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네트웍 공조(共助)에 있다 (4)
네트웍
공조를 위해 개체(個體)를 다시 말한다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은 네트웍 공조에 있다'는 글을 쓰면서 네트웍에 대한 정의를 '그물의 형태로 이루어진 관계라고 한다면 어떨까?'라고 제언한 바가 있다. 그러면서 네트웍이라는 말의 근원이 되는 네트(net) 즉 그물(網)의 특징을 살펴보기도 했다. 하여, 이제 네 번째 이야기를 풀어가며 그것을 다시 상기하려고 한다.
그물의 특징은 첫째로 바탕이 되는 끈으로부터 직조되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물이 가지는 두 번째 특징은 그물을 만드는 실의 굵기와 그물코의 간격이 항상 일정하다고 했다. 세 번째 특징은 그물로 고기를 잡을 때는 그것을 펼치거나 길게 펼쳐진 상태로 늘어뜨려 사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물코는 견고하여 결코 풀리는 법이 없다고 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물의 형태로 이루어진 관계'를 조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오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네트웍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물의 특징을 면밀하게 살펴 시사하는 바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 이에 대한 글을 두 번째의 글 [네트웍 공조는 관계증진에 있다]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기를 권고한다.
네트웍 공조를 위해 개체는 매우 중요하다. 지난 글에서 조직을 경계해야 함을 이야기한 바 있으나,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공조는 사실적 공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공조가 사실적인 공조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조직은 하나의 거대한 룰(rule)에 의해 움직일 뿐이며 개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개체가 거부되거나 인정되지 않는 공조는 진정한 공조라고 할 수 없다. 일정한 표준을 만들어 규격화된 정한 규범에 의해 그것을 따르는 공조는 참된 공조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언제나 형식적인 공조의 모습만 있을 뿐 실제적인 공조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용이 없는 빈껍데기의 공조를 어떻게 올바른 네트웍 공조라고 할 수 있으랴!
네트웍 공조는 철저한 개체와 개체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여기에서 철저한 개체란 독립적인 개체를 의미한다. 누구에게 예속되지 않았고, 누구에게 강요되지도 않는 그런 개체를 의미한다. 어느 특정한 세력이나 개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아 행동하거나, 어떤 조직의 룰에 제한을 받아 행동하는 것도 진정한 개체라고 할 수 없다.
네트웍 공조를 위한 개체는 철저하게 자주적이어야 한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만큼 자치적이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체를 독선(獨善)으로 오해하지 말라. 개체와 독선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독선이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일방적인 행위만을 요구한다. 그러나 개체는 독립되어 있으되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있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를 지탱하며, 스스로를 부양하고, 스스로 자리를 잡아 안정됨을 이루며, 분별 있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조정하거나 제한할줄 하며 스스로의 존재성을 확인하고 인식할 뿐이다.
네트웍의 진정한 공조는 개체의 개체의 만남을 통한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조여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조직으로 발전하여 어떤 표준을 이루어 만들어진 규격이나 제도에 의해 강요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네트웍 공조는 독립된 개체가 자신의 것으로 부조(扶助)하는 행위에 기초되어져야 한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두레의 지혜로운 정신으로 함께 하는 것이 참된 네트웍 공조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네트웍 공조에서의 개체는 절대로 자신의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일방적으로 자신의 것을 양보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의 것들 중에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에 한하여 공유할 뿐이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고, 공여할 수 있는 것은 공여하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는다. 베풀 수 있는 것은 베풀고,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수치로 생각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형식이나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의 친밀도를 높여가며 상호적인 일체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하나의 원대한 뜻의 공통적인 분모를 찾아 그것을 이루는 일을 지향함으로 서로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자신의 마음도 평안함을 가지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집단적인 관계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개인적인 관계를 선호하신다. 아니, 하나님의 원하시는 관계는 모든 것이 철저하게 개인적일 뿐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와 관습에 의해 발전된 조직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시킬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접촉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될 우려가 높을 뿐이다.
21세기 선교사역의 성공을 위한 네트웍 공조를 원한다면 철저하게 개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 어떤 조직된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 스스로를 그 집단에 예속하려고 하지 말라. 또는 스스로 어떤 집단을 조직하여 다른 개체들을 끌어 들이려고도 하지 말라. 그냥 독립된 개체자로서 자유인이 되라. 오직 독립적인 개체로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만남을 즐기는 관계로 유기적인 일체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라. 관계의 유기적인 일체감은 흥미위주로 이루어지는 그런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호적인 자치적인 연대감 속에서 서로와 서로가 밀착되는 그런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되 절대로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관계의 하나됨을 경험해야 한다.
예수 안에서 고정되는 관계는 결코 조직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항상 개체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 안에서 네트웍 공조를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도 철저하게 개체적 상태에서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맺어진 유기적인 관계는 영적 보혈의 혈맹관계로 하나됨을 깨달아야 한다. 영적 보혈의 혈맹관계로 하나되는 것은 결코 조직에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체적인 신앙고백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인격적 말씀의 룰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것은 주께서 어떤 사람의 조직에 명령하신 말씀이 아니라 한 개개인의 개체에 명령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조직은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에 기록된 인격적 말씀의 룰은 항상 개체적 관계가 주 안에서 말씀으로 연합을 이루어지는 네트웍임을 이해한다면 결코 인위적인 조직의 필요성은 얼마든지 배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인위적인 조직을 배제하고 개체적인 신앙고백에 기초를 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의 관계를 증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21세기의 선교사역을 성공하기 위한 네트웍 공조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관계증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베이징에서
石一進 씀
200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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