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스크랩] 미래주의(종말론)의 발전과정에 대한 정체

수호천사1 2012. 1. 24. 18:57

미래주의(종말론)의 발전과정에 대한 정체 


로마 카톨릭 예수회(Jesuit), ‘미래주의’의 악한 제국



  기독교인에게 루시퍼(Lucifer)의 종말기 최대 기만을 즉시 볼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초자연적이고 천국의 영감을 받은 최첨단 안경을 상상해 보라. 그런 X레이 안경이 존재한다. 이 글의 목적은 그런 안경을 찾아 써 보는 것이다. 그러면 상상하기 어려운 예수회(Jesuit) 미래주의의 악한 제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기독교는 1500년대에 발생한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중요성을 거의 잊어버렸다. “16세기에는 음침한 밤 뒤에 다가오는 날씨 험악한 일출 광경과 같은 모습을 제시해 준다. 유럽은 오랜 미신의 잠에서 깨어났다. 죽은 자는 일어섰다. 침묵을 지킨 채 살해되었던 진리의 증인들이 다시 한 번 일어서서 그 증거를 새로 제시하고 있다. 순교한 신도들이 종교 개혁가로 다시 나타났다. 영적 성전을 정화한 일도 있었다. 시민권과 종교의 자유가 도입되었다. 인쇄술의 발전과 학문의 부흥에 따라 그 운동이 가속화되었다. 어느 영역에서나 진보가 이루어졌다. 콜럼버스는 대양을 횡단하여 신대륙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로마는 그 기반이 흔들려 자치령의 절반을 잃었다. 프로테스탄트 국가가 형성되고 근대 세계가 탄생했다.”(H. Grattan Guinness, 가톨릭교와 개혁, p. 122)


  1천년 동안 유럽은 로마의 철권통치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성경이 거의 없었으며 기독교에는 대체로 미신이 침투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에 대한 단순한 믿음 등을 거의 알지 못했다. 은혜에 대한 신약의 진실, 완전한 용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이들에게 영생을 자유롭게 은혜로 주시는 일(롬 6:23)이 여러 가지 유전 하에 사장되었다. 이어서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가 사자와 같이 일어섰다. 어마어마한 개인적 투쟁을 거쳐 마르틴 루터는 인간의 공덕을 통해서라기보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다는 예수 그리스도 안의 이신칭의(以信稱義)(하나님의 ‘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롬 1:16, 3:26, 28, 5:1).


  결국 마르틴 루터는 선지자가 되었다. 루터는 ‘작은 뿔’, ‘죄의 사람’, ‘짐승’에 관한 성경의 내용을 촛불에 비추어 가며 읽었고, 성령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루터는 진실을 발견하고 혼자 말했다. “어째서 이 예언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 적용되는가?” 루터가 이 새로운 통찰력과 씨름하고 있을 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메아리쳤다. 따라서 마르틴 루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교황의 로마 카톨릭은 성경 예언의 적그리스도라고 어리둥절해 있는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또는 서면으로 설교했다. 이중의 사역 곧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한 구원이라는 메시지, 또한 교황의 로마 카톨릭이 적그리스도라는 가르침 때문에 역사의 강이 그야말로 물줄기가 바뀌었다. 유럽과 영국에 있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카톨릭 교회를 떠났다.


  “미국의 성경 연구가 랄프 우드로우(Ralph Woodrow)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혁 교회의 가르침에서는 두 가지 큰 진리가 돋보인다. 곧 의로워지는 것은 로마 카톨릭의 사역이 아닌 믿음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과 교황이 성경의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위한 메시지이자 적그리스도에 반대하는 메시지였다. 종교개혁 전반은 이 이중의 증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Michael de Semlyen,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종교개혁에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고, 다음으로 그리스도에 비추어 적그리스도를 발견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위하고 적그리스도에 반대하는 강력하면서도 성령이 충만한 운동에 따라 세계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H. Grattan Guinness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부터 그 운동(종교개혁)은 예언적 말에 따라 인도되고 힘을 얻었다. 루터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전혀 강력하지도 않았으며, 교황의 이단성에 대해 싸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루터는 교황의 교서를 불태워 버렸다. 녹스(Knox)의 첫 설교(Knox에게 개혁가의 임무를 주게 했던 설교)는 교황에 관한 예언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개혁가들은 신앙의 고백에서 그 예언의 해석을 구체화했으며, 칼빈은 연구소에서 그렇게 했다. 개혁가들은 모두 그 문제에 찬동했으며, 온화하고 주의 깊은 멜란히톤(Melanchthon)도 루터처럼 이 예언의 반교황적 의미를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이 예언의 해석에 따라 그 개혁 행동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비상한 힘과 불굴의 용기로 로마 카톨릭에 대항할 수 있었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이단 교회에 극단적으로 저항했다. 순교자가 되기도 하고 위기 상황에서 버티어 나가기도 했다. 또한 개혁가들의 견해는 여러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었다. 군주들이나 여러 사람들이 개혁가들을 채용했다. 그런 영향 하에서 여러 국가들이 로마 카톨릭의 거짓 제사장에 대한 충성을 포기했다. 이어 따라 지옥의 열강들은 종교개혁 신봉자들에 대한 억압을 늦추는 듯했다. 그러나 전쟁에 이어 전쟁이 계속되고, 고문, 불태움, 대량 학살이 크게 증가했다. 그래도 종교개혁 운동은 패배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전지전능한 성령의 에너지로 지탱해 나갔다. 그것은 18세기 전의 교회의 기초와 마찬가지로 진실한 그리스도의 사역이었다. 천국에서 받은 미래의 계시록(성경 마지막 부분의 그 예언서)은 그 일을 수행하는 데 동원된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H. Grattan Guinness, 로마 카톨릭과 종교개혁, pp. 136~137).


  1545년 카톨릭 교회는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공의회를 개최했다. 이 회의는 트렌트(Trent)라는 로마 북부 도시에서 열렸다. 트렌트 공의회는 실제로 3기 동안 계속되어 1563년에 폐막했다. 주요 목적은 카톨릭이 마르틴 루터와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반격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트렌트 공의회는 로마 카톡릭의 반종교개혁 센터가 되었다.

 

  이 때가지 로마 카톨릭의 주요 공격 방식은 대체로 정면 대항 방식이었다. 곧 성경이나 이교도들을 공개적으로 불에 태웠다. 그렇지만 이 전투 결과, 프로테스탄트의 마음속에서는 로마 교황청이 ‘성도들과 전쟁’(계 13:7)을 하고 있는 짐승이라는 확신만 들었다. 따라서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어떤 새로운 전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수이트가 탄생하게 된다.


  1534년 8월 15일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제수이트교, 또는 제수이트(예수회)라는 비밀 카톨릭 조직을 세웠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조직은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Darth Vader의 악한 제국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제수이트는 분명히 음모와 난동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포르투갈(1759), 프랑스(1764), 스페인(1767), 네팔(1767), 러시아(1820)에서 추방되어야 했다. 제수이트 제사장은 로마 카톨릭 교회 가운데 가장 사악한 정치 지부라고 이름이 났다. Edmond Paris는 ‘제수이트의 사악한 역사’라는 논문에서 이런 정보를 상당히 많이 문서로 정리해 폭로해 놓았다. 트렌트 공의회에서 카톨릭교는 제수이트에게 프로테스탄티즘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어머니 교회(로마 카톨릭)로 다시 불러들이라는 특별 임무를 주었다. 그 임무는 종교재판과 고문뿐만 아니라 신학 논쟁을 통해서도 진행되었다.

 

  이제 그 엑스레이 안경을 발견할 때가 왔다. 트렌트 공의회에서 제수이트는 프로테스탄트가 로마 카톨릭에 대해 성경의 적그리스도 예언을 적용하고 있는 데 대항하여 새로운 성경 해석 방법을 개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유명한 제수이트의 사제이자 스페인의 신학 박사인 프란시스코 리베라(1537~1591)의 기본적인 말은 “내가 여기 있으니 나를 보내주소서”라고 것이었다. 마르틴 투터와 마찬가지로 프란시스코 리베라도 촛불에 비추어 가며 적그리스도, 작은 뿔, 죄의 사람, 짐승에 관한 구절을 읽었다. 그러나 교황을 모시고 있었으므로 프로테스탄트의 해석과는 상반되게 “어째서 이 예언이 카톨릭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누구에 대해 적용되는가? 리베라는 “종말기에 일어설 불길한 사람에게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로마 카톨릭은 “멋지다”라고 응답하며, 이 관점을 적그리스도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공식 입장으로 재빨리 채택했다.


  1590년 리베라는 교황의 권한을 적그리스도라고 간주하고 있는 프로테스탄트의 견해에 대항하여 계시록에 관한 논평을 발표했다. 리베라는 초반의 몇 장을 제외한 계시록 전체를 교회 역사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종말기에 대해 적용했다. 적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 영접 받아 예루살렘을 건설할 단일 악인이다(George Eldon Ladd, 축복된 소망: 재림과 휴거에 관한 성경 연구). 리베라는 프로테스탄트의 성경에 바탕을 둔 주장, 곧 적그리스도(살후 2장)가 하나님 교회 안에 나타난다는 주장(루터를 위시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리베라는 하나님 교회 밖의 이단 적그리스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Ralph Thompson, 진리를 추구하는 기독교의 챔피온). “리베라의 해석은 예언적 진리를 왜곡시키며 헐뜯고 있다.”(Robert Caringola, 70이레: 역사적 대안).


  리베라의 뒤를 이은 유명한 제수이트 학자는 벨라민 추기경(Cardinal Robert Bellarmine, 1542-1621)이었다. 1581~1593년 사이에 벨라민 추기경은 “이 시대의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적 믿음의 논쟁점에 관한 강론”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대체로 리베라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베라의 미래주의 가르침은 이탈리아 추기경과 저명한 제수이트 논객들 덕택에 더욱 유명해졌다. 리베라는 저서에서 바울, 다니엘, 요한이 교황권에 대해 한 말이 없다고 했다. 미래주의 학파는 카톨릭에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종말기가 되어야 통치할 단일 개인이라고 가르쳤다.”(성경의 위대한 예언, Ralph Woodrow 저). 이 유명한 제수이트 학자 두 명의 견해를 통해 보면 아주 '새로운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 역사가라면 이 아이에게 ‘제수이트 미래주의’라는 이름을 주었을 것이다. 사실 프란시스코 리베라는 ‘미래주의’의 아버지란 칭호를 얻었다.


  더 깊이 논의하기에 앞서 일부 용어를 정의해 보자. ‘역사주의’란 다니엘 7장, 데살로니가후서 2장, 요한계시록 13,17장에 나오는 작은 뿔, 죄의 사람, 적그리스도, 짐승, 바벨론의 음녀에 관한 성경의 예언이 모두 기독교의 발전하는 역사와 기독교 내의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계속되는 투쟁에 적용되어 종말기에 절정을 이룬다는 믿음이다. ‘역사주의’에서는 이 예언이 공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신약 메시지를 실제로 부정하고 있는 체제, 곧 교황의 로마 카톨릭에 직접 적용된다고 본다. ‘역사주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가가 일차적으로 중점을 두었던 예언적인 관점이었다.


  ‘역사주의’에 직접 대행해서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예리하게 반격을 가한 종파는 ‘미래주의’라는 관점을 지닌 제수이트의 악한 제국이었다. ‘미래주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적그리스도 예언은 로마 카톨릭과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종말기에 나타날 불길한 사람 하나에게만 적용된다.” 따라서 제수이트 미래주의는 그 악명 높은 ‘공백기 이론’(big gap theory)을 들어 1500년 예언의 역사를 감춘다. 공백기 이론에서는 로마가 멸망할 때 예언이 종말을 거두고 휴거의 시대에 다시 계속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열 뿔, 작은 뿔, 짐승, 적그리스도는 오늘날의 기독교와 관련이 없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암흑기에 이루어질 예언이 얼마나 되겠는가? 없다. 전혀 없다.


  트렌트 공의회 이후 거의 300년 동안 이 카톨릭의 아기(제수이트 미래주의)는 대체로 카톨릭의 구유 안에 남아 있었지만, 제수이트는 이 아이가 자라나 결국 프로테스탄트의 양자가 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이 채택 과정은 실제로 1800년대 초반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보면 매력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일부 하이라이트를 간략히 살펴보면서 내가 언급할 사람들은 대부분 순수한 기독교인이란 점을 분명히 밝혀 두겠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류의 경로가 될 수 있을까? 바꾸어 말하면 진실한 기독교인을 제수이트, 그리스도와 악마가 동시에 활용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이 점을 고려해 보라.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지니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축복을 주셨다고 했다(마 16:15~17). 이어서 얼마 지나 베드로는 유혹에 빠졌으며 사탄이 베드로를 통해 말했다(16:21~23).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도 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필자는 이를 ‘베드로 원리’라고 한다.


  “리베라의 미래주의는 3세기 동안이나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적극적인 위협이 되지 못했다. 실제로는 로마 카톨릭에 제한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격렬하게 일어나 영국 국교회의 프로테스탄트에 매달렸다.”(Ralph Thompson, 진리를 찾는 기독교 챔피언).


  법률가이자 성서 연구가인 사무엘 미틀란드(Samuel Roffey Maitland)는 캔터베리 대주교의 사서가 되었다. 그러다가 아마 어느 날 도서관에서 리베라의 논평을 발견했음에 틀림없다. 어떻든 1826년에는 종교개혁에 대해 공격하며 미래에 출현할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란 리베라의 사상을 옹호하는 도서를 출판하였다. 이 도서는 널리 보급되었다. 다음 10년 동안에는 종교개혁 사상을 한 구절 한 구절 추적하며 반종교개혁의 수사학을 펼쳤다. 그런 정열과 영국 종교개혁에 대한 강한 공격의 결과로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을 탄생시킨 바로 그 영국이라는 나라의 프로테스탄티즘은 심한 타격을 받았다.


  미틀란드 박사에 이어 출현한 이는 Dublin 대학교의 히브리어 교수였던 James H. Todd 박사였다. Todd 박사는 미틀란드의 ‘미래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기 옹호적인 팸플릿과 서적을 출판했다. 이어서 영국 교회의 신도이자 유명한 옥스퍼드 운동(1833~1845)의 지도자였던 뉴만(John Henry Newman,1801~1890)이 출현했다. 1850년 뉴만은 ‘영국 국교의 고난에 관한 서한’이란 글을 써서, 옥스퍼드 운동의 목적은 ‘여러 영국 종파’를 로마 교회로 다시 흡수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한 개인적 인물인 적그리스도)에 관한 토드의 ‘미래주의’를 승인하는 소책자를 출판한 뒤, 뉴만은 곧 완전한 로마 카톨릭 교도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명예 추기경으로 서품을 받기도 했다. 미틀랜드, 토드, 뉴만 등의 영향으로 ‘로마로 향한 운동이 이미 일어나 홍수와 같이 옛 프로테스탄트의 영역을 휩쓸고 있다’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H. Grattan Guinness, 해석자로서 예언이나 시대의 베일을 벗기는 역사).


  다음으로 출현한 이는 상당히 존경받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1792-1834)으로서 오순절 교파와 카리스마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어빙(Irving)은 신도가 1천 명이 넘는 런던 Chalcedonian 예배당에서 목사 임무를 수행했다. 어빙(Irving)은 예언에 의지하면서 결국 토드, 미틀란드, 벨라민, 리베라가 주장한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란 사상을 받아들였지만,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1830년경에는 그리스도의 ‘2국면에 걸친 돌아옴’이라는 독특한 사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첫 국면은 적그리스도의 흥기에 앞선 비밀 휴거였다. 여기서 어빙은 이 사상이 큰 논란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널리스트 데이브 맥퍼슨(Dave MacPherson)은 어빙이 마가렛 맥도날드(Margaret McDonald)라는 젊은 스코틀랜드 여성에게 주어진 예언적인 계시의 결과라고 받아들였다(비밀휴거 이론의 기원을 노출시킴). 어떻든 어빙이 가르친 것은 사실이다.


  영국에서 이처럼 반프로테스탄트 분위기가 성장하고 있을 때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1800~1882)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다비는 유명한 법률가이자 목사이며 신학자로서 성경 주제에 관해 53권이 넘는 저서를 저술했다. 또한 존경받는 기독교인이자 깊은 경건심의 소유자로서 그 시대의 자유주의에 대해 성경의 무오류성을 옹호했다. 그 뒤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이라는 영국 폴리머스 어느 그룹의 목사가 되었다. 다비가 복음주의 신학 발전에 기여한 바는 너무 커서 현대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의 아버지가 되었다.


  ‘세대주의’란 하나님이 주요 세대나 주요 기간 동안 특이하게 인류를 다룬다는 이론이다. 다비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 ‘교회의 시대’, 휴거기가 시작되기 이전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휴거기 이후에는 다니엘 9:27의 7년 기간이 시작될 것이며, 그 기간에 적그리스도가 유대인에 대항하여 일어설 것이다. 사실 존 넬슨 다비는 휴거기 이후 미래의 환란기에 적용할 수 있도록 현재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로 다니엘의 70이레를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제거할 기반을 많이 닦아 놓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회에 긍정적인 점이 많은데도 미틀란드, 토드, 벨라민, 리베라를 따라 미래주의 가르침을 자신의 신학 속으로 통합시켰다. 이에 따라 세대주의의 아버지인 존 넬슨 다비와 미래주의의 아버지인 제수이트 프란시스코 리베라가 연계될 수 있었다. 다비는 1859~1874년 사이에 미국을 여섯 차례나 방문하여 주요 도시에서 설교했다. 그 기간 동안에 미국 풍토에 ‘미래주의’의 씨앗을 확고히 뿌릴 수 있었다. 이렇게 제수이트의 ‘어린이’가 성장하게 되었다.


  이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비의 저작물의 영향을 크게 받은 Kansas 주 변호사 스코필드(Cyris Ingerson Scofield, 1843~1921)였다. 1909년 스코필드는 유명한 스코필드 관주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을 출판했다. 1900년대 초 이 성경은 미국 프로테스탄트 성경 학교에서 아주 인기가 높아져 수백 만 부를 인쇄해야 했다. 그러나 스코필드는 인기를 누리고 있던 이 성경의 주석에 다비, 미틀란드, 벨라민, 리베라의 저술에서도 발견된 ‘미래주의’를 비중있게 실었다. 이 스코필드 성경을 통해 제수이트가 창출한 ‘미래주의’라는 어린이는 개신교에서 ‘젊은 성인’이 되었다. 따라서 아직 오지 않은 적그리스도라는 교리는 20세기 미국 프로테스탄티즘 내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무디(Moody) 성경 연구소와 달라스(Dallas) 신학교는 존 다비의 가르침을 강하게 지지했으며, 이에 따라 ‘미래주의’의 성장이 계속되었다. 이어서 1970년대에는 Dallas 신학교의 졸업생 할 린세이(Hal Lindsey) 목사가 ‘대행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라는 베스트셀러를 출판했다. 이 읽기 편한 177쪽짜리 책이 보급됨에 따라 ‘미래주의’가 미국 기독교도들에게 보급되었다. 뉴욕타임스지는 ‘이 10년 동안 가장 우수한 베스트셀러’라고 논평했다. 3천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30여개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저서를 통해 제수이트 미래주의라는 어린이는 ‘어른’이 되었다.


  이어서 출판된 책은 ‘뒤에 남기다(Left Behind)’이다. 1990년대에 팀 라하이(Tim Lahaye)와 제리 젠킨스(Jerry Jenkins)는 할 린세이, 스코필드, 다비, 어빙, 뉴만, 토드, 미틀란드, 벨라민, 리베라가 주장한 미래 출현할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란 사상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크리스천 픽션 시리즈’라고 해석했다. 할 린세이의 저서 ‘대행성 지구의 종말’은 대체로 신학적인 내용이어서 매력이 별로 없었지만, ‘뒤에 남기다’는 풍부한 상상력이 담긴 소설 시리즈로서 ‘서스펜스, 액션, 어드벤처가 넘치는’ ‘크리스찬에게 스릴을 제공하는 책’이었으므로 ‘저자들이 베스트셀러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예측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존경받던 TV 목사 잭 반 임프(Jack Van Impe), 레이놀드, 피터, 폴 라롱드, 존 하기(John Hagee) 목사는 공동으로 ‘뒤에 남기다’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지의 주목을 받았으며, 라하이와 젠킨스는 Larry King Live의 인터뷰를 받기도 했다. ‘뒤에 남기다’라는 도서는 WalMart, Fry's Electronics를 비롯해 여러 서점에 전시되었다.


  또한 필자는 ‘뒤에 남기다’의 제작자들과 이 TV 목회의 목사들이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려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표명한 베드로를 통해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마 16:15~17) 하나님은 그 기독교인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베드로 원리를 기억하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때 활용할 수 있는 ‘뒤에 남기다’에는 장점이 많다. 그러나 성경, 예언, 프로테스탄트 개혁에 비추어 보면 분명히 잘못된 점이 있다. ‘뒤에 남기다’는 이제 적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진실을 숨기는 프란시스코 리베라(Fransisco Ribera)의 바로 그 제수이트 ‘미래주의’의 가르침이 되었다. ‘뒤에 남기다’를 통해 ‘미래주의’의 수문이 열리고, 현재 미국을 휩쓸고 있는 거짓 예언의 거대한 조류가 방출되었다. 애석하게도 거짓 사상의 시대가 왔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뒤에 남기다’ 전체 시리즈의 신학적 기반은 다니엘 9:27의 ‘7년’이 미래 환란의 시대에 적용된 것이었다. 그 시대에 대비가 되었는가? 어떤 학자가 처음으로 다니엘의 70번째 주를 그 나머지 69주에서 떼어 종말기로 떨어뜨릴 수 있는지 상상해 보라. 그것은 악한 제국의 바로 그 프란시스코 리베라였다.

 

  “리베라의 첫 번째 도구는 70이레였다. 리베라는 다니엘의 70번째 이레가 아직 미래에 있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메시아적 시간 측정 장치에 거대한 고무 밴드를 설치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전제가 낯익게 들리는가? 이는 할 린세이와 기타 여러 현재의 예언 교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 시나리오이다.”(Robert Caringola, 70이레: 역사적 대안). -펌-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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