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임재체험(臨在體驗)(14) - 해방
로마서 7장의 주제는 "율법과 죄"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인간의 의지로는 이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고로 해답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을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합니다.
그는 먼저 알아야 할 것으로 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것은 인류가 타락한 이래 인간을 위한 가장 위대한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진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서 8장 전체의 주제이기도 한 기독교 복음의 정신과 진수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위대한 교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죄의 반대는 언제나 "칭의"이지 "성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절규한 것은 죄의식(정죄로부터 나온)을 견디지 못해서입니다.
죽어가는 바울에게 가장 응급한 처치는 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가 없는 것이 아니고(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롬3:10)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 않는데도 죄의식으로 고통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것이 곧 위대한 칭의(稱義)의 교리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범죄하였다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백하고 회개해야지 정죄함을 느껴서는 안됩니다.
다음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곤고한 사람이 된 것은 범죄하였기 때문도, 악한 사람이기 때문도 아니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법의 지배를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망의 몸이 된 것이 아니고, 죄와 사망의 법이 바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와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를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건져주시므로 가능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은, 죄와 사망의 법보다 우위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가 없고 다만 보다 더 강력한 법이 나를 해방할 때 비로서 사망의 몸에서 벗어 날 수 있습니다.
그런 결과로 아담이 범죄한 이후 훼손된 자유의지(노예의지라고도 함)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유 의지는 선택 의지입니다.
이 의지로 육신의 일을 생각하느냐? 영의 일을 생각 하느냐? 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입니다.
물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입니다.
이때 단순히 선택권(자유의지)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성령, 양자의 영)을 주셨다고 로마서 8장 9절, 15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를 잘 따라야 합니다.
한편 바울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주어졌지만 아직까지 옛 습관이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엡4:22-24)
그래서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셔서 행하게 하신다고 또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이 때 우리는 비로서 영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신의 생각도 할 수 있고, 영의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즉 로마서 7장에서는 육신의 생각만 하게 되지만 8장에서는 육신의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영의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진술합니다.
이를 인간의 자유 의지라 합니다. 이 자유 의지는 선택 의지라 할 수 있다고 전술(前述)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하나님 임재 체험은 이 자유 의지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로마서 8장이 그렇다고 영화 단계에 들어갔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칭의(稱義)를 말하고 있슴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는 것은, 성화(聖化)가 되었다거나, 영화(榮華)롭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칭의에서 성화로 향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영적인 싸움(엡6:10-17)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 계속 -
원로 Essay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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