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영원한사명)

[스크랩] 네비우스 선교방법과 근래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안대욱)

수호천사1 2008. 12. 31. 15:56

네비우스 선교방법과 근래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안대욱 선교사


  서론

IMF시대를 맞이한 한국교회는 지금 중국선교에 있어, 멀지 않은 과거의 역사, 특히 네비우스 선교사의 정신을 새로이 배우고 다시 일어나 뛰어야 할 때이다. 모름지기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하여 삶과 사역의 모든 현장에서 우리는 필경 역사 속에 일어났던 많은 부정적 현상을 재현하고 있는 점이 적지 않다고 보는데, 특히 한국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또 본인이 중국선교 현장의 일꾼이요 세계선교 역사에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한 인물이었던 네비우스 선교사의 140여 년 전의 선교원리의 빛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는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시대적인 요인들 때문에 요즘 잠시 좀 주춤한 것처럼 보이지만, 열심만으로 일하려고 하고 성숙되지 못한 모습을 수 없이 보여온 우리 한국교회의 대 중국선교 상황을 고려할 때 바로 지금 우리는 네비우스의 사상과 선교방법을 현대적 안목으로 다시 이해하고 그 긍정적인 면들을 우리의 중국선교 사역 현장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네비우스 선교방법은 삼자원리”라고 말해도 될 수 있을 만큼, ‘삼자’(자치․자양․자전)라고 불리우는 교회의 토착화운동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다. ‘삼자’라는 개념은, 중국선교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조금이라도 일반 선교의 역사를 공부해본 사람은 대부분 현재 중국의 관방교회인 삼자교회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개념도 아니며 그 어느 중국사람들이 만들어낸 단어도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과거 중국땅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던 미국선교사 네비우스가 선교현장에서 특별히 제창하고 실천한 개념임을 안다.

물론, 이 삼자라는 개념의 근본 정신은 본래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 특히 바울사도의 사역과 사역의 정신에 나타난 것(Nevius,1899, 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 : Beyerhaus, 1964, The Responsible Church and the Foreign Mission,p222)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성경적인 사실과 근본정신에 근거하여 일찍이, 네비우스보다도 먼저 영국의 Church Missionary Society의 총무였던 Hennry Venn과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의 총무였던 Rufus Anderson이 각기 근대교회의  선교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명백하게 정리 제창했던 선교이론이었다. 그것을 1854년 중국에 도착하여 선교사역을 하기 시작했던 미국인 선교사 John Nevius가 중국선교 사역의 현장에서 그것을 연구, 정리하고 실천했던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개념이다.


본고는 오늘날 얼마나 중국관방교회가 ‘삼자’를 성경적으로 시행하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논하려 함이 아니다. 즉, 토착화 및 상황화라고 하는 상당히 긍정적인 선교적 명제를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타협적 혼합주의적 성격의 언행 때문에 그동안 꾸준히 내외적인 지탄을 받아온 중국관방 삼자교회의 ‘삼자개념’에 대해 자세히 거론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본고의 목적은 그 동안 이 ‘삼자원칙’으로 인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고 하는 평가를 받아온 우리 한국교회가 최근 선교국 교회의 신분으로 중국선교사역을 전개해 온 여러 가지 모습들을 네비우스원리와 방법에 비추어 진단하고 앞으로의 사역의 좌표를 설정하는데 어느 정도 서로의 사고를 자극하기 위함에 본고의 목적이 있다.

물론, 네비우스원리 자체가 선교 초기단계 특별히 신생 선교교회가 독립교회로 되는 과정 혹은 초창기 선교활동을 다루는 제한된 이론(김영재, 1984, pp.112-121 ; 김남식, 1985, p.147)이다. 때로 한국교회사적인 면에서나 선교학적인 면에서 볼 때 여러 가지 미흡한 점과 일반적으로 모든 시대 모든 상황에 절대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닌다고 보는 정도는 다르나 각종 비평적 시각(이광수, 1917; Sheare, 1966; Conn, 1970; 전호진, 1971:94, 98; Brown, 1902; McGavran, 1974; Neil, 1974)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선교학적으로 충분히 고려해볼 때, ‘한국교회로 하여금 성경을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한 설교와 사경회로 차분히 발전하고 성장하게끔’(김영재: p.122) 인도되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괄목할만한 한국교회의 성장 혹은 미국교회의 한국선교의 성공요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보는 더욱 긍정적인 평가들(Park, 1929:160; 곽안련, 1971; 김영재,1984:114, 122)도 적지 않게 있어왔다. 또한 그 이론의 핵심에 사도바울의 사역론 가운데서 특히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대로 그대로 지내라”고 한 고린도전서 7장 20절과 같은 구절에 나타난 사상을 비롯한 다분히 성경적이고 역사적이며 실천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으며 실제 열매들을 보여왔으므로 그 누구도 네비우스원리의 공헌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본고에서 우리는 네비우스원리와 방법 가운데 나타난 긍정적인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다시 평가 수용하여 우리들의 중국사역의 기준으로 삼도록 제안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본인을 포함한 우리 중국선교 사역자들이 그러한 교훈을 통해 모든 면에서 깊이 생각하고 일하도록 자극을 받기 원한다. 지금부터 네비우스의 선교원리와 방법은 과연 어떤 것이며, 근자의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의 모습이 네비우스원리와 방법에서 어떻게 투영되어 나오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I. 네비우스 선교원리와 방법

A. 배경

1. Henry Venn과  Rufus Anderson의 토착
  교회설립 이론

Nevius에게 선교이론 및 사상면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Henry Venn과  Rufus Anderson의 토착교회 설립이론이었다. 근대 토착교회설립 이론의 첫 번 주창자인 영국의 Church Missionary Society의 총무였던 Henry Venn은 근대에 ‘삼자’의 개념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언급한 사람이었다. 1854년에 이미 그는 말하기를 “선교의 목적은 자치(self-governing)하고 자양(self-supporting, 혹 ‘자급’이라고도 번역됨)하며 자전(self-propagation)하는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선교회가 선교지에서 자립하는 교회를 설립하면 그 선교회는 곧 그 지역에서 죽어없어져야 한다...즉 선교사들은 아직도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으로 즉시 가야하며, 그들이 세운 교회는 교회 스스로가 성령의 인도아래 교회로서의 모든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Warren, 1971).

Henry Venn과 함께 Nevius에게 영향을 끼친 미국의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의 총무였던 Rufus Anderson도 역시 기본적으로 동일한 내용의 선교의 목적을 논하며 특별히 ‘삼자원리 혹은 삼자공식(’three-self' formula)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공식적으로 선교방법론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Venn이나 Anderson이 가지고 있었던 사상의 주요 관심사는 ‘금방 설립된 어린 선교지의 교회가 어떻게 하면 독립교회로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현재 우리의 중국선교 현장에서 역시 중요한 이슈라고 볼 수 있는 그런 관심사인 것이다(Beaver, 1965 & 1967).
 
2. 중국사역현지에서의 네비우스 선교방법론 


  연구의 노력

네비우스선교원리 혹은 방법의 배경이 되는 것들 중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가 당시 중국사역 현지에서 사역과정 중에 선교방법을 꾸준히 연구한 것이다.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로 파송받은 그는 처음 중국 동남부의 저장성(浙江省)의 해안도시 닝보에 도착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중국 동북부의 산둥성으로 옮겨서 사역을 계속하였는데, 사역과정 중 그는 당시의 선교사역 현황과 선교지 중국을 바라보며 꾸준히 연구를 진행하면서 동 연구결과들을 선교지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기고하기도 하고 연구서 형태로 간행하기도 하였다.

현지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선교사로서 아무리 연구에 시간을 들이고 애쓴다 하더라도 책을 출판하기 위해 연구와 출판사역에 전념하듯이 깊이 관여한다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며 이상적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 후대 네비우스의 체계를 자신의 표현으로 다시 정리 기술한 책이 Clark의『한국교회와 네비우스선교정책』이다. 이렇게 그는 선교사역의 방법론적 연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과거와 현재의 많은 선교사들에게 ‘생각하며 일하는 선교사로서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 결과 네비우스 선교원리라고 불리우는 이전의 Venn과 Anderson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또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을 후대에 전달해주게 된 것이다.  

3. 당시 한국 선교의 상황

네비우스의 선교이론은 네비우스 자신에게 있어서는 Venn과 Anderson의 이론적 배경을 제외하고는 그의 중국 사역의 출발점과 환경이 이론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한국선교의 상황, 특히 당시 한국주재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과의 접촉사건 및 한국에서의 적용 역시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이론의 형성 자체는 중국과 더 관련된 것이지만, 실제 사역이론의 적용 및 실천과 발전의 면에 있어서는 당시의 여러 가지 형편으로 인해 중국 본토에서보다는 오히려 한국에서 그 결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그의 사역정신은 중국보다는 오히려 한국에서 더욱 계승되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Underwood, 1908:109-110).

물론 그의 한국방문 강의는 단지 2주간의 짧은 기간의 일이었지만 25년간의 선교경험과 연구에서 나온 강의였다. 당시 동 수양회 참석자 중 최고참 선교사였던 마포삼열(Samuel Moffet, Quarter Centennial Report, p.8) 선교사의 표현에 의하면 그들 모두의 마음속에 선교의 기본원리에 대한 씨앗을 심어주었고..., 한국선교를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유익을 얻게 한 일”이었다. 1893년에 조직된 장로교정치체제를 따르던 당시의 모든 선교회들로 구성된 연합공의회였던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에서 공동으로 한국의 선교정책을 채택할 때 기본적으로 네비우스원리를 적용하게 되었다. 그러면 어떤 성격과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B. 네비우스선교방법의 전반 내용과 제 분석요약 

1. 네비우스선교방법의 전반 내용

네비우스가 선교원리와 방법을 소개한 글들과 책의 내용은 이미 위에서 Clark의 말을 인용하였던 것처럼 처음부터 책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들이 아니기에 논리적인 연결성이 결여되어 있는 씨리즈별 연구물이다. 그가 자신의 방법론이나 사상 모두를 논리 정연하게 하나의 책으로 정리된 것은 없다. 그후 네비우스의 사상을 깊이 연구한 후대의 선교사인 Charles  Clark가 네비우스의 여러 기록들을 참조하여『한국교회와 네비우스선교정책』이라는 책(1937; 한국어판 1994)에 그의 사상을 심도있게 정리 소개하였다. Clark의 글들이 네비우스원리 자체는 아니지만, 네비우스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대표적인 필독서 중의 하나이다. 아래에 Clark가 네비우스의 표현들을 직접 인용하면서 개괄적으로 소개한 네비우스 선교방법론의 전반적인 내용을 개괄해 보겠다.
(1) ‘옛 방법’과 ‘새 방법’의 대조

ㄱ. ‘옛 방법’


전통적인 방법을 말하는 이 개념은 주로 외국자금을 통해 사례를 받는 유급 현지인 대리자에게 의존하는 선교방법을 말한다. 외국자금을 사용함으로써 발전의 최초의 단계에서 현지교회의 성장을 북돋우고 자극하고자 노력하며 그 후 점차적으로 자금의 사용이 중단되기를 기대한다. 이 방식은 가능한 현지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가장 진보적이고 지성적인 사람들을 유급 매서인, 성경중개상, 복음전도자 혹은 유급 선교거점(또는 지교회)의 지도자들로 일하게 한다.   

ㄴ. ‘새 방법’


‘새 방법’(즉 네비우스원리)은 유급 현지 중개인(‘매개자’)의 가치를 덜 인정하며 그들의 수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또한 독립과 자기의존의 원리를 적용할 때 처음부터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적극적인 현지인 교회의 설립이 가장 빨리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이 방식은 현지 매개자로 고용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하심이 없는 한 자신들의 본 고향과 일터(직업)를 떠나지 않고 거기 그대로 머물러 있을 때 궁극적으로 훨씬 더 유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2) 좀 더 현대적인 표현으로 약술해 본, 네비우스 방법의 전반 내용


Clark(한국이름; 곽안련. 영문판; 1937년. 곽안련,한국교회와 네비우스선교정책,박용규. 김춘섭 옮김,대한기독교서회, 1994. 한국어판)는 19가지 질문과 주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대답을 제기함으로써 전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그가 네비우스의 대표적 저서인 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와 Chinese Recorder에 발표한 글들, Methods of Mission Work, China and Chinese, Demon Possession과 Nevius의 아내가 집필한 네비우스의 전기(傳記) 등의 내용들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 내용을 좀 더 현대적인 표현으로 다시 더 약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선교사로 하여금 현장사역을 어떻게 시작하게 할 것인가?


a. 본국에서도 기본 인격과 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열등한 사람은 처음부터 선교사로서 사역을 시작하도록 맡기지 말라. 


왜냐하면(네비우스 당시) 중국 사역은 이미 본토인으로 구성하여 지도 관리하는 쪽으로 양상이 변하고 있고 또 실제로 수많은 본토인들이 대단한 높은 덕성과 명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일할 선교사로서 경건과 정력 지적능력 등이 결여되면 안될 뿐만 아니라, 그 중 어느 한 면에서 탁월한 점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본국 내 사역의 어느 분야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못한 사람을 중국에 파송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b. 젊은 선교사로 하여금 사역을 시작할 때 장기사역의 준비사역부터 하게 하라.


인내심을 가지고 언어를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라. 자신의 선교회 및 관련지을 수 있는 타 선교회내에서 여러 가지로 간접체험을 쌓으라.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과업을 떠맡기 전에 타인들의 여러 가지 견해를 배우도록 하라(Clark의 위의 책, pp.71-76). 장기체류 선교사와 동역하지 않는 경우의 선교사에게는 5년이 경과하기 이전에는 그 어떤 새로운 선교기지를 설립할 책임과 의무를 맡기지 않는다. 

c. 본토 성도들 가운데서 선택한 개인적인 ‘조사’(helper)를 두어 항상 자기와 동역하게 하고 또한 당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돕게 하라(Clark의 위의 책, p.32, pp..78-79). 

d.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경우에는 지상명령과 사도들의 본보기가 시사해주듯이 무엇보다도 먼저 각 지방의 순회 전도사역을 두루 시행하게 하라.


순회전도 사역은 계획성 있게 하되 순회전도 사역을 나가서는 가능한 어디서든지 호기심을 보이는 군중들을 찾아 그들과 접촉을 가지라. 전도지를 자유롭게 뿌려 메세지를 심어 주라. 그리고 찾아가서 전도할 곳들은:

1) 중심지와 장터(매매하고 잡담을 나누는 곳)
2) 그 지역 사람들이 모여 한담을 나누는 곳(예; 당시 중국의 여인숙)
3) 현지의 학교
4) 마을(빛을 찾는 구도자들을 거기서 찾으라)
5) 각 사회계급의 사람들이 있는 여러 곳.


관리와 지식인대상 사역을 소홀히 하지 말라. 해당 지역이나 민족의 관습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여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 많은 교회가 처음에 여인들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런 경우 여성들은 남자들이 공식 지도자로 나타난 후에도 대단한 영향력을 계속 발휘하였다.


6)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들


군중을 향한 공개적 전도설교를 하는 것이 순회전도 때 필수 불가결하지만 구체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대화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e. 궁극적으로는 사역의 초기단계에서 ‘문필사역’(문서선교사역?)을 붙잡으라. 이것은 가장 무르익은 가장 풍요로운 열매이다(Clark의 위의 책, p.77).

<2> 새 신자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a. 자기 직업을 버리지 말고 그 직업에 그대로 종사하면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위해서 일하라고 하라. 바울처럼 일반 생업에 종사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하라.
b. 훗날에 일관되게 시행할 생각이 없다면 그 어떤 새 신자에 대한 정책을 고안해서 선례가 되게 하지 말라. 
c.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주의 교훈을 순종하는 사람이 바른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라. 현지의 전통종교들이 종종 가르치는 것처럼(예: 불교) 신자가 되기 위해(혹은 참으로 진리를 갈망하는 종교생활을 위해) 세상(사회생활)을 떠나 은둔하는 일이 기독교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라. 
d. 젊은 새 신자들의 새로운 열정을 충분히 격려 활용하라.
e. 재정적으로나 다른 어떤 면에서나 유약한 존재로 기르지 말라.
f. 일상 생업을 영위하는 가운데 계속 일반성도들에 대한 신앙훈련을 받게 하라. 때가 되면 그들 가운데서 자연적 점진적으로 교회가 기다리는 지도자들이 나올 것이다.   

<3> 성도들의 모임을 어떻게 인도관리할 것인가?

a. 모든 사람이 자기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배우고 또 자기보다 지식이 적은 다른  사람에게 배우도록 하라.
b. 한 집회점의 평신도 가운데서 한 명 혹은 몇 명의 영수(지도자)를 선교사가 임명하든지 아니면 그 그룹에서 선출하여 담당 선교사의 감독하에 ‘자발적으로 주일 예배를 인도하고 작은 신도의 영적인 이익에 시중드는 역할’을 하게 하라. 외국 교회의 자금을 사용하여 각 교회에서 상임으로 일할 유급 설교자를 세우지 말라. 교인들이 목회자를 청할 준비가 될 때에는 사례금을 지불할 준비도 될 것이다.


c. 소수의 성숙된 성도들을 따로 선택(임명)하여 ‘대소 순회교구의 선교사 예하의 유급조사’로 삼으라. 또한 짧은 기간동안 한시적인 순회조사들을 고용할 수도 있다. 가능한 이 모든 사역자들의 사례는 그들의 봉사를 받는 교회들(집회점들)이 부담하는 것이 더 좋다 (네비우스박사 자신은 그러한 대소 순회교구에 자기 예하의 두 명의 현지인 유급 순회조사를 두 명 두었는데 한 사람은 40개 지 교회 그룹을 맡았고, 또 한 사람은 10개의 그룹을 맡았다(Clark의 위의 책, pp.32-33, p.52, 70; Nevius, Helen, 1895,p.361).
d. 각 일꾼에게 책임내용과 한계를 명확히 규명해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 일을 잘 파악하게 할 뿐 아니라, 서로의 일 가운데 중복을 피하게 하라.

>영수 : 해당 집회점의 영적인 면을 돌보며 모든 모임을 인도한다.
>순회유급조사 : 선교사가 맡긴 자기 담당 교회들(집회점들)을 가능한 규칙적으로 방문하여 개교회의 영수와 상담하거나 어떤 모범적인 집회를 개최하고 학습교인들에 대한 훈련을 지도하는 등의 일을 한다.
>선교사 : 매년 2회 이상 지 교회를 방문하여 모든 사역을 감독하며 신입회원을 교단에 받아들이고 성례를 집행하며 모든 일꾼과 상담하고 영수를 임명하거나 승인하는 등의 일을 한다.
e. 도처에 새로운 싹을 틔우고 가지치기하며 발전할 것을 계획 실행하라.         
   
<4> 교회를 어떻게 경제적으로 자립(자양)하게  할 것인가?

a. 예배처소를 성도들 자신이 마련하도록 하라.


처음에는 보통 한 성도의 집이 예배처소가 된다. 나중에는 집의 일부를 개조하여 예배실로만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예배를 위해 특별히 건물을 세울 수도 있는데, 그때도 가능한 일반 주택과 유사하게 해야한다. 종종 그런 건물은 어떤 성도 개인 소유의 땅위에 건축하게 되며 표면상 그의 개인적인 소유물로 보이게 된다. 그렇게 하여 교회건물을 눈에 띄지 않게 함으로써 마을사람들의 적대행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b. 단일 지 교회(한 집회점)에서 유급목사를 모시면 안된다. 교인들이 재정적 능력이 있어서 목사를 모시기 전에는 무보수 영수가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지교회는 순회조사의 사례금도 곧바로 지불하기 시작해야 한다. 


c. 교구에서 설립한 학교에 대해서는 설립 초창기에만 교회가 선교보조금을 제공하되 소액을 제공한다.


d.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교회내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e. 교인들이 국내외 선교사역에 재정을 조달할 때를 기대하고 그 일을 추진하라.


f. 헌금을 늘리기 위해서는 가르침과 권면에 의한 계속적인 호소가 있어야 한다.


g. 학생들에게 일시적인 도움을 주어도 좋으나 이 보조금은 항상 절약하여 지출되어야  한다.

<5> 모든 결신자(새신자)들과 일반교인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a. 이 일은 주로 지 교회의 영수가 담당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사경회를 열어 영수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b. 만약 한 지교회안에 가르칠 수 있는 영수가 없다면 이웃교회의 협조를 얻어 집회를 위한 영수를 대신 모셔오게 하라. 그리고 순회조사들로 하여금 그런 약한 교회들을 더 자주 방문하여 돌아보도록 하라.
c. 모든 교회에서 복음의 설교보다는 교육에 더큰 역점을 두도록 하라.
d. 모든 수세후보자들로 하여금 6개월내지 2년동안의 조직적인 교리교육을 받도록 하라.
e. 학습교인들의 교육을 위해 교회의 기본교리와 관습에 대한 입문서 및 그들의 일반적인 수준에 맞는 여러 가지 요리문답교재와 성경연구서적을 준비하라.
f. 성숙한 신자들에 대한 안내서(교육자료)들을 갖추어 두라.
h. 모든 가르침에서 성경본문 자체에 큰 역점을 두라. 성경해독(문맹퇴치), 성경암송,  규칙적인 성경읽기, 자녀들에게 성경이야기 들려주기, 본문의 의미를 배우고 배운 내용을 복습하기 등을 시행하라.
i. 모든 가르침에서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거기에 의존하라.

<6> 성경연구모임(사경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a. 지 교회에서 상시로 진행되는 교육 이외에도 지 교회의 영수들을 선교기지에 모아 집중적인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그들에게 교인들을 인도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시켜주는 것이 대단히 바람직하다.
b. 그러한 성경공부모임(사경회)은 1년중 선교사가 그 동네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 특히 겨울과 여름에 6주 혹은 2개월에 걸쳐 실시되어야 한다.
c. 학습자들이 공부하는 동안 여행비와 식비를 자비로 지출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교인들의 가난한 사정을 감안하여 식비와 귀향 경비의 일부라도(선교사가) 대주도록 하라.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식비와 귀향경비 보조에 대해 네비우스 부인은 그것은 “중국인의 자선사상과 어울린다”고 말하였다.
d. 사경회의 교재로 주석이나 보조책자들도 구입할 수 있는 대로 사용될 수 있으나 주교재는 어디까지나 성경이었다. 학생들에게는 대단히 강도 높은 공부가 요구되었다. 그러므로 질병을 핑계로 중도에서 탈락하는 이들이 많았다. 교육 내용의 대부분이 성경이지만 성경 외에 성악 천문학 지리학 역사 일반상식 등에 대한 초보적인 가르침도 있었다.
e. 이러한 사경회가 결국에는 목회자 배출을 위한 정규 신학수업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라.       
       
<7> 선교사역의 기준은 무엇인가?

a. 모든 사역의 토대는 성경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성경으로 가득 채워 성경으로 하여금 행동을 지배하도록 하는 데 선교사역의 목표가 있다. 성경은 문제에 답변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유일한 안내서이다.
b. 모든 사역의 표준은 요리문답이다. 그것은 교육의 실질적인 보고이고 완벽한 신학체계이다.

<8> 징계는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a. 징계는 공공연한 큰 범죄를 저지를 때는 물론 주일을 무시하거나 성경공부 및 공적 예배를 소홀히 할 때도 시행되어야 한다.
b. 교회의 장부와 지 교회의 영수증들과 순회조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징계가 실시되어야 한다.
c. 징계에는 여론의 찬동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권면과 충고의 형태로 실시되어야 하며, 이어 공식적인 심문과 필요할 경우 직분정지도 시행되어야 한다. 정지기간이 지난 후에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당사자는 출교되어야 한다.

<9> 교회조직을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가?

a. 교회설립 초기 단계 시에는 교회조직이 복잡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b. 어느 선교현장의 교회에 가장 적합한 교회조직이 무엇인가에 대한 최종적인 시금석은 그 조직형태가 아래와 같은 몇 가지 기본 성경원리와 일치하는가 하는 점이다. 


1) 교회운영과 관련된 문제에서 각 신자들에게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
2) 지 교회의 권위 있는 지도자로서 장로를 임명하는 일의 중요성
3) 연합한 다수의 교회를(사역의 초창기 단계) 해당교회의 장로 집사들과 함께 돌아볼 감독자(목사)를 임명하는 일. 
c. 중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직형태가 가장 좋을 것이다.
1) 먼저는 ‘그 교회 일반 성도들의 자발적인 활동’을 교회조직의 기본방침으로 삼으라.
2) (선교사들은)사도들의 본을 따라, 모든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하도록 하라.
3) 그러나 (선교사의 현지 성도들 가운데서)영수 혹은 장로 임명이 각 성도들의 자발적 활동과 상충되지 않도록 하라.
4) 교인들이 자기 교회에 목사님을 모셔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사례를 지불할 준비가 갖추어지기 전에는 지 교회에 담임목사를 세우지 말라.
 
<10> 타교단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타교단과 경쟁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된다. 최소한 지역구분 만큼은 이루어져야 한다. 

<11> 타민족을 위한 선교사역은?

네비우스박사가 설립한 교회는 실제적으로 이 일에 종사할 만큼 연조(年條)가 깊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국내와 해외선교사역을 수행하는 것이 현지 교회의 임무임을 굳게 확신하고 이를 기대하고 있었다.

<12> 학교교육에 대한 입장은?

많은 선교회들이 미션스쿨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과 시간과 힘을 사용한다. 이것은 불행이요 실수이다. 그리스도인의 지상명령은 기계학이나 토목공학이나 외국어 혹은 과학을 전수하는 데 있지 않다. 또한 이교도 나라를 문명화함으로써 그들을 기독교화하는 데 있지도 않다. 지상명령은 그들을 기독교화한 다음 그들 자신의 문명형태를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는 데 있다.

<13> 의료사역에 대한 입장은?

기독교 최초 복음전파자들의 사역에서 이것보다 현저하게 부각된 특징은 없었다. 즉 복음은 자비와 박애적 행위와 연결되어 병자를 치료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환난 당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가운데 선포되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생애에 잘 나타났던 이 위대한 행동원리와 규범은 언제 어느 때나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해외의료선교사들의 협력사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14> 선교사는 현지교회 목회사역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기간)외에 그 이상으로 어느 한 현지교회를 장기간 목회하는 일은 선교사 본연의 사역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선교사의 사역에 확실히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선교사의 주된 사역은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현지교회를 설립하고 현지인에 의한 목회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15> 선교방법의 우열 평가에 대한 시금석은? 

첫째, 그 방법이 목표에 부합한 방법인가? 둘째, 그 방법이 ‘성경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셋째, 그 방법이 효과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16> 선교정책의 동력은 무엇인가?

어떤 선교방법이든 유일한 동력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것이다. 비록 인간적 물질적 자원이 고갈되었을지라도 성령의 임재만 있으면 사역은 번영할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보다 현명하다. 우리는 그것을 따르는 것이 좋다. 

<17> 비기독교신앙에 대한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

기독교신앙을 처음 전파할 때는 중국의 제도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편견과 반대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교리를 삼가하고, 화해적이며 매력적인 점만을 제시해서 사람들을 우리에게 이끎으로써 그들에 대한 어떤 지배력을 획득한 후에, 비로소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독교진리의 완전한 체계를 가르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혹자들은 생각해왔다. 나는 그러한 생각과 과정을 예수님과 사도들이 정당시할지 의문스럽다. 우리는 진리를 완벽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진리를 완벽하게 제시하려고 할 때에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한 완벽하게 그리고 뚜렷하게 불신앙과 신앙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18> 선교사들은 민중의 경제생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나?

중국인들의 영적 상태는 물론 현세적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을 위해서도 노력하라(실제로 Clark선교사는 네비우스선교사가 그 시대 산동성의 중국인들을 위해서 그곳의 어떤 선교사보다도 이 면에서 더 많은 일을 했다는 사실을 목격했음을 지적한다.).

<19> 옛 방식으로 출발한 선교교회가 어떻게 하면 새 방식으로 사역정책을 바꿀 수 있을까?

a. 재정적으로 목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회(회중)들은 그러한 후원을 즉시 맡아야 한다.
b. 소규모 교회는 순회대상으로 편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특정 목사들이 순회목사가 되어 그들을 관할해야 한다.
c. 그런 책임을 맡은 목사들은 미전도지역의 비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자가 될 수도 있다.
d. 선교계획에 필요하지 않은 정년이 가까운 일꾼들은 연금을 받고 은퇴할 수 있다.
e. 이러한 계획에 적합하지 않고 소명도 없는 목사들이나 일꾼들은 3~4년 동안 도움을 받아 모종의 새로운 직업이나 전문직을 배운 후 복음전도자 사역을 그만둘 수도 있다.    
 
2. 네비우스 선교방법에 대한 분석들

네비우스의 선교원리와 방법을 요약분석한 것들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각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며 정리해 보겠다.

(1) Charles Clark가 정리 소개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것인데, 아래와 같다.(곽안련 1994:44)

ㄱ.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널리 순회하면서 전도함.
ㄴ. 사역의 모든 분야에서 성경이 중심이 됨.
ㄷ. 새 신자이든지 믿은 지 오래된 신자든 모든 신자들이 성경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며,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전도에 힘써야 한다(自傳).
ㄹ. 모든 성도들의 그룹은 무보수 영수의 지도를 받는다. 순회교구들은 나중에 목사가 될 유급조사들의 지도를 받는다. 순회 집회시에는 교인들을 훈련시켜 훗날 구역, 지방, 전국의 지도자가 되게 한다(自治).
ㅁ. 교회 건물은 동 교회 신자들이 스스로 헌금해서 지어야 하며, 교회가 일단 창립되면 순회조사의 사례를 지급하기 시작해야 한다. 개 교회 목사에게 외국의 자금으로 사례를 지불하지 않는다(自給 혹은 自養).
ㅂ. 모든 성도들은 그룹 영수와 순회조사의 인도하에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영수와 조사들은 성경연구모임을 통해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한다. 
ㅅ. 성경적 형벌을 통해 엄격한 징계를 실시한다.
ㅇ. 다른 선교단체와 협력하여 사역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서로의 영역이라도 분할 하여 사역한다.
ㅈ. 법정소송 사건이나 그와 유사한 문제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ㅊ. 민중의 경제문제에는 가능할 경우 일반적인 도움을 준다.

(2) Rolland Allen의 요약(Allen, 1965:239)

Rolland Allen은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핵심은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 7:20)는 말씀에 근거한다고 하며 그것을 아래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ㄱ. 사경회 제도
  ㄴ. 자급(자양)제도

(3) Underwood의 요약(Underwood,1908:109-110)
Underwood는 네비우스의 선교방법을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한다.

ㄱ. 한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게 되었다면 그를 떠나지 말고 끝까지 붙들어 그가 개인전도의 일꾼이 될 때까지 즉, 자기 직업에 그대로 종사하면서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인도하라.
ㄴ. 교회의 운영과 관리조직은 그 교회 자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기획 실천하여 발전을 기하도록 해야한다.
ㄷ. 교회에서 전도사역을 감당할 만한 인물이 나오거나 재정을 지원할 수 있는 유자격자가 있으면 그들을 선임하여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 육성한다.
ㄹ. 교회당 건축은 가급적이면 그 교회 교인들의 힘으로 하게 하되 건축의 구조나 모양은 한국고유의 양식이나 그 지방의 교회 특색에 맞게 건축하도록 유의한다.


C. 네비우스 선교이론과 방법에 대한 평가

1. 단점 및 미흡한 점들

이러한 네비우스 선교원리와 방법은 물론 비평적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여기 간단히 열거한다.

  (1) 한국인 신학자와 일반 학자 양성에 미흡하였다.
1792년 영국 최초의 선교회를 창설한 “근대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암 캐리(1761-1843)와 같은 선각자적 선교사는 선교사들이 사역시에 본토인 교역자 양성사역을 가능한 일찍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어느 정도 선교초기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긴 하지만, 이런 면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미래방향을 제시하는 점에 있어서 부족하였다(Conn, 1970; cf. 김남식, 1985:170; cf. 김영재:116).     

  (2) 한국인목회자 양성과 목사장립(혹은 그들에게 지도권을 이양하는 일)을 늦게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교회로 하여금 ‘재정적으로는 자립하게 했지만 영적으로는 계속 지배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한국인 전도사들에게 설교는 시키면서 성례집행은 허락지 않았다(전호진, 1971:94). 그리고 선교사들이 1907년에 활동을 시작한지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목사 장립을 한 사실을 볼 때 현지인에게 지도권을 이양하는 작업을 조금 늦게 시작하였다.

  (3) 복음의 사회적 적용에 미약하였다(A.J.Brown, 1902, pp.421-423).

  (4) (한국에서는)성도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McGavran, 1974:221).
민족과 동행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선교와 다른 사람들을 향한 관심이란 측면에서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5) 선교방법론을 제기함에 있어서 경제적인 면에 너무 집착하게 하였다.
자급(자양)이라는 물질문제에 대한 그의 강조는(긍정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긴 해도) 오히려 그 본래 동기와는 달리 물질주의의 또 다른 한 면으로 치우치게 하는 위험도 있다. 물질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먼저 강조되는 것이 일종의 위험이 된다(전성천:68; Allen,1931:146-147; in 김남식:170).

  (6) 실제적으로 그의 이론과 방법이 어디서나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현장의 사실들을 통해서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Stephen Neil과 이호운은 각기 그 증거들을 제시하였다. 선교사가 선교교회를 너무 빨리 떠나거나 너무 빨리 현지교회의 지도권을 이양시킬 때에는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쉽게 ‘교회를 불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고, '비참한 결과를 낼 수도'(Neil, 1974:175ff; 이호운, 1970:193) 있다.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기대할 수만은 없을 것(cf. 신성종, 1974:118, 128)이라고 본다. 
     
  (7) 춘원 이광수(1917:23)는 네비우스의 선교방법을 의식하여 당시 선교사들을 비평하였다.
그는 “선교사들이 세상 지식과 교육은 신앙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니 멀리해야 된다고 보고 또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에는 잘못된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비평하며 그 이유들을 지적하였다.
그가 지적한 이유는; a. 목사나 장로들 자신이 무식하고 세상 지식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b. 세상학문을 가진 사람은 신앙을 버린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c. 세상지식을 가진 젊은이들은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며 목사와 장로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잘못 생각하고  교육 자체를 멀리하는 점 등이 있다.

  (8) 위의 비평적 관점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비평들이 있었으나, 그 비평들에 대한 재비평들이 또한 심도 있게 다루어졌기에 크게 문제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 가운데는 네비우스의 주요 선교대상이 사회의 특정 계층(예를 들면, 한국의 양반층)을 어느 정도는 비의도적으로 무시하게 되어, 그들로부터 기독교를 더욱 적대시하고 또 그들에 의하여 전수되던 전통적인 문화도 소홀히 다루게 되었다고 하는 비판(전호진, 1971:98)이다. 그러한 비판에 대한 반론(김영재, 1984:114-122) 역시 제기가 되었으며, Clark(1937; 1994년 한국어판)가 네비우스정책에 대한 각종 오해를 다루면서 소개한 네비우스의 동료선교사였던 C. Mateer의 책에서 제기하였던 네비우스방법에 대한 비판과 그것에 대한 Clark 자신의 반론이 역시 제기되었다.       


2. 네비우스 선교원리의 긍정적인 특징들
네비우스 원리와 방법은 다음 네 가지의 긍정적인 특징들이 있다고 볼 수 있다.
   
  (1) 성경중심 선교사역의  강조

네비우스의 선교방법은 확실히 성경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Clark가 정리하여 소개한 네비우스방법의 10가지 내용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직접 성경과 관련된 내용과 방법이다. ‘선교사 각자가 널리 순회하면서 전도’하는 것을 강조한 것은 예수님과 사도들 특히, 바울의 방법을 배운 것이다. 사역의 모든 분야에서 성경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성경중심 사역 기준론과 삼자이론, 엄격한 성경적 징계에 대한 강조, 타 선교단체 및 교단과의 협력과 연합 정신 등은 성경적인 것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던 Allen의 ‘사경회와 자양’을 두 가지로 분석한 네비우스방법의 분석 내용이나 그 핵심도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 7:20)는 성경말씀에 근거한다. 그리고 Underwood가 그의 사상을 네 가지로 분석한 것을 보아도 대부분 성경적 근거에서 선교사역을 하려는 정신은 비슷하다.

  (2) 중류층 및 하류층 대상 사역 강조

선교사의 초기 선교사역시에 순회 전도사역을 행하라고 강조하는 부분이나 여러 다른 곳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사역초기에 중류층이나 하류층을 대상으로 사역할 것을 강조한다. 선교사역 초기에 찾아가서 전도할 장소들의 예로서, 그는 중심지와 장터(일반 사람들이 매매하고 잡담을 나누는 곳), 그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한담을 나누는 곳(예를 들면 당시 중국의 여인숙), 현지의 학교, 마을(빛을 찾는 구도자들을 거기서 찾을 수 있으므로), 사회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곳들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 등을 들고 있다.


위의 대부분이 중류층이나 하류층 사람들의 지역이다. 물론 그가 관리나 지식인대상 사역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각 계급 사람들에게도 전도하라”고 하였으나, 그의 강조점은 중류층과 하류층에 전도의 역점을 두는 경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이미 지적하였던 것처럼, 피선교지 사회의 특정계층(예를 들면, 한국의 양반층)을 어느 정도는 비의도적으로 무시하여 그들로부터 반기독교적 사상이나 행동들을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에 의하여 전수되었던 전통적인 문화도 소홀히 다루게 되었다고 하는 부분(전호진, 1971:98)이 있으나 여기에 대해 김영재는 네비우스정책을 재평가하는 그의 글(1984:114-122)에서 그것이 꼭 부정적인 각도에서 볼 일이 아니라는 근거를 명확하게 지적하였다.


당시 조선의 양반층의 지나치게 수구적이었던 사고방식에 의한 복음수용의 제한성과 이후의 그들 계급의 몰락과 선교사들이 실제로 상류층의 전도를 결코 배제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상류층 가운데는 적지 않은 성도들이 생겼다. 

중하류 계층에 대한 사역의 강조는 절대적 문자적 명제가 될 필요는 없으나, 실질적인 선교현장에서 사용할 정책 가운데 하나의 강조점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상당히 성경적인 원리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서나 사역의 현장에서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슨 다른 특별한 권세나 소유가 많지 않은 사람들이 실제로 복음의 수용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강조가 절대적 문자적으로 실행되어서 혹시라도 상류층에도 존재하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외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물질적인 가난함 자체가 곧 복음에 대한 수용성을 자동적으로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며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현실적 실질적 선교상황에서 네비우스선교의 이 특성은 옥토에 씨를 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3) 성경교육 특히 ‘사경회’의 강조

그의 사경회 개념은 무엇보다 지도자교육의 한 방법으로서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본래 교회의 영수들을 선교기지에 모아 훈련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에게 성경 자체를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요즘의 선교지 교회들은 이 일을 통해 더 자극을 받아야 한다. 교회 내에서 초신자들뿐 아니라 일반 신자들에게도 성경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해야 한다. 각종 방법으로 성경을 가르치라고 하는 그의 교회성경교육의 강조는 여러 가지 성경교육자료가 쏟아져 나오지만 성경을 순수하게 가르치고 적용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 때에 다시 고려하고 실천해야 할 중요한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신학교육과 목회자교육의 중요성을 모두가 인식하고 중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학교육을 하고, 또 이미 어느 정도 믿음으로 서있는 사람들만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들이 많은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현장을 생각할 때 네비우스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적지 않다. 

(4) 토착화선교(삼자원리)의 강조

삼자의 원리는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성경적인 원리이다. 삼자운동과 토착화운동을 추구하되 중국 관방교회처럼 정치 이데올로기적 성격(예; 공산당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두둔하고 따르는 정치적 종교성)이 배제되고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chauvinism)가 혼합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기존의 외부 제도와 형식을 부인하고 성경 자체를 떠난 그 어떤 민간 심성가운데 부패한 부분이 둔갑하여 신앙으로 표현되는 극단적 민간신앙적 성격이 섞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II. 네비우스 선교원리와 최근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지난 몇 년 전의 외교관계 수립을 전후해서 진행 되어온 우리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의 모습을 네비우스 원리와 방법의 긍정적인 면에 비추어볼 때 어떻게 나타나는가 생각해 보자. 네비우스 당시와 물론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러므로 네비우스 원리 자체의 가치평가에 대하여 이미 언급한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상황적 요소 때문에 네비우스 선교원리를 우리는 지혜롭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A. 그 때와 지금: 상황적 요소
 
네비우스 당시는 지금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로 그 당시는 아무래도 중국선교의 초기 시대이고 지금은 약 40년간의 사회주의를 거쳤으며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라 할지라도 이미 중국에 신교의 복음이 들어간지는 200년이 넘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 시대이다. 비록 요즘 사회주의 사회의 제한 때문에 선교의 초기적 현상이 있어서 우리 한국교회가 중국선교에 열심을 내지만 중국에서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 그들의 교회와 신앙의 모습속에서 종종 당황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의 중국사역에 있어서 네비우스원리를 적용하는 면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B. 중국토착교회 설립을 우리는 어떻게 해왔으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이 몇 년 전 외교관계 수립을 전후하여 중국에서 한 일들이 정말 성경적인 토착화 중국교회를 세워왔는가? 이다. 너무나 많은 면에서 본고의 저자 자신부터 지난 수년간의 사역속에서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생각나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 중에서 특별히 아래 네 가지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특징 중 긍정적인 부분들을 중심으로 반성해보자.
  1. ‘성경중심 선교사역의 강조’와 최근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중국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인 사역자들 가운데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 목회에 실패해서 온 사람도 있고, 부인과 가족은 한국이나 홍콩에 두고 혼자만 한 달에 한 두 번 혹은 일년에 대여섯 번 오가며 일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혼했거나 별거중인 사람도 있다. 중국과 한국 사이를 왕래하며 운영하던 조그만 사업체가 별로 신통치 않게 되자 차라리 선교사 일을 하는 것이 더 시원(?)하겠다고 생각하여 1년에 몇 번씩만 가도 되는 그런 종류의 신학교에 등록하여 교회로부터 선교비를 후원받기도 한다. 이들은 사업가로서도 생색을 내고 선교사로서도 이름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드디어는 얼마 되지 않아 목사로 변신하여 다른 목사보다들 보다도 더 목사다운(?) 행색을 한다.


아무도 모르게 여러 일들을 감당하느라 애쓰는 다른 사역자들을 보고는 “왜 이렇게 당신들은 쉬쉬하면서 일하시오? 이 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있는 나라요. 그리고 이 나라 교회의 법을 존중하면서 일해야지 정부와 교회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제국주의 종교침략 방식으로 일을 합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선교사는 “나는 아예 어느 정도 공개적으로 일하겠다. 공인 삼자교회와 종교국 사람들, 심지어는 공안국 사람들과도 관계만 좋으면 큰 어려움 없이 일할 수 있다” 라고 한다. 그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정부관리나 관방교회 사람들에게 자주 한국과 미국관광을 시키느라 성도들의 귀한 헌금을 사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중국에서 현지인을 교육하는 일은 조선족 대상 사역이 아니라면 언어의 준비가 필요하다. 일반 언어나 사역 언어를 조금도 준비하지 않은 채, 단지 조선족으로 통역 조력자만 두고 중국어도 못하고 문화와 사회도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택시를 타고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잘 모르고서도 한족(漢族) 뿐 아니라 소수민족선교까지 모두 섭렵하려 한다. 더욱이 러시아와 몽골, 북한, 다른 지역들까지 담당하는 선교의 거인(?)도 종종 볼 수 있다.     

사역자들로서 우리는 그 동안 무엇 때문에 중국선교사역을 해왔는가 반성해야 할 것 같다. 교단의 정책과 경제적 지원이나 나의 개인적 욕심, 미래를 위한 발전과 성취, 나의 그 어떤 열심이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결코 주님의 말씀 자체보다더 중요할 수 없다. 처음에는 소명에 대한 순종과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된 사역이었겠지만 변질되어 후원교회에 보고하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성과중심의 일을 지향하는 경우는 없었는지? 아침마다 선교활동의 매일을 주관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며 모든 일을 해왔는지?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계속 추진하는 일은 없는지? 참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선교가 무엇이며 나와 내 교단의 선교철학은 어떠하며, 선교철학이 다른 사역자들과 단체를 얼마나 존중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일하고 있는지? 성경에서 말하는 선교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장사하는 것처럼 하는 것인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중국선교에 참여하는 한국교회나 목회자들로서도, 함께 반성할 것들이 적지 않다. 나와 내가 목회하는 교회의 명예를 위해서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중국선교가(요즘 통일과 북한선교에 대한 문제가 그러하듯이) 감상적인 면에서 다른 지역의 선교보다 강조할 만한 가치를 더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아직도 선교지의 영혼을 쉽게 물질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은연중에 그런 방법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안디옥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선교를 위해 파송하였을 때처럼 참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참여한다는 확신이 있는지?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선교사들을 대하며 지원하고 있는지? 선교사들에게 돈만 보내준다고 해서 교회의 선교사역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 선교하는 교회로의 건전한 성장을 목표로 자라가고 있는지?… 

  2. 중류층 및 하류층 대상 사역강조와 최근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물론 선교사 개개인의 은사와 부름이 같지는 않기 때문에 어떤 사역자들은 대학생 혹은 지식인 중심의 사역이나 혹은 정부 고위관리의 상류층을 대상의 사역이 분명 필요하다. 맥가브란 박사가 제창한 ‘동질성의 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일하는 것의 가치를 무조건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고 실제 선교현장에서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중류층이 복음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한국교회 역사에 나타난 특별한 사실이다. 그러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 네비우스 원리가 한국교회의 기적적인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여겨졌다.

일반적으로 성경과 역사의 진리와 특별히 노동자나 농민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온 사회주의 중국의 13억 인구 가운데서도 혹시 너무 쉽게 우리는 복음의 수용성이 높은 다수를 무시하고 돌밭을 일구려고 너무 많은 시간과 자원을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특수성과 함께 일반성을 고려하며 더욱 균형 있게 일해야 할 것이다.


중국 근대 교회사를 보면 물론 젊은 지식인들이 가장 기독교를 반대한 계층이라는 사실을 5.4운동을 전후하여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지식인들을 향한 복음전도 사역은 쉽지 않지만 감당해야 할 특별한 도전적인 사역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식인들 가운데서든지 노동자 농민 가운데서든지 주님의 부르시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찾아야 하며 또한 전략적으로 대다수 중류층과 하류층을 향한 복음전도를 실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 중국 상황에서는 안전문제나 자녀의 교육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대도시나 중소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 실제적인 현상이다.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사역자들이 중소도시나 대도시의 지식인들이나 상류층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본인들의 특수한 상황이나 처지 때문에 도시에 거한다 할지라도 중류층과 하류층을 접하는 것은 아주 쉽다. 특별히 농촌을 떠나 생계수단을 위해 도시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감당하는 일은 네비우스 원리에 의해서도 바른 일이고 현대 도시선교 이론적 관점에 의해서도 적합한 일이다. 북경 같은 곳에서는 현재 약 5백만 정도의 외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복음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미전도족속(Ralph Winter가 정의하는 성경적 개념의 족속들)이다.
   
3. 교육(특히 성경교육)의 강조와 최근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그 동안 한국교회는 중국에 ‘교회(실제론 ’예배당‘을 말함)를 몇 개나 세웠는가?’ 등의 외형적인 열매와 빠른 시일 내에 열매를 얻으려고 무척 노력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건물을 세우는 일과 같은 프로젝트적인 사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각종 자원을 투자하여 자연히 사람을 세우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선교사들도 스스로 사람을 교육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이미 세워놓은 사람을 얻어 보이는 열매를 빨리 거두려는 모습 때문에 심리적인 알력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을 교육시키는 일을 실제로 우리가 얼마나 해 왔는지, 열매가 있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한데 얼마나 우리가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시간과 정력을 투자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선교현장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 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요즘은 성경을 가르치기 위한 참고서적들이 많아서 도움이 되지만 그러한 참고서적들과 성경을 깊이 있게 가르치기 위한 신학서적들이 오히려 성경자체를 순수하게 연구하고 자신과 가정과 각종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 장애물이 되는 그러한 방식으로 교육시키지는 않는지, 성경보다는 나의 생각, 내 교단의 입장과 지엽적인 교리를 지나치게 주장하며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자.


과거 한국에서 네비우스 사상을 따라 대부분의 교회들은 지도자들을 모아 성경을 함께 공부하고 가르치던 사경회전통(교회 지도자훈련 모임으로서의 성경공부모임)이 어쩌면 한국교회에서는 이미 많이 잊혀졌기에 그러한 교회에서 파송되어 일하는 사역자들도 그러한 좋은 사경회 방법을 충분히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바쁜 선교현장의 일들에 얼마나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포함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자. 
   
그러나 중국의 성도들 가운데는 와치만 니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지식을 추구하는 것(특히 신학공부)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도 적지 않다. 쉽진 않지만 그들을 지혜롭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바르게 교육시켜서 총체적인 성경적 신앙교육과 지도자 훈련을 받게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물론 다양한 종류의 대상을 교육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는 것도 고려할 일이리라. 우리는 여하튼 사람의 생각보다 성경을 중국인들에게 가르쳐야 하고 지나친 교리나 의식이나 각종 프로젝트보다 성경을 직접 더 가르치기 위해 애써야 한다.

4. 토착화선교(삼자원리)의 강조와 최근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1) 자치
   
이 면에서도 아직 우리는 초보단계에 있는 것 같다. 네비우스가 말하는 대로 교회조직의 몇 가지 성경의 기본원리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즉, 교회나 각종 중국성도들의 모임을 인도 운영할 때 우리가 그 성도들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바르게 가르치는지? 성령이 그들 가운데 보이시는 자신들의 지도자로서 ‘영수’(안수를 받지 않은 무보수 교회인도자)와 장로 혹은 그와 비슷한 지도자들을 임명하거나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집회를 관리하도록 하는 일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있는지? 그러나 또한 너무나 쉽게 너무나 빨리 현지인 교회의 일꾼을 적당히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할 문제들이 많다. 

  (2) 자전 

교회설립의 초기단계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선교사가 중국에서 어느 한 교회를 장기간 목회하고 있는 그런 경우들이 종종 조선족 지역에서 있다고 하는 말들이 들린다. 선교사가 목회를 하더라도 가능한 속히 현지인들을 양육하여 일을 맡기고 특별한 상황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초기적 단계 외에는 현지 교회 목회에 장시간 시간을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잠시 중국을 방문하는 목사나 성도들 또는 중국에 체제하며 사역하는 사역자들 가운데 특별히 공인 조선족 교회를 방문할 때 설교할 기회를 갖기 원함으로 적지 않은 조선족 교회들의 주일예배와 삼일예배와 기타 모임에서 말씀을 스스로 전하고 스스로 훈련받아야 할 많은 현지 젊은이들과 일꾼들이 제대로 훈련받기는커녕, 오히려 매주 바뀌는 외국손님들의 잔치와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 공세로 자전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그 동안 중국 조선족교회에 대해서는 특별히 자전의 기회를 많이 빼앗았다.

(3) 자양

예배처소를 중국인들 스스로의 헌금으로 마련하도록 하는 일에 우리 한국교회는 상당한 실패를 한 것 같다. 특별히 조선족교회에 대해서 더욱 그러하다. 조선족 지도자들이 겉으로는 예배당 건축을 자신들의 헌금으로 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한국교회 목사나 선교사가 그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 중에 헌금을 하든지 아니면 그곳 목회자에게 직접 전달해 주는 것을 통해서든지 실제로는 그곳 현지 성도들의 자원(資源)으로 교회를 건축하는 것을 볼 수 없다. 건축헌금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나 예배당의 의자들과 성가대가운, 찬송가까지도 한국에서 배로 실어다주고 있으며, 거의 한국적인 교회를 설립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선교사는 그렇게 일하며 자기를 지원해 주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나 성도들이 중국을 방문하여 흡족해 하는 모습을 보며 선교의 성공을 자축하는 곳에 참다운 자양(自養)이 있을 수 없다.
   
중국에서 우리는 참으로 그들 스스로 목회자의 생활을 담당하도록 도움에 있어서 그 동안 많은 실수를 해 온 것 같다. 중국선교의 교두보를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미 세워져 있는 느낌을 갖게 현지 일꾼들에게 돈을 주어서 우리말을 듣게 하는 것이라든지, 이미 세워진 교회(삼자교회나 가정교회) 목회자들에게 그들의 형편 가운데 나오는 물질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도록 하지 못하고 외국인을 의지하여 일하도록 그들을 변질시키고 있다.


우리가 더 이상 도울 수 없을 때에는 그들의 인생과 사역에 방향과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것 같이 좌절하게 만드는 그런 일이 자주 있어 왔다. 그리고 잠깐 방문하는 사람들이 선교현장의 사역자들이 현지인에 대한 경제적인 대우 방법을 충분히 고려한 것을 쉽게 무시하고 돈으로 출국과 유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약속으로 현지인들을 오도하는 일들이 그 동안 적지 않았다.


중국 현장의 금방 세워진 교회에서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때에 무리하게 사례를 지불하여 목회자들을 세우도록 쉽게 가르치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가르치며 그 교회 성도들이 준비될 때에 목회자의 생활비를 부담하는 것은 좋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에 외국교회의 자금으로 성급하게 목회자 생활부담의 전통을 세우는 일들이 없었는지? 일반 한족가정교회에는 아직도 한국 선교사들이 그러한 예를 보인 경우는 적지만 조선족교회에는 이런 일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 중국의 한족가정교회에서는 그들 가운데 있는 긍정적 부정적인 역사배경이나 전통과 현 사회의 보안문제 때문에 교회에서 사례를 지불하며 전임 사역자들을 세우는 일은 적다. 중국교회를 바르게 인도하려고 하는 생각에서 우리의 배경으로부터 전체적으로 충분한 고려도 하지 않은 채  교회의 그 어떤 전통을 세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결론: 중국토착화선교교회 설립과 발전을 위한 한국교회를 위한 초보적 제안

IMF 상황에 있는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활동의 면, 특히 중국선교에 있어서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새롭게 배워서 다시 일어나 뛰어야 할 때이다. 140여 년 전 네비우스가 제창한 선교방법론은 여러 가지 상황적 요소와 한국교회사적 요소와 선교신학적 요소 등 고려할 만한 미흡한 점이나 비 절대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세계교회사와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열매와 성경적인 교훈에 의거하여 중국을 사랑하는 우리가 지금 다시 배우고 실천해야 될 그러한 선교이론이며 방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위에서 그 동안 여러 학자들이 여러 곳에서 요약 분석 소개한 네비우스 원리를 좀 더 현대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다시 검토해보고 그것이 우리의 중국선교에 주는 의미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 여기서는 중국토착화선교교회의 설립과 발전을 위한 한국교회를 위한 초보적 제안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1. 네비우스 원리와 방법, 오늘에의 적용에 대해서 심도 있는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저 단순한 획일적인 적용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시에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더욱이 중국현장의 교회를 망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 우리의 선교후원과 선교사 임명 및 파송관리와 선교사 자신들의 현장사역에서 성경말씀을 어떻게 하면 더 따를 수 있는지 구체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3. 모든 선교사 개인과 선교단체들의 다양한 은사와 부름에 합당하게 일하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특정 대상을 향한 사역이 꼭 필요하지만, 사회주의 상황가운데서  어느 정도 선교의 초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요즘 중국선교 현장 가운데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은 한편으로는 오래된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는 그들을 대할 때 겸손과 지혜로 그들을 섬겨야 한다. 한편으로는 특정 대상사역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복음의 수용성이 강한 하류층과 중류층 대상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폭 넓게 감당해야 하겠다.

4. 물질이나 우리 한국교회의 그 어떤 좋은 전통(예를 들면, 한국교회의 새벽기도운동)보다도 어떻게 하면 성경말씀을 중국인들에게 더 바르게 가르칠 것인지를 기도하며 생각하고  연구 실천해야 한다. 결국 중국인들은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변화되고 중국교회는 주님이 친히 당신의 말씀과 당신이 세우시는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비우스의 교훈처럼 ‘조사’를 두어 동역하게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장기사역을 위한 준비사역 특히, 최소한 1~2년 이상의 언어공부와 현장 선임사역자의 사역지에서 참관 및 실습 사역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5.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중국에 성경적인 중국의 토착적 교회를 설립하기 위하여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몫과 방법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결국 중국선교는 중국인이 해야 할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수고와 노력 후에도 제국주의적인 일을 했다는 말을 듣게 된 서구교회의 중국선교의 교훈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다른 것으로부터 배울 것이 아니고 네비우스와 사도바울, 예수님과 성경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히 한국교회는 중국에서 ‘사람을 키우고 일을 맡기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하며 물질을 현지 일꾼에게 주는 일을 최소한으로 하든지 주지 않아야 한다.   

네비우스 선교원리와 방법을 생각하면 보통 사람들은 현지 교회가 경제적인 면에서 독립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가장 핵심 중에 하나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네비우스의 중심은 중국에서 사역을 할 때 성경대로 하기 위해서 노력한 정신을 강조한 것에 있다고 본다.


네비우스의 원리를 따라 우리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자금으로 사례금을 지급하는 현지인 사역자의 가치를 덜 인정하고 그들의 수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독립과 자기의존의 원리를 처음부터 적용하여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적극적인 토착화된 중국교회의 설립이 빨리 이루어지도록 큰 결심을 하고 일해야 할 것이다. 돈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지만(물론 물질을 헌금하는 성도들과 교회의 그 물질은 피와 땀과 눈물과 그들의 마음이 배어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이러한 방식은 현지 일꾼으로서 조력자로 임명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하심이 없는 한 자신들의 본 고향과 일터(직업)를 떠나지 않고 거기 그대로 머물러 있을 때 궁극적으로 훨씬 더 유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 우리의 중국선교가 적어도 물질적인 면에서 약간 주춤해진 이 때에, 한편으로 기쁨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이며 감사가 있는 것이 무엇 때문일까? 우리를 알아줄 만한 교계를 순종할까 하나님을 순종할까? 우리를 보낸 교단과 교회와 담임목사와 후원자들을 기쁘게 할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나 자신을 기쁘게 할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중국인을 기쁘게 할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네비우스를 통해서 다시 한국교회와 우리모두를 축복하시고 중국을 축복하시기 바란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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