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있어 중국교회(中國敎會)는 어디를 말하는가? 삼자교회인가, 가정교회인가? 어쩌면 답이 뻔한 질문 같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중국선교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 결말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에서는 구원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며, 중국선교의 관점에서는 선교현장에서 수고하는 선교사역자들과 이를 후원하고 동역하는 교회와 후원 성도들의 수고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선교에 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여러가지 관점과 견해, 그리고 선교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는다. 소위 말하는 <가정교회>와 <삼자교회> 중 중국선교의 대상은 어디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 중국교회를 이해하도록 하자. 중국교회에서 가장 칭송을 받고 주님께 가장 귀한 도구로 쓰임 받아왔고 또 현재도 수고하고 있는 중국교회의 10대 지도자들의 견해를 통해 중국 삼자교회(이하 삼자회)에 대해 좀더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상, 하편으로 나누어져 설명될 본 기고에서는 중국교회의 10대 지도자들이 소개될 것이다. 10대 지도자들의 삼자회에 대한 고백과 그들의 일생을 통해, 중국교회를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하고 이를 통해 오늘의 중국교회가 세워지기까지 그들이 주님과 더불어 어떠한 수고를 해왔고 또 현재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중국선교를 보다 더 지혜롭게 그리고 온전한 선교전략을 통해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이루어 가도록 하자.


진리의 수호자 ? 王明道(왕밍따오)








▲진리의 수호자 왕밍따오 ⓒ비전앤미션
“삼자회가 설립되던 그날부터 중국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신앙의 자유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 삼자회의 목적은 바로 중국교회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1920년대말 반기독교적인 <반기독교 대동맹>이 있었다. 그것은 교회 외부로부터 들어온 반대세력이었다. 그리고 1950년대말 반기독교적인 <삼자회>가 생겼다. 이것은 교회 내부적인 반대세력이다. 삼자운동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용해 교회 내부로부터 교회를 소멸시키는 제일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역대 기독교를 박해해 왔던 사람들 모두 생각지 못했던 출중한 방법이 오늘에 이르러 발견되어진 것이다.”


王明道(왕밍따오; 1900-1991), 본명은 王永盛(왕용성)으로 14세 때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훗날 이름을 明道(밍따오)로 개명하였는데, 그 의미는 ‘明證眞道(밍쩡쩐따오; 참 진리를 명확히 증명하다)라는 뜻이다. 그는 끝까지 삼자회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저술활동을 통하여 삼자회 무리들을 ‘不信派(불신파)’라고 비난하였으며, 오직 성경의 진리로써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나갔다. 그는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모두 20년, 중간에 한때 마음이 여려진 적이 있었는데 그는 이것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죄를 자백했고, 이 일로 인하여 그의 영성은 더욱 크게 높아졌다. 그 뒤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기 시작해 주의 품에 안길 때까지 28년 동안 중국교회를 위해 수고했다. 그의 복음전파를 위한 일생은 23세 때부터 시작돼 전국 24개성에 그의 발자취를 남겼다.


진리의 증인 ? 以巴弗(이바푸)


“해방 후의 우야오종(吳耀宗)이 일으킨 삼자운동이란, 실제적으로 우야오종 등의 인물이 당의 지도 아래 시작하고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이러한 당의 지도를 제멋대로 떠벌이지 않고 표면적으로는 우야오종 등의 기독교계 애국인사들이 스스로 시작한 것으로 위장시켜 놓은 단체이다.”


以巴弗(이바푸; 1926-1999), 본명은 吳維尊(우웨이준)이었으나 모친이 그를 이바푸라고 불렀는데 ‘주를 위해 죄인으로 잡힌 자’라는 뜻으로 그도 역시 끝까지 삼자회에 가입하지 않았었다. 1964년 이로 인해 감옥에 들어간 후 1987년에 출옥했다. 그는 ‘주 안에서의 교제’라는 글을 통하여 당대의 가정교회가 처한 문제들에 대해서 가정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회신해 주었다.


이들 제목을 보면 : “모든 연약함과 냉담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가?”, “교회가 핍박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이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는가?”, “삼자의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그는 이러한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서 한치의 타협함도 없이 자신이 가진 성경적 진리를 원칙으로 한 답안을 분명하게 기록했다.


나이팅게일의 노래 ? 恩立(은리)








▲恩立(은리; 1928-현재)의 본명은 楊心斐(양신페이) ⓒ비전앤미션?뉴스미션
“이교도의 바람이 이미 교회 안으로 잠식해 들어왔다. 그러나 나의 위치와 신앙 순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결코 삼자회에 가입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조국을 매우 사랑하며 국가법률을 위반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비판하였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과 삼자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恩立(은리; 1928-현재)의 본명은 楊心斐(양신페이), 그는 전도자이면서 음악가다. 그녀는 1928년 10월 복건성 廈門(씨아먼)의 한 교사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53년 상해음악학원을 졸업하여, 1954년 씨아먼의 집으로 돌아와 전도생활을 시작했다. 1958년 7월 삼자회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16년의 감옥생활과 강제노동을 거쳐 1974년 씨아먼에 돌아오게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도자로써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의를 위해 죽을지언정 구차하게 살지 않겠다 ? 袁相沈(위엔상천)


첫째, 우리 교회는 일찌기 1946년부터 자치, 자전, 자양을 시작하였으므로 삼자에 참가할 필요가 없다. 두번째 이유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세상의 어떤 단체와도 연합할 수 없으며, 정치와 종교는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 세번째 이유는, 삼자의 일부 지도자들의 신앙노선을 인정할 수 없다. 네번째 이유는, 현행 종교정책은 비합리적이며 모든 종교에 대해 불평등한 대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비교할 경우, 둘 다 종교로 볼 때 같으나 종교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서는 불평등하다.


다섯번째 이유는, “삼자회 내부의 일부 인사는 원래 삼자의 인물이 아니다. 이러한 인물들은 ‘三朝元老’(특정 직위에 오래 재직한 사람 또는 역대 지도자 밑에서 재임했던 사람을 비유하는 말)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인이 왔을 때는 일본인에게 의지하고, 미국인이 왔을 때는 미국의 보조금을 받아 먹고, 지금에 와서 삼자회 사람으로 둔갑하는 인물들, 이들이야말로 가장 삼자가 아닌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인들의 대열 속에 섞여들어와 정당치 못하게 살아가는 인물들로 교회밥을 얻어먹는 자들이다.”








▲2005년에 소천한 위엔상천 목사 ⓒ비전앤미션?뉴스미션
“위엔상천(1914~2005), 1914년 6월 6일 안훼이(安徽)성의 방뿌(蚌埠)시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광동성 똥관(東莞)이다. 그는 베이징기독교청년회에서 소학교를 나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1년 과정을 마친 위엔상천은 중국의 봉건적 가정 중 제1대 그리스도인으로서 17세 때부터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진 후 18세가 되던 1932년 12월 29일 저녁, 성령의 감동을 받아 눈물로 회개한 후 주님을 영접했다.


그 후부터 왕밍따오 가정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1933년 8월 왕밍따오에게 세례를 받았다. 1958년 4월 19일 반혁명죄로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79년 12월 21일 석방되어 베이징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21년 8개월 동안의 강제노동 생활을 하였다. 1990년 10월 정식으로 중국 공민권을 획득했으며 옥중에서도 결코 자신의 신앙과 원칙을 바꾸지 않았었다.


중국 가정교회 운동을 시작한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베이징가정교회의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이자 목회자였던 위엔상천은 2005년 8월 16일 오후 4시 20분 지병으로 인하여 베이징시 友誼병원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였는데 향년 92세였다.


십자가를 짊어진 자 ? 李慕聖(리무성)


“내가 처음 체포될 때의 죄명은 삼자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명목이었다. 성경적으로 볼 때나 교회역사 속의 성도들의 간증으로 볼 때 오직 하나의 규율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어느 곳의 십자가가 가장 무거우냐에 따라 그곳의 축복 역시 현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진정으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李慕聖(리무성)은 1950년 항주신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그야말로 중국 땅에서 주님을 섬긴지 이미 반세기를 거쳐오고 있는 중국교회 부흥의 산증인이다. 그는 일생 복음전파로 인해 네차례나 투옥되었는데, 문화혁명 기간동안 복음전파와 사람들을 이끌어 주님을 믿게 했다는 이유로 인하여 사형 판결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전능하신 주님만을 위해 일했는데 하나님께서 기묘하신 방법으로 그를 ‘사자의 입’에서 구해 주셔서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며 열심히 중국교회 부흥의 불을 지피고 있다. <생명계간(生命季刊)> 總第19,20,21,22期 및 25期 중에 그의 글과 간증이 실려져 있다.


- 하편에서 계속 -