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

[스크랩] 선택 교리

수호천사1 2014. 6. 6. 07:44

 

선택 교리

 

 

 

(존 칼빈의 ‘경건의 비밀’ 중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릴 만한 트집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록 창세전에 사람들을 선택하셨지만, 그것은 각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예견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실 때에 그 사람이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를 보기 위해 기다리시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궤변론자들은 비록 하나님은 지나간 공로는 고려하지 않지만 앞으로 이룰 공로를 고려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흐려 놓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야곱과 그의 형 에서가 어떤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야곱은 선택하시고 에서는 거절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에서는 악한 사람이 되고 야곱은 후에 보여 준 바와 같은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셨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 바울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어리석은 추측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공로를 고려하지 않고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사도 바울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성경뿐만 아니라 이성에 비추어 보아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며 하나님의 은혜를 흐리는 사람들은 그 잘못이 증명 될 것입니다.

 

우리의 깊은 밑바닥에 선한 것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저주를 받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어머니의 배 속에서 죄 이외에 가지고 나온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그 점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은 똑같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원하시는 자를 자신에게로 데려가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며, 전에 우리에게 없던 그 선하심을 쏟아 부어 주시고, 우리를 천국의 후사로 선택하시어 의롭다 인정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성령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 교리 안에 굳게 서서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의 그 자체이신 하나님은 죄로 가득 찬 우리의 본성을 보시는 한 우리와 절대 하나가 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는 아들이신 예수님의 육신을 입어 택함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예수님과 결합시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직접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가는 법을 배웁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반드시 그 속에서 우리의 택함을 보아야 하는 참 거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듣게 되면,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불행으로 몰아넣기 위하여 무장을 하고 계신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가 아무런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지 않았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우리가 의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당황스러워하고 걱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소면(calling)’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우리가 이르지도 못했던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으로 펼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으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선하심을 자랑해도 좋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을 부인하는 자들은 복음을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모든 것을 묵살합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방법, 우리가 활용하기에 적합하고도 알맞은 방법을 묵살합니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그 소명을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즉,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셨다는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부르십니까? 우리가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우리를 향한 선택을 증명해 주시고 싶을 때 우리를 부르십니다.

 

선지자 이시야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누가 감히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실 때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을 능가하는 지식이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이 세상에서 높이 들어 올려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선하고도 신실한 증인인 성령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이 무모하게 예정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 안에 제시된 것을 살펴봅시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속에 확실히 증명하는 성령의 인침을 주신 후에 생명의 유업을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복음은 사악한 사람들에게도 전파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저주하고 반항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은혜를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그분의 약속을 믿고 우리를 자녀로 삼겠다는 제의를 받아들이며 그분의 약속을 믿고 우리를 자녀로 삼겠다는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구원이 확실해집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러한 구원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시고 복음의 믿음 안에서 우리를 깨우쳐 주신 것이 전에 있던 영원한 예정설을 폐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인간의 자유 의지에 달렸다고 하는 것은 신성모독죄를 짓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바를 잘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때에 성령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절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어 우리의 믿음의 원천이 되시는 성령에 의해서 은밀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효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왜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이 주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사도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보물과 무한한 부를 누릴 수 있는 동참자로 삼으셨는데, 그것은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심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말은 거기에 더 고차원의 원인이 없기 때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에게서 무엇인가를 탈취하려는 자입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부분이 이러한 사실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하여 “과연 우리가 선택되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전에는 수천 번 당황하게 되고 우리 눈이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택하셨다는 사실과 천국이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원리 위에 굳건히 설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내놓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충분히 감사해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 칭찬받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복음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된 자녀들 중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죽은 사람처럼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계서 우리의 안내자가 되셔야만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분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고 무엇 때문에 구원을 받았으면 우리의 구원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자연의 원칙을 초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얻었는지를 모르거나 그것에 대해 의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며, 자신의 섭리를 숨기려고 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서 우리를 불러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선하심과 아버지의 사랑의 표증을 우리의 가슴속에 두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드리셨고 성령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하셨다는 사실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깁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선택하셨다는 확실한 표적이며, 그 표적은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로 인하여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인하여 우리가 길을 잃고 버려진 것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을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려고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즉,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인류를 구속하기로 정했기 때문이며, 이것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온 세상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만 해당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도를 통해서 부름을 받았음에도 그들에게 주시고 약속된 구원을 받을 가치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믿지 않는 상태로 내버려 두십니다. 그들은 복음을 결코 들어 본 적이 없는 자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지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분명하고도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류의 전반적인 멸망 가운데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선하심을 올바로 볼 수 없으며,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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