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3:8-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위의 성경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거듭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또 범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누가 죄를 안 짓고, 또 죄를 범하지 못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래야 된다면(문자적으로) 우리 중에 과연 몇 명이나 구원을 받을 수 있을는지? 참으로 남감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상근박사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는 말씀의 참 뜻은 “무슨 죄든지 계속적으로 지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이상근 박사 신약 주해 공동서신 303쪽)
이 해석은 가장 정확한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는 무슨 죄든지 계속적으로 지을 수 없나니"라고 기록하지 아니 하였을까?라는 의문의 들 법 합니다.
치유 상담 전문가인 정태기 교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이 자랐던 50년 전 섬마을 가난한 초등학교 시절은 어른이나 아이나 일상의 생활 언어 자체가 거의 욕이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의식 있는 젊은 선생님이 오셔서 참으로 헌신적인 교육을 하시는 바람에 학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는 선생님은 무었을 가르치시든 모두 잘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실천이 안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언어 순화의 문제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체의 욕설을 금지하는 강력한 지도를 하시게 되었는데 그러나 막상 늘 생활 언어처럼 사용하던 욕을 하지 말라니, 그 욕 안하기가 얼마나 불편하고 낯설었는지, 그 때 당시 정교수는 “우리에게 욕을 일체 쓰지 말라는 것은 마치 우리가 주고 받는 말을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처럼 어렵고 힘들고 낯설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급기야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것은 욕설 카드제 이었습니다.
학생 한 사람당 카드 10장씩 나누어 주고 친구가 욕하는 것을 먼저 들은 학생이 욕한 학생의 카드 한 장을 빼았아 가는 제도 이었습니다.
한 달을 실천한 후 카드를 제일 많이 가진 학생에게는 상을 주고 제일 적게 가진 학생에게는 벌을 주기로 했습니다. 벌이란 12월의 추운 겨울날에 옷을 벗고 운동장 두 바퀴 도는 벌이 었습니다.
한 달 후에 조사를 해보니 카드를 30장 가진 학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한 장 혹은 두 장 밖에 못 가진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태기 학생은 한 장도 가지지 못한 유일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엄한 얼굴을 하고 정태기 학생을 교무실로 불렀습니다.
카드를 제일 적게 가진 학생은 옷을 벗은 체 운동장 두 바퀴를 돌기로 약속했지만 날씨가 너무 춥고 또 정태기는 몸이 약한 탓에 병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선생님의 배려로 종아리 10대를 맞는 벌로 대체를 했다고 합니다.
매 3대를 맞고 너무 아파 견디지 못하고 무의식 적으로 손으로 매를 막기 위해 돌아서는데 이때 정태기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광경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매를 때리는 선생님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펑펑 솓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가 태기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내가 태기를 얼마나 믿었는데...!”
라고 하시면서 통곡을 하셨습니다. 정태기교수는 그 때 일을 추억하며 계속 말을 이어 갑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다시 돌아서서 종아리를 걷고 나머지 매 7대를 다 맞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교실로 돌아와서 책상에 머리를 박고 통곡을 하면서 속으로 소리쳤습니다.
나도 커서 선생님 같이 될 거야! 나도 커서 선생님 같이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이 때부터 나는 더 이상 욕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더 이상 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단번에 욕을 끊어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욕하는 습관이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옛습관 때문에 실수로 욕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옛날과 같은 욕쟁이 정태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욕을 해서는 안 되는 정태기 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나기 전 육신의 사람이었을 때는 태생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순간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즉 한가지 혹은 두가지 죄를 짓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로의 변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라도 아직까지 옛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 난 것이 아니기 때문 단번에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던 옛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1-24)
원로 Essay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 목사 예종규
http://cafe.daum.net/y9144
http://y9144.com.ne.kr
'좋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자아인식(自我認識 : Self-awareness)➁ 바리새인 증후군(症候群) (0) | 2015.01.18 |
---|---|
[스크랩] 자아인식(自我認識 : Self-awareness)➀ “너 자신을 알라!” (0) | 2015.01.18 |
[스크랩] 목사의 우상(偶像) (0) | 2015.01.18 |
[스크랩] 말(言語) 심판 (0) | 2015.01.18 |
[스크랩] 사망에서 생명으로 (0) | 2015.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