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영원한사명)

[스크랩] 새로운 세기를 위한 선교의 새로운 방향 (Andrew F. Walls)

수호천사1 2009. 1. 2. 09:54

새로운 세기를 위한 선교의 새로운 방향


Andrew F. Walls (에딘버러대학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되는 역사적인 대회에 여러분을 만나고 이렇게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장신대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스코틀랜드의 모든 교회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자들을 대표하여 여러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지금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 학교를 통해 보다 헌신된 훌륭한 인재들이 전 세계를 향해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100년 역시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강의를 부탁하면서 제게 의뢰했던 제목은 "선교의 재고: 새로운 세기를 위한 선교의 새로운 방향"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이런 주제는 저의 지적 수준보다 훨씬 더 깊은 학문적인 역량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예언의 은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앞을 내다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예측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 사람들은 미래가 우리 뒤에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다는 뜻이죠.  그것은 마치 우리 등 뒤에 숨어 있는 그 무엇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우리가 걸어왔던 과거의 길들로서, 가장 최근에 지나온 역사가 바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고 보다 오래된 것들은 저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지난 2000년 간의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한 번 살펴봅시다.  그리고 특별히 바로 우리 발 앞에 놓인 과거, 장신대가 창립된 이후의 100년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왜냐하면 오늘의 교회와 세상은 김종섭과 방기창이 사뮤엘 마펫 박사와 함께 신학을 연구하기 위해 모였던 그 때와는 너무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실로 놀라운 변화들이 그 사이에 장신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두 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사가 선생의 집에서 모였던 것이 이제는 교육과 훈련과 제자를 만들고 학문적인 실력을 배양하는 훌륭한 대학과 신대원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100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한국의 교회도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아주 작던 기독교 공동체가 이제는 세계에서 중요한 교회가 되었으며 아시아와 세계 선교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만큼 성장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100년의 역사 속에서 세상과 교회가 겪은 변화는 더 놀라운 것입니다.  김종섭과 방기창이 마펫 박사와 공부하기 위해 모였을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 속에 기독교는 아직 서양의 종교, 곧 서양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10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대부분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또는 태평양 군도 등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매년 유럽과 북미의 기독교 인구는 감소하는 반면, 세계 다른 지역의 기독교 인구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비서양 종교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오리 사람들의 개념을 잠시 활용한다면 미래는 우리의 뒤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맞이할 100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앞에 펼쳐진 과거이며 기독교의 오랜 역사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선교에 대해 재고찰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주제와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강한 줄기로 기독교의 역사를 주도했던 흐름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선교를 위해 부름받은 소명의 나아갈 방향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저와 함께 우리 앞에 펼쳐진 기독교 역사의 수많은 흐름과 갈래를 함께 살펴보면서 분별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이렇게 우리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선교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기를 위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도록 도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첫째 : 이 세상에서 기독교의 진보는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진퇴를 반복한다.

만약 우리가 기독교와 이슬람을 비교한다면 우리는 전 세계에 걸쳐서 다양한 사람들의 충성심을 얻은 두 개의 위대한 종교를 보게 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기독교보다 이슬람이 신자들의 충성심을 유지하는 데에 한 수 위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아리바아 지역에 대해서 생각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연상한다.  한 때에 예멘이라는 나라가 기독교 국가였으며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들이 자유롭게 아라비아 반도를 이동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예멘은 한 때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램과도, 그리고 이집트나 시리아, 터키나 투니시아 등처럼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했던 곳과는 사뭇 다른 지역이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 번 이슬람의 영향 아래에 들어간 지역은 지속적으로 이슬람권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독교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형편은 안된다.  예루살렘, 이집트, 시리아, 투니시아, 터키, 이들 모두는 한 때 기독교의 심장부였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자들의 집합소였고 기독교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순교자들을 양산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지역에서 기독교는 소수가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 비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은 이라크라고 불리는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때에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이란과 중앙 아시아 전역에 교회가 왕성하게 번영했던 때가 있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며 이런 사실들을 자세히 진술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훌륭한 아버지의 역시 훌륭한 아들인 사뮤엘 마펫 박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지역의 교회들이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는가?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창립되었을 때에 영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선교사를 세계 각지로 파송했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서부 유럽은 기독교의 심장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 때에 기독교의 심장부였던 지역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교회 건물들로 가득하며 이런 건물들은 가구점, 식당, 또는 나이트 클럽으로 개조되고 있다.  어쩌면 기독교에는 없는 저항력이 이슬람에는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모든 경우에서 한결 같이 한 때에 기독교의 심장부였던 지역들은 이제는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며 그곳의 기독교 공동체들은 약화되어 버렸다.  계시록에서 기술하고 있는 바와 같이 촛대가 옮겨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심장부에서의 기독교의 약화가 곧 이 세상에서 기독교의 증거가 약화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의 모교회였던 예루살렘교회는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안디옥 교회에 의해 희랍 세계를 향해 시작된 선교 활동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확장되어 나갔던 것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기독교를 전파했다.  이라크의 교회들이 쇠퇴하고 사라질 때에 오히려 이란에서는 교회의 수가 증가했다.  이집트와 시리아,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 등에 있던 기독교의 위대한 중심지들이 이슬람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가게 되자 내 조상들의 선조였던 북부와 서부 유럽의 야만인들이 기독교를 점차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곧 중심부에서의 쇠퇴는 주변부에서의 성장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기독교의 발전은 지속적이고 일정한, 그리고 회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의 진보는 종종 퇴보의 뒤를 따랐다.

복음의 전파는 지도 위에 명확한 선으로 그려 넣을 수 있는 고정적인 영토의 확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유약함이 있으며 그 표현에도 연약한 면모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십자가의 유약성과 초기 전달 매체의 연약함 때문일 지도 모른다다. 기독교의 진보는 순차적인 것으로서 처음에는 한 곳에 정착했다가는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기독교에는 이슬람의 메카와 견줄만한 곳, 하나의 영구적인 핵심 성지가 없다.  기독교 공동체들은 종종 가장 강력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심장부에서 약화되고 오히려 그 심장부의 주변부 또는 그 이상의 어느 곳에서 새롭게 꽃을 피우곤 한다.  그 어느 한 나라도, 어느 한 문화도 기독교 신앙을 독점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어디에도 영구적인 기독교 국가는 없으며 유일한 하나의 형태를 지닌 기독교 문명권이라는 것도 없고 유일한 기독교 문화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의 각기 다른 시대에, 그리고 세계의 각기 다른 곳에서 기독교 선교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했으며, 그런 다음 릴레이 경주에서 그러는 것처럼 바톤을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창립된 이후 약 100년 동안 우리는 서부 유럽이 기독교가 번성하는 중심부에서 이제는 기독교가 황폐화된 지역으로 전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는 서부의 기독교 중심부가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약 100년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의 영향력이 미세하였던 곳에서 기독교 신앙이 놀라울 만큼 성장하고 기독교 활동이 왕성하게 전개되는 것도 보게 되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처음 창립되었을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는 약 1천만명 정도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프리카에 기독교 인구가 정확하게 얼마가 되는 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이며 우리가 가장 근접하게 추측할 수 있는 숫자는 3억명 정도다.  

 

이런 예 외에도 같은 시대 한국에서의 기독교가 경험한 놀라운 발전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이곳에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기독교의 진보와 퇴보는 동시에 이루어졌다.  서양에서는 퇴보가, 그리고 아프리카, 아시아 및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는 진보가 이루어졌다.  소위 중심부라고 불리던 곳에서는 기독교가 쇠퇴하는 반면 주변부로만 인식되던 곳에서는 기독교가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제는 릴레이 바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전 세계를 향한 기독교 선교의 책임이 이들 지역에게 요청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기독교의 진보는 순차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역사 속에서 이제는 여러분이 경주를 달려야할 때가 되었다.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겪은 가장 위대한 사건, 가장 놀랄 만한 사건은 교회의 중심 축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동은 지정학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곧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기독교인들이 이제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뜻이다.  21세기 기독교의 성격은 바로 이들에게 달려 있다.


100년 전만 해도 세계 속에서의 기독교 선교를 위한 주된 책임은 유럽과 미국의 선교 지도자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에딘버러 사무실은 1910년 세계선교대회가 개최되었던 건물 옆에 있다.  그 당시에 모였던 세계선교대회에는 몇몇 유명한 아시아 기독교 지도자들이 참석했었지만 아프리카 지도자는 한 명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회 전체도 유럽과 미국 출신 사람들에 의해 기획되고 주도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현상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경제 군사적인 영역에서 세계가 어떤 변화를 겪던 간에 기독교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향후의 모든 일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에 있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두번째 전제는 기독교는 문화적인 경계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처음 예수를 따르고 믿던 무리들은 인종적으로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경전에 있는 약속을 성취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으며 예수를 통해 자신들이 지금까지 배우고 알고 있던 모든 것들에 마침내 의미가 부여되고 새로운 통찰력이 생기게 되었다.  메시야인 예수 때문에 그들은 율법과 모든 예전과 제사를 담지하고 있는 성전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  

예수가 행하고 말한 모든 것은 유대인들의 사고의 틀 속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으며 오랫 동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하는 다른 유대인들도 예수에 대해서 깨닫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이들이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전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가끔 예수를 이방인들에게 전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도행전 11장에서 기술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일단의 신자들이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서 도피해야만 해서 안디옥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변했다.  안디옥에서 이들은 그곳에 있는 희랍인 이방 이웃들에게 예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너무도 특이한 일이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바나바를 특사로 보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확인하게 했다.  그가 안디옥에 도착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자 그는 흥분했다.  그 이후 유대인과 헬라인이 함께 먹고 교제했던 안디옥 교회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헬라 세계를 향해 선교사로 파송했다.  바울이 이런 선교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에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들은 그의 성공적인 사역에 대해서 기뻐했다.  하지만 사도행전 22장의 기사를 통해 분명히 밝혀지고 있는 것은 아직도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은 교회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일이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선교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 시간은 예루살렘 교회의 편이 아니었다.  로마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은 흩어지게 되었으며 유대가 망하게 됨에 따라 거처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 때에 기독교는 예루살렘의 폐망 이전에 왕성했던 몇몇 유대교 분파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한 가지가 기독교를 살려냈다.  그것은 기독교가 문화적인 경계를 넘어서 헬라 세계로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초대 교회, 곧 예루살렘의 교회가 사그러들게 되었을 때에는 헬라어를 사용하며 이방인들이 포함된 새로운 교회가 그것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기독교는 헬라 세계에서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고 발전하게 되었으며 발전된 문학과 기술을 지녔던 로마 제국의 문명권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교회가 쇠퇴하게 되는 때가 다시 이르게 되었다.  이 때에 기독교 신앙이 생존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기독교가 또 다시 문화적인 경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즉, 기독교는 한 때 로마인들이 로마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사람들, 소위 야만족이라고 불렀던 자들에게 전파되었던 것이다.  또 다시 기독교는 다른 언어, 문화 및 생활 관습을 지닌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기 때문에 심각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00년의 역사 동안에도 이런 현상은 반복되었다.  장신대가 처음 창립되었을 때에 기독교는 서양 중심의 종교였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의 80%가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 거주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유럽의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으며 북미 지역은 유럽의 기독교가 쇠퇴하기 시작했을 때에 나타났던 징조들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전체를 살펴보면 기독교는 결코 쇠퇴되고 있지 않다.  그 원인은 지난 100년 동안, 그리고 그 이전에도 선교 운동을 통해 복음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문화적 경계선들을 넘어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100년 전 비서양 세계의 기독교 인구는 매우 적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다수가 되었다.
 
기독교는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 전파됨으로 생존한다.  이런 경계를 넘어서는 전파의 과정이 없다면 기독교는 쇠퇴하고 마침내 소멸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맞이할 100년 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 나누기 위해 문화적인 경계들을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기독교 역사의 세번째 전제(가정)를 살펴보도록 하자.  곧 그것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문화들을 취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초대 교회가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있어서 전적으로 유대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살펴 보았다.  초대 교회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철저하게 유대적으로 발전시켰다.  안디옥에 있는 헬라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개종하였을 때에 많은 신자들은 이들이 유대적인 관습을 받아들여 할례를 받고 율법의 가르침에 순종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던 유일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의 방식은 유대적인 것이었다.  예수님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았으며, 그의 제자들도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이들이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 문제를 고려하기 시작했을 때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할례를 받는 것과 율법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헬라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조명 하에서 헬라인으로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방법을 스스로 발견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헬라적인 특징을 갖는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헬라적인 가족, 사회 및 지적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들을 변화시킬 것이었지만, 그 변화는 자연발생적인 것으로서 헬라 사회 내부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했으며 여전히 헬라인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유대인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과는 다를 것이었다.  그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대해서 우월한 것은 아니다. 각각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서로에게 속해 있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말씀이다.

에베소서가 기록되었을 당시 기독교 교회 내에는 두 개의 주요 문화권, 두 개의 기독교 생활방식, 곧 유대적인 것과 헬라적인 것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다양한 기독교 생활방식이 있다.  다가올 세기에 선교사가 직면하게될 가장 큰 책임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조명 하에서 세상의 다양한 문화권 속에서 각기 다른 기독교 생활방식이 발전되도록 돕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아울러 각기 다른 기독교 생활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자들이 서로를 동일한 그리스도의 지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공존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문화를 강요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독교인의 생활방식을 전수하고 싶어한다.  1910년 열렸던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는 인도에서 온 젊은 청년 대표 V.S. Azariah라는 인물이 있었다.  대회 준비자들은 그에게 선교사들과 그 당시까지만 해도 '자녀교회'라고 지칭되던 현지 교회와의 협력 관계에 대해서 말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이런 협력을 힘들게 만드는 선교사들의 태도 몇 가지를 분석한 다음 아주 훌륭하고 유명한 말을 했다:

 

인도 교회를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이 수행한 영웅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노력에 대해 증거하면서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여러분은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불타는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몸을 내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러분에게 사랑을 요청합니다.  우리에게 '친구'(벗)가 되어주십시오!

 

이는 폭탄적인 선언이었다.  선교사들이 세상의 복음화를 열심히 논의하고 전략을 세우는 동안 소위 '신생교회'들이 제일 우선적으로 요청하고 갈망하던 것은 지도력이 아니고 더 많은 선교사들이 오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재정의 지원도 아니라 바로 우정이었던 것이다.

 

우정은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고 상호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회들은 미숙한 어린이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이후 이들도 불의 단련을 겪었다.  지난 50년 동안 중국의 교회가 겪었던 고난을 경험하고도 지금처럼 훌륭한 교회의 모습으로 탄생한 교회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는가?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느 교회가 중앙 아프리카나 수단의 교회들처럼 지속적인 재난, 전쟁, 피난과 인종말살의 위협에 직면해야 했던가?  이 세상의 어느 교회가 남아프리카의 교회들처럼 민족을 위해 도덕적인 지도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거나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들처럼 가난한 자들을 위한 대변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가?  그리고 이 세상의 어느 교회가 한국의 교회처럼 기독교 복음의 전파를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헌신했던가?  서양이 아닌 나머지 지역에 있는 세계 교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축적된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우리가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세기에는 에베소서가 기록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에베소서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다 잘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정이 없이는 효율적인 선교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또한 성경적인 전통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고전적인 문화들과 교류를 하게 됨에 따라 신학적인 분야에서의 새로운 발전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경적 전통이 헬라와 로마의 문화와 교류를 하였던 3세기와 4세기 이후 가장 왕성하게 창의적인 신학이 발전하는 세기가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오리겐은 광야에서의 성막을 위한 금과 언약궤를 가리기 위한 휘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갖고 나온 것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세속화된 이방 세계가 잘못 사용하는 것들을 취해서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들을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임을 오리겐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문화 속으로 더욱 깊이 침투하면 할수록 이러한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곧 신실한 학문적 역량이 다가올 세기의 선교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게 할 것이다.  과거 100년 동안 세계로 나아갔던 선교사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선교 일군들이 선교의 현장에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시키기로 계획하신 것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내가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그리스도이시며 그가 우리에게 맡기신 것도 영원히 동일한 복음이다.
출처 : MyLoveChina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