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양시에서 외국인 노동자 사역을 하시는 김영두 목사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분은 90년대 중반 내가 방송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바 있는 주인공입니다. 방송 아이템을 구하지 못해 고심하던 나는 주님께서 소개하고 싶으신 주인공을 구했고, 그때 김목사님의 전화가 울려와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목사님은 교회가 철거를 해야 되서 기도 하다가 내가 생각나 전화 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 방송으로 주님의 손이 크게 역사하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한길교회는 아프리카 흑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수백명이 고양시의 외진 곳에 비닐하우스 교회에 모여 뜨거운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정말 이런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진풍경이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그들의 아버지로..목자로서 너무나 진실된 사역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교회에 절망하던 내게 그분은 용기를 주는 분이었습니다. 그 방송을 통해 주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고 ..아직도 인연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한동안 뵙지 못했는데...그 방송을 보고 섬겨 오던 형제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습니다. "감독님이 이렇게 쓰임을 받으신 줄 물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머리가 희끗해 지신 김 목사님이 만나자 마자 자꾸만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동네가 재개발로 철거 되어서 이 비닐하우스 교회도 옮겼는데... 이번엔 주님이 우사(牛舍)를 주셔서 그리로 갔다고 합니다. "마굿간은 주님의 역사를 잉태하는 곳이니... 오히려 더 멋지고 좋네요." 내가 농담을 하자 목사님도 "정말 그렇네요..."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목사님은 자꾸만 제가 이렇게 변하고 쓰임 받을 줄은 몰랐다고 하십니다. 하기사 나도 이렇게 변할 줄을 상상도 못했던 것이니 당연합니다. 처음 이 분을 만났을 때와 나는 정말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입니다. 그 때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는 코드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이라 하시니...그저 조금 그렇게 산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친구는 되었어도 그들과 진정한 주님의 변화와 치유를 나누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영적 실제 가운데 주님의 손과 발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능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의 본질은 역시 '기름부음'입니다. 주님이 그러했듯이..그분의 증인인 나 또한 기름부음이 임하자 그 삶이 열렸습니다. 2004년 봄,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재발견하고 그분께 복종되어진 삶이 가능해 지자.. 내 삶에 생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삶은 변했고 주님의 역사들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갈된 영혼의 펌프가 다시 작동된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갈2:20 정말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전에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무척 소망했지만 내가 사는 것이었습니다. 내 안에 '기름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기름부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로 인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리는 길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성령님께 순복하고 인도하심을 구하는 '자기부인'에 있습니다. 파주까지 가서 김목사님과 매운탕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평택의 김성재 장로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김감독이 와야 겠는데,.... 너무나 절박하네..." 김장로님은 성령님의 소개팅으로 만나 하나님 나라를 함께 꿈꾸고 있는 여러 동지들 가운데 한분입니다. 나는 평범한 집사인데... 기름부음을 받자 수많은 목회자, 선교사, 장로님들..집사님..형제들과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내가... 사회성이 없다고 지우 엄마의 걱정거리이던 내가 이 무수한 이들과의 교제를 능히 감당하고 심지어 그들을 이끌기도 합니다. 이것이 기름부음입니다. 나는 내 체질과는 어울리지 않는 '네트워킹의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정말 그것은 확연한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역사를 위하여 제게 그 기름부음을 부으셨습니다. 그러자 제가 애쓰지 않아도 전세계에서 무수한 이들이 연결되고 찾아 오게 된 것입니다. 무슨 조직이나 단체, 프로젝트, 비전을 앞세워 추구하는 체질이 전혀 아닙니다. 그런 것에 그다지 관심도 없습니다. 언제나 뒷골목의 작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꿈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기도하는데 정말 나 자신이 너무나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무지하니 성령님 가르쳐 주세요. 아버지의..주님이 하늘에 이미 이루신 그 뜻을 가르쳐 주시고 오직 그것에 작은 충성을 다하게 해달라고만 아이처럼 구했습니다. 아마 치밀한 조직이나 전략..그런 것에 익숙한 분들은 저와 교제하면 답답할 것입니다. 집회를 해도 거의 묻지마 집회형식입니다. 목사님들도 많지만..제대로 세워 본 적도 없습니다. 그냥 이끄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길지 않은 시간에 무수한 이들과 함께 주님의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어떠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 저는 참으로 약하고 무지한 자입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음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10:38 베드로가 극명하게 요약한 이 주님의 삶이 기름부음의 본질입니다. 성령과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주님처럼 '착한 일'..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치유하고 자유케 하고 회복시키는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좋은 것인지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라면 저처럼 날마다 기름부음을 구하고 구하고 구할 터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하지 않는 악하고 게으름이 있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입니다. 그리고 깨달았다 해도 그것에 순종하는 자기부인이 없어서 입니다. 아나면 땅끝까지 증인이 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닮는 삶에의 비전이 없어서 이거나... 기름부음이 임하면 체질과 성향을 넘어서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달란트를 넘어서서 하늘의 전략과 뜻을 이루는 능력으로 돌파하는 길은 '기름부음'입니다. 그런데 그 기름부음의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삶이 바로 '증인됨'입니다. 평택의 김 장로님이 전화를 한 것은 그 교회 사모님이 위독하시다는 것이다. 아침에도 연락이 왔었는데....가슴이 철렁해고 눈이 조여 오더니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미 김영두 목사님과 약속이 되어 있어 고양에 먼저 온 것입니다. 흑인 형제들과 함께 수리한 우사를 개조한 예배당... 딱 제스타일이었는데...전 그런 곳에 모여 강력한 예배와 기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평택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결국 맛있는 매운탕을 먹는 둥 하며 파주에서 정 반대인 평택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가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예전엔 이런 일들은 내게 거의 없던 것입니다. 누군가 아픈 이를 위해 잠시 중보할 수는 있지만... 기도해 주기 위하여 먼 길을 찾아 가는 일은..그리고 그런 부탁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영상을 하는 문화적인 존재였고 기도하고도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아픈 이들을 향해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분의 치유를 경험합니다. 그렇다고 치유 사역자는 아닙니다. 다만 성경이 요구하는 증인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은 영과 육의 해방과 자유를 나타내는 것이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니..기름부음이 임하자 저절로 그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요일 2:27 이 진리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기름부음이 임하면 그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제가 와서 기도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셨다고 합니다. 한참을 가서 도착하자 누워 계시던 사모님이 깨어 나를 보고 우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얼굴을 보자 가슴이 저미어 왔습니다. 30키로 그램 정도로 마르신....너무나 안되어 보였습니다. 몇 개월전 집회를 왔을 때...천식으로 고통 당하는 사모님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같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성령님께 구하는데...강력한 기름부음과 임재는 느꼈습니다. 그 날 이후 놀라운 회복을 하셨었는데...다시 연약하여 지신 것입니다. 먼저 떠오른 '만세 반석 열리니..'를 찬양하고 기도 가운데 주시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받은 자들을 건너가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리요 사51:9-10 요즘 제가 강하게 붙들고 있는 말씀입니다. 라합(애굽)의 그 집요한 속박의 지배구조를 파하고 용이라는 사단의 체계와 바닷물이라는 음부의 세력들을 가르시는 것은 '여호와의 팔'입니다. 전 이것을 너무나 간절히 구합니다. 이것인 바로 기름부음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회복, 부흥, 치유, 통일, 이스라엘의 회복,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나라에 대한 열망은 있으나 기름부음을 구하지 않습니다. 망하는 자들이 우리의 눈과 심령을 무디게 하여 못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그 팔은 결코 짧아지지도 않았고 무디어 지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겸비하게 그것을 구하는 이들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와 지식과 열망으로 ...자기가 사는 것이기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팔에 대하여 가르쳐 달라고 진리의 성령님께 구하였습니다. 한번이 아니라...날마다 무수히 구하고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성실하시고 진실 하신 분이시듯...그렇게 성실하게 진실하게 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바람처럼 성령으로 그렇게 변화되어 기름부음이 임할 것을 역시 믿습니다. 참 좋으신 성령님은 자상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도 구하지 않는 이들을 이젠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분은 우리의 얀약함을 돕기 위해 주님이 보내신 분입니다. 성령님은 시편 89편을 통해서 명확한 진리 가운데 인도하셨습니다.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주께서 '바다의 흉융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 주께서 '라합'을 살륙당한 자같이 파쇄하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시니이다 주께서 이상 중에 주의 성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돕는 힘'을 능력 있는 자에게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내 손'이 저와 함께 하여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 원수가 저에게서 강탈치 못하며 악한자가 저를 곤고케 못하리로다 내가 저의 앞에서 '그 대적을 박멸'하며 저를 한하는 자를 치려니와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저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을 인하여 그 뿔이 높아지리로다 시89:8- 바로 이것이 '여호와의 팔'이며 '기름부음'입니다. 하나님의 팔과 돕는 힘과 그 손이 함께 할 때 마귀의 체계가 무너지고 원수가 박멸되는 것....그것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랍고 중요한 것인지요!! 특별히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부르심을 입고 그 땅을 밟으며 중보 하는 동안 나의 능과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음을 절감햇습니다.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일본의 그 견고한 진...이 민족의 그 영적 지배구조... 그것을 저미시고 파하시는 여호와의 팔이 아니면 안됨을... 날마다 기름부음..여호와의 팔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가를 절묘하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뇨 사53:1 전에도 나누었지만 이 말씀은 그 답이었습니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기가막힌 정답이었습니다. 히브리 어법으로 이것은.."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뇨? 우리가 전한 것을 믿는 자에게 로다" 라고 합니다. 그토록 구하던 여호와의 팔은 성령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전하신 바로 그 메세지를 믿는 자들에게 나타난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강력한 믿음으로 만지게 해달라고 구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렇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정 여호와의 팔로서 기름부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희년'을 본질로 나아가는 바로 그 언약과 능력임을 절감하게 된 것입니다. 희년의 나팔을 불기 위하여 앞서 행해지는 속죄일과 안식일의 역사... 진정한 희년에 도달하려면 그것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속죄일과 안식일.... 구속과 창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