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있기까지.....
오랜날동안 한결 같은 마음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여건들을 핑계로 할 수 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피할 수 없는 부담감이었다.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는 막바지에 몰리면서 중국을 향해 출발하고 말았다. 중국을 향하며 출발하면서 특정한 교회나 기관으로부터 파송절차를 받은 바 없었다. 참으로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모한 출발이었다.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착륙해야 할 목적지 중국의 베이징 수도공항이 가까워 오면서 마음이 심히 착잡해지기 시작했다. 무모할 정도로, 어쩌면 대책없이 고국을 떠나면서 중국에서 고생을 각오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시작될 고생을 생각하며 많은 염려들이 마음을 분요하게 하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어찌보면 그런 염려들은 당장 급한 일은 아니었다. 시간적으로 임박한 현실의 일들이 더 걱정스러웠음이었다.
"마중을 요청한 형제가 과연 나왔을까?
만일 그가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지?"
"이곳에서 형편에 맞게
살아갈
적절한 처소를 구할 수 있을까?"
"베이징 생활을 적응하기 위해 누구를 가장 먼저 만나야 하고, 누구와 교제해야
할까?"
"처음 시작하는 외국살이를 잘 할 수 있을까?"
"뒤늦게
중국말을 언제 배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중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할까?""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엎지른 물이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런 까닭에 이제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라도 그것들을 모두 감수해야 할 뿐이었다. 기쁨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 억지로라도 감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뿐이었다. 이렇게 마음을 추수리며 비행기가 활주로에 안전하게 착륙하기만을 마음 속으로 빌고 있었다.
이제 잠시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중국살이를 절대로 당황하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지라도 당황하지 말고 의연해게 대처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중국살이가 비록 어렵고 고달프더라도 결코 나약해지거나 구차하지 않게 살아야 할 것을 굳게 각오할 뿐이었다. 결코 누구에게도 초라한 모습이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주님은 중국살이의 첫 시작을 지극히 섬세하게 배려해 주셨다. 형편에 맞는 처소를 구하기까지 잠시 동안 도움을 구하겠노라고 여겼던 형제 부부를 통해 주님의 예비하심을 경험하게 하셨다. 2년 전에 짧은 만남이 있었을 뿐, 그동안 깊은 관계를 가지지 않았던 부부인지라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통해 임시로 거처할 좋은 처소를 허락하게 하셨고, 평안함 속에서 여장을 풀어 안정된 중국살이를 시작하게 하셨다.
그들은 한국의 모 기업과 합자하여 설립된 기업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기업인이다. 그들이 경영하고 있는 기업은 불과 수 년전에 거의 빈손으로 어렵게 시작한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안정된 기업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최근에 기업을 경영하며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 고민하고 있었다.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사업을 경영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갈등에 빠져 있는듯 했다. 다소 산만하게 흩어진 가정과 사업상의 이해관계적인 일들로 인하여 마음은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한 심정을 무심코 털어 놓을 정도로 깊은 번민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산만하게 흩어져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들을 정리해야만 할 부담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만난 첫 만남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그들의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주님은 그들의 필요에 적절하게 권면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셨고, 그로서 적절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음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비워 둔 집에서 얼마동안 기거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음이었다.
그들이 얼마동안 기거할 수 있도록 제공된 집은 2년 전에 이틀을 쉬었던 바로 집이었다. 그들은 그 집을 목적한 뜻이 있어 비워둔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고 했다. 그러나 본래 목적용도로 활용되지 못한채 집이 비워진 채로 있어 내적인 갈등을 가지게 하고 있었음이었다. 따라서 최근에는 그 집을 팔려고 매물로 내어 놓았으나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집이 매매가 될 땎지 머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들은 매주 목요일에 가족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이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들의 가족예배에 동참하여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하나둘 정리되기 시작했다. 다소 주춤하여 정체되는 듯 하던 사업도 정상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고, 흩어지듯이 산만했던 가정적인 일이나 사업상의 이해관계가 수습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그들은 청년시절에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한인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을 받아드리게 되었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했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한인 선교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한인 선교사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돕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께서 준비하신 배려요 은혜임에 틀림이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끼친 두 분의 비거주 선교사들을 위해 공언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한 분은 미국국적을 가진 분으로서 몇 해 전에 중국에서 다년간 선교사로 사역한 분이었다. 또 다른 한 분은 서진사역의 꿈을 가지고 한국에 거주하며 해마다 몇 차례씩 서진여행을 통해 사역하는 분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을 위해 선교센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을 마련하겠노라는 것이 그들이 공언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효율적인 회사경영을 위해 회사가 가까운 곳에 집을 준비하여 이사하면서 그동안 살던 집을 공언한 목적을 따라 사용하려고 했었다. 따라서 살림집이었던 집을 사무실 용도로 내부를 수리하여 목적용도로 사용하고자 했지만 활용되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내적인 갈등에 빠져가기 시작했고, 그런 까닭에 일부 계획을 변경하여 그 집을 매물로 내어 놓았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여러 달이 지나도록 집은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팔려고 매물로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는 것도 그들에게는 무척 번민스러운 일이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주변 문제가 하나둘 정리되면서 팔려고 매물로 내놓은 집을 팔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올 가을에 소학교에 입학해야 할 딸을 위해 그 집으로 다시 와서 살기로 했음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 집은 다시 살림집으로 내부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스이진도 그 집에서 나와야 했고, 그들은 새로운 처소로 옮겨주며 그곳에서 당분간 약 2주동안 머물면 다른 대책을 세우겠노라고 했었다.
최근에 발생되어진 일련의 상황을 통해 그들은 비거주 선교사들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선교센타 개념의 사무실을 준비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비거주 선교사들이 중국을 방문할 때, 그들이 편히 머물 수 있는 처소를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비거주 선교사들의 사역을 지원하는 일이 될 것임을 깨달았음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새로운 집을 마련하려고 했고, 그 집이 마련 되는대로 스이진으로 하여금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거처를 정해 주겠노라고 약속했음이었다.
약속한 2주가 흘러 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무엇인가 그들에게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묵묵히 그들로부터 어떤 말이 있기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새로운 거처를 찾아 거처를 옮겨야 할 것인지를 경정짖지 못하고 망설였다. 막연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막연한 상태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로 인하여 임시로 머물게 된 집이 도심으로부터 너무 외진 곳이어서 여러 가지로 분요로운 일들이 많았다. 또 중국어를 배우는 일도 일시 중단되었기에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머뭇거리다가 형제에게 만날 것을 요청했다. 마음의 생각들을 나누어 담판을 짓고자 함이었다. 주께서 서로를 만나게 하신 분명한 주님의 배려를 생각하며, 작은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런 만남의 관계를 와해하고 싶지 않았음이었다. 그들은 스이진에게 있어서 마치 사도바울의 마게도냐 사역을 위해 주께서 준비하셨던 자주장사 루디아였고, 스이진은 그들에게 천사를 대접하여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구원 받았던 롯의 일가에 있어서 천사라고 여겼다. 이런 까닭에 상호적인 신뢰의 관계를 와해할 수 있는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형제를 만나 상호간에 조금 더 기다리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만남은 주께서 스이진을 위해 준비하신 주님의 배려임이 분명했다. 처음 중국을 향해 출발하려고 할 때만해도 중국살이를 하면서 조선족이나 재중 한인들의 만남을 경계할 것이라고 각오했었다. 그러나 주님은 스이진의 생각과는 다르게 중국살이를 시작하면서 재중 한인과 조선족이 결혼한 그들을 만나 관계를 갖게 하셨다. 그리고 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게 하셨다. 이렇게 일어난 마음의 변화는 전혀 도외시할 수 없는 재중 한민족에 대한 연민하는 마음의 변화였다.
중국살이를 시작하며 한인과 조선족이 부부가 된 한민족과 관련을 맺게하심은 분명히 주님의 배려이셨고, 그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된 것도 주님이시라면 그 깨달음에 대한 생각들을 모른척 외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마음의 깨달음을 따라 '중국에서 韓人과 朝鮮族의 불신적 관계는 치유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5편 이상의 글들을 꾸준히 써서 인터넷에 발표하게 된 것이었다. 참으로 이런 일은 한국을 출국할 때만해도 전혀 계획에 없었던, 그리고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스이진의 요청에 의해 형제를 만난 일 주일 후, 이번에는 그로부터 만나자는 제의가 들어 왔다. 요청에 의해 형제를 만나면서 그들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 느낌은 형제의 요청에 의해 그들을 만나면서 적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비거주 선교사들을 위해 처소를 준비하려던 계획이 백지화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공언한 바 있었던 비거주 선교사 중에 한 분은 본인 스스로 베이징에 건물을 하나 구입하여 선교센타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했고, 다른 한 분은 형제에게 불필요한 것을 요구하여 일정한 거리감을 두게 된 것이었다. 결국 처소를 준비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랬다. 바로 예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스이진에게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기간을 정하여 머물 처소를 마련하여 후원하겠노라고 했다. 상황이 변한만큼 그들의 제안을 거부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는 그들과의 관계가 어색해질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들이 사랑으로 제안하는 제언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일 주일 후, 지금의 거처로 옮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동안 그들 부부의 배려로 한국의 어느 중산층 아파트에 비교해도 결코 빠지지 않을 넓고 깨끗한 아파트 생활을 해 왔었다. 스이진에게는 넓은 방이 제공되었고, 생활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쾌적한 생활로 어찌보면 호사스러웠던 지난 몇 달의 중국살이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비로소 본격적인 중국살이를 새롭게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새로 이사한 이곳은 야윈춘의 위후이리(育慧里)에 있는 6층짜리 서민아파트 3층에 위치하고 있다. 방 두 칸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전부인 작은 집이다. 마땅한 베렌다도 없는 전형적인 중국 서민들이 살아가는 주택이다. 그 중에 작은 방을 세로 얻어 거처를 삼은 것이다. 스이진의 거처는 신을 벗을 필요가 없는 방이다. 방안에는 책상 하나가 있고, 옷장이 하나, 그리고 1인용 침대 하나와 간단한 소파 2개로 가득채워져 있다. 이곳이 스이진이 얼마동안 정을 붙이며 살아야 할 처소인 것이다.
처음 이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어슬프게 여겨지기만 했다. 생활하기에 몹시 불편할 것만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다른 곳에 처소를 마련하여 옮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며 안정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이 집을 허락하심도 주님의 은혜인즉 감사로 받아드리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빨리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게 여겨졌고 푸근함까지 깃들기 시작했다.
스이진이 생활할 처소로 마련된 집 주인은 같은 동네에 모친이 살고 계신다고 했다. 그들은 모친께 자녀들은 맡기고 부부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 집은 거의 휴식을 위해 잠자는 집으로 활용할 뿐, 식생활의 대부분은 모친과 함께 하는 듯이 여겨졌다. 그러므로 집안에는 부엌 살림살이가 별루 없었다. 따라서 이사 왔던 다음날은 중국의 거리음식으로 식사를 대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렇게는 살 수 없는 일이었다. 밥이라도 끓여 먹으려면 필요한 살림살이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중국살이를 시작한지 석달이 거의 다 되어가건만 아직도 기초적인 생활언어도 통하지 않는 까닭에 물건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이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언어소통의 문제로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집 주인과 자주 접촉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해 보지만 그 때마다 의사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서로 보며 웃음으로 답답함을 해소할 뿐이다. 따라서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리스트를 작성하여 여러 곳의 차오스(超市)와 스창(市場)을 다니면서 물건 값을 조사하고 본격적으로 물건사기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전기밥솥(65위안)을 구입해야 했다. 그 다음으로는 전기스탠드(40위안), 작은 냄비(18위안), 젓가락(2위안), 숟가락(5위안), 선풍기(40위안), 탁상시계(6위안), 화장지 6롤(11.80위안), 옷다림판(35.50위안), 세탁용세제(12.65위안), 빨래비누 3장(3위안), 쌀, 눌른보리, 조, 콩, 흑미등 곡류(44.60위안)를 구입했다. 그 외에도 한국기업이 만든 신라면 5봉(14.30위안), 참기름(15.50위안), 커피(27.50위안), 각설탕(6위안)등 식품류들을 구입하기도 했다.
언어소통이 어렵기에 물건 값을 흥정하기 위해 계산기를 동원하며 어줍잖은 토막 언어로 손짓을 섞어가며 물건값을 흥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아직도 필요한 것들은 많이 있다. 후라이팬이 필요하고, 빨리 건조대가 필요하다. 할 수 있으면 텔레비젼과 냉장고도 있었으면 한다. 집 주인에게 작은 냉장고가 한 대 있지만 그것을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 여간 복잡하고 불편한지 모른다. 그래서 이를 위해 형제에게 '전에 구입한 냉장고를 내게 줄 수 있느냐?'고 요청해 보았지만 '의논해 보겠다'고 대답할 뿐 아직까지 아무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음이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까지만 해도 거처가 일정한 곳으로 확정되면 인터넷 전용선을 설치하려고 했었다. 따라서 이 집으로 거처를 정하면서 이 집에 인터넷 전용선이 옥내에 들어 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전용선이 옥내에 들어 와 있지 않을 경우에는 인터넷 설치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용선이 있으면 인터넷은 신청하기만 하면 빠른 시일 내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인터넷 전용선 설치를 포기했다. 우선 설치비가 300위안이며, 한달 사용료가 120위안씩 한다고 하여 인터넷 설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일찍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음이다. 대신 전용 전화를 한 대 신청하기로 했다. 역시 설치비로 2~300위안이 든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전화만큼은 필요하다고 여겨 신청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접속이 꼭 필요할 때는 느리지만 전화선을 통해 모뎀으로 접속하기 위해서도 전용 전화는 꼭 필요하다고 여김이다.
이래저래 이곳에서의 생활이 여간 번거롭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을 빨리 적응하는 것이 유익함이리라. 말이 되든 안되든 개의치 않고 집 주인이나 이웃하게 되는 한족들과 자주 접촉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생활언어를 빨리 습득해야 성공적인 중국살이가 가능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은 중국어를 빨리 배우게 하기 위한 주님의 섭리라고 믿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스스로를 다짐해 본다. 주께서 형제 부부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날 돕게 하심에 대한 은혜를 생각하며,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곳의 생활을 승리하며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각오를 새롭게 해 본다.
베이징에서
石一進 씀
2004.08.04
'민족-선교민족의 뿌리와 사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중국에서 한인과 조선족의 불신적 관계는 치유되어야 한다. (0) | 2008.10.09 |
---|---|
[스크랩] 중국의 조선족과 재중 한인들을 위해 기도하자 (0) | 2008.10.09 |
[스크랩] 5. 네트웍 공조를 위해 그물(網 net)을 다시 말한다 (0) | 2008.10.09 |
[스크랩] 4. 네트웍 공조를 위해 개체(個體)를 다시 말한다 (0) | 2008.10.09 |
[스크랩] 3. 네트웍 공조를 원한다면 조직을 경계하라. (0) | 2008.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