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이번 인도네시아 여행은 내게 큰 축복이었다. 항상 느끼지만 정말 우리 아버지는 쉬지 않고 일하신다. 그 사랑의 역사가 그러한 것이다. 만일 우리의 심령이 성령님의 역사로 열려서 이것을 볼수 있다면.. 절망하지 않으리라. 아버지는 모든 길을 앞서 행하시고 전율하도록 아름답고 놀라운 역사들을 예비하신다. 우리를 부르심은 그 예비하심이..그 나라가 너무나 놀라우니... 와서 그 천국의 잔치에 참예하여 즐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안목이 없다보니..항상 허덕이고 자기 열심과 의로서 공허하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그것을 애쓴다기 보다...그 나라와 그 의...아버지의 크고 위대하심을 먼저 구하고 순종하는 그것이다. 요즘 나는 그것을 생각한다. 거기에 요구되는 것은 '작은 십자가 짐..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솔직히 돌아보면 엄청난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멍에를 매고 그분 안에 그저 쉬면 된다. 이것은 투쟁해서 확보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작은 믿음과 순종과 드림을 통하여 그리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그리하여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만을 날마다 구한다. 이번 인도네시아 여정에서 그 성령님의 이끄심...아버지의 예비하심을 보았다. 도착한 다음 날, 늘푸른 교회 김목사님과 현지인 선교를 하시는 선교사님의 안내로 그 땅 수백의 인종들의 문화와 가옥들을 전시한 거대한 공원에 갔다. 인도네시아는 엄청난 소수종족들의 연합체였다. 인구도 3억에 가깝고...땅도 엄청나며...게다가 부흥의 경험한 땅이다. "인도네시아의 기독교인구가 대략 추산해도 2천만명이 넘습니다." 라는 선교사님의 말에 무척 놀랐다. 그 정도일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거의 다수가 무슬림이지만...기독교 인구도 10%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이 땅은 엄청난 물적, 영적 자원을 가진 곳이었다. 그 생명이 식물등 자연에 엄청나게 부어져 있었다. 그 시간들을 통하여... 같이 동행한 동지들의 가슴에 주님은 인도네시아를 깊이 심어 주셨다. 이미 떠나기전 기도 가운데 인도네시아에 대한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가르쳐 주셨다. 역시 그 땅을 밟으니 그것은 사실이었다. 열방 하나를 품는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 지극히 작은 한 영혼을 통하여 3년전 일본을 품게 하셨다. 그로 인해 주님이 이루신 역사와 결실은 돌아 보면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다. 그런데 이젠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이제 동남아시아를 열어 주신다. 그 사이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이스라엘'을 보여 주셨다. 이스라엘이 심령 가운데 들어 왔을 때.... 그것은 우리 영혼을 뒤흔들었다. 여러가지 추구와 그 땅을 밟으며 간구함이 있었다. 주님이 보여 주시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일본에서 부터...동남아시아..그분이 계획하신 길을 따라 십자가와 보혈로 '한 새 새람'(one new man)을 이루며...하나되는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감당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성령님의 권능이 임하여 땅끝까지 증인이 되게 하신다. 열방을 품게 하시는 것이다. 그 전에 주님의 나라가 아닌...내 자아와 그로 확장된 일들을 추구할 때... 진정으로 그 나라를 보지 못했다. 아직도 내 안에 그 얼마나 많은 자아로 두텁게 쌓인 부인되지 않은 '나'가 있을까... 오직 성령님께 주의 보혈로 그것을 제거해 주시기를 구하고 구할 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아버지의 '사랑'을 더욱 깊이 만진 것이다. 그 전에 일본 미야자끼를 가게 하시고 ...거기서 약속하신 그 나무를 보여 주신 이유는 '그 땅의 영혼들을 사랑해서'라고 말씀 하셨다. 인도네시아로 이끄시며...역시 거기서 그 나무를 보게 하신 것도 그 땅의 무수한 무슬림들을 사랑해서라고 하셨다. 아아... 과연 우리 아버지는 사랑이시다. 우리에게 열방을 품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랑이다. 우리의 길은 오직 이 사랑에 매여...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는 것에 복종해 가는 것 뿐이다. 어떤 사업이나..사역이라기 보다 그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 사랑을 따라 순종하는 것 뿐이리라. 그렇게 그분의 품에 안기어..한걸음 한걸음 가고 싶다. 이 모든 시작과 과정과 결실이 이 아버지의 사랑이어야 하리라. 아버지는 그 땅이 백성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일본에서 저리도록 그것을 체험했다. 거의 전 인구가 주님의 구속의 은총과 아버지의 그 사랑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을 전율하도록 사랑하신다. 이 사랑을 따라 구하고 헌신하고 사역을 해야....진정 그 땅을 열 수 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의 모든 열정과 추구에서 교묘하게 그 사랑을 빼앗아 간다. 깊은 주님의 긍휼과 애정과 연민보다...그 일들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이 사랑보다 일이 앞서고..비전이 앞서고...프로젝트와 야망이 앞선다면... 곧 지치고 공허 하리라. 아버지의 사랑이 부어지니... 처음 대하는 인도네시아 땅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 사람들도 그러했다. 우리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땅이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마다 숙소에서 자카르타 도심을 향하여 이 땅에 아버지 사랑이 부어지기를 ..흐늘에 두신 이땅을 향한 뜻이 이루어 지기만을 간절히 구했다. 그러고 보니 일본도 그러했다. 그전에 일본은 민족감정이라는 것에서 자유하지 못한 곳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부어지니...그동안 일본의 붙여주신 동지들과 얼마나 그들을 그 땅을 사랑하였는가!! 그리고 그 화목하는 직책이 얼마나 많은 주님의 일들을 잉태하고 결살하였는가!! 우리에게 놀라운 기름부음으로 결실하였는가!! 어제 미국에서 온 한 사역자가 말하였다. 이제 마지막 때는 요한의 메세지가 중요하다고.... 요한이 성령님에 이끌리어 하늘에 올라 영광의 주님과 그 놀라운 일들을 보았다. 보좌에 앉으신 영광과 구원의 어린 양과 세상의 종말을 목도했다. 그리고 계시록 이후에 그가 쓴 서신이 요한 1,2,3서라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이기고 회복하는 본질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이다. 그 사랑 가운데 깊이 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에서 진정한 전략이 나오고 ..역사가 있고 진정한 회복이 있다. 은사를 구하고 기름부음과 치유와 능력과 사역을 하나.... 이 사랑에 깊이 들어가는 일들을 놓치지는 않았는가!! 돌아 보고 다지고 회복하고 요한처럼 그리스도의 심장의 박동을 들어야만 한다. 그래야 환난 가운데서도 십자가의 자리에 가고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목격한다. 그 사랑에 들어 간다. # 3. 늘푸른 교회에서의 첫날 저녁 집회에서 나는 그 사랑의 본질을 더욱 깨달았다. 이상하게 예상과는 달리 어떤 하나의 주제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나를 보았다. 요7:37-39의 말씀으로 나누었는데... 주님께서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내가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가장 먼저 깊이 깨달은 것이다. 간증과 함께 이 말씀을 나누고 우리 안에 오신 보혜사 성령님에 대하여 다각도로 나누려고 했다. 그런데 그 성령님이 오심에 대하여 요한이 주석한 39절을 설명하다가 거기에 붙들려 거의 시간을 다 채우고 말았다. 요한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했으므로 성령이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더라'라고 설명했다. 나는 남들이 깊이 생각지 않는 이 말씀에 집중하였다. 성령님은 '주님의 영광'을 통하여 임하신다는 것이다. 진리의 성령님께 '생수의 강'을 경험하는 본질을 간절히 구했을 때... 이것에 집중하게 하셨다. 주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찾아 보았다. 그것은 주님이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 그 언약에 복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이다. 요한12장에 보면 돌아가시기 전에 유월절에 헬라인 몇명이 찾아와 주님을 만나 보고자 하였다. 빌립과 안드레가 그것을 전했을 때 주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그러면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리고 그것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을 누리며...진정으로 주님을 섬기려면 주님을 따르라고 하신다. 그 영광의 자리에서 주님이 마시는 그 잔을 함께 마시라고 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영광은 한 알의 밀로 죽어지는 그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고 물과 피를 쏟아내어 그 생수로 인류를 살리는 그것이다. '생수'는 성령님의 역사다. 그런데 그것은 주님의 영광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진다. 성령님은 그날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초막절'이었음을 주목케 하셨다. 초막절은 '수코트'라 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그들을 돌보시며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념하는 것이다. 장막절이라고도 하여 이스라엘처럼 작은 장막에 임재하시어 영광을 나타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하는 것이다. 특별히 광야에서 그들이 물이 없어 갈증에 시달릴 때 반석을 쳐서 생수를 내신 그것을..전능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념하였다. 그래서 실로암 못가에서 물을 길어다 성전에 붓고...말씀을 선포하고... 집회를 하고 대단한 축제를 하였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그들이 그토록 열심으로 다하나... 그들에게 진정한 생수와 자유, 충만함이 없음을 알았다. 오늘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큰 대회로 모이는 끝날에 서서 외치신 것이다. 주님이 초막절에 '성령의 생수'를 말씀하신 것은 그 반석에서 물을 내시어 이스라엘의 갈증을 해결하신 사건과 연관된다. 저희가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 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10:4 바울은 그 생수를 낸 반석이 곧 '그리스도'라고 한다. 반석을 지팡이로 치니 생수가 터졌다. 주님이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를 흘리시니 ... 그것으로 부터 성령님의 능력과 생수가 터져 나온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영광을 받으시고 성령님이 임하신다는 의미다. 이것은 내게 엄청난 기름부음이 되었다. 성령님을 나의 필요, 부흐으이 조건, 어떤 일의 수단과 능력 부음으로 우선 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직 주님의 영광을 따라... 그 십자가와 보혈의 깊은 본질...그 갈망 가운데서 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진정 진지하고 존귀하게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추구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나도 주님의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야만 한다.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질 때... 진정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생수를 경험하리라. 그러나 수많은 이들이 자기를 부인하지 않은 채... 십자가를 추구하지 않은 채..성령님을 구한다. 거기서 온전한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마귀에게 틈입을 허락하고 말았다. 요한은 특이한 말씀을 기록했는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6-9 참으로 성경을 더욱 세밀하고 깊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안다고 하는 입장이 아니라....진리의 성령님께 더욱 깊이 조명하여 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부분적인 메세지가 아니라... 온전한 진리의 본질을 가지지 못하면 안된다. 이젠..더더욱 안된다. 반석이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맞으셨을 때에.... "내가 목이 마르다!!"고 외치셨을 때... 그분은 인류의 모든 영혼의 갈증을 대신하여 그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그 공허와 곤핍과 갈함을 대신 짊어지신 주님은...그 극한 고통 속에서.. 그분의 허리에서...물과 피를 쏟으셨다. 성령님을 이것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그 물과 피가 생수의 본질인 것이다. 2009년에 들어 오며 온전한 성령님의 능력을 구할 때에... '보혈'에 대하여 더욱 열어 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지 않은 한 주의 종을 만나게 하시어... 그 생수와 물에 대하여 깊이 나누어 주셨다. 그 인도하심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주님의 영광에서 흐르는 물과 피... 그것이 우리 영혼을 회복하고 자유케 하고 ..성령님의 증거로 그 주님의 능력과 나타내심을 이룬다. 그 반석에서 나온 물과 피가 곧 진리요..생명이요..강력한 능력이다. 이 허리로 부터...그 반차를 좇아 우리도 그렇게 영광의 자리로 갈 때에...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자 온전한 복종을 다할 때에... 동일하게 그 생명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영광의 따라 간다는 것은... 그것을 구한 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내 안에 이 메세지가 가득 떠올라 ..머리에서 그것을 정리하며 나누기에 벅찰 지경이었다. 성도들도 어떤 흥미롭고 감동적인 간증을 할 줄 알았더니... 신,구약을 넘나들며 오직 말씀만 나누니..조금은 힘들어 하는 눈치였다. 이미 오래전 부터 나는 간증만으로는 본질적인 변화가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만나야 한다. 말씀과 기도의 영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주님의 심장으로 부터 생성된...그 하늘 생명...그 거룩한 피와 물로 가득한 온전한 메세지를 가져야만 한다. 나는 요즘 그 말씀 자체가 성령님의 능력이 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 진리의 성령님이 내 안에 충일하셔야만 온전한 기름부음과 승리가 있다. 이 '주님의 영광'에 대한 메세지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다 풀어 내지도 못한 채...기도에 들어갔다. 주님의 영광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 할 때에 역시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이들이 긴장을 풀고 기도에 들어 가니... 강렬한 간구들로 체워졌다. 다음날 새벽...비몽사몽 가운데...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이 '영광'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피곤하였지만...일어나 성령님께 꺠닫게 해달라고 구하고 다시 말씀을 보기 시작했다. 밝아오는 자카르타의 여명과 함께 나는 그 '십자가와 보혈'이 곧 '성령님의 능력과 나타나심'이 되는 ...그 둘이 하나되어 생수로 나타나는 지경으로 들어감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