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은사

[스크랩] 능력에 대한 바른 이해

수호천사1 2012. 3. 10. 21:54

1)성경에서는 능력이나 권능은 기사와 이적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성령의 능력이 귀신을 쫓고 병을 낫게 한다(마 12:28, 눅 4:18).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폭발적인 증인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증거하기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 앞에서나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사실을 담대히 증거한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이기 때문이다(요 15:14).

2)말씀을 통하여 불신자를 거듭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성령의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아의 굳은 반석을 깨는 불방망이가 되고(렘 23:29), 혼과 영과 마디와 골수를 쪼개는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이 된다(히 4:12). 성령 충만을 받은 설교가 듣는 자의 마음을 찔러 회개하게 만든다(행 2:4, 37-38).

3)성화를 이루는 능력이 있다.
신자들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여 삶이 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성품과 행동―을 닮아가게 하는 능력이다(엡 1:19).

오늘날 이 세 가지 능력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아서 많은 혼란을 일으킨다. 기사와 이적 같은 현상들이 일어나야만 능력이 나오는 줄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런 능력자(?)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한다. 이들은 화끈하고 센세이셔널한 현상들이 나타나야 능력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기사와 이적은 그 주인인 예수를 증거하며 말씀을 통해 거듭나는 것을 확증해 주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그 자체에 의미를 준 적은 없다.
또한 이러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의 가르침이 반드시 옳거나 신앙이 성숙한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능력과 은사를 가장 많이 받은 고린교회가 교리나 윤리적으로 가장 많은 말썽을 일으킨 교회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령의 외적인 능력을 가장 크게 받은 구약의 삼손의 윤리의식이나 내적인 영성은 형편없었다. 이러한 능력자를 ‘거짓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속단이지만 시간을 두고 그들의 가르침과 성품의 열매를 성경에 비추어서 분별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능력은, 비록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성화의 능력에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온갖 기사와 이적을 행하고 천국 구경한 것은 마지못해 자랑했지만(고후 12:1-4), 환난과 핍박과 고통을 받는 자기의 약한 것들은 보다 담대하게 자랑했다(고후 12:5).

동일한 기적 행하는 은사를 가졌더라도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면서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에 복음을 전파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기적 행하는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름부음의 정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개인적인 기름부음(individual anointing).
소그룹에서 소수의 사람을 상대로 사역할 때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인해 은사가 나타나는 경우이다.

2)단체적인 기름부음(corporate anointing).
기름부음의 정도가 강하고 특히 대중전도자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인도하는 집회에서 기사와 표적이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아나콘디아, 미국의 베니 힌, 독일 출신의 라인하르트 본케가 인도하는 집회에는 수만 명의 사람이 운집하고 치유와 능력의 역사가 단체적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기적 행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더 큰 기름부음을 사모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특별 은혜적인 은사만을 강조하면 교회는 불건전한 신비주의와 몰 현세적인 개인 중심의 신앙을 낳기 쉽다. 그러나 기적 행하는 은사를 무시하면 교회는 이지적이고 명제적인 교리는 바르지만 바른 체험이 결핍되어 생동력이 없고 그 결과 바른 삶이 따르지 못하는 죽은 정통을 낳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재능과 은사, 의무와 은사, 은사군 또는 복합 은사

1)자연적인 재능과 성령의 은사(natural talents & spiritual gifts).
자연적인 재능과 성령의 은사는 구분된다. 자연적인 재능은 성령의 일반은혜의 산물이며 출생과 더불어 타고나는 것이지만 성령의 은사는 거듭날 때 성령에 의해 받는다. 특히 기적 행하는 은사는 거듭난 사람만이 받지만 로마서 12장의 생활의 은사들은 자연적인 재능과 합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같은 자연적인 재능이라도 거듭나기 전에는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했지만 거듭난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2)의무와 은사(rule & gifts).
또한 많은 사람들은 신자로서의 의무와 은사를 구분한다. 신자라면 누구나 전도해야 하지만 특별히 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고, 신자라면 누구나 봉사하고 섬겨야 하지만 특별히 잘 섬기고 봉사를 잘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점에서 의무와 은사는 구분된다. 특히 생활의 은사가 이 범주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3)은사군 또는 복합 은사(gifts mix).
우리가 분석을 위해서 여러 가지 은사를 나열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한 가지 은사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나지만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은사가 있다. 이런 경우에도 어느 한 가지만 나타나기보다는 몇 가지가 동시에 나타난다.
은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역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역에 필요한 은사가 동시에 나타난다.
특히 기적 행하는 은사의 경우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할 때 신유의 은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의 은사 등이 동시에 작동한다.
또한 예언을 할 때도 그 사람의 과거의 일을 알려주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 앞날을 말해주는 예언의 은사, 받은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별해주는 영 분별의 은사, 그 말씀을 지혜롭게 전달하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 등이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은사는 하나님이 뜻대로 나누어주시는 것이지만 열매는 내가 맺는 성품을 말한다. 은사는 하나님 나라 일을 위한 도구이지만 열매는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인격과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 일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형상--인격과 성품--을 회복하는 신앙 인격의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성품의 열매는 어느 한 순간에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맺어가야 한다.
우리가 은사를 제대로 사용할 때 신앙 인격의 열매는 제대로 맺을 수 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평강,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 이런 성품은 혼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도를 닦는다고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때 맺어지는 성품들이다.
은사가가 말썽을 부리는 경우, 은사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은사자의 신학적, 신앙적 미성숙 때문이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는 것은 신앙 인격의 정도가 아니라 주권적으로 주시거나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경우가 많다.

교회의 사역에는 다양한 은사가 필요하다. 요즈음에는 각자의 은사를 점검하여 교회에 필요한 부서에서 봉사하게 하는 은사 배치 사역이 관심을 끌고 있다.
어떤 부서에 어떤 은사가 필요할까?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주일학교 교사:가르침, 섬기는 은사
2)전도 팀: 전도의 은사
심방: 전도자, 권면의 은사
감옥 전도: 전도, 권면, 긍휼의 은사
축호 전도: 전도의 은사
팀 리더: 전도, 다스리는 은사
3)장로: 목사, 권면, 리더십, 손님 접대, 가르침, 다스리는 은사
4)집사: 섬김, 도움, 긍휼의 은사
5)안내원: 손님 접대, 섬기는 은사
6)선교회: 지혜, 섬기는 은사 (회장은 다스리는 행정의 은사)
7)사회 복지: 긍휼, 섬김, 손님 접대, 지도력의 은사
8)청소년 사역: 권면, 목사, 손님 접대, 지도력의 은사
9)주일학교 교장: 가르침, 행정, 지도력의 은사
10)재정 위원: 행정, 지혜의 은사
11)상담원: 권면, 지혜, 중보, 예언, 영 분별, 지식의 말씀의 은사
12)성경공부 인도자: 가르침, 목사, 손님 접대
13)유아원: 섬김, 긍휼의 은사
14)교회 비서: 도움의 은사
15)교회 회계: 행정
16)당회나 주요 위원회 위원: 행정, 섬김, 지혜, 믿음의 은사
17)기도 팀: 중보기도의 은사
18)셀 리더: 가르침, 지도력, 지식, 지혜, 영 분별, 예언, 능력 행함의 은사
19)찬양팀: 음악, 지도력, 섬김 등

은사를 개발하고 활성화하기 위해서 생각해 볼 몇 가지 요소들을 살펴보면,

1)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은사를 받으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지만 은사는 사용함으로써 계속 다듬어지고 강화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적 행하는 은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은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다는 고정관념에 젖어서 사장된 은사를 개발하고, 적극 사용함으로써 강하게 활성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는 실제로 사용해 보지 않고 관념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받은 은사를 불일듯하게 해야 한다(딤후 1:6).
불일듯하게 하다는 말의 헬라어 άναζωπυρέω(anazophureo)는 “계속해서 타오르게 하다” “불꽃을 계속해서 보존하다”는 뜻이다. 이는 디모데가 이미 받은 은사가 소멸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사를 더욱 분발하여 새롭게 하라는 말이다.
오랫동안 이런 은사를 사장해 놓으면,
첫째는 예수님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 받고 갖고있는 은사도 빼앗길 것이요(마 25:29),
둘째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 된다(살전 5:19).
어떤 사람이 이미 기적 행하는 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인 눈치, 교단 눈치를 보느라고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한참 후, 도전을 받고 사용해 보려고 했지만 은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은사자의 집회에 참석하여 안수를 받고 사장된 은사가 다시 나타났다. 이후 그는 사람의 눈치, 교파의 눈치 보지 않고 담대하게 사용하여 이전에 맛보지 못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다.

2)계속 개발해야 한다.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영적 근육이 굳어져서 그 수준에서 맴돈다. 하나님은 은사를 사용하라고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받은 은사는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더욱 불일듯하게 하고 또한 내가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의도적으로 사장시켰다면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3)은사를 간절하게 사모하고 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은사란 선물이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냥 주실 것이라면서 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나에게 구할 마음을 주시지 않는 것을 보니 나에게는 그런 은사를 주시지 않을 모양이다”라면서 구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사와 이적은 사도시대에 끝났다는 잘못된 기적 종식론의 영향, 주변 동료의 영향, 교회의 가르침, 교파의 압력과 핍박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신앙생활이란 것이 신기해서 이런 은사를 가진 사람들과 교제하면 이런 은사에 대한 도전과 의욕이 일어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교제하면 또 그런 대로 지내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도 불일듯하게 하지 않고 도전을 받지 않으면 서서히 소멸된다는 사실과 또한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은사를 받은 사람들과의 교제가 중요하다.

4)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들(은사)을 시기할 정도로 몹시 바라고 간절하게 탐내라. 특히 예언을 하도록 하라

5)신령한 은사가 풍성하기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 14:12). 여기서 ‘사모하는’은 젤로오(ζηλόω, zehlow 동사)의 형용사형인 ‘젤로테스(ζηλωτής)’인데 예수님 당시의 열심당을 말하는 질롯(jealot)에서 생긴 단어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신령한 것을 몹시 바라고 간절하게 탐내는 자들임을 긍정적으로 인정한 후 그 열심을 발휘하여 신령한 은사들이 더욱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명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렇게 하기는커녕 이런 신학, 저런 이유로 오히려 억누르고 찬물 끼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떤 사람은 “은사보다는 은사를 주신 분이 더 중요하다”면서 은사를 사모하고 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그 하나님의 뜻을 더 잘 행하기 위해 그 하나님이 주신 은사도 구해서 받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기적 행하는 은사를 많이 가진 고린도 교회를 보라.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가장 많이 책망 받은 교회가 아닌가? 그러므로 기적 행하는 은사는 말썽만 부리므로 받을 필요가 없다”는 식의 해괴한 주장을 한다.
성경 어디에 그런 주장이 있는가? 사도 바울이 책망한 것은 은사 사용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한 것이지 은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고린도 교회에 많은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더욱 많은 은사가 고린도 교회에 임하기를 기도했다(고전 1:4-7).

은사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생각할 점은,

1)사랑의 동기로 사용해야 한다.
특히 기적 행하는 은사는 은사자를 교만하게 만들기 쉽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은사를 뽐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겨 교회에 갈등을 초래했다. 성령이 은사를 주신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 개인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은사의 종류를 말한 후에 고전 13장에서는 은사를 사용하는 동기나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한다(고전 13:1-3).
우리는 주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은사가 조금 있다고 하여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마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대사인양 착각하고, 권위에 순종하지 않고, 교만한 사람들을 볼 때 “은사가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랑이 있어야지”라는 말을 자주한다. 고린도전서 12장 31절은 바로 이런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전 12, 13, 14장이 카이애스틱(역평행)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성경은 자주 강조하는 것을 중간에 위치시키고 그 주변에 비슷한 것을 포진시킨다. 이런 모습이 헬라어 카이(K)와 같다고 하여 카이애스틱 구조라고 한다.

12장 은사들의 종류(a)
13장 사랑 장(b)
14장 은사의 사용 방법(a')

모든 은사는 사랑의 동기에 의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은사라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요,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고(고전 13:1-3), 오히려 소리 나는 구리나 울리는 꽹과리같이 말썽만 일으킨다. 그러나 은사의 오남용이 은사를 배격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된다.

2)믿음의 분량대로 사용해야 한다(롬 12:6).
기적 행하는 은사가 많은 말썽을 부리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은사는 신앙의 성숙도와는 상관이 없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이 성숙치 못한 사람들이 우쭐대면서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은 특히 겸손과 지혜로 신앙인격을 다듬어 가야 한다.

3)보다 못한 은사를 가진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고전 12:22).

4)최선을 다해서 사용해야 한다(마 25-14-30의 달란트 비유 참조).
은사를 많이 받았든 적게 받았든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교단에서 그런 은사를 좋아하지 않아서” “교회에서 그런 은사를 좋아하지 않아서”라면서 이미 받은 은사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묻어둔다. 받은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묻어 두면 예수님의 책망을 면치 못한다(마 25:26-30).

http://cafe.Godpeople.com/healinghouse/?B20-1149

사역원 장봉운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 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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