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4, 할 수가 없어서.
오늘도 우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주님 성전을 찾으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으로 말미암는 은총이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신앙의 이유 네 번 째 시간으로 제목을 할 수가 없어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좋아서 신앙을 하십니까?
아님 어쩔 수가 없어서 하십니까?
두 가지 다입니까?
좋아서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오늘 제목처럼 할 수가 없어서 교회 나오시는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저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좋아서 신앙하는 줄 아셨습니까?
예 그것도 맡는 말씀입니다.
저 예수님 정말 좋아합니다.
그것도 어쩔 수가 없이 좋아하실 수 밖에 없도록 만드시는 주님 앞에 두 손을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찬미가도 손들고 라는 가사가 있는 찬미들을 다 좋아합니다.
어떤 찬미가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350장 하나님 의지없어서 이 찬미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의 찬송가를 곡을 바꾸어 찬미가에 올렸습니다.
손들고 라는 가사가 또 있습니다.
어떤 찬미게요?
354장3절입니다.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그 다음에는 또 어떤 찬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 아시는 찬미 있으면 가르쳐 주시면 배우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손도 예수님께 다 들고 더 가까이 나가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예전에 어떤 분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해 주셨습니다.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좀 모자라기 때문에 신앙을 한다라고 하드라고요.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무슨일이든지 자신이 없으니까 기도하고 빌고 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많이 이루었습니까 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 그 말도 맞는 말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루어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잘해서 얻은 것이라 생각 드십니까?
오늘 다시 한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성경을 통해서 같이 살펴보면서 인간의 연약성과 무익성을 함께 느끼고 함께 주님앞에 더 가까이 나가시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똑똑하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잘 만드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손 장로님을 가만히 뵈면 못하시는 것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잘 만지시고 잘 고치시고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분이 우리교회에 계시다는 사실을 감사드립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헤라는 생각을 합니다. 장로님 그렇습니까?
아멘.
갈릴리 바다는 고요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셨던 주님은 배에 오르시자 마자 곤하게 잠이 드셨습니다.
근데 주님 주무시자 마자 풍랑이 일어납니다.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와 요한과 안드레와 야고보 이들에게 이러한 풍랑은 아무것도 아니였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 마다 예수님그늘에 가려서 자신들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들어나곤 했는데 지금은 주님께서도 주무시고 깨어계신다 할찌라도 이런 풍랑에는 그렇게 도움이 되시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이럴 때 동료들에게 자신들의 힘과 바다를 헤쳐나가는 기술을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풍랑이 올 땐 어떻게 하고라고 하면서 동료들을 가르치면서 지시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좀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교회에는 사람이 적다보니 무엇가 잘난 체 하시는 분들이 없습니다.
그런 분들 보면 때로는 부럽기도 하죠 어쩌면 저렇게 잘 할 수가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계속 보노라면 사람 냄세가 너무나 나서 코를 틀어막아야 하는 일도 있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 다시 창세기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교독한 말씀은 지난번에도 한번 살펴본 말씀이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성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림을 잘 그리질 못하여도 그 광경을 상상으로 그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과일을 먹은 두 사람은 갑자기 신체의 이상을 느낍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허전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습이 노출됨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했다고 성경은 말합니까?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이 말씀이 무엇임을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자신들의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끊어졌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벗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일이 무엇 이였다고 합니까?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하였다.
인류최초의 재단사는 누굽니까?
아담과 하와 입니다.
무엇으로 만들었습니까?
나뭇잎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동작은 숨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왜 숨었다고 그들이 말을 하였습니까?
성경보겠습니다.
창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지금 아담과 하와가 벗었습니까?
입고 있습니까?
조금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무엇을 알고요?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벗은 줄을 알고 어떻게 했습니까?
창 3:7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치마를 하였드라는 말씀은 입었다는 말씀입니까?
벗었다는 말씀입니까?
입었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시는 시간이 되자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컴퓨터를 고장 낸 아이들이 아빠 오는 소리를 듣고 겁이 나서 숨은 것처럼 아담과 하와도 숨었습니다.
근데 그 숨은 이유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창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 하여 숨었습니다.
이게 아담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입어보았자 하나님 앞에서는 벗은 것이나 같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시길 바랍니다.
가리려 해도 가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앞에 어떻게 들어난다고 합니까? 벌거벗은 것 같이..
우리가 아무리 덮어써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드러난다.
제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드리죠.
한때 이것 저것 잘되지 않아서 중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따리 장사를 해 볼까 하는 심상으로 중국시장에는 무엇이 많이 필요하고 중국에서 무엇을 구입하여 오면 잘 팔릴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중국에 가서 마침 우리교회 성도님이 계신다고 해서 집사님 한분과 청년들이 함께 자취하고 있는 아파트에 가서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경을 다 하고는 올 때 가지고 있는 돈으로 이것 저것 곡물을 많이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오기 위하여 짐을 싸는데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다른 것은 다 무사히 통과 될 것인데 호두는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고춧가루를 많이 구입하였는데 그 고춧 가루 속에 호두를 넣으면 모른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시키는데로 고춧가루속에 호두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단단하게 묶어서 배낭에 넣어서 짊어지고 배를타고 인천에 내려서 검역소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생전 그런 곳을 들어가 보지 않았서 몰랐는데 검역관이 짐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렸죠.
고춧 가루속에 호두를 넣었다고요.
왜 그렇게 했느냐고 하시는 말씀에 호두는 안된다고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니 호두인지 확인이 되지 않으니 열어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비닐로 묶어서 테잎으로 얼마나 단단하게 묶었는지 그것을 제가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검역관이 칼을 가지고 그 물건들을 다 난도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춧가루속에 들어있는 호두자루까지 다 난도질을 해서 가장 깊은 속까지 다 들어나도록 하고서는 가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원상태로 해주셔야 가지고 갈 수가 있지 이것을 어떻게 가지고 가라고 하느냐고 하니 왜 그렇게 숨겨서 오느냐 해서 아무 말 못하고 대충 꾸려가지고 마침 차를 가까이 주차해 놓아서 다행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들어나는 것은 부두가의 검역소의 카메라보다 더 정확하게 들어날까요?
인간의 눈도 짐 속에 있는 것 감추어둔 것 다 찾아내는데 하나님의 눈은 더 깊은 것이라고 다 볼 수가 있을까요?
예 다 봄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가리려 마시고 감추지 마시고 숨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꺼집어 내어 놓고 자복하고 회개하면 용서함 받고 치유함을 받고 감싸주시는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이제 그들 에덴을 방문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속의 경륜에 대한 말씀을 다 해주셨습니다.
너희들은 이제 영생에서 떠났기 때문에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
다시 살기 위하여서는 너희들 대신 누가 죽어야 하는데 그 일을 나 여호와가 하기로 했다.
그런데 너희들이 그러한 영생을 얻고 얻지 않고도 자유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도 자유였듯이 죽은 생명에서 영생을 얻는 것도 자유이다 그것을 원한다면 내가 너희들 대신 죽는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으로 표현을 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창조주께서 오셨다고 반가워 하는 양을 가리키 보였습니다.
이제는 양을 잡아야 합니다. 누가 잡았을까요?
부조68쪽
[희생 제사들은 사람에게 그의 죄를 항상 상기시켜 주고 자신의 죄에 대한 참회가 동반된 시인과 약속된 구속주를 믿는 그의 신앙의 고백이 되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제정되었다. 그것들은 타락한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온 것은 죄라는 엄숙한 진리를 깊이 명심시키려고 제정되었다. 아담에게 있어서 첫 희생 제사는 가장 고통스러운 의식이었다. 그의 손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을 취하기 위해 들려져야만 하였다. 그는 이 때 죽음을 처음으로 목도하였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하였었더라면 사람이나 짐승이 죽는 일이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무죄한 동물을 희생 제물로 죽이면서 그는 자기의 죄가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떨었다. 이 장면을 보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밖에는 속죄할 수 없는 그의 죄의 중함을 더욱 깊고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범죄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이처럼 놀라운 속전(贖錢)을 지불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선하심에 경탄하였다]
이렇게 죄 없는 한 마리의 양은 아담을 위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잡은 그 양의 가죽을 벗겨서 옷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의 입고 있는 무화과 나뭇잎 옷을 벗기시고 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왜 바꾸어 주셨을까요?
아들이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간다고 해서 있는 것 없는 것 모와서 잘 다녀오라고 주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그렇죠.
자식이 어디 간다면 무엇이든지 불편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닙니까?
그것도 하나님을 닮은 마음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죄의 세상이 되어버린 환경에 나가 살려면 나뭇잎으로 살아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오늘날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민족이 있습니까?
왜 없을까요?
나뭇잎은 영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죠.
일시적으로는 몸을 가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여기는 아들을 사랑하는 따쓰한 옷을 입혀 보내는 그 마음보다 더 중요한 깊은 영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는 사람의 마음가운데 이거하나를 더 넣어주셨습니다.
다른 동물들에는 없는 것 무엇일까요?
예 종교심을 넣어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이 아름답습니까?
때를 따라 더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아침에 보는 산과 하늘 저녁에 보는 산과 하늘은 매일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누가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리고 더 아름다운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사람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종교심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희들 집에 고양이를 한7년 정도 길렀습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한 번도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때로는 아침 예배드릴 때 아니면 저녁 예배드릴 때 고양이를 옆에 앉게 합니다.
그리고 예배같이 드리자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시작하면 어느새 제가 가고 싶고 있고 싶은 곳이 가버리고 맙니다.
요즘은 저희들 집에 뚜벅이가 있습니다.
거북이의 이름입니다.
이놈도 말을 잘 듣습니다.
오라고 손뼉을 치면 잘 옵니다.
예배드릴 때 옆에 앉게 하고는 예배를 드리다보면 어디로 가고 없습니다.
왜 그놈들이 그럴까요?
믿음이 없어서 그럴까요?
신앙심이 부족하여 그럴까요?
여러분들은 안식일 날 아니면 일요일 날 고양이나 개가 교회 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제가 청년 때 우리 고향교회에 할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염소를 키우셨습니다.
근데 이놈은 안식일 되면 교회에 옵니다.
예배 드리러 올까요? 왜 올까요?
할머니 따라 교회 안까지 따라 들어옵니다.
그래서 쫒아내면 할머니는 속상해 하시곤 했습니다.
근데 그 염소를 예배드리는 곳에 그냥 두면 예배를 드릴까요?
그런지 안 그런지는 지켜보지 않았기 때문 모르지만 우리 고양이를 생각하면 그렇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왜 짐승들은 예배를 드리지 못할까?
왜 그렇습니까?
무엇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는 것을 보시죠.
아담과 하와가 수치를 가리려고 만들었던 나뭇잎 옷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은 얼마나 될까요?
지신[땅] 해신, 달신,산신,나무신,돌신,바다신,하늘신, 이러한 종류가 대표적이죠.
그리고 새부적으로 들어가면 또 많이 있을 것으로 압니다.
신의 종류가 가장 많기로 소문난 인도는 신의 종류가 삼억 삼천 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거다 무엇 하려고 생겨난 결론입니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서 바라는 이상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다보니 아담처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신이 많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한 마을을 찾아가서 전도하다가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행 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어떤 신에게라고 합니까?
지금 이곳에 사람들 뭐하고 있습니까?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기고 있는 것 같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오늘 여러분들은 어리석은 아담과 하와처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살려는 어리석음을 행하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하지 않는 대부분은 모양새가 달라도 신을 만들어내는 행위와 같은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는 무신론주의라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은 신이 없다고 하죠.
지금 무신론주의 국가들이 어디 있습니까?
러시아도 종교가 들어가고 중국도 종교가 들어가고 북한이 아직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정책적으로 종교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무신론 국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북한에 지금 무엇이 성행하고 있다는지 아십니까?
방송에서 본 것을 예기를 들었습니다.
탈북자들의 말에 의하면 점성술이 지금 유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에서 무신론을 아무리 외치지만 왜 무신론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신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를 연구해보니 뇌의 무게가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짐승의 뇌의 무게는 350그램인 반면 사람의 뇌의 무게는 1350그램이라는 것입니다.
천 그램이나 넘는 이유는 그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신앙을 하지 않으려면 그 천 그램을 반품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장유의 성도님들이시여
우리마음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서 오로지 하나님만 찾아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없이 하려고 한 모든 일들을 다 포기하시고 모든 일들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는 ‘윈체스터 신비의 집’이 있습니다.
하나님없이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실물교훈으로 지금도 서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인데, 방이 무려 160개이고, 침실은 40개나 된다고 합니다.
벽난로는 47개, 창문 1,000개, 창틀 1,257개, 굴뚝 17개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3대나 됩니다.
또한 복도는 417개, 문은 총 950개에 이릅니다.
계단은 모두 40개, 계단의 발판 수는 367개입니다.
이 집을 건축한 여인의 아버지는 윈체스터 장총 개발자였습니다.
그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었지만 성능 좋은 이 장총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가 죽고 딸이 가업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때, 그녀의 말로는 죽은 자들의 영들이 그녀에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들이 “우리는 이 장총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영이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영들은 “집을 짓되, 망치 소리가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소리가 24시간 들리게 하라. 그렇게 우리의 영을 달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상속녀는 소위 ‘장총에 죽은 원혼’들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1884년부터 1922년 죽을 때까지 장장 38년 동안 1조 2천억 원을 들여 집을 건축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목수 22명이 24시간 내내 집을 지었습니다.
짓고 또 짓고, 허물고 또 지었습니다.
그렇게 38년 동안 쉼 없이 지은 이 집은 그 기괴함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계단은 천장에 닿았지만 출구는 없습니다.
문으로 연결되는 어떤 계단은 문을 열면 밖은 그냥 낭떠러지입니다.
사다리도 없습니다.
굴뚝은 중간을 막아 놓았고 계단의 난간은 거꾸로 달려 있습니다.
많은 문은 열어도 공간이 없습니다.
이 윈체스터의 신비의 집은 마귀가 하는 일의 결국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그의 지시를 따라 목수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의미 있는 일을 이루어 내지 못했습니다.
죽음이 싫어서 한 일이지만 결국 죽음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만들어 입은 나뭇잎처럼 말입니다.
계단을 만들었지만 막다른 길이요 낭떨어지처럼 하나님없이 혼자 걸었던 길들은 알고 보면 다 막다른 길이요 낭떨어지 길들이었다.
그래서 좀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만이 진짜 살길이다 전 그렇게 깨닫았기 때문에 손들고 주님 앞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까 불렀던 하나님 의지없어서말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를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이 가사처럼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이 손들고 주님 앞에 갈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날 영광가운데 주님 맞이하여 죽음이 없고 방황이 없고 어쩔 수 없는 일이 없는 늘 기쁨만 가득한 그곳 함께 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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