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영원한사명)

[스크랩] 21세기 아시아선교의 전략적 재고 (이상윤)

수호천사1 2009. 1. 2. 09:55

21세기 아시아선교의 전략적 재고

 

이상윤 목사

 

97년 아시아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침몰되자 과거 21세기를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예고했던 장미빛 꿈은 사라졌다. 이른바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도래를 점치던 낙관적 전망은 힘을 잃고 말았다. 어둠고 암울한 아시아의 장래가 불가항력적인 상태로서 다가오고 있다. 더군다나 경제위기를 맞이한 아시아에 대한 서방측의 견해는 아시아적 가치라는 논쟁적인 개념이 등장하면서 격화되어서 결국은 아시아적 가치란 본격적인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개념으로서 아시아 경제발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낳는데 일조하였다. 특히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대한 일대 비판적 이해가 팽배해 있는 저간의 흐름속에서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이라는 또한나의 식민지주의 과제와 맞대면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아시아 경제상태의 악화가 경제의 기초적인 이해에 말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는 지난 70, 80년대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설명하기 위하여 서구학자들이 만들어 낸 말이다. 그들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소위 네 마리 용이 모두 유교문화권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유교적 가치를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파악하면서 그것을 아시아적 가치라고 불렀다. 그런데 90년대 말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위기에 빠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아시아적 가치가 과연 유효한지 지금까지의 해석이 맞았는지에 대한 회의가 일고 있다. 더군다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말레이시아의 현직 수상 사이에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아시아 상황을 설명하면서 부터 혼란은 가속화되었다. 그동안 서구에서는 아시아적 가치를 부각시켰던 것은 아시아의 발전을 강조하면서 서구의 결속을 노렸는데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직면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서구의 시장경제 가치가 더 현실적이라는 면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아시아 경제위기는 아시아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국제환투기꾼 때문이라는 마하티르의 피맺힌 지적이 나왔다. 일찌기 싱가포르의 전 수상 이광유는 유교적 문화전통에서는 서구적 민주주의가 정착될수 없다고 하면서 개발독재를 옹호하였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꽃피울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이처럼 오늘이 아시아를 지배하는 사회변동의 중심에는 세계화성에 대한 아시아인의 객관적 판단이 문제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단계 한국교회의 아시아 선교에 대한 주목할 만한 변화와 새로운 대응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계화라는 신세계질서에 대한 선교적 해석일 것이다. 지난번 스위스 다보스에서 모인 세계경제포럼은 현재 세계경제가 급격히 통합되는 과정에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책임적인 세계화라고 하면서 결국 인류 최대의 현안인 세계화는 단기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잔인한 세계화에 대항하여  인간적 가치를 포용하고 신천하기 위한 책임있는 세계화-세계화의 충격 관리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을 UN 사무총장 코피아난은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로 불렀다.

 

흔히 글로벌리제이션이라고 부르는 세계화에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무역과 투자에 대한 장애요인이 제거되는 것을 말한다.

 

즉 관세 비관세등 각종 규제조치들이 철폐되고 있다. 외국인의 직접적인 투자룰 부추기면서 자본의 국경선이 무너지고 세계경제가 하나의 시장처럼 통합되어 간다.

 

둘째는 네트워크 중심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각국의 기업들은 생산 판매 유통 사무관리등에서 협력이 가능한 분야에서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기술 인력 경영 방식에 이르기 까지 협력 가능한 기업들과 끊임없이 전략적 제휴가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는 전문화를 고도화시키고 있다.

 

세계경제의 통화화에 필수적인 언어의 장벽과 국가별 지역별 문화적 특성이 사라지고 세계 최고의 실력을 쌓아야만 살아남을 수있다는 무한 경쟁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정보화 지식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하나로 통합된 세계내에서는 정보와 지식이 확산되고 있다.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충돌에서 지적되었듯이 서로 다른 지역간의 상이한 생활습관과 종교의식은 경제적 통합과정에서 충돌하게 되어 있고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특수한 가치관과 중동지역의 종교적 폐쇄성은 세계화 과정에 있어서 서구와 필연적인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넷째는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간의 경제양극화다.

 

과거의 양극화에 비할 바 아닌 이러한 현상은 해당 사회내에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과 함께 대량실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시장 통합의 속도와 제도개혁의 속도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금융자본의 개입이 일어나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간에 제도가 취약한 국가들을 강타하여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하는 아시아의 세계화 속에 묶여있는 한국교회의 아시아 선교의 전략은 어떠하였는가.

 

첫째 현지화에 대한 철저한 사전준비나 이해가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현지화란 우선 먼저 현지어 학습에 있다. 현지어 대신 사용하는 제 2언어로서는 현지화를 기대할 수 없다. 현지어에 익숙해야만 현지화의 다음 단계인 문화적응이 일어나며 사회적응과 함께 해당사회의 밑바닥을 뚫고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해당 사회의 발전에 대한 남다른 관찰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다원적 사회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 사회에서의 현지화는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다.

 

둘째 협력선교에 대비한 신학적 전략적 재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아시아 진출의 파라다임은 개교회중심이었다. 선교적 비전있는 목회자가 목회자를 현지에 진출시킨다. 그러니까 해외에 진출한 한인 목회자를 파송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원주민 선교사를 보내게 되었다. 문제는 선교였다. 선교가 초기 단계에서 전도활동을 뛰어넘어 해당 사회의 불의에 대항하고 사회적 약자집단들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자 인권 유린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원주민에 접근이 선교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필리핀에서 문제된 대로 한국교회는 여전히 전근대적 선교방식을 고수하여 식민지시대의 유산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가 교회없는 지역을 찾아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교인을 채우는 전도를 열심히 했는데 이제부터는 훈련된 목회자를 파송하고 성장시기를 노려서 교회도 살찌우고 교회로 교회되게 해야할 중요한 시점에 들어서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지나친 교회개척 중심의 성과 사업으로 해오던 선교활동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선교전략을 구사하는 동안 현지교회나 선교 파트너와의 관계 설정에 문제가 발생하여 동반자 의식 없는 선교의 일방 통행적인 행태를 낳았다. 이제는 협력선교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너무 준비가 없었다는 자기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협력정신의 발현은 구체적으로 선교사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선교라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선교사 선발에서 시작하여 선교기구 관리,선교행정과 선교자금,선교사 훈련과 선교사 자녀교육 일반관리 등 제반 행정과 관련한 차등취급을 청산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선교의 인사관리 및 행정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 시대가 나눔선교의 시대라는 것이다.

 

 제 1세계가 사라지고난 후 제 3세계적인 가치질서가 한동안 자리하면서 문제된 것은 식민지유산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과 청산이 제3세계 교회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교회속에서는 과거 남남관계나 남북관계에서 나타나는 선교적 긴장과 불평이 제거되고 대등한 동반자관계를 가진 보다 비판적인 협력선교가 이루어졌고 에큐메니칼 일치와 협력이 요청되었다. 그러한 세계 자체의 변화를 외면한 한국교회는 교파주의적 선교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통제되지 않는 선교사들의 지나친 경쟁과 취약한 재정지원 그리고 무었보다도 문제되었던 선교지원금남용 문제 선교사 자질론을 제기 할만큼 준비되지 못한 인력을 투입하는 일 등이 이러한 상호불신을 조장하였던 것이다. 세계화는 양면성이 있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시장경제구조속으로 재편되는 해당사회의 구성원들은 정보혁명과 함께 밀어닥친 지식 때문에 훨씬더 영리해지고 지혜로와 지기 시작하고 신학적 성찰없는 선교전략과 일하는 방식을 고수하려는 파송자들 사이에는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신학적 자기반성은 본질적으로 선교사 자신에게 큰 유익이 되지만 사회경제적 격변 속에 처하여 있는 선교단체나 선교전략가에게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의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1932년 인디아에서 오랜동안 교육선교에 매진해 오던 도날드 맥가브란은 어느날 선교 콤파운드 안에서 아직도 개종하지 않은 불가촉 천민을 만난다.이 불가촉 천민은 그동안 21년간이나 선교 콤파운드안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그가 불가촉 천민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누구도 접촉하려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상 오늘날 인디아 사회에서도 문제되는 카스트 제도 때문에 이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의 가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카스트제도 아래 신음하고 있는 2억의 인디아 불가천민들이 힌두교 교리에 따른 인간 됨의 박탈과 인권유린의 대상들이 기독교 선교의 대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잔인한 카스트 제도안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도날드 맥가브란의 선교적 대전환은 사트나미 라는 불가천민들에 대한 선교적 각성을 불러 왔다. 바로 이 점에서 선교지에서의 현지화는 매우 중요하며 해당 사회의 취약적을 극복하기 위한 선교적 목회적 공동노력에 따라서 선교의 성패는 갈리게 된다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된다. 더군다나 오늘날 개방화 물결속에 휩쓸린 인디아 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불가촉 천민들인 달리트들의 각성된 의식과 사회 참여의식의 고양은 급증하고 있는 도시인구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도시선교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단지 소외당했다고 선교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 아니라 급속한 사회변혁의 와중속에서도 교회성장의 가능성을 주목하면서 다가오는 새로운 미래사회의 선교적 가능성에 도전하여야 한다는 중요한 단서를 찾게된다. 실제로 많은 경우 선교라고 해서 굳이 거주 인구가 희소하고 발전 가능성이 떨어지는 농촌이나 변두리를 찾아나서는 선교자는 우선적으로 선교지원금이 없거나 아니면 선교적 공격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다. 그러니까 아시아의 대도시 마닐라와 북경과 자카르타와 방콕의 중심부로 밀려나오고 있는 주변부 인생들의 진출을 정면에서 맞을 수 있는 선교전략은 과연 무엇인가.

 

더군다나 최근 해외선교의 열기가 식어지고 북한선교의 열기가 교회를 덮치면서 불기 시작한 사회복지선교에 대한 관심은 그나마 겨우 붙어 있는 한국교회의 해외선교의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에서 대규모로 투자해야하고 강력한 선교적 진출을 지원해 주어야 할 교회로서는 더욱 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세계화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는 물가앙등과 경제지표 상승은 가뜩이나 어려운 선교사들의 입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뿐 아니라 필리핀을 중심으로 하여 인도차니아 반도나 인디아로 나누어지는 아시아 선교권의 지리적인 경계선에는 북한선교에 대한 교회의 관심에 짓눌려서 더 이상의 진출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한 선교적 진출도 따지고 보면 중국아니 북한 진출 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관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까 자연 인디아 정도에서는 한국 선교활동은 땅끝 처럼 느끼고 무슬림 선교는 회소한 형편이다. 그만큼 우리 문화의 특수성이나 배경에서 비추어 볼 때 민족성과 상호배치되는 면이 너무나 많다. 물룬 여기에는 막강한 선교자금도 필요하고 앞서가는 선교 지도력도 있어야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교적 신학적 비전이 있어야만 그때 선교의 물꼬를 뚫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논의의 결론을 내려야 하겠다.

 

첫째 중요한 것은 세계화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 상황에 대한 통찰력있는 연구가 반드시 유효하다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 라는 대륙에 대한 지역 전문가들이 많히 배출되도록 기대해 본다. 아시아를 알고 아시아를 이해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많이 읽고 접축하고 인디아의 고전인 산스크리트어로 된 자료를 전산화하여 국제특허를 받은 한국학자 처럼 또는 히말라야 산을 오르기 위하여 북음을 무릎쓰고 도전하는 한국인 알피니스트들 처럼 무언가 강인하고 끊질긴 한국인의 기상을 가지고 현지화해 나가야 한다. 한때 한국교회의 미국 선교사들 가운데는 한국선교를 지망해 와서는 아예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가정을 가지는 선교사들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16세기에 마테오 리치가 현지화를 위하여 사서오경을 공부하고 천문과 수학 그리고 서양지리와 각종 시계 등 문물을 소개하면서 서방에 중국문화의 실체를 소개하면서 천주실의를 짓고 흠천감을 설치하여 중국문화와의 교감의 폭을 심화시켰다. 지금도 그런 헌신적인 현지화를 실천하여 그 땅에 뼈를 묻겠다고 하는 강인한 결의를 다져야 할 것이다. 단기 선교사 처럼 언제 떠날지 모르는 처신으로는 현지화란 기대할수 없을 뿐아니라 피상적인 문화접촉과 교류 때문에 오히려 양국간에 깊은 불신과 상처를 남길 수있다. 아시아 선교에는 윌리암 캐리, 아도니람 져드슨, 그리고 스탠리 죤스, 시 에프 앤드류스 등과 같은 전설적인 선교사들이 있었고 스테판 니일이나 레슬리 뉴비긴 같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인도와 영국간에 깊은 문화적 교류와 연대를 깊이 나누기도 하였다.

 

둘째는 전문화이다.

 

선교전문가 지역연구 전문가가 나와야 한다. 해당지역에 대한 문제는 어느 누구 보다도 그 사람이 가장 잘안다 할 만큼 문서에 능하고 인적 교류에 폭이 넓은 전문가가 나올 때이다. 정보혁명은 고도한 인력개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정보가 돈이 아니라 돈이 되는 인간관계가 정보를 매개로하여 이루어진다. 경쟁력있는 정보분석과 현지사정에 밝은 전문가 그룹이 절실히 요망된다. 세계복음화를 달성하겠다는 투철한 소명감은 기본적으로 든든한 기초적인 자질에서 비롯되도 우수한 두뇌가 투입되어 만들어 내는 현지화는 보다 강력한 현지화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파송에서부터 시작하여 현지교회와의 협력관계 설정 그리고 지속적인 교류관계를 생각할 때 보다 구체적인 나눔선교의 의식있는 전문가 집단이 나타나서 한국교회의 아시아선교에 투입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특별히 세계화성과 관련하여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정보화 지식화의 추세는 걷잡을 수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확산되고 있다. 하나로 통합된 세계내에서 정보와 지식의 확산이 지연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생산자와 소비자는 분초를 다투면서 정보와 지식을 선점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화 상황속에 처한 한국교회의 선교전략은 마땅히 바뀌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정보 데이터 구축과 첨단장비 그리고 우수두뇌의 확보는 내일의 선교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공산이 크다. 물론 보병이 있어야 승리의 깃발을 꼽고 현지 목회를 하는 선교자원이 있어야 해당 교회의 성장과 변화를 일르킬 수있다. 모두가 예언자고 모두가 선지자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좀더 냉정히 현단계 한국선교의 전환점에서 볼 때는 선교전략적 재고야 말로 매우 긴요하고도 절실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셋째 교회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예배공동체로서 친교공동체로서 만족하지 말고 봉사공동체로서 선교공동체로서 주저앉지 말고 증언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는 선교 공동체로서 주님의 제자를 양육하고 파송하는 선교적 비전과 영성을 가지고 온 천하에 다니며 주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선교의 공격성이 요청된다. 이를 위하여 교회에서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선교의 비전이다. 이를 위하여 교회는 선교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선교운동에 비전있는 지도자를 일선에 투입하면서 선교일선의 요구에 응답하여 선교인력을 육성하고 지원하며 신학적 전략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세계복음화에 헌신할 교회의 지도자는 우선 비전이 있어야 한다.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선교의 베이스 캠프다 공격목표를 향하여 여유있고 넉넉하게 접근하도록 돕는 역할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선교지도자를 통하여 선교운동의 대체적인 방향을 조정하며 선도하면서 교회를 대표하여 여론을 환기시키고 대중적 영성으로서의 지도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이번에 다시 한 번 겪은 것이지만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인접한 나라들은 우리보다 더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필리핀만해도 경제회복과 관련한 개방적인 조처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으며 태국도 IMF체제를 서서히 벗어나서 정상궤도로 진입하고 있으며 인디아의 개방속도는 인디아 전통사회의 붕괴를 예상할 만큼 급진전되고 있다. 반면에 인도차이나나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말레이시아의 독립적인 경제운용의 모범속에서 격심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다.인도와 파키스탄은 10k ton이나 되는 핵무기 수십기를 보유한 가운데 상호경쟁과 대립구조를 청산하고 평화공존과 경제개발을 위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시대는 요원하지만 세계경제 구조의 한계안에서 아시아 경제의 역량과 지위를 향상시키고 새로 태어난 유럽연합과의 공조속에서 결속력 있는 경제집단으로 21세기 경제대국으로 불리어 지는 중국 영향권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전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현행 미국의 일방적인 세계지배질서를 극복하기 위하여 기독교 무슬림 문명 충돌의 역사적 현장이 될지도 모르는 아시아 대륙에서 아시아인의 운명을 결정할 용기를 가지고 아시아 본유의 가치인 끈끈한 유대를 중시하는 아시아적 가치는 유착 자본주의 같은 부작용이 가져오기는 했지만 수천만명의 아시아인을 가난에서 구하기는했다. 그러나 아시아에는 여전히 가족주의 내지는 혈연주의가 자리잡고 있으면서 아시아적 운명공동체로서의 사회구조를 지키고 있다. 그러므로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 대로의 강고한 지배 가치를 가지고 있는 특유의 지배질서가 있으며 다원적 문화사회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인류 문명의 꽃을 피워왔다. 결과적으로는 아시아적인 생존방식은 인류문명의 위기를 구하고 상생 화해의 공동체로 인류가 찾아나가야 할 활로를 찾아내기 위하여 분투하여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선교전략은 선교에 임하는 한국교회 전체가 좌우의 갈림길을 두지말고 복음주의적 선교방향에서 진보적 선교방식이 상호교환하는 새로운 구조속으로 용해되고 상합하여 한국교회라는 강력한 일체감에서 선교에 임하도록 해야만 한다. 둘째 현지화 전략에 대한 방법론적 갈등은 선교사 훈련과정과 신학훈련속에서 언어의 장벽을 넘고 문화적 관습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보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 하겠고 특히 선교전략적 측면에서 현지화를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는 고급두뇌를 투입하여 좀더 강력한 선교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야한다. 이를 위하여는 선교자금의 공동관리 제도나 훈련 선교사들에 대한 일체감 있는 운영을 통하여 선교사로서의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서 어떠한 상황에 직면할지라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능력과 판단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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