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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 네트웍 공조를 위해 그물(網 net)을 다시 말한다

수호천사1 2008. 10. 9. 11:28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네트웍 공조(共助)에 있다 (5)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네트웍 공조(共助)에 있다 (5)
네트웍 공조를 위해 그물(網/net)을 다시 말한다

필자가 여러 번에 걸쳐 네트웍 공조를 논하면서 조직을 배제하거나 경계하라는 논리로 이야기를 풀어감에 대하여 일부 반발이 있음을 밝힌다. 그중에 많은 반발이 '조직되지 않고 어떻게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였다. '독립된 개체로서 정함이 없이 어떻게 네트웍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또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공조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였다. 반발에 의한 의문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네트웍 공조를 위해 그물을 다시 말한다]는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함이다.

오늘날 시대가 말하는 네트웍의 어원은 그물(網/net)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네트웍 공조에 있다]는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그물'에 대한 특성들을 이야기한 바 있었다. 이제 그 그물에 대하여 다시 말하고자 한다.

그물은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데 반드시 필요한 직업적인 도구이다. 어부에게 만일 그물이 없다면 그는 이름만 어부일 뿐 진정한 어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물이 어디 직업적인 어부의 도구이기만 하겠는가?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를 잡거나 쫓는데 필요한 그물도 있을 수 있고, 취미생활로 시냇가의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그물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네트웍으로서의 그물은 이러한 비직업적인 도구로 설명하고자 함이 아님을 이해하기 바란다.

바다에서 어부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직업적으로 필요한 그물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러므로 어부들은 바다로 나가기 전에 그물을 준비하면서 어떤 물고기를 잡고자 하는 여하에 따라 그에 맞는 그물을 준비한다. 꽁치를 잡고자 할 때는 꽁치그물을, 명태를 잡고자 할 때는 명태그물을, 새우를 잡고자 할 때는 새우그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물고기를 잡고자 하는 여하에 따라 각기 다른 그물은 외형적인 모양이나 형태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바탕이 되는 줄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물을 만드는 줄의 굵기, 그물코와 그물코의 일정한 간격, 그물코 옭매디의 견고함,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때는 넓게 펼쳐야 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물의 특징일 뿐이다. 실제로 어부가 사용하는 그물의 모습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사용하는 그물은 어떤 물고기를 잡고자 하는 여하에 따라 먼저는 그물을 만드는 줄의 굵기와 그물코와 그물코 사이의 일정한 간격과 그것의 총체적인 규모에서 다르다. 따라서 어부가 새우를 잡고자 하면 새우그물을 가지고 바다로 가야하지 엉뚱하게 명태그물을 준비하고 나간다면 그는 단 한 마리의 새우도 잡지 못한채 헛탕을 친채 빈 배를 타고 돌아 올 뿐이다.

그물도 하나의 조직이라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를 구태여 조직으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며 네트웍 공조를 위해 조직을 경계하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있다. 조직은 다분히 인위적이며 인본적인 색체를 강하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조직을 위해 인위적이며 인본적인 색체가 첨가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하심은 항상 사람을 친히 지배하심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친히 감동하신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을 감동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가 원하시는 일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위적인 자아를 절제하고 인본적인 태도를 포기할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에서는 이러한 인위적인 자아의 절제와 인본적인 태도의 포기를 제한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은 그 조직으로서의 정체성과 합리성을 찾으려고 한다. 이것은 조직의 룰을 형성하게 하며, 그것에 의해 구성원들을 통제하고 관활하려고 한다. 그들의 개체적인 속성을 장악하여 그것을 몰수하거나 압류, 강탈하여 통일된 표준을 통하여 말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한 관계의 유기적인 연합에서는 개체가 보장된다.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마음을 감동시키심을 따라 그들은 유기적인 연합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일뿐, 제도가 만들어낸 규율에 의해 하나되지 않는다. 이렇게 하나됨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 따라서 개개인의 개체들이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 영적인 부담감을 가지고 몸부림치는 사역의 완성은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을 위해 또 다른 같은 영적인 부담감을 가지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만나도록 연결하시어 더불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도록 이끄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의무감에서 해방되라.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부담감을 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만나게 하심은 누구에게나 열려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심에는 항상 사역의 성격과 상황적 여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철저하게 순복하기만 하면 그가 당신 자신을 위해 당신이 마음에 영적 부담감을 주신 이들의 만남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세상에는 '끼리끼리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지는 그런 것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라든지, 선호하는 애완동물이나 기호가 같은 사람이라든지, 심지어 외형적인 모습이나 성격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친구가 되어 가깝게 교제하게 되는 것을 자주 목격하거나 스스로 체험하게 되곤 한다. 바로 이런 현상들을 '끼리끼리법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한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영적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에 그들 가운데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항상 유기적 관계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한 존재로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다. 이런 따뜻함은 곧 네트웍 공조의 관계증진을 가져올 수 있으며, 네트웍 공조의 관계증진은 곧 네트웍 사역의 성공을 가져오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헌신된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동일한 관계속에서 정형화된 규격의 통일을 이룰 때 일이 성취된다는 착각을 버리라. 이런 착각은 조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함께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사용하시는 방편에 있어서는 개체적인 자유 가운데서 유기적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 이런 유기적 관계 속에서 끼리끼리법칙과 같이 동일한 영적 부담감을 가진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위해 공조함으로 하나의 전문적인 망(網)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꽁치그물이 있고, 명태그물이 있다. 갈치그물이 있고, 새우그물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네트웍도 다양함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연합을 이루실 것이며, 하나님의 친히 이끄심을 따라 순종하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어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동참하는 당신은 어떤 네트에 동참되어 있는가? 당신의 개체가 전부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의 기뻐하심의 네트는 개체적이면서 철저하게 부분적일 수도 있음이다. 개개인의 개체적이면서도 부분적인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달란트에 근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달란트가 어떻게 쓰임 받든지 조직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발적인 동참에 의해 공조되는 역사를 이룰 때,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것을 기억하라.

독립된 개개인의 개체가 하나의 조직에 예속되거나 예속시킴으로 개체의 부분적인 것까지 전체가 구속되지 행동이 제한받는 그런 어리석음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일정한 조직으로 묶어두지 않았음을 잊지 말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함에는 언제나 개체적인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와 긴밀하게 교류되는 유기적 관계를 통해 이루었음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체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을 때에 비로소 개개인의 달란트가 네트웍 공조를 위해 쓰여질 수 있다. 하나의 만능이 아니라 부분적인 상호적 관계가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결코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지극히 작은 달란트도 때로는 아주 소중하게 네트웍의 공조를 이룰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여 그 뜻을 이루시기에 합당하게 쓰임 받는 자를 기뻐하심을 잊지 말자.

베이징에서 石一進 씀
20040728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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