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영원한사명)

[스크랩] 한국선교사의 자질 향상을 위한 몇가지 제언 (서정운)

수호천사1 2009. 1. 2. 09:53

한국선교사의 자질 향상을 위한 몇가지 제언

 

서정운 박사 (전 장신대 총장)

 

 

I.시작하는 말

 

선교운동의 유형에 변화가 오고 있다. 오랫동안 서방교회 위주로 계속되어 온 선교가 전통적인 피 선교지 교회들의 선교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교회의 선교적 책임이 커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선교를 더 온전케 하는 일에 보다 큰 관심을 가져야 하게 되었다. 흔히 선교의 4가지 기본적인 차원들로, 바른 목표의 이해와 설정, 때와 장소에 대한 정확한 판단, 적절한 방법의 발견과 실행 및 그것들을 잘 해낼 수 있는 바른 사역자를 거론한다. 그 중에서도 선교사의 문제는 핵심적이다. 다른 여건이 좋아도 선교사가 부실하면 선교도 잘못되는 반면, 제반 조건이 불리해도 바람직한 선교사가 사역하는 지역에서는 성공적인 선교가 수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선교적 역할이 중대해 질수록 한국 선교사들의 자질이 충실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II. 선교시대의 변천

 
A. 국제 선교시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대서양을 건넘으로 시작된 신세계 개척과 더불어 진행된 기독교선교는 오랫동안 서구 기독교세계로부터 기타 지역의 비기독교세계로 전개되는 일방적인 형태를 취했었다.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선교사들에 의해서 수행된 초기 개척시대는 물론이고 그 후의 개신교 선교운동도 마찬가지였었다.

 

할프 윈터(Ralph Winter)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이후의 개신교 선교운동을 3시기로 구분하였는데 제1기는 케리가 선교회를 조직한 1792년부터 1910년 (118년)까지로 해안선교시대(coastlands mission)로 보았다.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나라의 해안에 선교사가 상륙하던 초기 단계였으며 유럽교회가 주도하던 시기였다. 제2기는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가 중국내지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조직했던 1865년부터 1980년까지 (115년간)였으며 각지역의 내지로 들어가던 내지선교시대로 미국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제3기는 카메룬 타운센트(Comeron Townsend)가 위클리프 성경번역회(WBT)를 조직한 1934년부터 마지막 때까지 소외되고 망각된 자들을 위한(bypassed people)선교의 시대이며 제3세계교회가 주도적인 책임을 담당한다고 하였다.1) 물론 각 시기가 기계적으로 어떤 해에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앞의 시기와 다음의 시기 사이에는 중복되는 시기가 있다고 보았다.

 

윈터의 분석에 근본적으로 동의하나 1930년대부터 시작으로 보는 소외된 선교지대에 대한 제3세계교회의 주도적인 책임 역할론은 그 시기를 실제보다 수십 년 먼저 보고 있는 듯 하다. 왜냐하면 서구교회들의 선교주도가 차츰 가라앉으면서 세계선교라는 말로 표현된 형태의 선교가 눈에 띄게 나타난 것은 보다 후의 일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서구에서 기타지역으로 일방성을 띄고 진행된 이른바 국제 선교시대(the Era of International Mission)가 지나가면서 나타난 것이 세계선교시대(the Era of World Mission)였다. 어디서, 어디로(from-to)라는 일정한 형태로 진행된 국제선교의 시대가 지나고, 세계 모든 교회가 세계 모든 교회를 위하여 함께 선교하는 시대로 변했떤 것이다. 즉, 오랫동안 피선교지 교회로서 받고 배우기만 하던 교회들이 다른 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하여 기여하게 되면서 선교운동의 일방성을 극복하게 되었다.

 

이같이 장기간 고정되어 온 서구교회 위주의 사고방식이 세계교회안에서 변화를 맞게 된 데는 첫째로, 제2차 세계대전을 즈음하여 입을 서구기독교의 도덕적 지도력의 상처를 들수 있다. 기독교 국가로 자처하고 선교국으로 우대받아온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전쟁을 통하여 보여준 집단적 이기심과 부도덕성이 비서방세계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둘째는 서구교회 지도자들의 각성과 반성이다. 신대륙의 발견 이후에 진행된 서방기독교 국가들의 무자비한 식민지 확장과 제국주의적 통치에 이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타난 서방국가들의 소행이나 그 같은 비도덕적 활동을 방치하거나 동조한 교회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이 일부 교회지도자들에게 있었다. 셋째는 피선교지역의 끝나면서 우후죽순처럼 발생한 피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운동과 그와 동반된 민족주의 운동이 전통적인 서구교회 위주의 일방적인 선교활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때 비서방세계의 99.5%가 식민지였다. 그 후 25년간 이들 중의 99.5%가 독립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표출된 민족주의와 전통문화와 종교의 복고운동이 자연히 기독교와 선교활동을 배척하는 성향을 동반하게 되었다.2)

 

1947년에 열린 Whitby 선교대회는 전후의 제반 여건 때문에 그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독교의 최초의 국제적 모임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제2차대전의 상처와 피선교지역의 독립운동 및 민족주의의 대두와 함께 동서냉전의 기류 속에서 선교운동의 장래가 짙은 암운에 가리워져 있었다. 따라서 선교운동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반성과 방향모색이 불가피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발상은 선교한 교회들(older chruch- es)과 피선교지 교회들(younger churches)의 선교의 동역성(partnership)의 강조였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저항이 고조되는 시대에 동역의 필요성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 특히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대한 공통적 복종에 있다고 보았다.3) 이는 수백년 동안의 서방교회 위주의 선교형태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변화를 초월한 선교(supernationality of mission)을 지향하는 자세를 잡아 보려는 시도였다(4) 이같은 견해를 정한 과정도 특기할 만하였다. 선교의 동역성에 대한 문서를 내기 전에 선교하는 교회의 대표들과 피선교지 교회대표들이 따로 만나 같은 주제로 토의한 후에 그들의 보고서를 내었는데 양편의 보고서가 거의 동일하였다. 주요한 사항에 대해서 서방교회와 피선교지 교회 대표간에 의견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5) 그 정도로 선교 지도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진행된 서방교회 위주의 선교시대의 종말에 대한 인식이 무르익었던 것이다.


B.세계선교시대


1960년대에 이르러 국제선교시대로부터 선교하던 교회들과 피선교지 교회들이 함께 오고가며 협동하는 형태의 세계선교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주장들이 나오긴 했었어도 실제로 2/3세계교회들의 선교가 주목받을 만한 형세를 보였던 것은 그 후였었다. 1963년 멕시코 선교대회에서 나온 '6대륙의 선교'(Mission in the Six Continents)나 '교회들의 상호협력'(Mutual Assistance Among the Churches)같은 말들이 1960년대 세계선교에 가장 유명한 구호가 되었다.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모든 교회들을 위하여 (from and for all the churches) 동서남북으로 왕래하며 협력하는 시대로 탈바꿈한다는 의식변화가 뚜렷하였다. 실제적으로 이 시기(1970년대)가 2/3세계교회들이 부흥하고 선교열도 고조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상대적으로, 선교를 주도해오던 서방교회들은 현저하게 쇠퇴의 기미를 보인 때이기도 하였다. 적지 않은 서방선교사들이 안식년으로 고국에 돌아와서 자기가 선교하고 있는 지역보다 더 세속화되어 있는 것을 느끼고 당황하게 되었다. "전에 안식년은 현지에서 돌아와 기독교세계의 따뜻한 품에 안겨서 쉬고 재충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볼 때 오늘의 기독교는 중심지(heart)가 없다. 고국에 오면 따뜻한 품보다 찬바람을 느낀다"6) 는 마삼락의 말에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미 레시리 뉴비긴(L. Newbigin)은 1950년대말에 전통적인 선교국과 피선교국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제 선교는 지리적 개념으로 차이를 구분하기가 불가능하고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뿐이며 어디나 선교의 근거가 된다(homebase is everywhere)는 점을 강조하였다.7)


C. 3분지 2 세계교회 선교시대


지난 20여년 동안 진행된 세계선교시대가 다시 새로운 선교행태로 변모하고 있다는 지적이 최근에 이르러 나오고 있다. 이제 세계는 바야흐로 2/3세계교회 선교시대로 돌입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서방교회가 일반적으로 비서방권으로 선교하던 국제선교시대의 양상과 대조적인 형태로 선교운동의 흐름이 자리를 잡는다는 주장인것이다.

 

1972 Fuler 신학교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3,404명의 선교사들이 210개의 2/3세계교회선교단체를 통해 파송되었던 것으로 나타났었다. 1980년에 행한 연구에는 선교단체수가 743개,선교사의 수가 13,000명 정도로 증가한 것으로 보였다. 그 후 1988년의 조사에는 35,924명의 2/3세계교회 출신 선교사들이 118개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파송 단체수는 1,094개나 되었다. 이는 8년 동안에 351개 단체가 더 생긴 것이며 선교사의 증가율은 매년 13,92%였던 것이다. 이같은 추세로 증가한다고 치면 2000년에는 164,000명 정도의 선교사들이 2/3세계교회에서 파송될 듯하고 그 수는 전체 선교사들 중의 약 55.5%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8) 동시에 2/3세계교회들이 선교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 세계복음화가 더 촉진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근거로는,

 

1) 선교사들의 사역범위 확장이다. 오랫동안 서구선교사들이 들어가지 못했던 지역에 2/3세계선교사들이 들어가기가 용이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이다.

 

2) 2/3세계 선교사들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문화적 적응이 서구인들보다 용이한 장점이 있다고 본다.

 

3) 선교비용의 절감 때문이다. 2/3세계교회 출신 선교사들의 선교비가 서방교회 출신 선교사들보다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9) 2/3세계선교사들이 갖는 공통적인 약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선교훈련의 미비, 선교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교회, 선교회 및 선교사 자신이 반복하는 시행착오 및 정치적, 경제적 미약성 때문에 당하는 고충들이 있으나, 점차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정치, 경제적 조건과 축적되는 선교경험들이 앞으로 이같은 취약점들을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D. 한국교회와 선교


이와 같이 3분지 2 세계교회의 선교시대의 돌입과 함께 한국교회의 선교적 책임이 증대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여년간은 한국교회가 상당한 교세성장을 이룩함과 동시에 선교의 열의도 고조된 시기였다. 1979년에 93명에 불과했던 한국선교사들의 수가 그후부터 급증한 것은 그 같은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선교정보연구센타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1979년 93명의 선교사가 1992년에는 2.576명으로 2.769%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 보고서는 1982년에서 1986년 사이에 160%,1986년에서 1989년 사이 230%,1989년에서 1990년 사이 140%,1990년에서 1992년 사이에 150%의 성장세를 보였음을 나타내고 있다.10)

 

한국선교사들의 선교대상 국가들도 1979년의 26개국에서 1992년 현재 105개국으로 급종하였다.11) 한국선교사의 수가 이같은 추세로 앞으로도 계속 급증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이 보고서에 의하면 90년대에 들어오면서 80년대보다 성장의 약세를 느낄 수 있으나 북방선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다시 급성장세로 전환하리라는 기대도 가질 수 있다(아래표 참조).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파송선교사 중에 북방선교사 비율
 연도    기수    북방선교사   연도    기수    북방선교사
 90년  (봄7기)    없음        91년   (봄9기)   없음
       (가을8기)   "                 (가을10기) 20%
 92년  (봄11기)    34%        93년   (봄13기)   41%
       (가을12기)  28%              (가을14기) 29%

 

한국교회의 성장과 선교에 대한 열의, 약소민족교회로서 고난을 통해 지녀온 독특한 신앙체험을 섞은 영성, 온누리에 흩어져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선교에 힘쓰고 있는 점들과 맞물려 한국교회에 대한 선교적 기대도 고조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선교현장에서 우리에게 감지되는 고무적인 경향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70년대에 선교유보(moratorium)을 앞서서 제창하고 나갔던 가투(Gatu)의 교회인 동아프리카 장로교회(The Presby - terian Chruch of East Africa)가 지금은 한국선교사들을 요청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12) 이같은 희망적인 면과 함께 한국교회선교가 안고 있는 문제는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 선교단체와 교회들 간의 갈등, 선교사 선정과 훈련문제, 선교사역의 혼란과 불연속성 등 적지 않게 지적되고 있음이 사실이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된다는 점에는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다.

 

III. 선교사의 자질

 

선교를 논함에 있어서 선교사 자신의 중요성을 논하는 것은 선교운동사 속에서 선교의 결실이 신학이나 전략보다도 선교사 자신이 어떤 사역자였느냐 하는 것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독교 선교 전체를 말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서 세상을 화목케 하시기를 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 그 사람"(the man Jesus Christ)13)를 핵심적으로 보는 것과 같다. 미 장로교회의 1967년 [고백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 및 재림이 교회의 선교의 유형을 설정했다."14)는 말도 그런 뜻이다. 바울 선교에 있어서도 바울이라는 사람을 놔두고 바울 선교를 논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윌리암 케리가 위대한 선교사라는 것은 그가 탁월한 선교 전략가였을 뿐 아니라 영국을 떠나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을 선교지에서 헌신한 그 인간 자신의 위대성에 기인한 바가 크다. 위대한 선교사역은 위대한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선교하는 그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에는 선교비 모금을 잘하고 쉽게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선교열을 고조시키는 사람들을 유능한 선교사 후보자로 보았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바람직한 선교사들의 성품(personality)에 대한 연구 결과, 그렇게 유능하게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상당수가 성격장애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러는 격정적이고 극적으로 과장하면서 쉽게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유능해 보이지만 그들 중에는 성격적 결함 때문에 시종여일한 일관성이 결여되며 도덕적 판단력이 분명하지 않은 때가 많고 결국엔 선교에 실패하는 사례가 허다하게 발견되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15) 그러므로 선교사가 어떤 인간이며 어떤 동기와 정신으로 선교에 임하느냐 하는 것이 선교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이 된다. 그 중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고려해야 될 몇가지 점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A.사랑 (Compassion)


선교의 동기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현실도피, 낭만적인 모험심, 해외생활에 대한 호기심, 명예심 및 인도주의적 박애정신 같은 동기들도 실제적으로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선교의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던 것은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순종, 사랑, 종말적인 기대(exchatological expectation),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나간 수백 년 동안 선교운동을 진행시켜온 중요한 동기는 순종과 사랑이었다. 이같은 현상은 현재에도 변함이 없다. 특히 선교운동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윌리암 케리 이후의 개신교 선교운동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개신교 선교운동을 지배해 온 동기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는 마태복음 28:18-20 의 말씀이었다. 윌리암 케리가 아직도 선교에 대한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 영국교계에서 선교에 대한 선각적인 깨달음과 확신을 가지고 근대선교운동의 개척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해외개척으로 인하여 접해진 미개하고 비기독교적 이방 세계의 실태에 대한 정보들과 해외진출에 대한 모험심 등에 마태복음 28:18-20의 지상명령을 결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케리는 '복음에 접했을 때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의무라고 하면 복음을 가진 자들은 믿음의 순종으로 그 복음을 모든 족속들에게 전파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다"16)라고 하였다. 개신교 선교운동의 선언문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그의 문서(An Euquiry into the Obligation of Christians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s)속에서도 그는 지상명령에 대한 복종을 논리정연하게 강조하였었다. 복종하여 "가라!"는 것이었다. 케리 이후 개신교 선교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영국교회의 선교의 주된 동기가 순종에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국선교운동에 혁혁한 공헌을 한 교회선교회(Church Missionary Society)의 총무로 오래 동안 19세기의 영국 선교의 정책을 주도했던 헨리 벤(Henry Venn)도 CMS의 창시자들의 선교동기를 순종이라고 하였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들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개인적으로는 복종하기를 원했던 사람들이었다"17) 라고 하였다.

 

19세기에 일어났던 미국 선교운동의 주된 동기도 마찬가지였다.18) 1812년 미국 개신교회의 최초의 선교사 중, 한 사람으로 파송되었던 저드슨(Adonir- am Judson)은 그가 선교사로 헌신케 된 것이 믿음으로 된 것인지 아니면 사랑에 의한 것인지를 질문 받았을 때 두가지가 모두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로 하여금 선교사로 헌신하게 한 것은 그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임한 그리스도의 선교명령에 순종한 것이라고 하였다.19)세기를 위대한 세기, 또는 선교의 세기로 만들며 미국교회로 하여금 그 후의 개신교 선교운동의 주류로 부상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이룩했던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도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 동기였다. 1886년 7월, 헐몬(Mt.Hermon)에 북미의 87개 신학교와 대학교에서 251명의 학생들이 모여 하기 수련회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선교를 위하여 회집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와일더(Robert P.Wilder)를 중심한 몇 사람의 선교비전에 불탔던 참석자들이 선교를 위한 기도운동으로 끌어감으로써 선교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특히, 수련회 기간에 초청된, 중국 선교사로 활동중이던 에쉬모어(William Ashmore)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명령을 불복종해도 된다는 이유를 말하라!"20) 라는 강한 도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886년 모임의 강사 중의 한 사람이었고 미국교회 선교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피어슨(Arthur T.Pierson)도 예수의 지상명령이 선교에 가지는 의의에 비교하면 다른 모든 동기들은 별로 언급할 만한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21) 학생지원운동의 실제적인 지도자격이었고 1910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서 국제 선교회의의 의장직을 맡는 등 20세기 전반기의 에큐메니칼 선교운동을 주도해 온 존 모트(John Mott)도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을 선교에 있어서 첫째며 가장 중요한 동기로 이해하였었다.22)

 

영국과 미국뿐 아니라 다른 중요한 선교국이었던 독일이나 화란의 경우도 영. 미와 같았다. 그 시대의 화란 신학계를 대표했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 ham Kuyper)는 "모든 선교는 하나님의 주관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나 동정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23) 라고 하였다. 또한 독일의 선교신학을 주도했던 바르넥(Gusfaf Warneck)도 독일에서 가장 일반화된 선교의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순종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24)실제로 이같은 의식은 지금까지도 복음주의적인 선교운동을 이끌어 오는 지배적인 동기가 되어 있다.25)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과 더불어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동기는 사랑(love 또는 compassion)이었다.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에 비하면 사랑을 순종보다 더 원초적인 선교의 동기로 보아야 한다. 선교의 주체자인 하나님의 선교사역의 동기는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의 선언문인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였다. 예수선교를 요약해서 기록한 마태복음 9:35-38에서 마태는 예수선교의 동기를 "무리를 보시고 마음에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36절)고 그의 사랑(compassion)에 있었음을 명기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발단된 선교가 우리에게는 명령으로 위임된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사랑의 동기가 앞서서 지배하고 순종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전통적으로 선교운동은 사랑의 발로보다는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쪽에 편중되어 있었다. 바울도 그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선교했던 것이 사실이나 보다 더 중요한 그의 중심에 갖고 나갔던 동기는 사랑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이다. 그가 고린도후서 5:13-14에 그의 선교사역의 동기를 고백할때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는 그의 선포는 그의 심정을 강력하게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이 그 동안의 선교를 진행시켜온 핵심적인 동기이지만 사랑과 분리되거나 조화를 이루어야 온전해지는 것이다. 가끔,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이 지배적인 동기로 진행된 선교는 일방적이고 친권주의(paternalism)에 빠지거나 전투적이고 승리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많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가령 친권주의라는 것은 선교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대체로 4단계를 거쳐간다고 보는데 그 시기들마다 선교사의 위상이 바뀌게 된다. 첫째 단계가 개척자(pioneer), 둘째가 가부장(parent), 셋째는 동역자(partner)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참여자(participant)이다.

 

개척자와 가부장격의 시기에는 선교사가 지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역자의 단계에는 현지교회와 동등하게 동역하게 되고 참여자일 때는 현지교회의 초청으로 오며 그들의 사역을 보조하는 협력자가 되는 것이다. 성공적인 선교는 가능한 한 빨리 마지막 단계로 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친권주의에 빠졌던 사람들은 첫째와 둘째 단계에 의도적으로 오래 머물었던 사역자들이었다. 보쉬는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위주의 선교가 교회선교로 하여금 복음위주가 아닌 율법적인 성격을 가지게 했다고 하였다.26) 사랑과 자비가 부족한 채 명령에 대한 복종에만 근거한 선교는 요나와 같은 사역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요나는 억지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의무감에 의해서 자기 직무를 수행한 것이다.아무도 그의 메시지를 듣고 홰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설교하는 기이한 사역을 하였다. 요나의 경우를 통하여 사랑의 고통이 동반되지 않는 선교가 갖는 위험성이 어떤 것인지를 알수 있다. 서방교회 선교운동의 부정적인 면들 가운데는 그들의 선교 동기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데서 온 점도 있음을 감안하고 우리가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의무감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와 사랑으로 의무감을 가지며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와는 차이가 있다. 단순한 책임 때문에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와 사랑을 품고 가르치는 교사와의 차이도 중요하다. 선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가 사랑함으로 가서 일한다"(We love,We go,We serve)라는 존 스토트(John Stott)의 명언이 우리의 선교운동에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27) 그들을 위하여 (for them)에 기울어지지 않고 그들과 사랑으로 함께 (with them)있는 것, 일하는 것, 사는 것이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성육신적인 선교이다. 그같은 동기는 사랑으로 가능한 것이다.


B. 열정(Passion)


열정이 없는 하나님의 일꾼은 기본적인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성경이나 교회 역사를 통하여 알려진 사람들은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이 75세의 노년기에 정들어 살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향해 간 것이나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겠다고 모리야 산으로 올라간 그의 행동은 장렬한 것이었다. 그때, 그에게는 합리성, 인간의 정이나 도리를 박차고 나가게 하는 열정이 있었다.

 

모세도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되는 한이 있어도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구했던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예레미야나 다른 예언자들의 특징도 열정적으로 일했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바울도 위대한 열정가였다.'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낸다'(고후 11:2)고 말한 대로 그는 열정적으로 살고 선교하였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는 말로 시작하여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라고 반문하던 때, 그리고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라고 했을 때, 또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롬9:1-3)라고 원하던 그의 정신은 열정으로 충일되어 있었다. 그가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해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라고 했던 때나, 가이사랴에서 눈물을 흘리며 만류하는 교우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느니라"(행21:13)고 선언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모습은 격렬한 바가 있다. 이같은 열정(passion)은 사랑(compassion)에서 분출된다.28) 그리고 보쉬는 이의 근원적인 뜻은 수고와 순교로 보고 있다.29)많은 사람들에게 성육신은 단순한 신학적 관념에 그칠 뿐 선교수행의 기본방식과 사건이 못되는 것은 이 열정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십자가가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그를 증거하는 자들이 따라야 될 유일한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구속의 상징처럼 여기며 사는 것도 이같은 거룩한 열정의 결여 때문이다.30) 그러므로 선교사는 항상 열정적으로 살고 증거하는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C. 겸손(Humility)


선교사는 겸손해야 한다. 첫째로, 그 인간 자체가 겸손해야 한다. 선교가 열정으로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열정이 수고와 헌신과 순교에로 나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교는 현세적인 득세를 도모하는 일이 아니라 겸손과 약함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더 효능 있게 증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교의 이같은 역설적인 특징은 이사야서에 제시된 고난의 종의 노래를 통하여 잘 묘사되었다. 외형적으로 강력한 것이 선교적으로도 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와 반대가 된다. 이스라엘 민족도 역사 속에서 강대해졌을 때 주변민족들과 멀어졌고 이스라엘이 약해지고 고난을 당할 때 오히려 예언자들을 중심으로 한 선교적인 역할이 활발하였었다. 이같은 파라독스는 예수 선교에서 극명하게 입증되었다. 예수의 성육신 자체가 겸비의 실천이었다. 빌립보서 2:5 이하에 바울이 쓴대로 예수는 하나님과 본체로서 그와 동등됨을 포기하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태를 입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였다. 그같은 겸비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끊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0)고 하였다. 선교의 목적이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끊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인데 그같은 결과는 겸비를 통해 온다는 것이다. 자기를 비우고 약해지는 용기없이 선교적인 성품을 지니기 어렵다. 윌리암 케리도 그런 면에서 그 반열에 오른 사람이었다. 아이삭 왓트(Issac Watts)의 찬송시 중에서,케리가 자기 스스로 택했던 다음과 같은 그의 묘비명에서 그의 겸비를 볼 수 있다.

 

허물과 약함으로 어쩔 수 없는 이 벌레는 주님의 친절한 팔에 안깁니다. 나의 예수, 나의 전부이신 당신이 나의 힘과 의가 되소서

 

케리는 그가 특이한 인물로 기억되기를 추호도 원치 않았다. 그는 다만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의 의무를 다하려고 애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31) 여기에 케리의 위대성이 있었다. 둘째로 선교사의 겸손은 선교 대상이나 현지인과 교회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태도와 삶을 포함한다. 선교사는 보냄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보낸 교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가르치는 자나 지도자의 우월감을 갖기가 쉽다.

 

1970년대에 본격화되었던 선교유보(moratorium)의 주장은 그 핵심적인 이유가 그런 점 때문이었다. 동부아프리카 장로교회의 총무였던 존 가두(John Gatu)는 선교유보의 필요성을 이렇게 주장하였다. "오늘 우리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쌍방이 반성하고 미래의 바람직한 관계를 재형성하기 위하여 5년 동안 모든 선교사들을 철수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3세계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선교운동은 선교지 교회의 자아성을 해치는 것이다."32) 그와 비슷한 입장에서 필리핀의 낙필(Emerito P. Nocpil)은 "서양교회와 아시아 교회의 동역관계는 항상 강자와 약자간의 동역이었다. 이것은 약자 위에 군림하는 서양교회의 지속적인 주도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오늘의 선교사는 제3세계에서 성장하는 세대들에게 서구 제국주의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오늘의 선교구조는 생기가 없는 죽은 구조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아시아에 상존하는 것 같은 제도하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본국 Verghese도 '오늘날의 선교형태는 경제적 제국주의라 할 수 있다. 구호기관과 선교회가 돈줄로 제3세계교회를 조종하고 있다. 아직도 외국돈, 생각 및 사람들이 제3세계교회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교회의 선교자체가 복음의 최대의 적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34) 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왜 선교사 배척이나 유보운동이 일어났느냐는 문제를 놓고 다양한 설명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티펫(Alan R.tippett)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이유를 지적하였다.35)

 

1)외국인 행세(사람됨, 생활 형식, 언어, 고국에 대한 무의식적 충성심 등)
2)식민주의적 연관성 문제
3)친권주의적 경향(paternalism)
4)국가 개발이나 발전에 소극적이었고 장애가 되기도 한 점
5)문화와 관습에 대한 불필요한 부정적 태도
6)토착화 형성의 실태
7)종교경험이나 의사전달에 있어서 토착적인 형태들을 고안해 내지 못한 점.

여기서 4),6),7)을 제외한 1),2),3),5) 등은 선교사의 겸손의 문제와 직결된 이유들이다. 선교유보를 주창했던 사람들이 선교 자체를 반대하거나 선교사들을 통털어 배척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F.파구라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성명(statement)에서 명백하게 표명되었다.

 

 만일 그대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과
 그대가 여기까지 가져온 문화적인 습성을
 구분하지 못하고 가르친다면 그대는 돌아가야 한다.
 만일 그대가 희망도,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는
 불공평한 고난에 시달려 지쳐 죽어가는 사람들의
 사건들과 불안과 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국적에 대한 충성과 성실이
 "권세있는 자를 낮추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기 위하여
 (눅1:52)"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순종보다
 더 강한 선교사는 돌아가야 한다.
 그대가 구원하러 온 잃은 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없다면
 그대는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대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것과 같은 오류를 대가로
 지불하고서라도 사람들과 교회가 성숙해지고 독립하고
 책임감있는 단계에 이르는 것을 기뻐할 수 없으면
그대는 돌아가야 한다.
 그런 것이, 돌아가야 될 때가 되었다는 징조들이다.
 그러나 그대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이 진통기의 모험과 고통을 견디어 나갈 용의가 있다면,
 복음이 오는 시대의 희망의 선포와 증언할 뿐 아니라
 이미 역사를 변화시키고 있는 희망과 자유에 대한
 선포와 확언이라는 것을 아는 기쁨을 우리와 함께 경축하고
 이제야 겨우 눈을 뜨기 시작한 우리를 봉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그대의 소중한 것들과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대는 머물러야 한다.
 가서는 안된다!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리스도가 주인이며 개척자로서 수행할 거대한 일들을 위해
 손과 피가 너무도 부족하다.36)

특별히 지금처럼 선교사들이 선교 대상국의 정치적 제재와 전통문화 및

종교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에서는

겸손한 성품과 섬김의 정신이 선교의 불가결의 요건이 된다.

 

IV. 맺는 말

 

선교의 비전과 열의가 없는 교회는 쇠퇴하는 교회이다. 선교열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교회가 부흥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선교의 열의가 뜨거울 때가 위기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때가 자만과 타성에 빠지기 쉬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계속해서 생동력을 가지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선교의 일선에서는 선교사들의 책임도 무거운 것이다. 선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구비하고 선교라는 고귀한 직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긴장어린 노력을 감행하는 선교사들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랑과 열정과 겸손의 면에서 더 충실하고 균형을 갖춘 선교사들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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