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간증

[스크랩] 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⑬

수호천사1 2013. 4. 24. 08:45

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의

‘구체적 성취의 때와 방법’을 예언한 계시록 7장 1~8절⑬

 

 

  

  ④ 이사야 55장 1~9절


  하느님께서 바벨론의 포로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그 도구로 사용하신 나라는 여러 나라가 아니었다. 그는 고레스가 통치하는 동방의 파사 제국 한 나라를 사용하셨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동방에서 사용하실 복음의 나라도 여러 나라가 아닌 한 나라이다. 그래야만 예표와 실체가 일치할 것이다.


  이사야 55장 1~9절은 하느님이 말세에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하도록 동방(the east)에서 보내실 백성은 분명히 ‘한 민족(a nation)’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 말씀 역시 이사야 46:10~13, 41:25~27, 52:7과 병행구절이며, 계시록 7:1~8과 짝이 되는 중요한 예언이다. 

  

  1절부터 해석해 나가자. 하느님은 먼저 목마른 자들은 모두 당신께로 와서 물을 마시라고 권고하신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시며 구원을 받으라고 사랑으로 초대하신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1)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이 물은 무슨 물인가? 메시아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물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 앞에 나와 그 생명수를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는 말씀인 것이다.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


  이 귀한 물을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거저 마시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죄값을 치르셨으니 거저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이어서 2절에서는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청종하면 풍성한 삶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 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 55:2)


  다음에 3~4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로 돌아와 그의 말씀을 청종하면 그들의 영혼이 살 것이며, 또 다윗에게 약속하시고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혜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와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영원한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다윗의 언약’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영원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신 약속이다.)


     보라, 내가 그(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를 백성에게 증거로 주었고,

        또 백성에게 인도자와 명령자로 주었노라(이 구절은 원문 직역)

                                                        (사 55:3~4)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와 영원한 언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삼하 7:14상; 히 1:5하), 예수님께서 그의 피로 이루신 새 언약을 뜻한다(렘 31:31; 겔 36:24~27). 따라서 그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그의 속죄 사역으로서 이미 성취가 된 것이다. 다만 유대인들이 마음이 완악하여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음으로 새 언약의 효과 밖에 놓여 있으나, 그들도 장차 메시아 예수님 앞으로 돌아와 구원을 받으면(롬 11:25~27) 그 영원한 언약의 자비를 얻게 될 것이다.


  4절에서 말하는 ‘그’는 세상의 명령자와 인도자가 되시는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를 뜻한다. 그런데 5절에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예언되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다윗의 언약의 성취자이신 메시아 예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하느님의 구체적인 계획이다.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한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사 55:5)


  이 구절은 이사야 41:25~27, 46:10~13, 52:7과 병행구절로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민족(a nation)’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그 이방의 나라를 부를 것이며 그 ‘한 나라’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 구절 가운데 있는 ‘나라’라는 말은 한글개역성경에 그냥 ‘나라’로 번역되어 있어 단수, 복수의 개념이 애매하나 히브리 원문에서는 복수형인 ‘고임(goim)’이 아니라 단수형의 단어 ‘고이(goi)’로 되어 단수의 ‘한 나라(a nation)’로 번역해야 정확한 의미가 된다. 영어 성경 NASB는 단수로 번역해 원문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


“Behold, you will call a nation you do not know,

And a nation which knows you not will run to you.”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영어에서는 단수와 복수를 언제나 명확히 구별하기 때문에 성경 해석에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마지막 때에 땅 끝 예루살렘에 능히 복음을 전하도록 ‘동방’에서 보내실 백성은 ‘여러 나라’가 아니고 ‘한 나라(a nation)’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회심은 여러 나라가 함께 몰려가서 전도하는 소위 ‘글로벌 프로젝트’에 의해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구원은 한 나라(a nation)의 특별한 사역으로 실현될 것이다. 장차 때가 차면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한 나라(a nation)’가 ‘동방’에서 독수리처럼 빠르게 복음을 들고 이스라엘로 달려갈 것이다. 바울이 말한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6)는 약속은 바로 그때에 극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6~7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 나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 55:6,7)


  동방의 ‘한 나라(a nation)’에서 전도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달려와 복음을 전할 때, 바로 그때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라는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돌아와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으라는 예언이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이 구원을 얻으려면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복음전도자가 보냄을 받아야 한다고 교훈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유대인과 이방인)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2~15).


  유대인들은 마지막 때에 동방의 한 나라에서 보내심을 받은 전도자들의 사도적 사역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유대인들이 이방의 한 나라를 통해 자기들을 구원하시는 데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리라는 사실을 잘 아신다. 그리하여 8절과 9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신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을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유대 민족은 선민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유대인들로서는 이스라엘이 이방의 한 나라(a nation)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가당치 않는 일로 생각될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이 이방인을 선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을 수긍하지 못하고 “아니, 이방인의 나라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다니요”하고 반문할 것이다. 특히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그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동족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여 온 이스라엘이 메시아 예수 앞으로 돌아오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그게 가능하다면 이스라엘은 2천 년 전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벌써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8,9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느님의 생각은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느님께서 사용하실 그 동방의 한 나라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축복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구약 시대에도 이방의 나라인 파사의 고레스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사례가 있다. 그때에도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이방인의 나라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불만스럽게 여길 것을 하느님은 미리 아셨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이사야 45: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3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마지막 때에도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방의 한 나라를 그들에게 복음을 가져갈 나라로 선택하셨다. 유대인들로서는 거부감이 있겠지만 하느님의 생각은 그들의 생각과 다르며, 하느님의 길과 그분의 생각은 사람의 길이나 생각보다 높은 것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획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방인에 대한 시기심에 자극을 받도록 해서 메시아 예수 앞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임을 깨닫고(롬 11:11,14) 이렇게 고백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롬 11:33~34).


  그렇다! 실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지 못한다면 주님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며, 그의 판단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느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며, 그분의 길은 사람의 길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사야 45장 9~10절 말씀을 명심하고 하느님께서 동방의 어느 한 나라를 통해 자기 민족을 구원하시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사 45:9~10-

  

  이상 살펴본 바처럼 요한계시록 7장 1~8절까지의 메시지와 동일한 예언의 말씀들이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사도 요한이 보았던 “해 돋는 데”(동방)로부터 출동한 인치는 자들의 이상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과 평행을 이룬다.


  이사야는 “해 돋는 곳”에서 시온으로 복음을 가져가는 전도자들의 아름다운 발길을 보았고, 사도 요한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성령의 인침을 받도록 “해 돋는 데”에서 올라온 천사들을 보았다. 이 두 계시는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치는 사역자들로 묘사된 그 천사들은 문자적인 천사가 아니라 복음전도자인 사람을 대신해 사용된 것이다. 하느님의 인인 성령의 인치심은 오직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얻을 때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윤선 박사는 그가 쓴 요한계시록 주석에서 “복음전도 운동은 하나님의 인치시는 운동이다”라고 말한다. 아주 타당한 해석인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합당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들이 실제 천사들이라면 “해 돋는 데”, 곧 ‘동방’으로부터 출동했다고 묘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하강’했다고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천사들의 거처는 어디까지나 ‘하늘’이지 지구 동쪽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 어디에도 ‘동방’이 천사들의 특별한 거처라고 교훈한 곳은 없다.


  인치는 사역자들로 묘사된 천사들은 어디까지나 지리학적 동방에서 이스라엘로 보내심을 받을 복음전도자들을 대신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출처가 “해 돋는 데”인 것이다.


  하느님은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요한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어떤 방식으로 구원을 받을 것인가에 관해 동일한 계시를 주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인치는 사역자의 출처인 “해 돋는 데”는 개혁주의 성경 해석의 기본 원리인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로 해석해 볼 때 문자 그대로 지리학적 동방이 분명하다.


  만일 우리가 “해 돋는 데”(동방)라는 말을 본문이 의도하는 바와는 다르게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하느님의 방향”을 뜻한다고 곡해하게 되면, 교회는 영원히 계시록 7장 1~8절이 전달하고자 하는 실제적인 메시지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목적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해 돋는 데”를 상징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인치는 사역자는 마지막 때에 회개하고 메시아 예수께로 돌아올 유대인들(롬 11:12~26)에게 복음을 전할 전도자들인 바, 그들의 출처가 팔레스틴의 동쪽 방향, 즉 “해 돋는 데”(동방)라는 것이 본문이 전하고 있는 핵심 교훈이다. 사도 바울이 예언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은 그렇게 성취될 것이다. 장차 동방에 있는 한 나라에 의해.


  이상과 같이 자세히 고찰한 바대로 인치는 사역자의 출처인 “해 돋는 데(the rising of the sun)”는 팔레스틴의 동쪽 방향인 지리학적 동방이다. 곧 그 동방은 마지막 때에 온 이스라엘이 성령의 인침을 받고 구원을 얻도록 유대 민족에게 능히 복음을 전할 나라가 동방 어딘 가에 있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나라는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쓰임받기 위해 선택받은 거룩한 나라이다. 복음전도의 마지막 과제로서의 땅 끝은 단연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황혼

 

 

성민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