 이슬람권, 그리고 북부의 불교권을 복음화하고 마침내 예루살렘까지 복음이 이르게 하자는 비전을 세웠다.
이 비전은 초대교회에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전파가 이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예루살렘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세계복음화의 완성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는 비전이었다. 그 비전이 오늘날 놀랍게 성장한 중국교회의 성도들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백 투 예루살렘’운동이다. 즉 BJT(Back to Jerusalem)운동은 현재 중국교회의 타 문화권 선교 비전을 말하는 것이다.
BJT운동은 1940년 초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서북성경학원(西北聖經學院)에서 시작됐다. 서북성경학원은 중국내지선교회(CIM/OMF의 전신)의 허드슨 테일러 2세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학교였다. 1943년 당시 그 신학교의 부 원장이던 마 마가 목사와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전도 범위를 이슬람교도들과 불교도 그리고 중국서북 지역까지 확장하고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이슬람세계를 지나 예루살렘까지 이르게 하자는 비전을 보게 된다.
그들이 편전복음단(遍傳福音團)을 만들어 중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신장, 내몽고, 사천 지방과 아프카니스탄, 이란, 이라크 등 아시아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복음은 전하는 사역을 계획하면서 BTJ운동은 시작된다.
그 후 북서성령운동이 일어나 1947년 일곱 명의 헌신자들이 중국의 북서 지방인 신강(新疆)으로 가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결국 복음을 예루살렘까지 전하기 위해 헌신하면서 BTJ사역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변화로 인해 그들은 신장국경지대를 넘지 못하고 청해(淸海)로 이동한다. 그 사이에 중국 공산당이 중국 정권을 잡게 되면서 그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제 50년이 지난 중국교회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100만 명이었던 기독교인들이 1억에 이르게 되었고 그들은 50년 동안 간직해 온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다시 일어나게 된 것이다.
마 마가 목사 이전에도 이미 1921년 산동성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만들면서 중국 서쪽 지방을 복음화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 단체와 사람들이 중국의 횡단하는 복음전파의 계획을 수행해 왔다.
따라서 BJT운동은 한두 사람에 의해 시작된 일이라고 보다는 중국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해서 일어난 전도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1980년대에 허난성(河南省) 지방에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고 이 지역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BJT의 비전을 품고 카쉬가르에서 사역하다가 31년 동안 투옥된 후 풀려난 짜오 시몬목사를 허난 지방으로 초대해 그의 간증을 들으면서 BTJ운동에 대한 비전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BJT운동이 최근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허난성(河南省) 출신의 윈(雲)형제라고 불리는 리우전잉(劉陣英)과 가정교회의 한 모임인 ‘전방위교회’를 창설한 수융쩌 등이 주축이 되어 ‘시님연합’을 만들어서 중국가정교회 연합을 만들고 BJT운동을 다시 부활하면서부터이다.
특별히 이들이 중국당국에 체포되어 엄청난 고난을 당한 후 탈옥하여 서방세계로 탈출하여 윈형제는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수형제(수융쩌)는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이들 BJT운동을 해외에서 확산해 가고 있다. 이들의 사역을 돕기 위해 ‘아시아 추수선교회’(Asia Harvest)를 설립하고 ‘Operation China'를 저술하기도 한 폴 해터웨이(Paul Hattaway)가 그들의 비전과 간증을 책으로 출판함으로서 영어권에서 BTJ운동이 급속히 확산되어 가고 있다.
한편 유럽에서는 피터 포거스트롱(Peter Fagerstrom)이 운영하는 The BTJ Foundation(www.backtojerusalem.com)이 이 운동의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선교적 비전
BTJ운동은 결국 중국과 예루살렘 중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복음화한다는 비전이다. 즉 이슬람, 불교, 힌두교의 주요 종교지역을 복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비전을 위해 BJT운동을 통해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비전이다. 중국 지하 교회 지도자들은 100만 명의 헌신된 일꾼들이 있는데 그 중 적어도 십분의 일은 해외 선교사로 내보내야 한다는 결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최종적인 목적은 10만 명이 아니라 온 세상이 복음화 될 때 까지 예수님의 명령을 완수하는 것이다. 2000년에 이미 39명의 첫 선교사들이 국경을 넘어가려는 시도를 했고 그 중 36명은 체포되어 돌아왔고 3명이 국경을 넘어 중국 밖으로 나갔다.
BTJ운동은 중국의 실크로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7세기 유럽이 중국과 무역하기 위해 개척된 실크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실크로드의 한쪽 끝에 위치한 예루살렘을 통해 유럽과 북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문물과 복음이 중국에 들어오게 된 것처럼 이제 반대로 그 길을 따라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와 유럽에 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비전이다.
실제 이 지역은 대부분의 미전도 종족이 현존하는 지역으로 최우선적인 복음전파가 필요한 지역이다. 실제 실크로는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 인데, BTJ운동은 삼선(三線)을 따라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서안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 중국 남부에서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나 예루살렘과 유럽에 이르는 길, 사천성 성도(成都)에서 부탄과 북인도 네팔 등 지역을 통과해서 실크로드와 합하는 길을 따라 유럽까지 복음을 전파하자는 것으로 이슬람 국가들만 아니라 서남 중국의 소수민족과 동남아시아의 국가들도 포함하고 있다.
이 비전을 위해 현재 중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아랍어와 영어를 배우고 준비하고 있다. 이것 보다 더 중요한 훈련은 바로 하나님께서 중국교회를 지난 50년 동안 고난과 핍박으로 훈련시킨 것이다. 그들이 이슬람, 불교, 힌두교 지역에 가서 복음 전하다가 당하게 될 고난을 이미 다 당하게 하셨다. 50년간 동안의 투옥과 고문과 고난을 통해 중국교회를 연단시켰다. 이제 그들이 세계복음화를 위해 고난 받을 것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전략적 특성
선교 전략적 관점에서 본다면 BTJ운동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10/40창 미전도지역선교의 중국교회의 표현이다. 실제 BTJ가 집중 전도하려는 지역은 지난 몇 십년동안 세계선교가 집중해 왔던 지역에 대한 선교전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TJ운동은 선교 전략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도전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첫째로는 중국이 선교지에서 선교하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이것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다. 지난 수십 년간의 중국교회의 성장은 결국 선교적 비전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예측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적 원리이다.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고 교회가 성장하면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세계선교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동시에 놀라운 것은 현재 중국교회는 여전히 고난 받고 있는 교회라는 점이다. 고난 받는 교회가 세계복음화를 위한 비전을 가진 것이다. 고난 받은 것이 오히려 선교의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선교지에서 어떤 고난도 그들이 이미 경험한 것에 비교하면 큰 고통이 될 수 없다.
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중국교회가 선교적 비전을 가지기를 오랫동안 기도해 왔다. 중국이 선교사 파송국가가 되어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하면 중국 주변 국가들, 즉 이슬람, 불교, 힌두권의 선교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BTJ운동의 확산으로 그 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BTJ지도자들은 선교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지금 중국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사그러질 것이라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관점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아직 완전히 복음화 되었다고 볼 수 없는 중국교회가 그리고 여전히 고난 가운데서 여러 가지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중국교회 안에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교회는 전반적으로 성경적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는 것이다.
둘째, BTJ운동은 아시아의 교회로부터 전 세계적인 선교비전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미 주지하고 있는 대로 세계선교의 흐름은 서구교회 중심에서 2/3세계교회로 이동하고 있고, 이제는 온 세계의 교회가 함께 협력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그런 상황에서 아직 고난 받고 있는 중국교회로부터 전 세계적인 선교전략으로 BTJ가 나왔다는 것은 매우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비록 BTJ가 10/40창 전도 패러다임과 유사한 것이라 할지라도 BTJ운동은 아시아 교회에 의해 전 세계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제안이 나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BTJ운동이 주장하는 선교방식은 새로운 패러다임 혹은 탈서구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백 투 예루살렘”책에서 다음과 같은 그들의 선교방식이 소개되고 있다.
1) 어떤 형태로든지 분파주의나 교파주의에 굴복하지 않겠다. 교파주의를 장려하지 않는다. 우리의 교리와 방법을 드높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과 부흥을 주시리라는 약속은 없다.
2) 교회 건물을 건축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다
3) 교회가 없는 지역에만 가겠다
4) 만일 있다면 현지의 그리스도인과 동역하겠다.
5) 마24;14절의 말씀 즉 모든 종족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어야 예수님의 재림이 일어나게 되고 이것은 남겨진 미전도 종족을 우선적으로 복음화하는 일을 의미한다.
6) 선교는 “서양에서 세계를 향한 것”이라든지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향해 가야 하는 것이라든지, 신학대학원을 나온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다.
선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잃어버린 세계를 향한 열정이 자격 조건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서구선교를 답습하거나 일방적인 선교가 아니라 그들이 중국교회 내에서 이루어진 경험과 성경적 관점에서의 선교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구체적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교회가 선교에 있어서 비교적 초기단계에 있지만 나름대로의 구체적인 전략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BTJ운동은 그들이 집중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51개의 미복음화 국가들을 선정했고 파송할 선교사들을 지원할 인프라를 구축해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실트로드의 삼선(三線)을 따라 다양한 계층의 자비량 및 평신도 전문인선교사들을 파송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년 정도 중국을 떠나 사역하다가 돌아오는 단기선교사들과 장기선교사를 구분해서 훈련시키고 있다.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는 방법, 특정한 대상에게 전도하는 방법, 주님을 위해 고난과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주님을 위한 증인이 되는 방법, 탈출하는 방법 등 매우 실제적인 선교훈련도 하고 있다.
또한 팀 사역 개념과 중보기도 그리고 현장에서의 선교사 관리 등에 대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또한 BTJ운동이 중국 교회만의 사역이 되지 않고 타국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동역하고자 하는 의도도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BTJ운동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많은 대가와 고난이 따를 것을 예상하고 있고, 그런 고난에 대비하여 하나님께서 중국교회를 이제까지 고난 가운데 있게 하셨다는 확신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중국 교회가 재정적으로 가난하다는 것도 방해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 가난함의 경험이 선교지에서 어떤 불편한 상황도 극복할 수 있는 훈련이 되었다. 결국 이제까지 중국 안에서 가정교회의 전도자들이 전도했던 방식, 즉 특별한 재정적 지원이나 구조적 지원 없이 자원하는 전도자들이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사도행전적 능력과 이적을 경험하면서 복음을 전 중국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 놀라운 열매를 거둔 경험들이 그들로 하여금 BTJ비전의 성취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한 것이다.
또한 중국교회의 BTJ 전략은 이제까지 10/40창 지역의 복음전파가 유럽교회에 의해서 정문으로 돌파를 시도했지만 그 결과는 그 지역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서 성공적이지 못했다면, 중국교회의 선교 참여는 10/40창 지역을 뒷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10/40창 지역의 국가들이 정문을 굳게 지키고 있는 동안 중국서부 지역을 통해 후문으로 들어오는 복음에 대해서는 별 다른 경계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선교지에서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모슬렘 국가들이 전혀 다른 문화의 서구 선교사들의 진입을 무척이나 경계하고 배격하는 반면에 중국 서부지역을 통한 중앙아시아의 접근은 언어적으로나 종족적으로 유사문화권 선교가 되기 때문에 훨씬 접촉하기가 쉽고 수용성도 높을 것이다. 중국교회를 통한 10/40창 지역 전도는 이런 점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BTJ운동에 대한 비판적 의견들
BTJ운동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만만치 않다.
첫째로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중국이란 나라는 너무 크고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현재 중국 밖에서 주도하고 있는 BTJ운동이 중국교회 선교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BTJ 비전 자체는 대부분의 중국가정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중국 디아스포라 교회들의 지지와 동의를 받고 있지만 이 사역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그들 가운데에서도 다양한 입장과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재 BTJ비전을 발전시켜가는 그룹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고, 현재 유럽이나 북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BTJ운동에 대해서도 입장이 다른 그룹들도 많이 있다.
현재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BTJ의 리더 격인 윈형제(리우전잉)와 수형제(수융쩌)의 지도력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BTJ운동 전체를 대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중국 가정교회의 주요한 지도자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현재는 중국 안에서 사역하기 보다는 유럽에서 사역하고 있고, 또 이들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폴 해터웨이(Paul Hattaway)나 피터 포거스트롱(Peter Fagerstrom)같은 서구인들에 의해서 그들의 간증과 사역에 영문으로 소개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윈형제나 수형제가 중국을 탈출하게 된 것 자체가 이 운동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들이 해외에 있는 중국인 디아스포라 교회의 지원을 받기 보다는 서구 선교전략가들의 지원 하에 BJT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내부 현지 지도자들과 해외 디아스포라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일치된 지도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결국 BTJ운동이 이 두 사람의 개인적 사역 차원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을 통해 BTJ운동이 확산되자 지난해 6월 토마스 왕(Thomas Wang)목사를 중심으로 BJT운동을 위한 회의가 따로 열리기도 했다.
둘째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BTJ운동이 폴 헤터웨이가 쓴 「백 투 예루살렘」이나 윈형제의 간증인 「하늘에 속한 사람」등을 통해 소개되고 있고 그 사역은 폴 헤터웨이가 주도하는 아시아 추수선교회(Asia Harvest www.asiaharvest.org)와 피터 포거스트롱이 주도하는 The BTJ Foundation(www.backtojerusalem.com)이란 단체를 통해서 유럽에 소개되고 있는데, 이들이 주로 하는 사역은 모금사역이라는 것이다.
현재 윈형제와 수형제는 이들의 도움으로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BJT운동을 확산하고 있는데, 그 결과 많은 기금이 모아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그 기금이 중국 현지 교회의 선교를 돕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중국 사역의 특징상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책무관계(accountability)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하늘에 속한 사람」에서 소개된 윈형제의 간증 내용 일부분에 대한 사실성에 문제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또 수형제가 중국에서 일으켰던 가정교회가 이미 와해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현재 중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도행전과 같은 많은 사건들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부풀려지거나 약간 다르게 전달될 수는 있기에 그들의 간증의 세부적인 사항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성 여부를 문제제기 할 필요는 없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중국교회의 선교적 비전을 전 세계에 나누길 원하시는 것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규모적인 비전이 몇몇 서구인들의 도움을 얻은 한 두 사람의 사역으로 국한 된다는 것은 문제제기 될 만한 것이다.
셋째, 중국교회의 선교적 잠재력에 대한 평가도 사람들 마다 매우 다르다.
현재 중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 즉 가정교회와 삼자교회의 분리로 인한 전 교회적 지도력의 분산, 신학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교회 집단들의 존재 등은 중국교회가 이런 대규모적인 선교비전을 당장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 의심하는 입장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물론 10만이라는 수가 상징적인 의미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프라와 재정적 지원, 그리고 선교사들을 위한 훈련이 필요한데, 현재 중국교회의 제한된 환경에서 이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 비전인가라는 문제제기이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교회의 선교 방식은 이제까지 서구의 것과는 다르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서구선교의 관점에서 본 인프라와 자원 없이도 수행이 가능 할 수도 있지만, 단지 물리적 차원뿐 만 아니라 타문화권 선교는 자국민 선교와는 달리 더 세밀한 타문화 전도 전략과 훈련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얼마나 채워지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지난 50년 동안 거의 폐쇄된 상태에서 성장한 중국교회의 성도들이 선교라는 타 문화권 상황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다.
넷째, 비록 중국교회가 BTJ운동을 활성화하여 10/40창 지역 선교에 적극적인 성과를 거둔다 할지라도 BJT운동이 중국 중심의 패권적 선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화사상(中華思想) 혹은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 불리우는 중국인 특유의 자기 중심적 사고와 지난 50년 동안 거의 외부교회와 단절된 상태에서 성장한 중국교회가 BJT운동을 세계복음화를 위한 전 세계 교회와의 협력과 동반자적 관점으로 보고 협력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다. 중국 가정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외부 교회와의 교류를 거부해 왔는데, 이런 입장을 취한 데에는 그 동안 서구선교가 중국에 끼친 악영향과 현재 중국정부로부터 오는 박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중화사상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중국 교회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전 세계적인 선교가 일어나도록 전 세계의 교회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가의 문제이다.
다섯째, BTJ사역이 외부 사람들에 의해 활성화되면 그 결과로 중국 안에서의 박해가 더 심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 사회가 점차로 개방되어 가지만 아직 정치적으로는 매우 통제된 사회인데, BTJ운동의 확산이 중국정부로 하여금 중국교회를 핍박하는 구실을 줄 수 있다. 물론 선교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에 의해 선교가 일어난 것처럼, 중국교회의 핍박이 선교적 열매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TJ운동의 확산이 현재 중국 안에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더 큰 고난과 중국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외부 선교사들에 대한 제제로 나타날 수도 있다.
BTJ운동과 한국교회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선교의 목적 중에 하나는 중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실제 한국선교사가 가장 많이 사역하는 나라가 중국이고 중국 주변 국가 중 유일하게 복음화된 나라는 한국이다. 따라서 중국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BJT운동에 한국선교와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BTJ리더 중에 한 사람은 한국교회가 이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길 요청해 왔다.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협력관계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또 국내의 중국관련 사역자들 사이에서는 그들과의 협력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교회가 활발하게 성장하는 지역은 중국 중동부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훈련된 선교자원들이 중국 서부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나아간다면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힘은 중국동부지역 교회의 뒤쪽에 위치한 한국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 전략이다. 즉 BTJ사역 전방에 중국교회가 서고 이를 뒤쪽에서 한국교회가 지원 협력한다면 그 추진력을 배가될 것이라는 전략이다.
어떻든 이제 중국선교는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다.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중국 사회는 더욱 개방될 것이고, 88서울 올림픽이 한국교회의 해외선교에 전환점이 되는 해가 되었던 것처럼 2008북경 올림픽을 전후로 한 중국교회의 선교를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기회들을 잘 이용해서 중국선교와 중국교회의 선교가 활성화되는 데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심사숙고된 전략과 사역이 나와야 한다.
2008년을 전후로 1-2년 사역할 수 있는 단기선교사를 집중적으로 중국에 파송하는 일, 현재 중국 안에 있는 한인 기독젊은이 자원을 선교자원으로 활용하는 일, 중국교회가 선교할 수 있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중국교회에 필요한 훈련과 자원을 지원하는 중국선교전략 등이 한국교회 안에 시급히 요청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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