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하심이 신자들의 생활에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성령이 어떠한 방식으로 역사하시느냐에 대한 견해는 서로 같지 않다. 특히 성령의 은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논쟁은 개혁, 보수주의자와 은사주의자 사이에 아직도 첨예한 대립을 이루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사를 광범위하게 해석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 믿음, 사람의 자연적인 재능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값없이 거저 주셨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사(선물)이다. 성령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선물)이다(행 2:38).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거듭나는 그 순간부터 원칙적으로 은사를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비롯해서 신령한 은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은 원칙적으로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1.정의
모든 성도들이 거듭나는 순간부터 받기 시작하는 은사, 은사들, 선물이란 무슨 뜻인가? 신약에는 대표적인 두 가지 단어가 있다.
1)도레아(δορεα)
신약에서 11번 사용되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 또는 선물을 말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구원(롬 5:15, 17), 선물(고후 9:15), 성령의 선물(행 2:38), 온전한 선물(약 1:17)을 말한다.
2)카리스마(χάρίσμα).
이 말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나타내는데도 사용되지만(롬 6:23), 대부분의 경우 성령이 어떤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말할 때 사용된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갖고 있지만(벧전 4:10), 사람에 따라 다른 종류의 은사를 받기도 한다(고전 12:30). 또한 이런 은사들을 가진 개인들 자체가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시는 ‘선물들’이다(엡 4:7 이하). 구원과 성령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값진 선물이며 개별적인 은사들은 이를 근거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은사라고 말할 때의 좁은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은사들’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은사들은 성령이 그 뜻대로 믿는 자들에게 나누어주신다. 이 은사들은 고린도전서 12:8-10 및 28-31, 로마서 12:3-8, 에베소서 4:11 및 베드로전서 4:10-11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이런 것들을 성령의 은사(들)라고 부르지만 성령의 은사라고 구체적으로 부른 곳은 고린도전서 12장 뿐이고, 로마서 12장의 은사들은 성부 하나님이 주셨고, 에베소서 4장의 은사들―또는 직분―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주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은사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에 주시는 것이다.
다른 단어들도 그렇지만 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말하기 위해 한 가지 단어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여 은사(들)의 다양한 측면을 제시한다.
1)직임(office 고전 12:4-5).
직임은 직분, 섬김 또는 사역이란 뜻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직분은 여러 가지가 있음을 말해준다. 성경에 기록된 것만 보아도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 감독, 장로, 집사가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성령의 은사가 일정한 훈련을 통하여 성숙되어 그 사람의 의무이자 전임 사역으로 확정되는 것을 말한다.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그 은사가 직임으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과 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 은사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가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은사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성숙되었거나 목회자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은사가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는 성경 말씀은 어느 곳에도 없다.
2)역사(workings 고전 12:6).
역사는 작동, 운행, 활동 또는 운영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령의 역사는 시대와 민족에 따라서 독특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성경에 그 자세한 기록이 없다고 하여 함부로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현상이나 사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냐 아니냐를 분별할 때 겉모습만 보지말고 그로 인한 열매가 어떤 것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마 7:17-20).
3)나타남(manifestations 고전 12:7).
파네로스(πανέρως)는 드러내다, 계시하다는 뜻이다. 같은 문맥에 기록된 성령의 은사, 주가 주시는 직임, 하나님의 역사 및 성령의 나타남은 동의어로 사용되었음을 밝혀준다. 성경은 또한 성령의 나타남(maifestation)을 증거, 과시(demonstration)라고 표현하기도 한다(고전 2:4). 이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가 나타날 때 따르는 자연스런 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4)선물(도마, δόμα, 복수는 도마타, δόματα, gifts 엡 4:8, 11-12).
이처럼 성경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성령의 은사를 의미하는 말들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2.은사와 직임
우리의 교회에서는 은사에 대해서는 많은 언급이 있었지만 직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가르침이 없었다. 은사를 받으면 모든 것이 다 된 것처럼 생각했고 은사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은사와 권위와 직임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은사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권위와 직임을 수행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도구이다.
1)은사의 세 가지 영역은 삼위 하나님의 각각 다른 위격에서 나온다(고전 12:4-6).
성령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거하기 위하여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은사’(manifestation gifts)를 주신다(고전 12:7-11). 성자 예수는 그의 몸인 교회를 다스리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사역적 은사’(ministry gifts)를 나누어준다(엡 4:7-13). 성부 하나님은 ‘동기를 유발하는 은사’(function or motivation gifts)를 주신다(롬 12:4-8).
2)능력과 권위의 차이
능력과 권위 사이에는 주요한 차이점이 있음을 아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능력(power)은 교회를 다스리는 권위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은사자들은 자신이 기도함으로써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교회를 이끄는 권위보다 더 높게 생각하여 영적 지도자를 무시하기도 한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은 품지 말라는 말씀(롬 12:3)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능력은 권위와 같은 것이 아니다. 능력은 나타남의 은사에 의하여 들어난다. 능력이 권위를 능가하거나 압도할 수는 없다. 권위는 능력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눅 10:19). 교회에 주어진 이 권위는 어떤 권세나 능력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침범할 수 없는 절대 불가침의 영역이다(마 28:18-20).
고린도전서 12장은 성령의 나타나심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14장은 그 은사가 사용되어야 하는 기본 규칙을 언급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적당하게 질서를 따라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3)직임(엡 4:7-11)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의 지체들에게 선물로 주는 오중 사역의 직임을 묘사하고 있다. 은혜라는 말로 번역되는 카리스(χάρίς)는 은사라는 말로 번역된다. 로마서 12:6과 베드로전서 4:10에서 모든 성도는 영적 은사를 부여 받아 서로 섬기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직임은 일부 특별히 선발된 개인에게 또는 은사를 받은 후 일정한 기간 동안 철저한 시험을 통하여 인정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모든 성도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예언의 경우 일시적으로 예언의 영에 의하여 예언하는 경우 그 예언을 하는 사람은 예언자가 아니다. 그는 그 순간 예언의 영에 의하여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 사람의 예언이 지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일정한 수준의 예언을 일정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2~3년간 예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상당 기간 동안 시험을 통과하게 된다. 이러한 시험 기간을 통과하면 그는 예언자로 서게 되며 지속적으로 능력있는 예언 사역을 하게 된다.
사도 및 선지자의 직임은 다른 은사를 주실 때와 달리 직접적인 방법으로 불러 낸다는 점이 독특하다. 불러내심 즉 소명(calling)이 매우 독특하며 일반적인 사역자들의 부르심과는 전혀 다르다.
3.은사의 발견과 개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은사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다는 전제에서 볼 때 그렇다. 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무익한 종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개발하는데 열심을 보여야 한다.
1)본인 스스로가 잘 안다.
어떤 사람은 노래 솜씨가 있어 찬양의 은사로 연결되고 어떤 사람은 전도의 은사가 있어 전도할 사람이 있으면 몇 마디 하지 않아도 전도가 쉽게 이루어진다. 이처럼 은사가 있는 사람은 그 일을 즐겁고 쉽게 하기 때문에 더욱 하고 싶어진다. 자신에게 어떤 분야에 남보다 두드러진 능력이나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어 그 일에 관심과 열정이 생기게 된다.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하여 그 능력이 개발되지 못하고 잠재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그러한 은사가 주어졌음을 잘 안다.
2)다른 사람이 안다.
본인은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먼저 은사를 발견하기도 한다. 자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 또는 특기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 여겨 묻어두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그 특성이 공동체를 위하여 유익하겠다고 생각되어 적극적으로 그 일을 하도록 권함으로써 은사가 개발된다.
3)실제로 여러 가지 사역을 경험함으로써
전임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전임 사역에 임하게 되는 사람은 없다. 나름대로의 오랜 준비와 훈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 전임 사역에 투입된다. 은사 개발도 마찬가지다. 초신자가 회심하자 말자 바로 어떤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자연적인 재능과 관련이 있는 음악, 행정, 섬김 등의 은사는 즉각 기능을 발휘하겠지만 이것들조차 오랜 세월을 거쳐 정화되지 않으면 오히려 교만으로 인해 공동체의 유익이나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여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에 충실하다 보면 자신의 은사를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은사가 주어졌다고 해서 처음부터 강력하고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부여 받는 것이 아니다. 은사는 행하는 과정을 통하여 다듬어지고 훈련되면서 점차로 그 영역이 확장된다. 상당한 기간의 영적 성숙을 위한 훈련이 병행되는 것이다. 은사가 주어진 그 순간부터 사실상 영적 훈련이 함께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겸손히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훈련을 거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4)자신의 심령을 살펴 보라.
어떤 일이나 사역에 대해 유난히 마음에 부담이 온다든가, 어떤 일을 하면 기쁨이 넘친다든가, 다른 사람은 힘들어하는 일을 본인은 쉽게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잘 처리하는 경우 그런 은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자만 보면 긍휼의 마음이 생기는 사람, 힘든 사람만 보면 내 일 제쳐놓고 도와주는 사람은 긍휼의 은사, 섬김의 은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5)다른 은사자를 통해 발견된다.
은사 개발에 대해 이 분야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특히 기적 행하는 은사들은 이런 은사자의 집회에 참석하거나 안수를 통해 전수되거나 나누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속에 어떤 은사가 잠재해 있는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특히 예언의 은사나 능력 행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을 통해 잠재해 있던 은사를 불일듯하여 활성화 할 수 있다. 이것은 본인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잘 모르고 ‘은사발견표’를 통해서도 잘 발견되지 않지만 성령께서 지식의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6)은사자의 안수를 통한 경우이다.
성경은 이런 경우를 더러 기록한다(행 8:17, 행 19:6, 롬 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은사자를 통해 은사를 전수 받는 것을 부인한다. 이들은 성령이나 은사 받는 것을 논리적이고 신학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위와 같이 은사를 나누어주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고전 12:11, 롬 1:11, 행 8:17, 19:16).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고정 관념 속에 머물러 있지 않으신다. 성령이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방법은 성령님께서 독자적으로 선택하시는 그분의 권리이다. 특히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나누어주시고 은사도 나누어주시는 까닭은 받는 사람을 겸손케 하려 함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동기로 성령을 나누어주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로마서 1:11에 나오는 (은사를) 나누어 주다는 말은 메타디도미(μεταδίδωμί)인데 영어로는 impart로 번역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적행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임파테이선(impartation)을 받기 위해 능력 집회에 참석한다(왕하 2:1-18).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신 성령의 은사에는 특수한 은사와 보편적인 은사가 있다. 복음을 제대로 전파하고 교회를 굳건히 세우기 위해 고린도전서 12장의 기적 행하는 은사는 물론 로마서 12장 6-8절의 생활의 은사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적 행하는 은사와 같이 드라마틱한 은사 못지 않게 겉으로 나타나지 않게 조용히 섬기는 생활의 은사도 중요하다. 생활의 은사는 기적 행하는 은사에 비해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교회의 건덕과 삶의 향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은사이다.
어느 은사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령이 주신 선물이다.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은사에 치중하는 사람들은 생활의 은사와 더불어 균형을 취해야 한다. 반면에 생활의 은사만을 강조한 나머지 특수한 은사를 무시하지도 말아야 한다.
특수한 은사들을 무시하면 교회가 이지적, 형식화 관념화되기 쉽다. 신앙생활이 건조하고 냉랭하며 고백 위주의 타성적인 신앙인이 되기 쉽다. 일상 생활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면 정도 이상으로 학(學)이나 전통을 강조하여, 활기 있고 기쁨에 넘치고 신나는 신앙 생활을 하기가 힘들다.
http://cafe.Godpeople.com/healinghouse/?B20-1147
장봉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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