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

[스크랩] 국가권력에 대한 성도의 자세

수호천사1 2018. 1. 25. 09:28

국가권력에 대한 성도의 자세

   ( 13:1-14)

 

 

 1 국가에 관한 이해

 

세상에는 집단과 단체들이 있다. 가운데는 자연발생적인 집단이 있는가 하면 임의적인 연합체도 있다. 예를 들어 민족과 종족은 자연발생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학교 회사등은 특수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세워진 단체들이다. 이외에도 친목계각종 연합모임 단순회원 단체들도 많이 있다.

 

이런 단체들과 달리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특별한 기능을 소유한 기관들이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배경을 전통적인 신학원리에서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국가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관여하는 단체로 이해한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와 더불어 특별히 세우신 제도로 인간들의 삶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오순절날 강림하신 성령을 통해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본질적인 공동체로 이해한다.

 

가정과 교회 이외에 하나님의 특별한 관여를 받는 하나의 단체가 곧 국가이다. 이는 종족과 민족적인 개념과 전혀 다르다. 태생적 의미를 지닌 민족과는 달리 국가에는 다른 어느 기관에도 허락되지 않는 특별한 기능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기독교 국가인가 세속국가인가 하는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국가 자체에 대한 특수성이다. 국가에 맡겨진 사명은 우선 인간의 생명과 직접 연관된다. 국가는 다른 기관들과 달리 절대적인 주권과 배타성을 띠고 있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판단에 따라 사람의 생명을 합법적으로 박탈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국가는 전쟁수행권37) 사형권3에을 가진다. 국가는 전쟁의 주체가 되며 범죄자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집행할 있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요구되지만 그것은 국가만이 가지는 기능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국가 이외에 어느 단체나 집단도 전쟁의 주체가 없다.

또한 만일 국가 이외의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사람을 죽이게 되면 살인범이 된다. 그러면 공권력을 지닌 국가가 직접 개입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린다.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흉악범일경우에는 그를 사형에 처해 죽이게 된다.

 

그러면서 국가는 사람을 죽이는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은 합법적이며 나아가 많은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상을 받고 훈장을 받는다. 사람을 죽이면서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직무를 수행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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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이광호아름다운 신앙생활'(서울: 도서출판 깔뱅 2007), pp.146-150 참조.

38) 이광호, “사형제도에 관한 기독교 윤리적 고찰." 철학논총(새한철학회)pp.321-33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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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전쟁을 수행하고 사형을 집행히는 최종적인 의미는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질서유지를 위해서이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면서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아이러니컬(ironical) 사실이지만 국가는 그러한 공권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유념해야 점은 공권력을 지닌 세속국가 안에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 3 : 20)이면서 동시에 특정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매우 주의깊게 생각해야 것은교회 의미상 국가에 속하지 않았지만 개인 성도들 국가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세속국가의 간섭이나 통치를 받지 않는다. 도리어 교회가 기록된 말씀을 통해 국가와 그에 속한 모든 것들을 판단하며 해석한다. 하지만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국가의 시민으로서 고유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2. 국가에 관련된 성경의 교훈

 

 

1) 세속국가의 통치력에 대한 성도의 자세

 

사도 바울은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방국가의 권력에 복종하도록 명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성도로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세속국가의 권력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는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매우 민감한 문제가 있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원수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배도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비롯하여 저들의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는 평소 원수라고 여기던 로마인들과 손을 잡고 타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내심 로마인들을 부정한 이방족속이라 간주했으며 그들이 통치하는 로마제국을 경멸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을 하며 많은 애를 썼다. 열성당원들(the zealots) 비롯한 과격주의자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민족적 저항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도이자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인 바울이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 로마제국의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다.39)  이는 일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말이었다. 나아가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 출신 성도들도 그점을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점을 매우 강조해 말하고 있다.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13:1,2)

 

바울은 국가의 위정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하면서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권위에 불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임을 강조했다. 세속국가의 권세를 거스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는 것이라 말했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국가와 위정자들에게 허락하신 특별한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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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사도바울의 말은 유대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이는 우리 민족이 과거 일본에 의해 강점당한 상태 교회의 지도자들이 일반 성도들에게 일본제국의 권력제도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독립운동을 하는 민족주의자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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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회를 향한 말은 바울의 개인적인 판단이나 정서에 기인한것이 아니다. 그가 로마적인 인사였기 때문에 교회를 향해 그렇게 명령하지는 않았다. 바울이 로마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요구한 이유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를 향해 국가의 기능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세상의 국가가 해야 중요한 가운데 하나는 윤리적 관점에서 이해되는 선을 장려하고 악을 정벌히는 것이다. 일반적인 권선정악이 국가의 중요한 임무이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국가제도와 더불어 권력을 허용하신 것이다.

 

지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다양한 개별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건강하고 부유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병약하고 가난한 자들도 많이 있다. 세상에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들은 자기 중심적이며 불공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힘이 있는자는 약자를 부당하게 괴롭힐 있다.

 

국가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그런 부당한 일이 발생히는 것을 방지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위해 국가에 (sword) 무력을 허락하셨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국가를하나님의 사역자 (13:4 6) 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위정자들은 하나님 대신에 일반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찾아 벌하게 된다. 이는 성경에서 일컫는 본질적인 죄가 아니라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죄악을 의미한다.40) 이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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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여기서 말하는 본질적인 죄란 아담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 범죄한 원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죄악이란 살인강도간음 현상적인 죄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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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국가의 권력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저들이 가진 선한 양심으로 말미암는다.  세속국가의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도 베드로 역시 그와 동일한 교훈을 주고 있다.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갑바도기아아시아와 비두니아 등지에 흩어져 있는 여러 교회들(벨전 1:1) 향해 성도들이 가져야 국가관을 설명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벧전 2:13,14)

 

베드로는 여기서 성도들을 향해 세속국가와 통치자에게 복종하라고 말한다. 나아가 악한 자들을 징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상주기 위해 국가의 임무를 부여받은 관리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는 국가에 속한 시민으로서 성도들이 선택할 있는 사항이 아니라 당연히 순종해야할 의무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세속국가와 통치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그에 속한 백성들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41) 베드로가 특별히 언급한 주를 위하여 (벤전 2:13)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 국가에 순복하라고 한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여간 주의를 기울여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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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우리는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예수님과 사도들이 활동하던 1세기를 살펴볼 수있다. 당시 배도한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그를 따르던 성도들을 죽이고 박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결과 수많은 성도들을 죽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으며야고보와 스데반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도들을 죽이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였다. 악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도록 한 자들은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나중에 교회를 핍박하지만 그럴 때도 국가 이외의 다른 세력이 사사롭게 성도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는 공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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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에게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세속국가와 통치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충성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을 아는 성도의 도리인 것은 아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겸손한 자세로 세속국가와 통치자의 정당한 공권력에 복종하는 것이다.




2) 세속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에 관한 성도의 자세

 

 

사도 바울은 국가의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교훈과 더불어 국가에서 부과히는 세금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성실한 납세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는 국가와 그에 속한 시민으로서의 관계로 말미암는 것이며 특별한 종교적 이념이나 정치체제와 무관하다. 국가가 지향하는 정치이념과 종교정책 여부와 상관없이 기독교인들은 국가가 부과한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해야 히는 것이다.

 

사도교회 시대의 로마제국은 일반 유대인들의 심한 견제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항상 민감한 문제가 되어 있었다.42) 이스라엘 민족을 강점하여 박해하는 로마제국에 성실한 납세의무를 다 한다는 것은 소극적인 이적행위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성도들에게 로마제국에 대한 납세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며 명령보다 강한 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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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유대인들의 눈에는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유대왕국을 위해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율법적인 의무가 아닌 듯이 말하면서 로마제국에 바치는 세금에 대해서는 강조히는 것같이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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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세속국가에 대한 납세가 마땅한 의무이며 그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유대 민족주의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배신행위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께서도 세속국가에 바치는 세금 문제를 언급하신 적이 있다.

어느날 예수님을 시험하는 유대인들이 그를 올무에 걸리게 목적으로 민감한 질문을 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하면 반유대적인인물로 내몰릴 우려가 있으며 그렇게 하지 말하고 하면 반로마적인 인물로 내몰릴 있었다. 물론 예수님은 그런 식의 민족주의적 이념을 가진 분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곧바로 그에 대한답변을하셨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뒤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탑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 20:22-26)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질문을 받고 로마제국의 화폐에 새겨진 황제의 화상(團象) 로마의 글귀를 가리키며 그것이 누구의 것인가 묻고 주인인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말했다. 이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은 로마제국에 납세의무를 성실히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감히 그의 가르침을 책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님의 교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왕국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예수님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고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 다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기를 시험하는 자들이 문제를 이상 확대하지 못하도록 그의 지혜에 놀랐던 것이다.

 

이에 관한 교훈은 우리를 비롯한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주의깊게 받아들여야 한다. 가르침은 당시 예수님의 주변에 있던 유대인들과 그의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01 아니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살고 있던 성도들에게 국가에 바쳐야 세금에 관해 예수님과 통일한 교훈을 주고 있는것이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자에게 줄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 하라'( 13: 67)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속국가에 성실한 자세로 납세의무를 다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의 부강을 위한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통치자들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국가의 질서유지와 더불어 국가정책을 수행하게 되며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비롯한 일반백성들이 그로 인해 기본적인 삶을 보호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대행히는 자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의 직무수행을 위해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바울은 또한 여기서 특별히 탈세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뉘앙스를 지닌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그가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 말한 것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성도들이 실제로 현실적 조세법에 따라 그대로 적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원리에 대한 공명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납세의무를 완벽하게 이행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어려운 숙제로 남는다.

 

그리고 세금 문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것은 국가가 해야할일과 교회가할일이 따로 분리되어 있음을 말하고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국가는 교회의 신앙적인 정당한 일을 간섭하거나 제재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국가가 감당해야 일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려 해서는 된다.

 

이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요즘 한국교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교회의 복지사업을 예로 들어 설명할 있다. 현대의 많은 교회들은 노인복지장애인복지여성복지아동복지 등을 위해 조직을 구성하고 시설을 마련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에 매진하는 자들은 그것이 교회가 행해야 하는 일인 크게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회복지사업과 연관되는 일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직접할 일이 아니다.43) 교회가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선포하며 성도들간의 교회적 구제를 통해 말씀에 조화되는 순수한 신앙공동제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로값 주고 사신 단체로서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공동체이다. 교회가 고유한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면 세속화되어 타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 할지라도 사회복지사업에 관계된 일을 직접 주도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대신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개별적으로 세속국가의 정책을 통해 일을 감당할수 있도록 성실하게 도외주어야 한다. 그에 대한 중요한 방편이 성실한 납세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이제 그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생각해 필요가 있다. 국가는그런 일을 수행하면서 나름대로의 정책과 더불어 공평한 원칙을 가지고 복지사업에 임할 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든다면 국가가 노인 복지정책을 펴면서 전체적으로 살펴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노인들에게 고른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 장애인복지여성복지아동복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백성들이 세금을 기본적인 재원으로 하여 어려운 약자들을 돕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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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이광호열매맺는 신앙생활’ (서울: 도서출판 깔뱅 2007), pp. 54-5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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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회가 일을 수행하게 되면 결코 공평한 혜택을 없다. 눈에 띄는 사람들은 상당한 혜택을 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그로 인해 더욱 심한 소외감을 안겨줄 있다. 더구나 그런 것을 종교적인 포교의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된다.

 

거기에는 이미 진정한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다. 교회가 사회복지를 앞세워 좋은 일을 하는 생색을 낸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나아가 만일 교회로부터 복지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그에 보답하는 태도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교회의 순수성을 해칠 우려마저 없지 않다.

 

그러므로 교회는 직접 그런 복지사업을 하려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성실한 납세를 통해 국가로 하여금 일을 감당할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교회와 성도들은 국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에 참여하게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가 공평한 복지사업을 하도록 도와주고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의 본연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3) 국가법과 교회법의 관계

 

국가법과 교회법 사이에는 역사 가운데 항상 심한 갈등을 빚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성도들은 세속국가의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시대와 초대교회 시대의 성도들은 국가의 권력에 복종했으며 성실한 납세의무를 다했다.

 

그렇다면 교회에 속한 과거 믿음의 선배들은 세속국가의 모든 법들을 무조건 지켰던가?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자 애썼던 성도들도 국가의 모든 법을 그대로 지켰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초대 교회는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는 성도들에게 황제숭배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진 박해를 무릅쓰고 기독교 신앙을 금지하는 세속국가의 법을 어기며 그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아가 로마제국의 권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행위를 금했지만 교회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 역시 그렇다.

현대에는 법적으로 복음전파를 금지히는 국가들이 많이 있다. 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은 기독교 복음을 증거한 것을 원천적으로 금하고 있다. 이는 비단 이슬람교뿐 아니라 다른 이방종교를 신봉하는 국가들 가운데도 그런 예는 많다. 또한 종교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어도 정치적 이유로 인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법적으로금지하는 나라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국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국법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믿지 않아야 하는가? 다른 지역 출신의 성도들은 국가법으로 복음전파를 금지하고 있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는 되는가? 교회는 저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저들이 읽을 있는 책들을 펴내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가 있는 것은 성경이 복음전파를 금하는 지역에 살면서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세속국가의 법을 어기고 더욱 힘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한다. 나아가 교회는 저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들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함을 명령하고 있다.

 

이외에도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본다면 세속국가의 법과 교회법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럴 경우 성도들은 당연히 세속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건전한 교회법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세속국가의 법을 어기게 됨으로써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세속국가의 위협을 피해 카타콤(catacomb) 숨기도 하고 이리저리 유리하기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 위해 세속국가가 제시하는 법령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내어 놓았으며 고난받는 삶을 선택했던것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결코 국가법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법에 불순종하는 행위를 해서는 된다. 우리는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해야만한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세속국가의 제도적 권세에 복종하며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것은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아 국가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국가 권력에 복종하고 납세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한 성도들의 기본적인 의무사항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고 참된 신앙에 반하는 법으로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내용이라면 당연히 세속국가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국가법을 무조건 성실하게 지키는것 자체가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인 것은 아니다.


 

3. 사랑은 율법의 완성

 

 

사도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피차 사랑의 외에는 아무에게도 다른 빚을 지지 말라고 했다( 13 :8). 빚이란 남에게 반드시 하는 부채를 의미한다. 그것은 경제 용어로서 권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이행 해야만 의무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갚아야 재정적인 빚이 있는가? 만일 그것을 아무런 해명없이 오랫동안 방치한다면 저들로 하여금 내가 빚을 갚기를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저들에게 갚아야 빚이 있다면 그들이 기다리기에 지치지 않도록 빨리 그빚을 갚아야만 한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형제를 괴롭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무리 갚아도 갚지 못할 중요한 빚이 남아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내가 받을 빚이 아니라 반드시 갚아야할 빚이다. 그것은 채권이 아니라 무형의 채무에 해당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사랑의 이라고 표현했다.44) 이는 단번에 갚으면 끝나는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갚아야할 빚이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것은 채무가 모든 성도들에게 부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간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서로 사랑하라고 것은 그런 의미를 지닌다.

 

피차 사랑의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이루었느니라"( 13:8);

“Owe no man any thing, but to love one another: for he that loveth another hath fulfilled the law.” (Rom.13:8, KJV)

우리는 바울이 말을 매우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의 교회를 향해 교훈을 주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가운데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이루었다 고 한말은 과연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는가?

 

말은 개별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개인적으로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히는 의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는 이웃을 향한 개인적인 사랑의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바울이 한 이 말가운데는 교회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교회의 성도들이 전체적으로 받아들여 순종해야 의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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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사랑의 빚은 의무로서의 사랑 일걷는다.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발생하는 사랑과 구별된다. 인간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은 대개 욕망으로 인한 것이다. 사랑은 자기가 만하며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데도 있는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의무로서의 사랑이다. 부부간의 사랑과 가족간의 사랑은 어느 정도 의무적인 사랑에 연관된다. 부부와 가족조에는 설령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사랑해야만 하는 특수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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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영어성경을 통해 소개한 대로 다른 아무 빚도 지지 않고 서로 사랑한다면 그것이 율법을 이룬 증거가 된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개별적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로서 집단적인 의미를 지닌다. 개개인 성도들의 삶을 통해 교회 가운데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구약의 모든 율법이 성취된 결과이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을 언급하고 있다. 모세가 받은 언약인 십계명 가운데 여러 부분들을 제시하면서( 13:9) 그것이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된 사실과 연결지어 말했다. 그러한 것들이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율법의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예수께서도 율법의 완성에 관한 의미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중심에 계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간음살인도둑질탐심 모든 것들을 율법이 금한 것은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순결을 요구한 표식이다.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가 강림하시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율법이 완성된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교훈을 하셨다. 예수님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시험하던 바리새인들이 그에게 찾아와 율법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크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듣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그를 시험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저들에게 그에 대한 답변을 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22:37-40)

 

예수님의 말씀은 악한 유대인들에게 하신 답변이었으나 실상은 그자리에 함께 있던 제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은 그것을 버렸지만 제자들은 마음에 깊이 새기지 않을 없었다. 이는 사실 지상에 세워진 교회의 본질적인 기초가 되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내용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판단과 감정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인간들의 결단이나 선행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요구하시면서 그것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것들은 오순절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세워진 교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했던 말도 이와 동일하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이룬 ( 13:8)이라고 말하는 바울의 깊은 의도를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4. 항상 깨어 각성해야할 성도들

 

 

하나님께서 거룩한 피로 주고 사신 교회는 항상 종말의 시대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그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세상은 마치 피를 흘리며 싸우는 영적 전쟁터와 같다. 잠시라도 신앙의 자세가 흐트러져 마음이 느슨해지면 원수들이 우리를 노리게 된다.

 

만일 전투 중에 있는 군인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태만하다면 어떻게 될까? 나아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가의 모든 군인들이 정신적 해이에 빠져 있다면 나라는 과연 어떻게 될까?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절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패배하여 멸망하게 것은 불을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때를 분명히 분별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정신을 빠짝 차려 깨어있지 않으면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날이 점차 가까워지게 됨으로써 사탄의 세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 역시 그와 동일한 교훈을주고 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처한 형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안심하고 세상이 주는 평화를 노래할 성도들은 아무도 없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앓이니라" (벨전 5:8,9)

 

베드로는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회와 세상 사이에 일어나는 본성적 충돌을 피할 없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마치 우는 사자같이 성도들을 미혹해 집어삼키려 발악을 한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믿음으로써 악한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심한 고난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혹시 세상의 악한 속성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영적 전투의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곳을 안식처로 삼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대적 마귀가 마치 우는 사자처럼 설쳐대는 세상에서 그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는 않는가?

피가 튀기고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우리는 조용히 눈을 감고 낭만적인 환상과 착각에 빠져 영적인 현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죽음의 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탄은 때로 자신의 악한 모습을 숨긴 교묘한 수법으로 변장하여 성도들에게 접근한다. 무서운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과 통일한 수법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점을 강조하고 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흘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 11:13-15)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지 않으면안 된다. 따라서 비울은 로마의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깊은 밤이 지나가고 이제 날이 때가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13:1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점차 가까워져 오고 있으니 그러므로 거룩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모든 어두움의 행실을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가운데 행하듯이 단정히 행하여 방탕하고 음란한 행위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더러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과 다투거나 시기하는 미숙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오직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입음으로써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추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도 그점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성도들이미혹하는 사탄과 악의 세력에 저항해 씨우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무장을 해야만 한다. 갑옷과 투구를 비롯한 장비를 갖추고 방어준비를 해야 하며 적을 공격하기 위한 확실한 무기를 손에 들고 있어야 하는것이다.

 

종말로 너희가 안에서와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6:10-17)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이 사탄의 세력에 저항해 싸우는 전투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지상에 존재하는 혈과 육에 관련된 것을 넘어 외부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사탄이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력이라는 사실 을말하고 있다. 그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무서운 영적인 세력이다.

 

그런 무모한 원수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된다. 있는 대적들에 맞서 싸우려면 기초체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깨달음과 이해를 말한다. 기초체력이 약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갑옷과 무기가 있다 해도 무용지물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튼튼한 체력을 갖춘 바탕 위에 철저한 무장을 하도록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우선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 속한 군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이는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 입는 갑옷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제공되는 것이다.

갑옷 위에 진리로 허리띠를 매야 한다. 갑옷을 자기의 몸에 맞도록 띠를 매어 행동하기에 거추장스럽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의로 가슴막이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 적군이 날카로운 무기로 심장을 겨냥해 공격해 올지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의가 그것을 막아주게 된다. 그리고 양쪽 발에는 복음의 군화를 신고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한다.

그런 다음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들고 다른 손에는 성령의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전투에 임해야한다.

 

이렇게 하여 완전무장을 함으로써 성도들은 하나님의 편에서 싸우는 용맹한 군인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것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결연한 모습이다. 우리가 유념해야 바는 교회란 사탄의 세력에 맞서 전투히는 신령한 조직이며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완전무장한 영적인 모습을 갖춘 용맹한 군인이라는 사실이다. 공격해 오는 적을 맞아싸워야 군인들이 정신적 해이에 빠져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면 패망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런 처절한 싸움을 씨워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완전한 승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교회 현실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전투에 임히는 우리의 정신 자세는 어떤가? 과연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사납게 위협하고 있는 악한 세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고있는가? 우리는 현대의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참된 교회는 보이지않는 세상의 세력과 결연한 자세로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의 방패와 공격의 무기인 예리한 말씀의 검을 손에 굳게 잡고 있지 않으면   된다.

 


이광호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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