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교회, 복음이 없지는 않지만...
삼자교회란?
중국 선교의 이야기는 세계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에 대한 선교 이야기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가능한 한 간단하고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가자면 삼자교회라는 중국만의 특수한 교회의 모습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중국의 공식교회를 삼자교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중국 정부의 종교 정책의 모토인 "자전, 자양, 자치"에 “스스로 자”(自)가 세번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자교회는 중국 공식 교회를 관할하고 있는 기관이 삼자애국운동위원회 산하의 교회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정교회는 삼자교회의 울타리 밖에 있는 교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삼자교회는 당국과 법률에 의거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교회이고, 합법적인 교회인 반면, 가정교회는 비공식교회이며, 지하교회이며 불법교회라고 할 수 있다.
삼자의 원칙은 기독교 뿐 아니라 중국 내의 모든 종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원칙이다. 삼자를 구성하는 자전, 자양, 자치 등 세가지 원칙에 대한 세세하고 학문적인 설명은 피하기로 한다. 다만 좀 간단하게 이 대원칙을 설명하면 중국 정부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점과 함께 특히 외국의 종교기관이나 종교관련 단체와의 교류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카톨릭 같은 경우는 개신교의 삼자교회와 마찬가지로 카톨릭애국연합이라는 관영 단체 산하의 관영 카톨릭교회가 존재하는데, 이 교회는 카톨릭교회 임에도 불구하고 외국기관과의 교류 차단의 원칙에 따라 바티칸의 치리를 받지 못하도록 강요 당하고 있다. 과연 바티칸의 치리를 거부하는 조직이 카톨릭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카톨릭 내의 주요 요직을 맡는 성직자는 바티칸이 임명하지 않고, 공산당의 감독을 받는 카톨릭애국연합이라는 기관에 의해서 자체적으로 임명이 된다.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바티칸은 카톨릭애국연합에 의해 임명된 고위직의 신부들을 어지간하면 추인해서 임명하는 형식을 밟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바티칸은 중국의 관영 카톨릭조직에 대한 인사권과 치리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또 때로는 중국에서 내정된 사람에 대해 바티칸이 도저히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중국과 바티칸 사이에 외교적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새 교황이 취임한 후 바티칸은 중국과 수교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나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수교협상이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삼자교회의 모든 문제는 중국교회가 정부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중국 정부는 익히 알다시피 공산당 정부이다. 비록 중국이 개혁과 개방을 통해 자본주의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곳으로 변했다고 하지만, 중국 정부와 국가의 공식이념은 공산주의이다. 공산주의는 종교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으며 무신론을 표방한다. 결국 하나님이라고 하는 절대자이자 창조주를 믿는 교회라고 하는 집단이 신은 없다고 믿는 무신론집단의 감독과 지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삼자교회의 모든 문제들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삼자교회는 이단인가?
흔히 사람들은 삼자교회를 이단 혹은 중국 공산당의 압잡이 정도로 간주하여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일정부분 옳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간단하게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삼자교회에 대한 성격 규정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능한한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단이라기 보다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라는 정치권력에 굴복하여 타협하여 순수성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삼자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3천 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먼서 생각해 보자. 북한을 다녀온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봉수교회나 칠골교회의 예배는 정교하게 연출된 선전용예배이며, 그곳에 출석한 북한인 교인들도 사실은 북한 당국에 의해 동원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중국의 3천 만 명이나 되는 삼자교회 교인들은 북한의 경우처럼 당국에 의해 동원되어 교회에 것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가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매주 들으며 나름대로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법이 지하교회를 금지하고 있으니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지하교회에 참여하여 핍박을 감당하기는 좀 엄두가 안 나는 사람일 뿐이지,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삼자교회의 성직자들을 생각해 보자. 바로 앞서 이야기한 신앙을 가진 평신도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서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갖고 신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함으로서 성직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러니 삼자교회를 아주 간단하게 이단, 공산당의 앞잡이, 가짜기독교 정도로 정리해버린다면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질 것 같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삼자교회가 중국공산당 정부의 감독을 받기 때문에 많은 부자연스러운 일, 소망스럽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1982년에 발표된 중국정부의 '19호 문건'은 '정치행동 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애국적 종교 신도는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위하여 함께 분투하는 통일전선을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여 기독교를 중국 정부에 협조적인 집단으로 길들이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삼자교회 목회자들 가운데 정치지향적이고 출세지향적이고 순수성을 잃어 버린 일부 목회자들은 노골적으로 중국 정부의 입장에 충성하며 정부의 입장의 대변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적지 않은 목회자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 성경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순수성과 하나님의 종의 자세를 잃지 않고 성도들을 양육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도시보다는 정부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교외나 시골로 갈수록, 또 나이든 목회자 보자는 젊은 목회자가, 중국 정부의 인사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고위직 보다는 하위직 목회자일수록 복음적이고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는 삼자교회가 정부와 공산당에 순종하고 협조적이도록 부단히 지휘감독하고 있고, 삼자교회의 고위 지도자 자리에는 그러한 사람들을 임명하여 앉히고 있다. 또 삼자교회가 아무리 공산당에 순종적이고 협조적이라 하더라도 교회가 너무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삼자교회 정책을 요약하자면, 공산당에게 순종적으로 협조하는 교회를 만들 것과 아무리 협조적이라고 할지라도 적정 규모이상 커지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자교회도 숨쉬기 어렵기는 마찬가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교회가 무신론을 강령으로 삼는 공산당 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아야하는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매우 많다. 그러나 여기서 그 모든 것을 다 살펴보기는 어렵고,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본다. 우선 공산당 정부가 삼자교회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삼자교회는 중국의 공식교회이기는 하지만, 정부는 삼자교회가 어느 규모 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정부는 삼자교회가 부흥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인 제약을 가하고 있다. 우선 새로운 교회의 설립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허가를 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리스도를 믿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해도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의 경우 그토록 인구가 많은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자교회는 두 곳 밖에 없다. 최근에 와서 당국으로부터 어렵게 허가를 얻어 세 번째 교회와 네 번째 교회가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아직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다.
교회의 새로운 개척이 불가능하다면 부흥을 위한 유일한 방법 이미 있는 교회들이 새신자를 받아들여 각 교회의 사이즈를 키우는 방법 밖에는 없지만, 이것도 어려운 일이다. 새신자가 계속 들어온다면 필연적으로 예배 공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연히 교회를 증축해서 건물을 크게 늘려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증축과 개축 역시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한 사항이다. 물론 좀처럼 허가 받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은 예배의 부수를 늘려 1부 예배, 2부 예배....이런 식으로 예배를 여러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허가사항이다. 결국 삼자교회는 아무리 교회가 복음전파와 부흥의지가 있더라도 부흥이 힘든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교회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3정원칙이다. 3정원칙이란 특정교회의 신자를 상대로 설교나 강의를 하려고 하는 경우, 당국에 의해 정해진 목사가, 당국에 신고된 지정된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만 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3정원칙을 적용하는 이유는 삼자교회가 당국이 보기에는 불순한 집단인 가정교회의 목회자를 초빙하거나, 반대로 삼자교회 목사가 가정교회에 가서 설교하는 등의 교류를 막는데 목적이 있다. 거기에다가 3정원칙에 따라서 같은 삼자교회끼리라 하더라도 목회자간의 교류나 다른 지역의 다른 교회의 목사의 초빙 설교가 금지된다. 이는 목회자들의 활동이나 설교의 내용을 감시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삼자교회의 강단에 서는 것도 당국의 사전허가가 없으면 금지된다.
또 삼정원칙의 시간 조항이나 장소 조항 때문에 교회 바깥을 벗어난 야외집회나 대형 경기장을 사용하는 특별 집회 등이 불가능하고, 원래 정해진 정규 예배시간 이외의 특별한 행사를 열기가 무척 어렵다. 이처럼 당국의 인정을 받는 삼자교회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활동과 부흥을 꿈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 중국교회의 분위기이다.
|출처:선교이야기꾼 푸른섬
'중국의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남회의 이전의 중국삼자신학의 특성 (0) | 2009.04.29 |
---|---|
[스크랩] 중국삼자신학의 이신칭의의 약화 (이기택) (0) | 2009.04.29 |
[스크랩] 중국 삼자교회의 신학사상 건설사역과 삼자원칙 (0) | 2009.04.29 |
[스크랩] 중국삼자양회가 추진하는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상호적응 (0) | 2009.04.29 |
[스크랩] 중국 삼자교회의 신학사상건설사역의 정치적 특성 (0) | 2009.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