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침체
‘영적’이란 말의 정의
게리 하보 Gary L. Harbaugh 는 「인간으로서의 목회자」라는 책에서 영적(spiritual)이라는 용어를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어떤 구성요소중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한다.<Pastor as Person, 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4), pp. 18.-19. 오히려 그는 '영적'이라는 말을 전체를 통합하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보여주고 있는 의미와 일치한다.
바울 서신에 ‘영적’ 혹은 ‘육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용어 역시 인간을 형성하고 있는 어떤 구성요소라기보다 오히려 전인격이 성령님에 의해서 온전히 지배를 받는 삶이냐/그렇지 않느냐를 가늠하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롬 12:1)라고 한다.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성을 가질 때 하나님은 전인(全人)을 상대로 하지, 어떤 특정한 부분만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전인적인 반응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경적 인간관을 중시하면서 게리 하보는 인간이 육체적(physical), 정신적(mental), 감정적(emotional), 사회적(social) 존재로서 이것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전인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영성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전인(全人)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사회적인 요소들이 서로 네트워크 적이고도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기능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그 움직임의 중심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한 사람이 영적(spritual)이냐 혹은 육적이냐(바울적인 의미로는 flesh)를 판단한다.
1. 영적침체에 관하여
이러한 논리를 따라간다면 영적인 침체는 표면적으로 볼 때, 육체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감정적인 문제요, 사회적인 문제이다. 이것 중의 어느 하나가 심각하게 부조화를 일으키면.. 영적침체의 원인을 제공한다. 보통 사람들이 영적으로 침체기에 빠졌다고 할 때, 이러한 문제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때,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을 때,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거나 답답하다고 느낄 때,
-자신이 속한 구성원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때,
내적인 혼돈과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곧 영적인 침체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그럴 경우 육체적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규칙적인 운동을 하거나, 정신적인 풍요로움이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하여 무엇인가 조처를 취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듣고 자연 속에서 쉼을 찾는다. 또한 인간관계의 풍요로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추구해 본다.
인간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육체와 영혼이 함께 어우러져서 영적인 존재가 된다. 영적인과 육체적인 것(전통적으로는 영혼과 육)을 분리하여 생각할 때, 이론적으로는 명쾌하게 느끼는 것 같으나 실제적인 삶에서 그러한 논리를 적용하기는 매우 모호하다. 요즈음 영적전쟁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공중권세 잡은 사단과의 싸움'이라는 엡 6: 12절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체를 고려하지 않는 사단과의 싸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자칫 잘못하면 영지주의적인 오류에 빠진다.
목회자나 성도들이 깊은 심리적 침체의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그것은 소위 '영적인 문제'라고 진단하면서 자신의 육체와 관련한 주변의 현실적인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초상황적이고 초시간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으로는 구체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더 혼란만 야기 시킬 뿐이다. 이러한 신비주의적인 접근은 간단한 침체의 원인을 복잡하게 만들고 마침내 눈앞에 놓여진 현실적인 자신의 문제를 간과하게 함으로서 점점 더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철저히 하나님과의 소외 그리고 하나님 부재 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2. 시간과 영적침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악령의 실체인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세력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육체의 연약함을 빌미로 하여 접근하며, 그것으로 영적인 침체상태에 빠지게 한다. 그러므로 영적침체에 빠져들었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육체를 지닌 존재요,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육체적으로 자신을 탈진케 하는 요소나 잘못된 습성이나 주변의 상황들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목회자들에게 있어 가장 오류에 빠지기 쉬운 것은 시간 관리의 문제이다. 오늘 현대 목회자들로부터 자주 듣는 소리가 바쁘다는 말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주한가? 목회를 하기 위해서이다. 목회를 일로 보고 있다. 즉 목회란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관리하는 일로 정의한다.
이것은 목회신학적인 정의라기보다는 목회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행하는 실제적인 차원에서의 정의이다. 목회자는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방법론을 익힌다. 그리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난다. 행정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붇는다. 이런 일들을 반복하는 동안 육체와 정신이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지치고 탈진한다.
특별히 오늘의 목회는 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사람들을 얼마나 모이게 하고 그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움직이게 하느냐에 따라서 목회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한다. 그것이 더욱 목회자들로 하여금 본질에서 벗어난 비본질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게하고 육체와 정신을 탈진하게 한다.
비본질적인 일로 몸이 지치고 정신이 탈진해 있을 때 그것이 영적침체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영적침체에 빠져든 사람이 그 침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혹은 그 고통을 외면하려고 다시 분주한 삶으로 뛰어들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래서 바쁘게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는 안위 감을 얻는다.
반면에 자신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불안하다. 왜냐하면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그 만큼 자신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에 몰두해 있으면 있을수록 그 만큼 침체의 국면에 빠져든다. 자기만족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침체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철저히 영적인 침체에 속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존재를 보기보다는 일 속에서, 혹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 외부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점점 소외되어 간다.
그것을 영성 학에서는 영성적 고독이라 한다. 그 고독은 심리적인 작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소외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시간을 조화롭게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때 영적침체를 방지할 수 있다. 시간을 지배하는 내면의 통제능력이 있다면 많은 일들로 ?기지 않는다. 이러한 습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자기의 시간표를 다른 사람이 채워 넣기 전에 자신이 먼저 채워 넣고 나머지를 다른 사람에게 허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오늘의 목회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먼저 자기의 시간표를 채우 넣게 하고 나머지를 자신이 채워 넣는다. 그 결과 그의 생활 속에서 이미 시간이 상당히 부족하게 된다.
꼭 해야 할 일이 아닌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한 나머지 정작 해야 할 일에 쫓기게 되고 그래서 더욱 분주한 삶으로 자신을 몰아간다. 마침내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본질적인 일에 시간을 집중한다면 그 분주함이 진정한 자기만족으로 되갚아 주기 때문에 탈진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일과 비본질적인 일을 구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먼저 해두어야 하나, 시간이 없으면 그만 두어도 되는 일은 뒤로 미루는 결단이 필요하다.
▲유해룡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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