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스크랩] 다니엘의 70주 예언

수호천사1 2012. 1. 24. 18:58

다니엘의 70주 예언


- Fred P. Miller -



  9:1 “메대인들의 씨에 속한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데아 사람들의 왕국을 다스리는 왕으로 책봉되었던 첫째 해”


  바로 이 다리오 치세, BC 519년부터 515년까지 그 성전을 재건하고 재개관하였던 일이 이루어졌다고 결론 내리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다니엘은 몰랐으나,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치하에서의 그 건물의 재건은 다만 몇 개월 떨어진 문제였다).


  키악사레스(Cyaxares) 즉 고레스가 그를 대신하여 활약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인 그 키악사레스 국왕이 진짜 “메데인 다리오”일 것이라는 미심쩍은 결론은 다니엘 5장 31절의 부적절한 해석에 의해 조성되었다. 즉, 다니엘 5장 31절은 다리오를 벨사살의 즉각적인 계승자로 내세운다(아래 “다른 증거”를 참조하라).


  “메대 사람 다리오가 그 왕국을 취하였더니 그때에 그가 약 육십이 세였더라”(단 5:31).


  여기서 키악사레스 2세로 언급되는 한 미디안인 왕, 다리오라는 인물은 억측에 기인한다. 아무런 역사적 증거도 없이, 오직 하나의 추측만이 “다리오”라는 이름을 키악사레스와 연계시킨다. 실제로 키악사레스 2세의 존재 여부 자체가 미심쩍다! 키악사레스 2세는 고레스를 임명했다고 추정되고, 따라서 대리인으로서 벨사살을 계승하였다고 여겨져 왔는데, 그러나 그는 결코 존재하지 않은 인물일 수도 있다. 그는 다만 미디안 왕조 기록에만 나타나있는데, 그 기록에서도 그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매우 수상쩍다. 이는 몇몇 성경 주석가들이 다니엘 5장 31절이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 벨사살과 고레스 사이에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레스가 오직 유일한 왕이었다거나 또는 그가 누군가와 최고권을 공유하였다는 생각을 뒷받침 해주는 어떠한 역사적 증거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헤로도투스는 필경 존재하지 않았던, 키악사레스 2세의 가상의 아버지, 미디안 왕, 아스티아게스에 대한 고레스의 전복에 대해 상세하고 길게 설명해 준다. 그는 아스티아게스의 딸에 의해 고레스가 탄생했다고 설명해준다(헤로도투스 1:92). 그는 고레스가 아스티아게스를 퇴위시켰다고 분명히 말해주며(1:73), 아울러 바빌론 멸망 훨씬 이전에 그 무력에 의한 전복이 있었다고 설명해준다. 그는 분명하게 언급하기를, 아스티아게스는 어떠한 아들도 두지 않았다고 했다(1:109). 그는 말하길 아스티아게스는 패배한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고레스의 궁정에 머물렀다고 했다(1:130). 헤로도투스는 모든 미디안 왕들의 역사에 대해 상술해준다. 즉 최초의 왕 데이오세스로부터 시작해서, 그는 프라오르테스를 낳았고, 그는 키악사레스를 낳았고, 그는 아스티아게스를 낳았고, 그의 왕위는 고레스가 결정적인 전투에서 차지하였다.


  고레스는, 언급된 바에 따르면, 29년 동안 미디안 왕으로서 통치하였고(1:215), 어쨌든 그는 바빌론의 멸망 이후 5년간을 더 살았다. 다만 증거가 부족한 것은, 폐위된 아스티아게스와 고레스 사이에 어떠한 통치자가 다스렸는가 하는 점이다. 키악사레스 2세를 삽입시키는 것은 역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다만 부분적으로 다니엘 5장 31절을 맞추기 위한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즉 그 구절에는 다리오가 벨사살을 계승하였다고 말하는 듯이 보인다.


  반면에 다른 구절들과 역사적 증거는 고레스가 그 계승자라고 말한다. 벨사살과 다리오 히스타스피스 사이에서 통치하였던 자들인 고레스, 캄비세스, 그리고 프세이도-스메르디스가 왜 다니엘 5장 31절에서 제외되었느냐는 대답은 간단하다. 다리오 히스타스피스는 실질적인 역사적 왕조의 계승자이다. 고레스와 더불어 다리오 히스타스피스까지 이어지는 다른 자들이 생략된 이유는 바로 고레스가 어떠한 왕조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런 유전적인 후계자도 두지 않았다. 혼란의 시대가 벨사살의 서거 이후 고레스의 죽음과 더불어 이어지는 단기간에 긴급히 시작되었고, 그것은 거의 즉각적으로 그의 어리석은 아들, 캄비세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 이어서 찬탈자, 가짜 스메르디스의 실정이 이어졌고, 그는 다리오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렇게 비춰볼 때 다니엘 5장 31절은 이해가 간다, 즉, 벨사살에 이어 실질적으로 세상 질서에 맞게 왕조의 공고성을 회복시킨, 최초의 통치자로서 다리오가 그 뒤를 이었다. 그 다리오의 왕조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여기서 또한 이의가 제기된다, 즉 다리오왕 치하에서 그 성전이 완성되었고, 개막되었는데, 그는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히스타스피스의 아들이라 불린다. 반면 여기 다니엘 9장 1절에서 그는 아하수에로의 아들이라 불린다. 그러나 아하수에로는 일종의 세습적인 이름으로, 파라오와 아주 흡사하다, 그리고 히스타스피스는 쉽게 아하수에로라는 호칭을 지닐 수 있었는데, 그 이름으로 그의 손자(다리오 히스타스피스의 아들 헤르세스 대제)가 호칭되었다(에스더 1:1 참조). 심지어 이 견해에 대한 비평가들도 다리오 히스타스피스가 황실 혈통이었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 명칭, 메데의 다리오는, 다니엘에 의해서, 미디안 황실 가계와 연결되어있던, 다리오 히스타스피스로 유추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고레스는 한 미디안 공주에게서 태어났고, 그가 약 12살이 될 때까지, 메디아에서 양육되었다 즉 그는 페르시아인 고레스로 불린다. “페르시아인” 외에 헤로도투스는 또한 고레스를 “메데의 왕”으로도 부른다(1:2~5).


  다니엘 11:1-5은 메데인 다리오로부터 알렉산더까지 4명의 왕들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4절에서 의미하는 그 사람이 바로 알렉산더임에 틀림없다. 이 구절을 조화시키기는 어려우나, 다리오 히스타스피스부터 알렉산더까지의 기간으로 보는 것이 그 가상의 키악사레스에서부터 다리오 히스타스피스까지로 보는 것보다 한결 적합하다. 후자는 몇몇 보다 이른 시기 주석가들의 추측이다.


  다니엘 1장 21절은 다니엘이 고레스 제 일년에 죽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가 바빌론 시대 전반에 느부갓네살 왕조 정부에서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여전히 다리오 히스타스피스의 첫 해에도 살아있었고, 그 때 그 성전의 기초들은 여전히 지어지지 않았었다.


  다른 증거들: 맛소라와 그리스어역 구약성경(Septuagint) 텍스트에서는 다니엘 5장 31절이 6장의 제 1절이다. 그 텍스트를 읽어보면, 이것이 자연스럽고 정확한 구분임을 알 수 있다. 31절은 따라서 벨사살이 그 밤에 죽었다고 말해주는 30절의 완성이 아니다. 30절은 한 설명을 종결짓고, 31절은 또 다른 것을 시작한다. 다리오는 그 다음 설명의 주요 등장인물로서 소개되고, 따라서 그 절은 적절하게 그 마지막과 분리되어, 그가 벨사살이 죽은 그 같은 날 밤에 “그 왕국을 취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왕국을 “취했다”: 단어 “qibel”은 ‘정복하다’ 또는 ‘움켜쥐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에 “받았다”로 번역되어져야 마땅하다. 그것은 통상 한 사람 즉 그 왕국이 넘겨진 자에 관해 사용되곤 했다. 그 원문은 다리오가 벨사살로부터 바빌론을 “정복하였다”는 뜻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잘못된 의미는 31절의 잘못 배치로 인해 파생되었고, 그것을 6장의 시작으로부터 그 구절이 현재 영어 문맥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로 옮겨짐으로서 파생된 것이다.


  120지방들로 다리오는 자신의 왕국을 나누었는데, 그것은 보다 쉽게 다리오 히스타스피스를 의미한다. 즉 벨사살보다 선행하였던 메데에 있는 누구를 의미한다기보다 또는 다른 사람들이 제안하는 것처럼, 고레스에 의해 공식적으로 지명된 한 저급관리, 고브리우스에 의해 만들어진 한 단독 현에 있는 그 지방들을 의미한다기보다. 다른 역사적인 문헌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에 따르면, 그 120 지방들은 그것이 다리오 히스타스피스에 의해 이렇게 나뉘어진 이후 메데-페르시아 제국에 관해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도: 내부 증거 또한 다리오 히스타스피스를 지적한다. 이어지는 그 기도의 집중성은 그가, 70년이 만기되기 전이 아니라, 고레스 이후에 등장하였음을 지시한다. 만일 그 70년이 아직 만료되지 않았다면, 다니엘이 그토록 진실하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몫을 담당하시도록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내부 증거도 분명히 해주는 것은, 고레스가 죽은 후에 그 왕위에 오른 자가 다리오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캄비세스와 찬탈자 가짜 스메르디스 사이의 간격을 감안하여(헤로도투스 책 3:66-79를 보라), 그가 이 기도를 드렸던 것은 다니엘이 예루살렘의 파괴들이 성취되었을 것이라 가정했던 때 이후로 거의 12년이 지난 후일 것이다. 


  9:2 “그가 다스리던 첫째 해에 나 다니엘은 책들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연수를 깨달았나니, 즉 그분께서 예루살렘이 황폐한 가운데 칠십 년을 채우리라 하셨던 것이라”


  책들을 통하여: 예레미아 25:11, “그리하면 이 온 땅이 황폐함과 경악거리가 되며 이 민족들은 바빌론의 왕을 칠십 년간 섬기리라” 다니엘은 BC 606년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리고 고레스가 반포한 포로생활을 끝내고 스룹바벨 통솔 아래 돌아가도록 보내주는 그 칙령이 536년에 있었기에 정확하게 70년이 성취되었다. 이 칙령은 열왕기하 마지막장과 에스라의 첫 장에서 발견된다. 다니엘의 기도에서 드러난 그 좌절은, 그에게 있어서는, 그 날이 지난 까닭에 발생한다, 즉 그에게 있어서, 약 12년이나 되도록 지났으나, 예루살렘은 여전히 황폐하였기 때문이다.


  70년: 다니엘의 계산에의하면 그 파괴가 시작된 이래로 약 85년 가량이 흘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분이 약속하신 일을 하시기를 바라는 다니엘의 염원과 그의 백성들과 그 자신의 죄들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아래 17절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9:3~19 “내가 내 얼굴을 주 하나님께 향하고 금식하면서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면서 기도와 간구로 구하니라...”

 

  이 기도: 이는 겟세마네를 제외하고 아마도 전 성경에서 가장 간절히 탄원하는 기도일 것이다.


  제7절, 유다의 사람들에게와 예루살렘의 거주민들에게와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모든 이스라엘에게: 바빌론과 페르시아 사이에 메데 왕국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이 결론을 위한 근거가 다니엘 5장 30, 31절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에 의해서 파생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그때문에 한 중간 매개인을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벨사살의 계승자, 고레스 보다, 고브리우스 또는 키악사레스 2세를 의미함. 기억할 것은, 만일 이 기도가 BC 538년에 나온 것이라면, 유대에는 어떠한 사람도 살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는 고레스의 칙령이 있기 2년 전이었다. 명백히 드러난 것을 다르게 해석하는 일이 지극히 어려움을 주석가들은 안다, 즉, 다니엘은 한 도시를 위해 기도하는 중이였는데, 그곳에는 당시에는 거주하였으나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고 성전은 황폐된 상황이었다. 이 설명은 오직 유배생활로부터 돌아온 후에만 가능해질 것이고, 또 다른 다리오가 발명될 필요성을 없애버린다.

 

  17절, 황폐하여진 주님의 성소: 제2성전의 기초는 최초의 귀환(에스라 3:8 참조)이 있은 지 약 2년 후에 놓여졌다, 그러나 그 건물이 건축되는 것이 금지되었고, 21년 가량 지난 후인 다리오 6년에 개전(開殿)되었다. 그것은 에스라의 날까지는 실질적으로 완성되지 못했다. 그는 BC456년에 예루살렘으로 보내졌다(고레스의 칙령이 있은 지 약 80년 후). 그리고 느헤미야와 함께, 그 성전과 도시의 성벽의 완성을 성취시켰다.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아주 처참한 상태였고, 따라서 다니엘의 모든 생애와 그 이후에도 그랬을 것이다. 다니엘은 606년에 아마도 14세에서 16세의 젊은이였다; 536년 귀환할 그 시기에 약 86세였다 그리고 대략 우리의 다리오의 존재가 정확하다면 이 환상의 시기에 약 98세였다.


  9:20~23 “내가 말씀드리며 기도드리고 나의 죄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며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주 나의 하나님 앞에 나의 간구를 드리고 있을 때에 곧 참으로 내가 기도드려 말씀드리고 있을 때에 내가 처음에 환상 속에서 보았던 그 사람 가브리엘이 저녁 예물을 드릴 즈음에 신속히 날아와서 나에게 이르니라 그가 내게 알려주고 나와 함께 말하였는데 말하기를 오 다니엘이여 이제 내가 너에게 능숙함이나 깨달음을 주려고 나아왔느니라 네가 간구를 드리기 시작할 때에 명령이 나왔으므로 내가 너에게 밝히 보여주려고 왔나니 이는 네가 크게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이 일을 분별하고 그 환상을 깊이 생각할지니라”


  그 환상은 천사로부터 나왔고, 다니엘에게서 비롯되지 않았다.


  9:24 “너의 백성 위에와 너의 거룩한 성읍 위에 칠십 주간들이 정하여졌나니 허물을 끝내고 죄들을 종결시키며 죄악에 대하여 화목을 이루고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며 그 환상과 예언을 봉인하고 또 지극히 거룩하신 분에게 기름을 부으심이 임하리라”

 

  70주: 70에 7배 또는 490년. 이 예언은 다른 시간 예언들의 열쇠다. 한 날은 예언의 어법에서 한 해와 등가(等價)이다. 따라서 이 예언은 490년에 성취될 것이었다. 70년을 염두에 둔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되었다. 그러나 천사가 그에게 그의 요구를 초월하여 그 도시에 대한 상세한 것을 알려주었다.

 

  성취될 일들: 최초의 세 항목들 즉, 허물을 끝내고 죄들을 종결시키며 죄악에 대하여 화목을 이루시는 것은 반드시 골고다 사역을 지적한다. 다음 두 가지 역시 드러날 일들의 완성을 지적한다. 즉,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시고, 예언을 봉인하신다. 그리고 기름부음은 메시야를 지적한다. 이러한 일반적으로 오랜동안의 사건들은-메시야의 오심을 포함해서- 490년 내에 있을 것이다. 490년의 보다 특별한 분석은 다음과 같다.


  9:25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 지니라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건축하라는 그 명령이 나가는 때로부터 그 메시야이신 통치자에게 이를 때까지 칠 주간들이 있을 것이요 또 육십 이 주간들이 있을 것이라 그 거리와 그 성벽이 다시 건축되리니 곧 고난스러운 때들 중에 되리라”

 

  예루살렘을 회복하라는 명령: 어떤 명령인가? 고레스에게 내린 명령은 BC536년에 있었다. 에스라는 BC456년에 보내졌다(에스라 7:11-13, 느7:17, 2:8 참조). Usher는 BC448년에 느헤미야를 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69주: 이는 성경에 있는 시간 예언 중 가장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랍지만, 분명한 것 중의 하나이다. 7의 7배 더하기 62의 일곱 배는 69의 7배 또는 483년과 등가이다. 70주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이 절의 바로 아랫절에 나타난 한 주가 더 필요하다. 490년 전 기간은 이렇게 나누어진다. (7×7) + (62×7) + (1×7) = 490. 69주는 당신을 메시야의 오심으로 인도해간다. 마지막 한 주를 그 예언으로부터 분리시켜 먼 미래의 날짜로 갖다 부치는 것은 옳지 않다. 마치 그 첫 번째 일곱 주가 490년과 이어지지 않는 기간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그 예언에 일으키는 모순은 아래 설명된다. 이 69주 진술은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건축시키라는 명령으로부터 메시야의 등장하심까지 483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건축가 느혜미야와 동시대인 에스라에게 내려진 칙령으로부터 그 날짜를 선택하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그 성직자들의 정화와 함께 그리고 그 놀라운 성취로 인해서 영적인 귀환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BC456년부터(에스라에게 내린 명령) 483년이면 AD27년까지이다(456+27=483). 예수님은 BC4년에 태어나셨다. 그분은 BC3년에 1세셨고, BC2년에 2세, BC1년에 3세셨고, 27년 후인 AD27년에 그분은 30세셨다. 그분께서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즉 그분이 메시야가 되셨을 때는 정확히 그분께서 침례 받으신 해이다.


  그분은 그분이 태어나실 때 메시야가 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항상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분은 그분이 기름부음 받으셨을 때 메시야가 되셨다. 이 경이로운 예언은 예루살렘을 회복하라는 가장 중요한 명령으로부터,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실 때 성령님에 의해 예수님께서 기름부음 받을 때까지 정확한 시간 기간을 계산한다.


  *AD 0년을 포함시키면 BC456년이고 0년을 빼면 BC457년이 된다.

 

  일일(一日)은 일년(一年)과 같다: 日-年 원칙이 파생된 것도 이 예언에서부터이다. 예언 구도에서 一日은 성취에 있어서 一年과 동등하다.


 고난의 때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책들은 그 도시의 완성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맞이하게 되는 고난의 오랜 기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7주 또는 49년은 BC456년과 함께 시작된 이 기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62주 또는 434년은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해이다. 이 시간예언의 정밀성 때문에, 탈무드 유대인들은 기록에 있어서 다니엘을 구약의 유대 구분에 있는 예언자들보다 앞세운다. 


  단9:26 “그 육십이 주간들 후에 그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나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 또 장차 이를 한 통치자의 백성들이 와서 그 성읍과 그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것의 종말은 한 홍수로 뒤덮인 것 같을 것이요 또 그 전쟁의 끝이 이르기까지 황폐하게 되는 것들이 정하여 졌느니라”

 

  후에: 483년의 기다림의 해 - 얼마나 오랜 후인가는 아래 설명된다. 중요한 예시는 메시야가 그 자신을 위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녕 예언적인 문구이다. 그렇지 않은가?


  * 예수님의 30세(눅 3:22-23) 때가 차고(막 1:14-15, 갈4:4)를 참고할 것


  후에 - 그 도시가 파괴된다: 여기는 예루살렘의 미래의 파괴가 예견되어있는데, 메시야가 끊어짐을 당한 후이나 그리 오랜 후는 아니다. 그것은 그 기간을 초과해서까지 확장되고,  그 도시의 파괴의 정확한 시간(그 전쟁의 끝, 파괴들, 등등.)은 그 예언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왕자의 백성들(로마인들)이 와서 483년 후의 AD70년에 그 도시와 성전을 파괴시킨 것을 알고 있다. 그 개념은 메시야의 끊어짐의 결과로 그 왕자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제 포기하신 그 성전을 파괴시키러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의미에서 그것은 이미 타이터스가 AD70년에 그것을 파괴시킬 때 이미 황폐되어 있었다. 타이터스가 그것을 황폐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황폐하게 만드셨다.


  9:27 “또 그분께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주간 동안 그 언약을 확정하실 것이요 그 주간의 중간에 그분께서 그 희생예물과 봉헌 예물을 폐지하실 것이요, 또 가증한 것들이 뒤덮이므로 그분께서 그것을 황폐하게 하시리니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하실 것이요 또 그 작정된 것이 그 황폐하게 된 것들 위에 쏟아 부어지리라 하니라”


  그분이 확정시키실 것이다: “그분” 메시야가 그 계약을 확정시키실 것이다. 그 도시를 파괴시키는 그 왕자가 아니다. 이 후자는 세대주의전천년 학자들에 의해 제공된 해석의 위법적인 방법이다. 그들의 해석을 가지고는, 그 예언은 490년 예언이 되는데 있어서 중단된다, 즉 70번째 주가 아직 오지 않았다. 신빙성 없게도 그들은 세계와 적그리스도의 역사의 마지막 7년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70주 예언이다. 마지막 주는 AD27년에 이어지는 한 주를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의 70주 예언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 언약을 확정하셨다: 우리는 오순절에까지만 이어지지 않고 고넬료의 가정에 있는 이방인들의 개심까지 이어지는, 그 언약의 확정의 성취를 발견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그토록 멀리가지 않는다. 다만 AD33년은 사도 바울, 이방인들의 사도 그리고 교회의 기초에 있어서 선택받은 마지막 사도의 개심을 포함한다. 이렇게 예상하여 그 언약의 확정은 완성된다(렘31:31-33, 마26:26-28, 롬15:8, 히8:8-13 참조).

 

  70번째 주: 메시야는 한 새 언약을 가지고 확정하러 오셨다. 그 확정은 AD27년에 예수님의 침례 받으심에 뒤이은 7년에 성취될 것이다. 27의 나머지, 그리고 28, 29, 30, 31, 32, 33 에서 AD30년이 그 주의 중간이 될 것이다. 그것은 메시야께서 끊어짐을 당할 때이지만, 그것은 그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26절의 말씀대로. 따라서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희생과 예물을 효과 없는 것으로 만드셨다. 그분은 그것의 효과를 중단시키셨다. 일단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돌아가신 후, 당신이 백만 번에 이르는 어린 양들을 드릴 수 있으나, 그것들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것들은 폐지되었다. 예수님께서 성전 제사를 골고다에서 폐지시키셨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결정되기를- 후에 로마인들에 의해 그것 위에 쏟아 부어지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폐허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에 의해 그 로마인들이 그곳에 오기 전에 이미 황폐케 되었다. 어떠한 인간도 그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것들을 풀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앙을-세우는 예언인 것이다.

 

  예언적 결론들: 이 장에 나타나있는 예언적 단어들의 경이로운 일치성외에, 어떤 이는 다음 결론들을 또한 지적할 수 있다: 1. 세대주의 전천년 해석은 강제적이고 그 예언에 있어서 자연적인 구분들에 어긋난다. 다니엘 2장에서, 두 발이 반드시 그 신상으로부터 잘려져야 하고, 1500년간 발목에서부터 떨어져있거나, 또는 발가락들이 반드시 그 상 길이의 두 배 이상으로 그려져야 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그렇게, 마지막 주는 성취된 기다림의 예언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반드시 분리되어져야 한다면, 아직도 미완성된 채, 이제 지나간 1900년을 초과해서 얼마나 더 많은 해가 지나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의 70주 예언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런 해석 시스템은 잘못되었음에 틀림없다. 2. 예언 상징주의에 있어서 하루의 기간은 한 해에 상당한다는 용법이 설립된다. 3. 계시록과 다니엘의 1260일, 42개월, 3년 반, 때, 한 때 두 때 반 때는 모두 문자적인 3년 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260년을 의미한다. 계시록에 나타난 다른 시간 예언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된다. 즉, 예언상 하루는 성취에 있어서 한 해와 같다.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