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1:13-21, 성도는 거룩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왜 거룩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를 부르신 이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기는 하지만 육체의 쾌락을 좇아 살아가는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의 신분에 대한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져야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이고 택하신 백성이고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마음에 두고 말씀을 살펴보고 은혜를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13절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여기서 ‘동이고’‘아나조사메노이’는 (등산을 할 때)의복을 단단히 준비해서 입고 허리띠로 조이고 출발할 태세를 가지라는 의미의 동사 ‘아나존뉘미’의 명령 분사로(잠31:17, 빌2:1),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허리를 동이고 유월절 어린양의 고기를 먹은 것처럼(출12:11)경계태세를 취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재의 그리스도인이 육의 허리에 허리띠를 매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입니다. 영으로 긴장하고 깨여 있어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주변 환경으로 인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혹독한 시련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혹독한 시련이나 환란은 없지만 그러나 주변의 환경이 즉 쾌락, 정욕, 거짓술수, 등등..우리를 죄악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특히 요즘은 성적인 문란은 도를 넘어 양심이 화인맞은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돈’ ‘맘몬’ 돈,신은 땅의 모든 사람의 정신을 다 지배하고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이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한번 우리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우리의 여백만 있으면 타고 들어와서 활동을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은 사탄이 들어와서 역사하지 않는가? 네, 사탄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들어와서 역사 한다는 것입니다. 마16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칭찬을 받고 바로 뒤이어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 지게 하는 자라 말씀합니다.
생각할 것은 사탄, 혹은 귀신이 들어와서 역사하는 것과 귀신 들림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귀신 들림은 미친 상태, 제정신이 아닌 것이지만 귀신이 일시적으로 혹은 아예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역사하는 것은 증상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반대이면 그것은 사탄의 활동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서 우리 안에 악의 뿌리를 뽑고 평안의 매는 줄로 허리를 동이고 애굽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갔듯이 우리는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신4:9절입니다.
잠4:23
살전5:6
다시 13절에서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에서 ‘온전히’‘텔레이오스’는 ‘온전히’뿐만 아니라 ‘끝까지’라는 의미도 있어 ‘온전히 그리고 끝까지’바랄지어다로 한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주님 오실 때까지 은혜를 소망하며 ‘온전히, 끝까지’ 바라는 것, 또는 갈망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가져올’ 단어를 보면 현재 분사로 되어 있어 성도에게 주시는 은혜는 현재적이고 미래적인 것입니다. 재림때에도 부어 주실 것이지만 현재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주어져 있고 현재에도 ‘계속 주어지는’ 은혜, 이것이 성도들에게 닥쳐오는 환란을 능히 이길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에서 환란이 오면 넘어지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의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롬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히9: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요일5:11,“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4절입니다. 베드로는 환란과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순종하는 자식으로’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식이란’무슨 의미일까요? 히브리식 표현법으로 ‘~의 자식’하면 그 인물됨됨이와 본질적인 속성, 역할을 나타내줍니다. 다시 말하면 ‘불순종의 자식’하면 우선 우리는 사탄을 생각하게 되고 그 사탄의 자식이니 불순종이 본질로 속성으로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보면 ‘순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본질적으로 순종의 체질을 가진 자라는 의미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불순종의 자식이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예수로 말미암아 체질이 변하여진 자,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불순종이 더 힘이 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전에 알지 못할 때에 좇았던 사욕, ‘알지 못할 때에’ 이것은 ‘무지’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세상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한 무지를 말씀합니다.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시79:6) “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렘10:25),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갈4:8)
‘좇던..사욕’ 이것은 영적으로 버려야 할 욕망을 말씀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떨어뜨리는 행위, 또 다른 의미는 인간의 본성, 본능을 따라 살게 하는 도덕적인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좀 살펴봅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막4:19),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리스도인은 세속적인 욕망을 따르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함에 이르는 자가 되라고 권면을 하십니다.
15절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성도가 거룩해야 할 이유가 우리를 부르신 이가 거룩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15-17절에 성도는 하나님을 닮아서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외적인 정결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부적합한 영적, 도덕적 성결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어서 이제 모든 죄를 용서 받았고 거룩하게 된 의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우리의 삶이 행동이 생각이 바뀌어진 언행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는데, 모든 죄를 용서 받았는데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고후5:17), 그런데 아직도 옛 삶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면 15절에서 어긋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 16절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신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는 이미 말씀에 기록되었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레위기11:44,19:2,20:26)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고 하십니다.(히4:12)
그러면 자신을 생각을 해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는데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도전을 주셨는지 돌아보시고 아무 느낌도 없었다면 혹은 불편함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라고 하시면 거룩하게 살아야 하기에 거기에 불편함이 있어야, 말씀이 부담이 있어야 말씀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편하고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 하나님이 내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순종의 자식인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9),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17절입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가 뭡니까? 난 구원 받았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살아도 구원받아 이런 사람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어느 교파의 주장대로 몇날몇시에 구원받았어 그러니 난 어떻게 살든 하나님의 자녀야 그러니 난 천국갈수 있어, 이런 사람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성도라는 그 이유만으로 난 괜찮아, 직분이 있으니 난 괜찮아, 하나님 앞에서 간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고 각각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행위’‘에르곤’은 단수입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아무리 많은 죄가 많아도 단수라고 하는 것은 두가지 중에 하나 즉 악과 선,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따르고 있는가,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 이것으로 마지막 날에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신10:17),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요7:24,행10:34-35)
그러므로 나그네로 있을 동안에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하십니다. 이세상의 삶이 저세상으로의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육을 죽이고 영이 산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18절에서 우리의 구원은 ‘망령된’ 즉 우상숭배로 된 것이 아니고 19절에서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의 피로 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구속’은 댓가를 지불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완전무결한 그리스도의 피로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댓가를 치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져야 하고 그래야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20절입니다. 예수님의 선재성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예수그리스도는 창세전에(엡1:4)미리 알리신바 된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구원할 구주로 예정되었다고 하십니다. 예수의 성육신의 사건은 그러한 하나님의 예정을 성취하신 사건입니다. 이 예수님은 창세전에 계셨으며 우리에게 육의 옷을 입고 오셨고 앞으로 세상 끝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히1:2), 세상 끝에(히9:26)
21절입니다.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하십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우리의 목적과 관심이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바라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환경이 힘들어지면 하나님이 계시는지, 하고 의심을 하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을 묵상하고 거기에서 하나님과 교제가 있어야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만나야 합니다.
왜그렇습니까?
말씀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말씀을 믿고 따르는 진실한 성도는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운동을 한다 하셨으니 말씀입니다. 출14:13절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14:13), 또 롬8:24절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요일3:3절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오늘 우리시대는 거룩함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죄가 죄로서 인정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면서 이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롬12:1-2), 돈이 신이 된 세상, 우리의 가치관이 돈인 세상, 죄를 은혜라는 이름으로, 관용이라는 포장지로 용납하는 교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이끌리지 아니하면 우리는 거룩을 지켜나갈 수 없습니다. 썩어질 세상이 주는 기쁨이나 쾌락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희락으로 나를 채우고 늘 깨어 분별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본분이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하늘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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