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선교민족의 뿌리와 사명

[스크랩]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네트웍 공조(共助)에 있다 - 2. 네트웍 공조(共助)는 관계증진(關係增進)에 있다

수호천사1 2008. 10. 9. 11:27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네트웍 공조(共助)에 있다.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네트웍 공조(共助)에 있다 (2)
네트웍 공조(共助)는 관계증진(關係增進)에 있다

네트웍(Network)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사전적인 해석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그물세공'이나 '망상직물'의 '그물코', 또는 '그물 모양의 것'이라고 설명한다.
둘째, '전기의 회로망과 같은 것'이며, 상점 따위의 '체인점'이나 '연락망', '개인의 정보망', '방송망' 이라고 설명한다.
셋째, 통신이나 컴퓨터 상에서 '컴퓨터나 단말장치, 프린터, 음성/시각표시장치, 전화 등이 통신회선이나 통신케이블 등으로 접속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오늘날은 네트웍시대라고 말을 흔하게 듣는다. 따라서 네트웍이란 말을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도 좋아한다. 그럼에도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을 네트웍시대라고 지칭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네트웍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이들이 주장하는 속성에서 드러나는 네트웍의 이해는 어딘가 석연치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 무엇인지 네트웍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거나 이해가 바르지 않거나, 혹은 고의적으로 네트웍을 빙자하여 자신의 실속을 차리려는 음모가 있음 같이 여겨지기 때문이다.

네트웍에 대하여 사전적으로 함축 있게 이해한다면 '그물의 형태로 이루어진 관계'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물의 형태로 이루어진 관계? 그렇다. 분명히 네트웍이란 그물의 형태로 이루어진 관계를 의미함이 옳다고 여긴다. 그물세공이나 망상직물이 그렇고, 전기의 회로망이나, 상점 따위의 체인점 또는 연락망이 그렇다. 개인의 정보망이나 방송망, 또는 통신이나 컴퓨터 상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기기들의 연결 또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는 '관계'(關係)라고 함이 결코 틀리다고는 할 수 없을 듯이 여겨진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형성되는 네트웍에서의 관계는 어떤 관계를 의미하는가? 상하적 관계속에서 명령하고 그 명령을 수행하는 수직적 관계인가? 아니면, 서로가 대등한 관계로 공존되는 수평적 관계인가? 오늘날 흔히 말하고 있는 네트웍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일단 유보하기로 하자.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분명한 분별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 때 바닷가에서 사역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그물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어부에게 있어서 그물이란 그의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물건이다.  그물은 고기를 잡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어부에게 그물이 없거나, 그물이 있다고는 하나 그가 그것을 다룰 줄 모른다면 그는 참된 어부가 아니라 자신을 어부라고 속이는 거짓 어부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가장 먼저 바닷가에서 현직 어부로 종사하던 이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왜 주님은 현직 어부들을 당신의 첫 제자로 부르셨던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는 그물과 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의 특성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음이다.

어부들이 사용하는 그물에는 다양한 종류들이 있다. 명태를 잡는 그물, 멸치를 잡는 그물, 고등어를 잡는 그물 등... 어부가 어떤 고기를 잡으려고 하는가에 따라 사용되는 그물들은 다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그물에는 몇 가지 공통된 상황이 있었다.

첫째, 어떤 그물이든지 그물의 바탕이 되는 끈으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둘째, 그물을 만드는 실의 굵기와 그물코의 간격은 항상 일정하다.
셋째, 그물로 고기를 잡을 때는 그것을 펼치거나 길게 펼쳐진 상태로 늘어뜨려 사용한다. 
넷째, 그물코는 견고하다. 따라서 그물코는 결코 풀리는 법이 없다. 그물코와 그물코 사이의 실이 끊어지면 끊어졌지, 어떤 경우에도 그물코가 끊어지거나 풀리는 일은 없다.

21세기에 완성되어져야 할 선교사역은 주께서 오늘을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여된 시대적인 과업이다. 주께서 명령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됨의 역사적 과업은 반드시 수행되어져야 한다. 이를 위한 21세기의 선교적 사명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불가불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에게 막중한 시대적인 사명을 맡기신 것이다.

하면, 어떻게 21세기의 선교사역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가? 그것은 네트웍 공조(共助)에 있다. 네트웍 공조란 여럿이 더불어 함께 이루어가기 위한 노력할 때에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의 관계를 증진할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등 둘 이상이 서로 걸리거나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 또는 어떠한 부분이나 방면에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서로 걸린다'는 것은 '얽어짐'을 믜하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작용을 미치어 반응하거나 변화를 주는 일, 또는 그 작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21세기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위한 네트웍 공조를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걸리거나,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을 증진해야 하며, 서로가 서로에 대한 작용이나 반응, 변화를 증진시켜나가야 한다.

네트웍 관계의 증진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먼저 그물의 특징에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

첫째, 그물은 '어떤 그물이든지 그물의 바탕이 되는 끈으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네트웍 공조에 있다. 이는 관계의 증진에 의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다. 그물을 만들 때 어떤 그물이든지 그것의 바탕이 되는 끈으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네트웍에서도 어떤 관계의 분명한 바탕이 있어야 함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그렇다.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을 간과하고는 관계의 바탕이 바르게 잡힐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의 견고한 바탕이 되신다. 그 바탕에 근거하여, 그 바탕으로부터 시작하여 네트웍은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바탕으로부터 시작된 관계의 증진이 네트웍 공조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둘째, '그물을 만드는 실의 굵기와 그물코의 간격은 항상 일정하다'고 했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는 항상 평면적인 관계이다. 주님은 결코 수직적인 관계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수직적인 관계는 관리적 관계요, 계급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관리적 또는 계급적인 관계 속에서 위와 아래가 엄밀하게 구분되어 있는 한 이런 관계에서는 네트웍의 진정한 관계가 형성될 수 없음이다.

그물을 만드는 실의 굵기와 그물코의 간격이 항상 일정함과 같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서로 대등한 관계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긴밀하게 공조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발전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물로 고기를 잡을 때는 그것을 펼치거나 길게 펼쳐진 상태로 늘어뜨려 사용한다'고 했다. 

펼쳐져 있지 않은 그물은 사용하지 않는 그물이다. 펼쳐진 그물이라 할지라도 뭍에 펼쳐진 그물도 실제로 그물의 용도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 그물이다. 또한 그물코와 그물코 사이가 끊어진 상태의 찢어진 그물도 용도에 맞게 사용할 수 없는 그물이다. 그러므로 찢어진 그물은 수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부가 그물로 고기를 잡고자 할 때는 반드시 바다나 호수에서 그물을 넓게 펼쳐서 배로 잡아 끌어당기건나, 펼쳐진 상태로 늘어뜨려 놓아 어장을 만들어 고기들이 그물에 걸릴 때를 기다린다. 그렇다.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서로가 서로의 만남을 친밀한 관계로 긴밀하게 유지해야 한다.

상호간의 불필요한 견제와 오해로 인해 친밀한 관계가 긴밀하게 유지되지 못하고 와해된다면 그런 관계로는 상호적인 증진을 가져올 수 없다. 이것은 널리 펼쳐진 상태이며, 이런 상태로 때를 기다리며 상호적인 관계의 증진을 도모할 때 목적하는 바 네트웍의 성공적인 공조가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그물코는 견고하다. 따라서 그물코는 결코 풀리는 법이 없다.

그물은 그물코와 그물코 사이의 실이 끊어지면 끊어졌지, 어떤 경우에도 그물코가 자체가 끊어지거나 풀리는 일은 없다. 그만큰 그물코의 매듭은 옭매듭으로 견고한 매듭으로 만들어진다. 옭매듭은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법도 없다. 언제나 처음 매듭되어진 그 자리를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 21세기의 선교사역의 성공은 관계자들이 먼저 서로와 서로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이나 타의의 압력에 의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법도 없어야 한다. 둘의 관계는 철저하게 옭아져 일체감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관계여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뉘거나 분리될 수 없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으로 올바른 네트웍 공조를 이룰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 것인가?

첫째, 상호적인 관련(關聯)을 맺을 때 가능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증진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일이 상대방의 일이며, 상대방의 일이 자신의 일이라는 일체감을 가져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만남을 통한 관계를 상호적인 관련 속에서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며 자신의 정보를 서로가 서로를 위해 공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관련 속에서 공유하지 않으면 네트웍 관계의 증진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되는 상호적인 관련은 마치 사람의 몸에서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의 흐름과 같아야 한다. 만일 피가 혈관에서 원할하게 흐리지 못한다면 이는 동맥경화 환자로서 건강하지 못한 몸이다. 따라서 네트웍 공조를 위한 관계증진에 있어서 상호적인 관련을 맺는 것도 이와 같이 서로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원활하고 자유롭게 교류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러함에서 비로소 서로와 서로는 하나의 지체로 불가분리적인 관련을 맺을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함으로 서로와 서로은 상호적인 신뢰가 이루어져 그것을 공유하여 성공적인 네트웍 관계의 증진이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공유할 때 가능하게 된다.

성공적인 네트웍 공조를 위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증진시키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정보도 결코 독점해서도, 독점되어서도 안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작은 정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서로가 서로를 위해 공유하고자 나눌 때 정보의 부가가치는 상승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홀로 독점하려고 하는 한, 서로와 서로의 관계는 절대 무관한 관계로 전락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한 관계는 상호적으로 성공적인 네트웍 공조란 불가능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보의 공유는 중요한 일이다.

정보의 공유는 마치 한번 떡을 만들어 먹고 죽을 때를 기다리리라고 생각했던 한 여인이 선지자와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 다하지 않는 기름병과 가루통의 기적을 경험했던 것과 같은 경험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참으로 네트웍 공조를 원하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독점하지 말라. 그것은 모두와 더불어 공유하라. 공유하는 정보는 더 풍성해질 것이며, 풍성한 정보는 네트웍 공조의 밑거름이 되어 그것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서로의 일에 깊이 관여(關與)할 때 가능하게 된다.

성공적인 네트웍 공조를 위해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깊이 관여하는 것을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일에 깊이 참여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서로의 일에 깊이 관여하고자 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합리적인 분배에 동참하여 하나되기를 갈망함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

네트웍 공조를 원하는가? 서로가 서로의 일에 대하여 깊이 관여하는 것을 즐겨라. 서로는 서로의 일에 깊이 관여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주거나 일에 대한 의욕을 붇돋워 힘을 내게 한다면 서로는 서로에게 무한한 격려가 될 수 있음이다. 또한 서로가 서로의 일을 위해 상호적인 격려를 받게 되면 서로의 일은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 잇을 것이며, 풍성한 결과는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은 분배를 이룰 수 있어 결국 상호적인 공익(公益)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여는 성공적인 네트웍 공조를 활발하게 증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장려(裝勵)하고 진흥(振興)할 때 가능하게 된다.

성공적인 네트웍 공조의 관계증진을 원한다면 관계적인 당사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장려하고 진흥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장려하는 것은 자신의 일을 감당할 굳센 용기를 돋워주는 일이며, 서로가 서로를 권하여 서로의 일을 위해 힘쓰도록 힘이 되어 결코 좌절하거나 실패하지 않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이다.

이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장려하고 진흥하는 일은 관계적인 당사자들 간에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무지(無知)나 분명하지 못한 이해로 인해 발생되는 일들을 무책임하게 비난하거나 조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바르게 깨우쳐주거나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감동시킴으로 떨쳐 일어나게 하여 서로를 더욱 긴밀한 관계로 밀착시키게 한다. 이런 관계의 증진은 서로가 서로를 실족함에서 일으켜 세우고, 스스로를 분기시켜 더 분발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됨으로 결국은 네트웍 고조의 관계를 증진함에 크게 작용할 수 있게 된다.

21세기 선교사역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네트웍의 공조는 필연적이다. 따라서 네트웍의 공조를 증진하자. 그것만이 주께서 기대하시는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이 목적에서 성취될 수 있음을 상기하기로 하자.

21세기는 결코 개인의 영웅주의가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다. 주께서는 이 땅에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에 한 개인적 영웅을 선택하지 않으셨음을 잊지 말자. 사도 바울도 한 때 영웅주의에 빠진 사람이었지만, 그가 주님 앞에 굴복하여 새 사랆이 된 후로는 자신의 모든 신분과 학문을 분토(糞土)와 같이 버렸다고 고백했음도 잊지 말자.

21세기에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려면 네트웍의 공조자가 되자. 자신의 우월을 드러내지 말고,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스스로의 역할에 만족하며 서로가 서로를 위해 공존하는 수평적 관계의 필연적 관계를 받아드리자.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네트웍의 공조를 증진시켜 나가야 한다. 네트웍 공조의 증진만이 21세기의 선교사역을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임을 망각하지 말자.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21세기 선교사역의 네트웍 공조자가 되기를 원하심을 기억하며, 주님의 신실한 일꾼이 되기 위해 다 함께 최선을 다하기로 하자.

베이징에서 石一進 씀
20040724

출처 : MyLoveChina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