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격의 중요성
예언하는 사람은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대신하는 사역자에게 자신의 인격을 닮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훈련시키신다.
하나님은 사역자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 못지않게 전하는 사람을 만드는 데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의 리더쉽은 세상의 리더쉽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 추구하는 가치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에서 추구하는 지도자의 가치는
1)겸손(humility)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하기 때문에 먼저 낮아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도 고난을 통하여 겸손을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그러해야 한다. 고난은 겸손의 교과서이다.
2)순복(surrender)
얻고자 하는 사람은 버리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얻고자 하는 자는 잃지만, 잃고자 하는 자는 얻기 때문이다.
3)부서짐(brokenness)
사람은 본성적으로 만족함을 모르는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 속에 계속 채우려고만 한다. 사역자는 하나님으로만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4)종(servanthood)
가장 큰 사람은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다. 지도자는 섬기는데 익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5)연약함(meekness)
현명한 리더는 온화한 성품을 품어야 한다. 나약한 예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였다.
2.인격 대 은사
인격(character)과 은사 사이에는 매우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은사가 자동적으로 인격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은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값없이 주는 것이지만 인격은 믿음이 성장해야만 얻을 수 있는 열매인 것이다. 기름부음이 임하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자동적으로 보증하는 것이 아니다.
은사는 역설적으로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오래된 신앙은 고정관념에 빠지기 쉽고 따라서 즉흥성이 요구되는 성령의 사역에 방해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고전관념에 덜 물든 새로운 신자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물의를 빗기 쉽다.
그러므로 온전한 인격을 갖춘 바람직한 은사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인격 형성 학교에서 훈련을 치르게 된다. 이 훈련은 즐거운 것이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생략할 수 없다(히 12:11). 이 훈련은 사역자의 평생에 걸쳐 행하여지는 고된 과정이다.
1)깨어짐의 학교
이 과정은 ‘자아의 죽음’이라고 불리는 훈련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얻어진 고정관념이나 확신을 제거하는 훈련이다. 깨어지지 않은 자연인의 상표와 같은 완고함, 강팍함, 날카로움은 이 학교를 거침으로써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된다. 연약해 보이는 것이 이 학교를 통과한 사람의 특징이다.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진 이후에 보인 모습이다. 연약함은 결코 유약함과는 다르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다른 사람에게 매우 민감해진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들을 돕고자 한다. 남의 일에 무관심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협력하고 연합해야 하는지를 안다. 독단적인 고집을 부리지 않고 서로 협력하여 일을 성취시킨다. 자신이 부족하여 다른 사람과 연합하는 것이 아니고 협력할 때 더 많은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2)겸손의 학교
겸손은 하나님 나라의 유용성을 위한 가장 요긴한 요소이다. 예언자에게는 이것이 특별히 요긴하다. 우리의 사역이 자기를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랑이나 교만을 배제해야 한다. 교만한 자를 내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이는 자기를 부인하는 공과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들어내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떠한 자리에 두든지 그 위치에서 충성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이룰 수 없는 공과이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존재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
3)화를 다스리는 학교
하나님은 예비 예언자들을 그들을 통해서 전하는 말씀에서 화를 내는 영(spirit of anger)을 걸러내기 위해 이 공과를 거치게 한다. 실족케 하는 것은 삶에 필연적임을 말씀하신다(눅 17:1-2). 본문은 두 가지 차원으로 해석이 된다. 첫째, 우리는 실족케 되는 기회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자신을 해롭게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실족케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언자의 관심은 항상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데 있다. 예언 사역의 유용성에 기본적으로 장애가 되는 것은 예언자의 마음에 자제되지 않은 분노가 있다는 점이다.
피할 수 없는 실족이 우리의 삶에 일어날 때 우리는 그것을 용서하거나 우리의 영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이 쓴 뿌리가 되어 다른 사람을 더럽히게 된다(히 12:15, 약 1:19-20). 상처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낸다. 실족의 해독제는 용서이다. 하나님은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가치 없는 것을 귀히 여기는 훈련을 시킨다. 예언자는 ‘용서의 전문가’(expert of forgiver)가 되어야 한다. 예언 사역에 나서는 사람은 그의 삶 속에서 화를 내야 할 환경을 무수히 만나게 된다. 그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하는 법을 배우며 어떻게 신속히 하나님의 은혜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터득하게 된다.
4)배척과 고립의 학교
분리, 고립, 따돌림은 사회학적으로 실패한 사람이 겪는 특징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이러한 것들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마음 속에 채우기 위해서는 이 공과를 거쳐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한 고립을 통하여 비로서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쓴뿌리가 된다(잠 29:26).
예언자는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배척 당하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불러내어 별로 인기 없는 말씀을 전하게 하거나 행동을 하게 한다. 이사야는 3년간 벌거벗고 다녔고, 예레미야에게는 소의 멍애를 지게 했으며,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하게 했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풍속과는 다른 것을 행하거나 선포하게 한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는 일이다. 이 공과의 어려운 점은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다.
5)관계성의 학교
교회 공동체는 서로 연결되어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엡 2:19-21). 서로가 올바르게 관계되는 것을 강조한다(요일 2:9-11, 3:19-21). 이것은 부수적인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기본 요소인 것이다. 독립과 고립은 건강치 못하거나 미숙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잠 18:1)라고 했다. 올바른 관계는 교회의 행정과 구조를 말한다. 영적 권위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영적 권위를 어떻게 온전히 실행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권위, 순종, 제자도(mentoring), 책임성 등의 원리를 올바르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이다. 온전한 교회 구조 속에서 교육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예언자 교육을 받았다. 위대한 예언자들은 그들의 삶 가운데 일정 기간의 제자 훈련을 거쳤다. 사무엘-엘리, 모세- 이드로 등,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혼자 행동한 사람은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관계성의 결핍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다. 엘리야는 팀의 가치를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쉽게 지쳤고, 때로는 불평하기도 했다. 엘리사는 섬김과 순종을 배웠고 엘리야보다 갑절의 능력을 행했다. 하나님은 ‘추종 의존’(co-dependence)이 아닌 ‘상호 의존’(inter-dependence)을 요구하신다.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6)제자도의 학교
예언자의 성숙을 위하여 하나님은 예언 사역자를 멘토(mentor)의 지도 아래 둔다. 멘토링이나 제자도는 훈련의 기본이다. 작은 일에서부터 신실함을 배우게 하려 함이다(눅 16:10-12). 엘리사가 엘리야의 시종으로 여러 해를 섬겼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40년간 섬겼다. 엘리사는 권위 아래 있었고 그 권위를 상속 받았다. 반면에 게하시는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 결과 문둥병을 얻었다(왕하 5장).
7)영적 권위의 학교
권위를 가진 자는 남의 권위에 순복할 줄 알아야 한다(마 8:8-9). 자신이 타인의 권위에 순복하면 타인이 자신의 권위에 순복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의 권위에 순복하려 하지 않는다(벧전 5:2-5, 히 15:17). 개별적인 예언 사역자들은 거대한 그리스도의 몸과 연관이 되어 있어야 할 필요를 항상 인식해야 한다(시 133). 형제가 연합할 때 주께서 복을 내리신다. 우리는 몸의 일부이며 그러므로 홀로 존재할 수 없다.
http://cafe.Godpeople.com/healinghouse/?B21-1159
장봉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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