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Series 7. 신약성경의 교회들2.(서머나교회)
100129(금요심야)
계 2:8-11
우리는 지금 매주 금요일 교회 Series를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 가치 그리고 그것들을 이루어갔던 성경의 여러 교회들의 모습들을 살펴보며 우리교회가 나아갈 좌표를 발견해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내용들을 정리해 보자면,
첫째, 교회의 원뿌리가 되는 광야교회의 특징들과 세 가지 중심축으로
1. 교회의 원뿌리인 광야교회의 특징은
1] 구원받은(출애굽한) 교회,
2] 살아 있는 주의 말씀을 받고 부흥하는 교회,
3] 예배에 생명을 건 교회,
4] 기사와 표적이 따르는 교회였습니다.
2. 교회의 원뿌리인 광야교회의 세 가지 중심축은
성막(성전)과 율법(말씀)과 모세(영적지도자)였었고, 하나님은 이 세 가지를 중심축으로 사용하여 광야교회인 이스라엘을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는데,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있었습니다.
둘째, 교회의 원뿌리가 되는 광야교회의 가치성은
1. 주의 종 모세의 설교사역.
2. 하나님의 택하심과 보호하심
3.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
4. 하나님과의 일체(一體)됨
5. 신주주의(神主主義)적 운영체계에 있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모습은
1.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집)(엡2:19-22).
2.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엡1:4-23, 3:9-10).
3.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곳이고(엡4:3-6),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궁극적인 권위(主)는
4. 주 예수 단 한 분이시며(엡4:5, 행4:12, 요14:6,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5. 그 인격과 사역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엡4:11-15).
넷째, 주님께서 제정하신 교회의 예식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명하신 두 가지 성례가 있습니다.
1. 침례<βαπτισμα(밥티스마)>: 침례란 죄악 된 옛 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예수생명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영적인 실제적 사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침례란 거듭남을 경험하고, 거듭남을 확증하는 사건을 나타내는 예식인 것입니다(롬6장).
2. 주의 만찬(성찬식): 구약시대의 유월절 예식은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과 성찬예식의 그림자입니다(눅22:14-16,고전5:7).
유월절이 구약시대 하나님의 자녀들인 이스라엘을 모든 억압된 것들로 자유케 하였듯, 우리 주님의 살과 피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을 모든 억압된 것들로부터 자유케 하는 능력이 됩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것이 성찬식인 것입니다.
[1] 성찬식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요19:30).
[2] 성찬식은 악한 마귀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는 의식입니다(계12:11).
[3] 성찬식은 구원을 선포(전도)하는 의식입니다(고전11:26).
[4] 성찬식은 자기를 돌아보는 의식입니다(고전11:27-31).
[5] 성찬식은 치유를 위한 의식입니다(마8:17,시105:36-37,고전11:29-32).
[6] 성찬식은 물질적인 부요를 누리게 하는 의식입니다(시105:36-37.고후8:9).
이상과 같은 믿음으로 행해야 하고 이상과 같은 것을 누리는 성찬식이 참 된 성찬식인 것입니다.
다섯째, 교회의 본질은
1. “하나님의 백성”(벧전2:9-10).
2. “그리스도의 몸”(골 1:18,24)
3. “주님의 신부(新婦)”(고후11:2)
4. “여호와의 군대”(출7:4,(딤후2:3-4)
5. “하나님의 양 무리”(벧전5:2)
6.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은 가지”(요15:5-7)
7. “그리스도의 편지”(고후3:3)
8.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딤후2:20-21)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섯째, 에베소교회의 모습
교리적인 정확함,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음,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의 거짓을 드러냄과 방종주의인 니골라당을 미워하는 윤리적인 정결함이 있는 교회로 주님께 칭찬을 받았으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려가는 교회가 됨으로 주님의 책망을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오늘은 교회 Series 7번째 시간입니다. “서머나교회”를 살펴보며 건강한 교회의 좌표를 설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여자의 일생”을 쓴 프랑스 작가 모파상(1850-1893)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는 본래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퇴학당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신앙과 결별하기로 하고 자신이 주인이 된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 후 문학에 뜻을 두고 정진하여 10년 만에 유명작가가 되고 돈을 많이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중해에 요트를 가지고 있었고(1,800년대 말) 노르망디에 대 저택을, 파리에는 호화 아파트를 갖고 쉴새 없이 애인을 바꾸며 살아갑니다. 비평가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군중들은 그를 흠모했고 그의 은행에는 쓸 수 있는 여유로운 돈이 항상 넉넉했지만 그는 안질병과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1892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잃은 그는 종이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합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이 파탄 난 그는 정신 병동에서 몇 달을 알 수 없는 소리로 허공을 향해 절규하다가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맙니다. 그의 무덤 묘비명에는 그가 말년에 자주 외친 삶의 독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그는 부자의 꿈을 이룬 것 같았으나 실상은 가장 처절하게 가난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1세기 소아시아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시면서 “너희들은 가난한 것 같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모파상과 정 반대의 인생을 산 사람들이 서머나 성도들이었고 그런 이들의 공동체가 바로 서머나 교회였던 것입니다.
1. 사도요한 당시의 서머나 지역은?
에베소 북쪽 80km지점에 위치한 서머나는 인구 20여만의 아름답고 훌륭한 해안 도시였습니다. 바다가 육지 안으로 들어와 있기에 아름다운 호수를 연상케 했으며, 무역뿐만이 아니라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으로 이방 문화와 종교들의 집산지였던 서머나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유력한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서머나의 발전을 위해 10,000데나리온(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을 헌납할 정도로 서머나와 밀착해 있었고, 서머나에 전파된 기독교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들이 기독교를 박해한 이유는 유대교에 입교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마저도 기독교도로 변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을 충동질하여 황제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기독교도들을 처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
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8절)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1세기 당시의 서머나 교회는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내놓는 죽음의 위협까지 느껴야만 했었던 고난 받는 교회였습니다. 죽음의 위협까지 느껴야 하는 고난의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시려고, 주님은 자신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로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라는 이 표현은 그들의 신앙까닭에 투옥과 사형을 앞둔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에게 부활의 아침을 소망하며 확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죽음을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바로 그분, 죽음의 승리자이시고 역사의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 곧 역사의 주인 되시는 그 분이 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9절)고 하셨습니다.
서머나는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부요한 도시입니다. 현재의 지명은 이즈밀(Izmir)이라고 불리우는데 터키에서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과거 사도시대에도 에베소에 맘먹는 큰 도시여서 “아시아의 보석”이라고 불리우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서머나 교회는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로마 황제숭배자들과, 로마에 아첨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가진 재산과 자유를 다 빼앗기고 빈민계층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었습니다.
사탄이 왕노릇하는 악한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고달파지고 빈핍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딤전 2:1-5)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사도 요한은 사탄이 왕노릇하는 악한 정권이 통치하는 이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들이 현세에서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의 순간에까지 충성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불사해야 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매우 신중하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산주의나 초대교회 당시의 우상이 지배하였던 로마정부와 같은 사탄적인 정부가 들어선 것이 아닌, 민주 자유주의 사회에서조차도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빈핍해 지거나 고달파질 수 있다거나, 혹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서머나 교회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사탄적인 정부아래에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간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서머나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
서머나 교회는 소아시아 7교회 중 책망이 없었던 두 교회 중(다른 한 교회는 빌라델피아교회)의 하나였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고 순교까지 하는 성도들에게 무슨 책망을 하겠습니까? 다만 칭찬과 격려를 주실 뿐이었습니다.
칭찬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9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궁핍은 상대적 가난 정도가 아닌 거의 헐벗고 굶주린 수준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서라면 그 어떤 어려움과 손해가 임할지라도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해 나가는 서머나 교회의 굳건한 믿음을 칭찬하고 계신 것입니다.
4. 서머나 교회를 향한 권면
서머나 교회를 향해 책망할 것은 없었지만 여전히 권면은 필요했습니다. 다가오는 얼마동안의 고난(10일은 길지 않은 일정한 기간을 나타냄)을 예언하시며 주어진 유명한 권면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10절)
이 예언은 적중했고 주후 156년 2월 2일 사도요한의 제자(속사도)로서 이 서머나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가 된 폴리캅 감독이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의 신상을 참배하기를 거절했던 폴리캅 감독과 인근지역 성도들 11명이 유대인들의 밀고로 체포됩니다.
그러나 폴리캅 감독의 인격과 덕망을 흠모하던 총독은 “예수를 욕하고 황제의 신상에게 절을 하면. 당장에 풀어 주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폴리캅 감독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겨왔는데, 그 동안 그분은 단 한 번도 나는 섭섭하게 하지 않았으니 내 어찌 나를 구속해 주신 내 왕을 욕하겠소!”
총독이 다시 “네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너를 야수의 밥이 되게 하겠다!”고 말하자 폴리캅은 조용히 “어서 맹수를 부르시오.”라고 대답합니다. 총독은 다시 “네가 맹수를 두려워 않으니 너를 불태우겠다!”는 위협을 합니다. “총독이여, 잠시 있다가 꺼질 이 불보다 장차 심판을 위해 예비 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불을 두려워하시오.” 그의 육신이 불로 얼른 태워지지 않자 그는 칼에 찔리워 순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서머나인 도시 이즈밀을 방문하는 분들은 어김없이 폴리캅 기념 교회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 교회당 벽에는 유명한 화가 레이몽 페레가 그린 폴리캅 순교화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의 구석에는 손이 포승줄에 묶인 채로 폴리캅의 순교장면을 지켜보며 다음 자신의 순교차례를 기다리는 한 사내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순교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누구에게도 경험될 수 있는 사건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죽음의 순간까지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다 순교할 필요는 없지만 순교적 신앙으로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5. 서머나 교회에서 배워야 점
서머나 교회가 오늘의 교회와 성도에게 던지는 도전을 우리는 다시 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 신앙고백이 확실해야 합니다.
폴리캅 감독처럼 어떤 경우에도 포기될 수 없는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만일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힌다면 사업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직장의 승진에서 배제되고 나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해도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요 주님이심을 선언하며 살아갈 용의가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이 많은 교회야말로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에 아무리 많은 숫자의 성도들이 출입해도 예수가 나의 주님이라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없고, 그 주님을 위해 손해 볼 각오도 희생할 의지도 없는 성도들만으로 채워지고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교회가 아닌 매우 불건강한 공동체가 되고 말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 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세기의 서머나 교회가 특히 그 도시에서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당한 이유가 “서머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으로 고백한 까닭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이 땅에서의 유일한 선민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소위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나 자기들이 진정한 선민이요 영적인 이스라엘이라고 선언했을 때 도저히 그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 노릇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주께서도 본문 9절에서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을 언급하시고 그들의 모임을 가르쳐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서머나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선민의식을 꺾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누구를 부러워하겠습니까? 천문학적인 물질을 가지고도 아직도 탐욕에 목말라하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요, 아무리 세상이 그를 가난하게 보아도 그에게 부족함이 없다면 그는 부요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 된 성도들의 자존감이어야 합니다.
3] 죽음 건너편을 바라보는 내세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받은 후 1세기의 서머나 교회는 문자 그대로 고난을 잘 견디고 승리했습니다. 폴리캅 감독의 순교를 치른 후에도 교회는 고난을 잘 견디고 계속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나는 그 이유가 이 교회에 약속된 소망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자 무슨 약속이 있었습니까?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는 언약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11절에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언약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우리가 정말 두려워 할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죽음(첫째 사망)이 아니라 죽음 다음에 오는 죽음(둘째 사망)곧 하나님의 심판(지옥)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신실하게 산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없고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의 상급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현실의 고난을 이기는 최선의 준비는 천국을 소망하는 신앙입니다.
한국의 지식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천국신앙을 현실도피적인 타계신앙으로 비하하는 경향도 있지만 저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 쉽게 타협하고 연약해지는 원인이 천국신앙의 상실 내지는 약화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천국을 믿는다면 이 땅에서의 돈과 권력 그 자체에 그리도 강하게 집착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둔 사람들이 이 땅의 보물에 목말라 할 까닭이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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