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학

[스크랩] 신앙의 이유5,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수호천사1 2014. 9. 18. 08:54

신앙의 이유5,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시어 주님 성전을 찾으신 우리 성도님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으로 들려지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시고 은혜 받는 복된 시간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 다섯 번째 시간의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어떤 제목입니까?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라는 제목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렇게 흉한 그림을 올린 이유도 제목 때문입니다.

우리교회 목사님 한분이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가려고 장소를 정하여 놓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려고 떠나는 날 아침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디든 갈 수가 있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만족을 하면서 그곳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식은 먼저 가려고 했던 여행지에 쓰나미가 발생하여 수십명이 참사를 당하는 그런 재난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이 비숫한 경험들을 많이 격어 보셨습니까?

그렇게 모면한 사람들은 아 하나님의 은혜로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라면서 감사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백성들 중에서도 그런 쓰나미와 같은 천재지변의 참상을 그대로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면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당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덜 사랑하신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의 재난들은 그리스도인들이든지 아니든지 누구나 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섭리로 인하여 재난들을 면할 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도 그리스도인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누구나 다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겠죠.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은 지금도 여전히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피할 수 없는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하는 용어들이 성경에 많이 등장합니다.

심판의 불을 가지고 말하길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영원한 불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심판의 의한 고통은 세세토록 당하는 고통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 여러분들은 그러한 표현이 왜 그러한 표현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성경을 보시는 많은 비 재림성도들은 그러한 표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꺼지지 않는 불과 영원한 불이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영원한 불지옥을 만들었고 세세토록의 고통이 그 가운데 고통당하는 고통이라는 빗나간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정말 죄인이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불 가운데 고통당하는 그런 곳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왜 영원한 불이라고 하였을까요?

성경에 영원한 불과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한 성경절을 올려드립니다.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여기는 어떤 도시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고 합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그럼 그 도시들이 지금도 타고 있어야 영원한 불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타고 있지 않고 꺼진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또 보겠습니다.

17:27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여기는 어느곳을 말합니까?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성읍 예루살렘에 불을 놓아 그 불이 꺼지지 않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두 번이나 불에 탔습니다.

꺼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지금도 타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불이 타고 있습니까 꺼졌습니까?

그럼 왜 꺼지는 불인데도 영원하지도 않는데도 영원한 불이라고 하고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는 아무도 끌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왜 그렇습니까? 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하나님의 심판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길 바랍니다.

심판을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지 말길 바랍니다.

창조이래 이 세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심판이 두 번 있게될 것입니다.

한번은 마지막 두 번째 부활에 일어날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유황불의 심판이고요.

다른 하나는 이미 지나간 물의 심판 노아 홍수사건입니다.

두 사건을 대비하여 생각하면서 피할 수 없는 심판 때문 에라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소망합니다.

 

1,심판 하시는 하나님.

첫 번째 드린 작은 제목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약 1500년이 지난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왜 이러한 결정을 하셔야 하셨습니까?

그 전 성경말씀을 보면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

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읽고 하나님도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나 라고 반문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한탄을 잘 하고 근심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한탄과 근심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한탄을 해 보셨습니까? 근심도 해 보셨습니까?

어떨 때 한탄이 나오고 어떨 때 근심하게 됩니까?

하는 일이 잘되지 않고 꼬이고 뜻밖에 일들이 발생하고 이럴 때 한탄이 나옵니까?

그럴 때 근심이 되던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한탄이 나오고 근심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첨부터 아셨습니까?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근데 무슨 한탄이 나오고 근심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한탄과 근심은 우리와 다른 한탄이고 근심입니다.

멸망으로 가는 인류에 대한 사랑의 근심이고 사랑의 한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겠습니까?

이곳에 사용된 한탄의 히브리어는 아차브라는 단어입니다.

이와 같은 단어가 쓰인 곳이 있습니다.

삼하 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이 말씀을 잘 아시죠 압살롬이 반역을 하여 왕위를 찬탈하였기에 다윗은 예루살렘이 피로 물들 것을 우려한 나머지 궁전을 비우고 피난을 갑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궁을 차지 합니다.

이제 다윗의 신복들과 압살롬이 전쟁하러 나갈 때 다윗은 나를 생각하여 나의 아들을

너그러이 대접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아들의 죽음소식을 듣습니다.

그때 다윗의 통곡하는 기록이 사무엘하18장과 1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우니라라고 하는 단어가 히브리어 [아차브]입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서 문루로 올라가서 아차브하니라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듣고 어떻게 울었을까요? 내아들 압살몸아 라고 하면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우는 시늉을 하는 그러한 울음을 울었을까요?

아니면 통곡을 하였을까요?

얼마전 30살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남 몰래 눈물을 흘렸던 친구를 보았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마음 같아선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슬픔을 기록할 때 아차브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아들 하나 잃어버리는 것도 그렇게 아차브한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딸 수십억 사람들을 수장을 시키려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려 하니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아차브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창세기엔 그런 것을 더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 말씀이 어떻게 하나님의 한탄과 근심을 볼 수가 있는 말씀일까요?

이 말씀을 조금 더 이해를 할 수 있는 번역이 한글 킹제임스 번역입니다.

그곳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 은혜를 입었더라]

좀 비슷한 번역입니까?

전혀 다른 번역입니까? 비슷 하죠 그러나 다른 곳에 들어있지 않은 용어가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예 눈입니다.

그리고 입었더라라는 히브리어는 [마짜]라는 용어로 우리말로 보았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럼 우리말로 전혀 다른 번역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보았더라]

전혀 다른 말같습니까?

예 전혀 다른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같은 의미로도 이해할 수가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떤 은혜를 노아가 보았을까요?

사랑하는 자녀를 멸망시킬 수 밖에 없는 심판을 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몸부림의 눈물을 노아는 본 것입니다.

하루만 폭우가 솓아지도록 해도 지구가 잠길 수 있도록 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지구를 멸하기 위하여 왜 40일이 필요했을까?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몸부림치는 자식들의 손을 잡아 주실 수도 있었는데 그 손을 잡아주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전 임영애 집사님이 안교시간에 하신 이야기를 아내를 통해 들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조카가 떠내려 가는 것을 빤히 보면서 그것을 잡아주지 못한 이모라 했습니까 고모라 했습니까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구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 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은 구하실 수 있었습니다.

비를 그치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이 땅을 홍수로 멸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세상은 불로 멸망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보겠습니다.

벧후 3:6-7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예전엔 물로 멸망하였지만 이제는 뭐하기 위해 간수되었다 합니까?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었다.

그 때 아버지의 눈물을 또 다시 우린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여러분들의 멸망 때문에 흘리실 아버지의 눈물이 아니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한 우리 아버지의 열심히 사람되어 오시기 까지 하시고 나중에 눈물을 덜 흘리시려고 주님 이 땅에서 피땀을 흘리시고 피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큰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큰 구원입니까?

우릴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이 큰 값을 치루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런 말을 합니다.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우릴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하여서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다 이보다 더 큰 구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면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들중에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눈엔 다시 피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잘 믿고 신앙생활 잘하여서 두 번째 이 땅에 임할 불심판을 면하고 구원얻은 백성들로 천국에 다 참여하길 축복합니다.

 

2,심판을 알리시는 하나님

이제 두 번째 드릴 제목은 심판을 알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든지 비밀리에 하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에게 다 알리시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홍수때에도 노아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너와 너의 집을 구원하기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축구장 만한 크기의 방주를 지었습니다.

몇 년 걸렸습니까? 120?

성경에 120년 걸렸다는 말씀이 있습니까? 없죠 단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120년 후에 비가 오리라 하셨으니 그리고 방주가 다 만들어지고 비가 왔으니 아마 방주를 만든 시간은 120년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한 것이죠.

잘못된 상상입니까? 그럴듯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후에도 하나님의 마음은 방주에 있었을까요? 방주에 타지 않을 사람들에게 있었을까요?

이미 우리가 나눈 말씀처럼 하나님이 마음은 온통 방주에 타지 않을 그 많은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누구도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노아의 마음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산위에서 물위에 떠 있을 집을 짓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배보다 집에 더 가까운 모양이라고 합니다.

물에 떠 있을 그리고 폭풍가운데서도 뒤집혀지지 않을 그러한 3층집이였습니다.

이제 그것을 산에서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노아 식구들만 할 수가 없었겠죠.

아마도 첨에 배를 건축할 땐 노아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다 참석하였을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집안을 기록한 성경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5:23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5:25 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5: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5:28 라멕은 일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5: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5:30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므두셀라의 이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 아시죠?

우리 말로 하면 죽으면 솓아진다 라는 말입니다.

므두셀라의 아버지 에녹이 이미 무엇을 알았다는 것입니까?

노아시대 홍수로 세상이 멸망 당 할 것을 알았다는 것이죠.

그러니 아들의 이름을 죽으면 솓아진다 라고 지었습니다.

나이와 연대를 살펴보면 무두셀라는 홍수전해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도 참여하였을 것이고요.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물가가 아닌 산꼭대기에 이상한 건물을 세운다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습니다.

집을 지으면 땅을 파고 기초를 놓을텐데 기초가 없는 것을 보니 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게 뭐여 노아가 대답합니다 이게 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문 배선자가 생겼습니다.

이 글자는 ++=입 여덞이 배에 타고 있다라는 것이 배선자가 되었다.

배라는 말을 들은 관광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배 배가 뭐여

그러니 노아가 또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배는 물위에 뜰수 있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기도 하지만 이 배는 그냥 물위에 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왜 이런 것을 만드나요.

노아가 뭐라고 했을까요

세상이 너무나 악하여서 하나님께서 보시고 도저히 이대로 둘 수가 없어서 물로 세상을 멸하신다고 했다오 그래서 나보도 방주를 만들어 탈 수 있는 사람들 다 태우고 짐승들도 태우고 하라고 하셨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정말 그렇다 오늘날 이 세상을 보라 멸망당하지 않고 이 세상이 그냥 있으면 되겠나 우리도 방주 만드는 일에 참여하자 라고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120년이 무엇 때문에 필요 했을까요.

온 세상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구원받으라고 120년의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120년이 되었을 때 정말 신기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짐승들이 누가 몰고 오지도 않은데 쌍쌍히 방주로 들어옵니다.

잡으려 하면 도망가기 바빴던 짐승들에 제발로 우리안으로 둘어옵니다.

또 조금있으니 하늘에 모든 새들이 쌍쌍이 또 방주로 날라 들어 옵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도 몇 명이나 방주에 탔습니까?

노아 식구외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는 사실은 슬픈 사실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때라고 하는 1798년을 지나 예수님 지성소 봉사를 하시는1844년 이후는 언제든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수가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지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예수님의 재림이 왜 더디다고 합니까?

아무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홍수의 심판을 무기한으로 연장하실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불의 심판도 무기한으로 연기하실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이 은혜의 시간이 지나고 오실 시간이 되면 우리가 구원받고 받지 못하고 상관없이 오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떠한 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오실 것입니다.

성경은 그날에 대하여 기록한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전 특히 이 말씀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21: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우리는 지금 땅이 흔들리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과학으로는 무슨 말을 하드래도 성경을 통해서 본 현 지구는 사람들의 문명의 산물을 견디지 못하여 몸쌀을 앓고 있는 듯 합니다.

갈수록 지진과 헤일이 많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명경시풍조가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쪽에 전쟁소리가 그치면 또 다른 곳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지진이 좀 조용한가 하면 헤일이 일어나고 그런 것도 없으면 눈과 비가 많이 와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지그가 흔들려도 사림이 이렇게 혼란과 공포가운데로 몰아가는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때에 여러분들 주님 없이 어떻게 서시렵니까?

하늘의 권능은 무엇을 말할까요?

지구와 관련된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태양계도 그 가운데 포함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편지서에 그러한 모습을 아주 조금 보여줍니다.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그날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별에 가면 된다고 하죠 별에 있어도 끌어내릴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지구인은 한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이 있기 때문에 그날을 피하기 위하여서라도 우린 어떻게 할 수밖에 없습니까?

우리가 준비되지 못한다면 또 다시 하나님의 눈에는 피눈물을 솓으시게 될 것입니다.

내아들 압살롬아 라고 통곡했던 다윗의 통곡 이상이나 그러한 하나님의 통곡이 불이되어 모든 만물을 다 태우게 될 것입니다.

그날 우릴 데리러 오시는 주님의 구름방주에 다 타실 수 있는 은혜가 주님을 사모하시고 믿기를 원하는 여러분과 저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출처 : 사랑의 십자가
글쓴이 : 소금 장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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