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의
‘구체적 성취의 때와 방법’을 예언한 계시록 7장 1~8절⑪
② 이사야 52장 7절
이사야 52장 7절도 역시 계시록 7장 1~8절과 병행구절이며, 또한 이사야 41장 25~27절과 짝을 이루는 구절이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사 52:7)
서구 주석가들은 이 말씀 역시 파사의 고레스에 의한 유대인들의 바벨론 해방 소식에 대한 예언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전 6세기에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 백성이 고레스에 의해 해방 되었을 때 그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달하려고 산 너머 신음하는 동족들을 향하여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필사의 노력을 다해 달려가는 젊은 메신저(messenger)의 모습을 형상화한 예언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현대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 거리는 42.195km다. 그런데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2000km 거리이다. 당시에 전령의 역할을 하려고 그렇게 먼 거리를 마치 그리스 전투에서 승전보를 전하려고 달려오는 마라톤 이야기 같이 예루살렘까지 쉬지 않고 뛰어갔던 메신저들이 실제로 있었던가? 없었다. 그런 초인간은 없다. 만약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면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구전이든 기록이든 후대에 분명히 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없다. 그것은 서구 주석가들의 상상일 뿐이다.
여기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시온으로 달려 가는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고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대인이라면 “우리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마지막 때에 유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가져가는 이방인 전도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유대인들의 바벨론 해방 소식과 관련된 예언이 아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주전 536년 바벨론에서 귀환했을 때 큰 기쁨을 경험했지만 이사야가 여기에 기록한 기쁨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시온에 하나님의 통치가 구현될 때의 기쁨인 것이다. 본문은 마지막 때에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해 돋는 데’ 곧 ‘동방’으로부터 복음 들고 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가는 전도자들의 아름다운 발길을 회화적 표현방식으로 예언하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52장 7절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장차 동방의 한 나라에 의해 실현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예언인 것이다.
여기 이른바 “좋은 소식”, “평화”, “복된 좋은 소식”, “구원” 등은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킨다. 이 말은 헬라어로 “복음”이라는 뜻의 “유앙겔리조메노스(ευαγγελιζομενος)”에 해당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구절은 바울이 유대인도 구원을 받으려면 그들에게도 복음전도자들이 보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때 인용한 구절이다(롬 10:12~15).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의문의 여지없이 종말에 메시아 앞으로 돌아올 유대 민족의 구원에 관련된 예언인 것이다.
이는 7절의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성경을 해석할 때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그것은 “어느 하나의 성경 구절은 반드시 전후 문맥 속에서 해석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이 7절 말씀을 문맥의 흐름 속에서 해석하면, 이것은 결코 구약시대에 성취된 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제 10절 말씀을 살펴보자.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박윤선 박사는 이 구절에 있는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는 말씀을 “이는 신약시대의 만민구원운동을 예언한다”라고 설명한다(박윤선 ․ 성경주석 이사야서). 그렇다! 모든 땅 끝까지 구원을 받는 것은 신약시대의 일이다. 물론 여기 10절에 언급된 ‘땅 끝’은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우선적으로 7절에 있는 ‘시온’, 즉 ‘예루살렘’을 뜻한다.
이것은 문맥상으로도 그렇지만 복음 전도의 마지막 과제로서의 땅 끝이 지리적으로는 예루살렘이요, 민족적으로는 유대 민족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롬 11:25~26). 예루살렘에 다시 복음이 들어가고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때, 비로소 “모든 땅의 끝들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는 10절의 예언은 완전히 실현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사야 52장 7~10절은 신약시대에 성취될 예언인데, 그것은 말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가져가는 전도자들에 대한 계시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부터 시온을 향해 가는 자들인가?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요한은 한 목소리로 그들이 “해 돋는 데”, 즉 동방의 어느 한 나라로부터 보냄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따라서 그 동방의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사야 52장 7~10절이 고레스 때에 성취된 예언이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이 구절 가운데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파사에 의해서 귀환된 후 그들에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졌는가? 그렇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헬라, 시리아, 애굽, 로마 등 계속하여 많은 이방 나라들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이 예언은 과연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마지막 때에 동방의 한 나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보내심을 받은 전도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능히 복음을 전할 때 실현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에 유대민족 가운데 전국적인 회심이 있을 것이며 마침내 “온 이스라엘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나 영역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이다. 메시아 예수의 다스림과 통치권이 인정되고 환영받으며 행사되는 곳이면 거기는 개인의 심령이든, 가정이든, 민족과 국가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따라서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예언은 장차 온 이스라엘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을 때 성취될 것이다.
공중에서 바라 본 예루살렘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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