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드러난 EU의 치명적 한계
시사IN | 파리·최현아 편집위원 | 2010. 3. 2
남유럽의 작은 나라 그리스의 경제위기가 전 유럽을 공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그리스의 재정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2.7%에 달했다. 이에 따라 국가부도 상황을 염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실제로 그리스의 경제위기는 남유럽뿐 아니라 전체 유럽으로 전이되었다. 지난 1월 말에서 2월 중순에 걸쳐, 유로 지역에서 투자자가 빠져 나가면서 증시 추락과 유로화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이런 경제 문제 외에도 그리스 경제위기는 유럽연합(EU)의 구조적 한계를 전 세계에 노출시킨 사태이기도 하다.
지난 2월11일 벨기에 브뤼셀 EU 본부에서는 회원국 27개국 대표가 모여 그리스 경제위기에 공동 대처하겠다고 결의했다. 이 공동 대처는 '금융 지원'과 '감시'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에 자금을 지원하고, EU 위원회는 이 나라 정부의 경제운영을 감시하는 방식이다. 이런 조처를 취한 뒤에도 재정적자가 충분히 줄지 않을 경우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그리스 신탁통치'를 맡긴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그동안 분분했던 그리스 경제위기를 둘러싼 EU 회원국 간 논란은 마무리되었다.
2월11일 브뤼셀 EU 본부에서 그리스 경제위기와 관련한 회의를 마친
EU 회원국 정상들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이 그리스 경제위기를 좌시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로 인해 유럽 경제가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EU 지역 밖으로 이탈하면서 유럽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고, 남유럽의 스페인·포르투갈도 위험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리스 위기는 남유럽을 거쳐 중부와 북부 유럽으로 돌진할 것으로 보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EU의 핵심 국가인 프랑스·독일을 중심으로 '공동 대처'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이다.
적극 구제는 어렵고, 그냥 둘 수도 없고…
2008년 가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독일 정부는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우면서 독자 노선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그리스 구하기'에 적극 동참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리스 위기가 EU 위기로 확산될 때 독일은 최대 피해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EU의 그리스 지원 결정은 EU 조약 제122항에 따른 것이다. 이 조항은, 회원국이 자연재해 등 돌발 사태로 위험에 직면할 경우 EU 위원회가 해당 국가에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EU의 지원은 그리스에 단순히 돈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 정부는 의무적으로 EU 위원회의 통제 아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예컨대 그리스 정부는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2009년 12.7%에서 올해 9%, 2011년 6%, 2012년에는 3%로 낮춰야 한다. 이에 더해 부가가치세와 에너지세를 올려 경제를 안정(사실상 침체)시키라는 EU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 정부는 EU 지원을 받는 대신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하는 운명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가 이런 위기를 맞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하면 EU, 특히 유로화 시스템으로 그리스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합 이전 자국 통화를 사용할 당시의 그리스는 인플레가 심하고 이에 따라 금리도 높은 국가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화를 사용하게 되면서 금리가 크게 내려갔고, 다른 EU 국가의 돈도 쉽게 유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의 민간과 정부는 이전보다 훨씬 싼 금리로 외자를 대규모로 유치했는데, 이는 민간 부문의 거품과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제 경쟁력을 높여 무역 부문에서 흑자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어려웠다. 무역흑자를 내려면 자국 통화의 가치를 절하할 필요가 있는데 유로화를 사용하면서 이 같은 정책은 원천 봉쇄되었다. 이처럼 경제정책 부문에서 권한을 상실한 그리스 정부가 각종 사회문제에 대처할 수단은 재정을 푸는 것 외에는 사실상 없었다. 이런 상황이 그리스의 대규모 재정적자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2009년에 집권한 사회당 정부는 그리스 재정적자 규모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전임 보수당 정부는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을 6% 선으로 발표했는데, 알고 보니 12%대였던 것이다. EU 위원회가 규범화하는 재정적자 비중이 3%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스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낮췄다. BBB는 그리스 정부의 '채무상환 능력이 위험한 수준'이라는 의미다.
반면 그리스 위기에 대한 전반적인 불안감과 관련해 "지나친 우려다"라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경제정세 관측소'(OFCE)의 장 폴 피토시 소장은 "그리스의 위기가 EU 전체의 문제로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EU의 보증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규모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EU의 재정도 무척 튼튼한 편이다. 그는 그리스 위기에 대한 EU 회원국들의 지나친 두려움이야말로 위험 요소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장 폴 피토시 소장이 오히려 걱정하고 놀라워하는 것은 EU 회원국들이 그리스 지원을 결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내부 갈등'이다. 그런데 이런 내부 갈등은 EU라는 지역 공동체의 치명적 한계가 그리스 위기라는 사태를 매개로 드러난 데 불과하다.
예컨대 EU 내에서 그리스는 무역 적자국인 반면 프랑스·독일은 흑자국이다. 그런데 무역 적자국은 수출이 어렵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이 부진하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많은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유로화 시스템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을 늘리기 위한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는 없다. 결국 EU의 무역 적자국은 '수출 부진→일자리 부족→재정적자'라는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에 갇힌 것이다.
EU, 회원국 권한은 박탈하고 의무만 강요
그러나 이에 대해 EU는 재정적자를 일정 수준으로 억제하라는 규범을 강제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그리스 같은 회원국이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이에 대한 자금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보증 권한도 EU에는 없다. '유럽의 단일한 국가 건설'이란 슬로건을 내건 EU가 그리스 같은 회원국에 실제로 하는 일은 '권한(재정통화 정책의 자율성) 박탈'과 '의무(재정적자 억제) 강요'에 그치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EU가 '유럽 지역의 경제 정부'로서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EU 조약은 현재 회원국 정부에 대한 '재정 지원 금지(non bail out)'를 명문화하고 있는데 이를 폐기해서, 경제위기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지역적 인프라를 갖추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독일을 중심으로 반론도 많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새로운 브랜디를 안겨주면서까지 도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EU를 주도하는 국가로서는 무책임한 소리다.
이에 유럽이 안고 있는 딜레마가 있다. 그리스의 위기를 그냥 방관하자니 연쇄 위기가 올까봐 두렵고, 그렇다고 그리스의 재정적자에 대한 부담을 감당하기에는 EU의 권한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번 그리스 위기로 인해 EU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의제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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