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기 속에 봄 바람이 스며 있어서 일까요? 한동안 글을 쓰기가 쉽지 않네요. 성령님께서 새로운 가죽부대, 포도주로 이끄심을 느낍니다. 4월말이면 버두나무 사무실 공간도 옮겨야 할 때가 되었고 ... 그동안 이 공간에서 기도하게 하시고 많은 이들을 만나고 그 나라의 문들을 여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처음 들어 올 때.... 한 1년 정도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시겠구나.... 했는데 정말 그리하셨구 많은 것으로 채우셨습니다. 너무나 당연히 우리 아버지는 새로운 장소를 예비하셨음을 믿습니다. 어디인지는 아직 모르나 그곳에 순적히 가도록만 중보해 주세요. 아마 그곳에서는 새로운 포도주와 전략을 결실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 사이에 이 시간들을 독특하게 이끄시는 주님을 느낍니다. 그것은 성령의 속도를 따라 움직이는 시간이기에 참으로 좋고 평안하며 귀합니다. 요즘은 주님께서 말씀에 깊이 들어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올해에 들어 오면서 성령님께 진정으로 나누시기를 기뻐하시는 것... 제가 깨닫기를 소망하시는 것들을 간절히 구했는데... '보혈'에 대하여 열어 주시고 가르쳐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전남 고흥 해안가 우천교회 집회를 인도하기 전에 메세지를 구할 때에 그때부터 보혈을 깨닫게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교회 작고 약해 보이시나 너무나 귀하신 조주연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공동체를 만나게 하신 것은 매우 상징적이고 예언적인 의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도피성'에 대한 주님의 전략과 연결되는 코드였기 때문이다. 저희의 부르심은 그 '도피성'과 연관이 있는데...앞으로 나눌 날이 올테지요. "너희 가운데 있는 무화과 잎사귀를 걷어내라" 주님의 이 음성이 그 집회 동안에 심장에 메아리쳤습니다. 보혈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 방법, 전략으로 온통 뒤덮은 교회를 향하여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질타를 온 몸으로 느끼며 제 자신이 깊은 회개를 하였습니다. 내 안의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것들... 그분의 마음에 합하지 않는 모든 세속의 요소들을 보혈로 씻어 주시기를.... 그 때 그것을 나누고 같이 기도할 때에 제게도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가 나타났습니다. 특별히 조주연 목사님과 사모님이 기도해 주실 때....성령께서 강하게 무릎을 꺽으시더니 "굴복합니다...굴복합니다..." 라는 탄식이 내 안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저 웨일즈 부흥의 이반 로버츠와 그 일행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포였는데... 그 날 밤...성령님은 내 영혼과 삶이 주의 보혈에 온전히 순복하는 것을 그렇게 열어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보혈을 통하여 하늘 생명을 부어 주십니다. 처음 성령님을 깊이 만나던 2004년 봄, 그 후에도 보혈에 대하여 새롭게 깨달아 갔지만... 이번에는 그 때와 강도나 깊이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벧전1:2 아아... 하나님이 나를 택하심은 '순종함'과 '보혈에 뿌림'을 받기 위함이라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거룩'의 영역인지!! 우리가 추구하는 거룩이란 바로 그것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 많은 이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무엇을 찾아 다니며 결국 본질에 다다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봅니다. 감정과 비전과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항상 무엇을 채우려는 습성들... 그런 것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발견하는 연약함... 베드로의 선언처럼 성령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시고... 그 순종의 본질에 십자가와 보혈이 있습니다. 이것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이 아니라 강력한 영적 실재임을 실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성육화 되기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진정 성령님은 주님 말씀처럼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요14:23)이십니다. 이 보혜사를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요! 저는 어린 아이처럼 이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님께 진리를 가르쳐 달라고 날마다 구하고 구했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계3:10 빌라델비아 교회의 승리의 비결은 이것이었습니다. '인내의 말씀'을 항상 붙들려고 합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것들이 이루어 지기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처럼 극한 담대함과 믿음으로 인내로서 간구하고 간구하기를 소망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게 성육화 되고 이루어 질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그 인내를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이 순종함이며..자녀된 본분입니다. 보혈의 능력이 부어지게 해 달라고 날마다 구하자 많은 것들을 새로이 깨닫고 또 전에 없던 기름부음이 강하게 보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천교회 이후에는 인도네시아 집회를 기점으로 '주님의 영광'을 통하여 임하시는 생수, 성령님에 대하여 더욱 열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바람처럼 그렇게 임하였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한 알의 밀로 죽어지는 복종'으로 나타남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생수는 광야에서 반석을 쳐서 나오게 하셨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를 쏟으신 주님을 바라 봄으로...그 영광의 자리에 깊이 들어가는 순종으로 하늘의 생수를 경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엔 내가 죽어짐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기를..그 실재를 만지기를 날마다 구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생명의 열매를 보지 않는다면 이 모든 추구가 얼마나 허망할까요? 옛날 어릴 적에 워치만 니나 앤드류 머레이등에게서 피력된 이 '생명'에 대하여는 우리가 진정 깊은 순종을 통하여 만질때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너무나 실제적인 것이더군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피상적 순종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볼 때에 여전히 강력한 권능이 절실함을 느낍니다. 또한 성령님의 권능은 '여호와의 팔'(시89:20-)로 표현되어 있더군요. 이것은 특별히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 권능입니다. 그것이 임하면 음부의 권세, 원수가 박멸되고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안디옥 교회처럼 '주님의 손'이 함께 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내게, 우리와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아버지의 팔입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나느냐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사53:1 이 말씀의 히브리 어법은.. "여호와의 팔(권능)이 누구에게 나타나는가? 그것은 우리가 전한 말씀을 믿는 자에게로다" 라는 뜻입니다. 어떤 메세지를 믿는 자라는 것인가는 53장 2절 부터 잘 나타납니다. 십지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시고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이 이루신 구속의 역사를 온전히 믿는 자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익히 알던 성구, 평범한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이 부어 주시자 능력이 되었고 신선한 기름부음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이미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진정으로 믿는 자(이 진리에 복종하는 자)는 잠잠히 그가 하나님 됨을 알고 찬양할 뿐입니다. 이 안식이 오지 않으면 승리가 없습니다. 성령님의 권능과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는 그것이 하나로 합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렸을 때... 죽어가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처방은 놋뱀을 장대에 달아 세우고 그것을 바라 보는 자는 치유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불뱀은 '악한 영의 세력'입니다. 그리고 나무에 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3:14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말씀 하시고 뜬금없이 이 말씀을 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는 것이 곧 '거듭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신분의 영역을 넘어서서 영적 실제이며 권능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나무에 달린 그분을 볼 때에(믿을 때에) 뱀(마귀)의 지배에서 자유케 됩니다. 그 묶임이 풀리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그러면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십자가와 보혈'이 곧 '여호와의 팔'로서 나타나는 경지... 그것에 도달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의문이 아닌 영으로서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전서 2장에서 말하는 '자기의 지혜와 능력, 언변이나 지식'이 아닌 오직 '성령의 능력과 나타나심'으로만 전도한다는 것과 그 사이에 강한 어조로 표현한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말은 하나로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이론이나 교리의 지적이해가 아닌 '기노스코', 깊은 경험과 체험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단순한 발견 같지만..이것은 내 안에 얼마나 놀라운 것이던지!! 그리고 그 고백은 내 안에서도 강력한 선포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엔 간증 보다도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데... 진리의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이미 작정된 당연한 길입니다.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구했으므로....이젠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증인의 자연스러운 여정입니다. 나는 여전히 날마다 성령님께 가르쳐 달라고 구하고 구합니다. 더욱 더 깊고 본질적인 진리 가운데 인도해 달라고 구하고 또 그 감추인 보화가 발견되기 까지 인내로서 구합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세요. 오직 아버지가 제게 깨닫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그것을 열어 주세요." 날마다 구합니다. 그런데 최근 한동안은 뜻밖에도 '희년'에 집중하게 하셨습니다. 지난번 전주 집회를 통해서 새롭게 열어 주시는 것이었는데... 그 때 주시 메세지는 ...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사51:9 이었습니다. 여호와의 팔은 성령의 권능입니다. 다윗에게 부어진 기름부음은 바로 하나님의 팔이 함께 하고 그 영혼을 견고히 하며 그분의 팔이 붙드는 것입니다(시89:20) 그 팔이 임하면 그 대적이 박멸되고 무너 집니다.(23) 나는 몇년전 처럼 다시 이 팔과 권능의 담지하기 위한 갈망이 부어짐을 느꼈습니다. 90년대 초반 새로운 의식과 하나님 나라에 눈을 뜨면서, 대천덕 신부님이나, 중국이 가정교회, 헨리 조지의 책들을 통하여 '희년'에 대하여 생각을 키우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신부님을 찾아가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도를 받고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세상에서 가장 지극히 작은 자인 '낙태'와 이 분야의 작업을 하고자 하는 열망도 키웠습니다. 구로 공단의 희년 선교회에 출입하면서.... 그 분야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하다가 영상의 비전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방송에서 다큐멘터리에 집중하는 시절 동안엔 그것을 상실하고 또한 신앙서적조차 거의 읽지 않았고, 영적인 고갈의 광야를 거쳐야 했는데... 그리고 그 후에 집중적으로 운동의 형태로 나타난 희년에 대한 것들이 너무나 이론적으로 어렵고 몇몇 소수의 열망에만 심겨진 관념적인것 같기도 하고, (방송이라는 대중과 의사소통을 훈련을 받은 나로선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토지와 경제의 문제에 주로 집중되는 것 같은 오해 속에 조금은 닫혀 있었는데... 최근 성령님께 가르침을 구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그 '희년'에 대하여 집중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주목케 하시는 것을 보며.... 참으로 신기하고 기가 막힌 것은, 주님 말씀대로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그것을 경험하는 것인데... 그 순종에 깊이 들어가면...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생각지 않은 영역으로 인도하시고 너무나 잘 알던 말씀의 행간과 본질과 의문의 수건이 걷어지고 갑자기 클로즈 업되는 부분들이 나타나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희년에 대하여 갑자기 열어 주시는 기운이 새롭게 나를 강타하였습다. 그것은 올해에 오면서 인도해 오신 것들의 종합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4:18,19 이 말씀을 새롭게 열어 주시면서 그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주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갈릴릴 회당에서 당신의 메시아적 사명을 선포하신 이 놀라운 선언을 나는 그 전에도 이미 강하게 붙들고 있었습니다. 오직 '성령님이 임하시면 받는 권능으로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행1:8)던 그 말씀을 붙들고 3년 가까이 기도하게 하셨는데..."이스라엘의 회복이 이 때입니까?" 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그런 기간이나 때는 아버지의 주권이니 신경끄라고 하시고 그것이 이루어 지는 하늘의 전략은 이것이다 라고 하시며 주신 명령입니다. 나는 이것을 깨닫고 오직 성령님의 권세와 능력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싶어서.... <하늘의 언어>는 그 과정에서 부어주신 것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누누히 나누었지만, 내 감각과 의식으로는 방언에 대하여 나누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의 오해와 달리 그것은 제게 있어 오직 '순종의 영역'입니다. 나의 감각과 지식, 지혜의 체질과 다른 것을...주님이 주신 그것을 순종해 가는 것이 바로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각자에게 그런 순종의 영역이 있는 것인데... 어떤 분들은 제가 마치 치우쳐서 은사에 집중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은 은사를 제한하는 체질 때문에 지금도 늘 성령님께 부끄러운 처지인데... 그 순종을 통하여 정작 나 자신이 더욱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그 전에 경험치 못한 결실과 역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내로서 기도한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일본을 통해서 이스라엘로 인도함을 받았을 때도... 그 순종이 그리 쉽지는 않은 것인데...여전히 간혹의 오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상상도 하지 않은 영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들어가는 일 역시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비전으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의 착각은 비전, 예언으로 그것이 이루어 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역사와 부흥,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그룹들엔 오직 비전이 난무합니다. 그것을 이루는 본질은 오직 십자가와 보혈입니다. 아아... 이것이 얼마나 실제적인 능력이요 역사인지!! 아브라함처럼 깊은 순종이 아니면, 십자가가 아니면 이스라엘이던 ..어디든 진정으로 결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이 민족과 교회와 시대가 회복되는 부흥의 전략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 부흥, 마지막 때, 이스라엘의 회복, 주님의 뜻 등에 대하여 집중하며 그 전략을 구하고 애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새롭게 부름 받은 제자로서 진정한 부흥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길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깨닫게 하신 것이 바로 이 단순한 말씀(행1:8)이었는데... 처음엔 어릴적 부터 외어 오던 너무나 상투적인 성구여서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하늘의 전략'이었습니다. 천국은 겨자씨 안에 있듯이 진리의 성령님이 심어 주시는 그 말씀... 그리고 그것에 순종하는 그것을 통하여 그 천국의 생명과 생수는 흐르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의 권능은 그저 흔히 생각하는 어떤 영적 능력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전략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전략을 놔두고 다른 어떤 것을 구하는 이들이 참 많은데... 그것은 순종보다도 제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문, 여호와의 팔, 성령의 능력과 나타나심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 볼 때' 나타납니다. 바로 '우리의 전한 것'..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그 팔을 만나는 길입니다. 형식적인 선포나 구호가 아닌..회심이라는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이미 승리하시고 회복하신 주님을 믿을 때에.... 그리고 그 분처럼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나타나는 놀라운 회복의 생수입니다. 오늘날 그토록 생수와 능력을 구하고 애쓰나 여전히 갈하고 곤한 이유는... 전략이나, 프로그램이나, 사람...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달라신 그리스도를 바라 보는 것... 주님과 같은 '절대 복종'의 부재에 있음을 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2년을 넘게 사도행전 1장 8절이 이루어 지기만을 구했습니다. 뒷골목..숲속..지하철..사우나 탕... 때밀이에게 몸을 맡기고도 그 간구를 집요하도록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한번 구하거나 한 것이 아닌..날마다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 진리는 놀라웁고 그 순종으로 나타나는 역사 또한 그러했습니다. 지난 2,3년을 돌아보면 이미 이렇게 땅끝까지 '증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정은 내가 계획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성령님의 권능이, 주님의 권세와 능력이 전략과 비전과 능력이 되어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바람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은 그렇게 변화되는 것이고...오직 믿음과 인내로서 구하는 피흘림의 그 채움이 필요할 뿐입니다. 결국 문제는 순종,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이지.... 여호와의 팔이 짧아지거나 그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더군요.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지도 않은 일본이며, 이스라엘등으로 주님은 견인하셨습니다. 그 용광로와 같은 순종의 시간들을 거치며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셨는데... 참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의 여정있고...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인 화목케 하는 직책'을 순종하는 것에 대한 기름부음이 강하게 부어졌습니다. 그것이 '한 새사람'(One New Man)이라고 하는 에베소서2장의 그 본질로서.. 이스라엘로 이끌려 가면서 깊이 체휼하게 하신 능력이었습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임을 후에 깨닫고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 화목케 하고 하나되게 하시는 본질이 '그리스도의 피'(엡2:14)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최근엔 20여년 만에 만난 겸비하고 나귀처럼 작은 주의 종을 통하여, 먼저 내 안에 영이 회복되어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면 이룰수 없음을 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살아하시는 아버지는 얼마나 진실하시고 신실하신지요? 그 나라와 그 의를 진정으로 구하면 이렇게 모든 것을 더하시고..붙이시고..만나게 하십니다. 보혈은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가진 여호와의 팔 중의 팔이며...생명입니다. 그 믿음이 내 영에 부어졌습니다. 내 영이 아버지의 안식과 하나됨에 더욱 더 나아가기 시작햇습니다. 성령님이 부어 주시는 그 십자가와 보혈이 내 영에 충만히 부어짐이 없이는 일본이든, 이스라엘이든, 남과 북, 열방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체득하게 하시기 위하여 참으로 주님이 하신 일들은 너무나 놀랍고 귀하고 위대하십니다. 최근 교제케 하시는 북한에서 오신 어느 진실된 선교사님의 말씀 중에... "하나님께서 나 하나를 키우시기 위하여 그렇게 많은 투자와 수고를 하시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감사하고 놀랐는지 모릅네다." 하는 것이 내 심장을 건드렸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완악한 자들인지... 우리 아버지의 쉬지 않고 일하심을 ..그 팔을 이 땅에서 경험하는 것은... 오직 주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그 생명이 나타나기를 사모하는 것.... 증인 됨... 곧 주님처럼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뜻밖에 성령께서 누가복음 4장18절, 19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에 요즘 붙들려 한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권능으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했을 때... 깨닫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4:18,19 저는 '증인'됨이란 주님의 이 부르심을 내 영과 삶에 나타내는 그것이라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지... 내 일과 꿈과 비전의 증인이 아님을 명심합니다. 그것은 주님처럼 사는 그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요14:12 바로 이 주님이 하신 그 일을 하는 삶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선언처럼 그 삶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다시 한동안 구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이 말씀에게로 데리고 가서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전에는 집중하지 않았던....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심'이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름을 부으시고'...라는 것도 더욱 주목되었습니다. 그 성령님이 주시는 기름부음(권능, 여호와의 팔)으로 가난한 자에게 전하는 복음의 성취가 바로 '주의 은혜의 해', '희년'을 이루는 것입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희년을 성취하는 것이다!!" 라는 울림이 다시 내 안에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신선한 바람처럼 내 영혼에 스며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묻어 두었던.... '희년'에 대하여 탐구하게 하셨습니다. 그 여정에서 놀라운 본질들과 전략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